75화
“내가 널 곱게 놔둬야 할 이유를 설명해 봐.”
한 번 죽었다 되살아난 서찬희.
그는 부복한 채 굴욕을 맛보고 있었다.
정도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서찬희는 단순히 자기 마음에 안 든단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여럿 죽여 댄 쓰레기였다.
마음 같아선 여태 저지른 죄를 스스로 자백하게 시킨 뒤 수용소에 처넣고 싶었다.
물론 뒷배가 있으니 지은 죄에 비해 형량은 가볍겠지만, 그래도 징역은 살아야 할 터.
“저, 절 용서해 주시면… 아버지께서 분명 크게 보답하실 겁니다!”
“흠.”
서찬희는 수용소에서 썩기 싫은지 필사적으로 자신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그러나 정도현의 표정은 영 시큰둥했다.
“보답이라 해 봤자 돈이나 아이템 좀 주는 거겠지.”
1원 상점이 있는 그에겐 별 메리트가 없었다.
그러자 서찬희는 당혹스러웠다.
플레이어면 더 좋은 장비 아이템에 환장할 텐데?
정도현은 노말 등급 템으로 무장했었다. 스미스 공방의 제품과 비교하면 그것들은 애들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저희 아버지께서 직접 제작한 장비들은 더욱 특별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7강인데 +10강이랑 맞먹느니 뭐니 지껄였지?”
“그, 그렇습니다! 아버지껜 「덧대기」란 개인 특성이 있으시거든요.”
“…덧대기?”
마이스터 서광원한테 개인 특성이 있는 줄 몰랐던 정도현.
그가 드디어 관심을 보였다.
서찬희는 이때다 싶어서 정보를 모조리 털어놨다.
“재밌네.”
그의 설명을 들어 본 정도현이 고갤 끄덕였다.
이거 잘만 하면 엄청난 장비 템이 만들어지겠는데.
* * *
한편, 정도현의 부탁으로 자릴 비켜 준 조세아.
그녀는 별장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 두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정말 괜찮을까?’
그는 서찬희를 설득해 보겠다 했지만 그녀가 볼 때 그건 불가능했다.
지금이라도 할아버지한테 전부 털어놓고 도움을 청해야 할까.
휴대폰을 만지작대며 고민할 때.
“……!”
서찬희가 타고 왔던 차량이 다가왔다.
그녀는 곧장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서찬희의 차량도 멈췄다.
운전석과 조수석 문이 동시에 열리며 두 남자가 내렸다.
“오빠, 괜찮아? 안 다쳤어?”
조세아는 서찬희한테 일말의 눈길조차 주지 않고 정도현한테 쪼르르 달려갔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세아는 목소릴 바짝 낮추고 속삭이듯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잘 풀렸어.”
“저, 정말?”
조세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서찬희도 쳐다봤다. 그리곤 흠칫했다.
인제 보니 서찬희의 셔츠가 피로 얼룩졌다. 그것도 꽤 많이.
“오빠, 내가 때리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안 때렸어.”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었지만 저렇게 얼룩이 생겼을 정도면 꽤 심하게 때렸을 터.
나중에 트집이라도 잡히면 어쩌려고 그래.
조세아가 그렇게 걱정해 주자 정도현이 말했다.
“서찬희. 옷에 묻은 피, 나랑 관련 있냐?”
“…아뇨,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조세아는 제 귀를 의심했다.
서찬희 입에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그녀가 자릴 비운 동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세아가 둘을 번갈아 쳐다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 서찬희 씨, 레벨이 왜……?”
75레벨이었던 그의 레벨이 72로 확 줄었다.
레벨이 내려가다니?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이었다.
그 질문에 서찬희는 대꾸하지 않고 고갤 푹 떨궜다.
조세아는 직감했다.
서찬희가 저리 고분고분해진 것과 레벨이 줄어든 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오빠,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난 그냥 좋게 타일렀을 뿐이야.”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너도 서아린한테 혼쭐나고 뒤늦게 정신 차렸잖아?”
“…그거랑 이건 상황이 좀 다르지!”
정도현과 조세아의 실없는 만담에 서찬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좋게 타일러? 뒤늦게 정신을 차려?
‘뻔뻔한 자식.’
마음 같아선 저 망할 주둥이를 확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그의 목숨은 정도현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막말로 그가 죽으라고 명하면 죽는시늉이 아니라 진짜 죽어야만 한다.
“아무튼 잘 해결됐으니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니지나 마.”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조세아는 끝까지 의혹을 떨쳐 내지 못했다. 정도현은 단언했다.
그녀가 걱정하는 일 따윈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 * *
정도현은 서찬희를 데리고 스미스 공방을 찾아갔다.
서찬희의 아버지, 서광원은 아들이 저질러 온 일들을 듣고서 큰 충격에 휩싸였다.
“내 아들이… 사람들을 죽였다고? 마약까지 해?”
“이게 알려지면 관리국도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아들의 추악한 일면을 들은 서광원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그는 잠시 마른세수를 하더니 침울하게 말했다.
“…자네에겐 정말 미안하네. 전부 내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야.”
서광원은 아예 무릎까지 꿇고 정도현에게 사과했다.
서찬희가 자수하게 되면 처벌을 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수용소로 끌려가면 거기서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들리는 소문으론 마탑이 죄수들을 빼돌려 인체 실험도 저지른다고 한다.
혹은 죄수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다 불구가 되거나 장애가 생기는 경우도 왕왕 있다 들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자식을 보내고 싶은 부모가 세상에 어딨겠는가.
서광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복걸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네. 난 바쁘단 핑계로 제대로 보살펴 주질 못했어. 엇나간 건 다 내 부족함으로 벌어진 일이야. 부디 선처를…….”
“알겠습니다.”
“저, 정말인가?”
정도현이 순순히 합의해 주자 서씨 부자의 칙칙한 표정도 호가 밝아졌다.
서광원은 정도현의 손을 붙잡고 연신 고맙다 말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물론이네. 우리도 맨입으로 용서해 달란 건 아니었어. 원하는 걸 말해 보게.”
그는 돈이든 장비 템이든 내어 줄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정도현이 원하는 건 단순히 그런 게 아니었다.
“서광원 씨와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계약?”
정도현의 뜬금없는 부탁에 서광원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도현은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자신의 롱소드를 꺼냈다.
그걸 탁자 위에 올려두자 서광원이 고갤 갸우뚱했다.
“이건 뭔가?”
“제가 쓰는 무기입니다. 한번 살펴보시죠.”
“……!”
서광원은 정도현의 롱소드 정보를 보고선 까무러치게 놀랐다.
‘+15강?’
이게 정녕 가능한 수치인가?
+10강부터는 강화에 실패하면 일정 확률로 장비가 파괴되기에 대부분 만족하고 멈춘다.
롱소드를 본 서찬희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런 무기를 갖고 있었습니까?”
그럼 나랑 싸울 땐 왜 안 썼냐.
서찬희의 질문에 정도현은 싱긋 웃기만 하고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았다.
경험치 더 얻으려 그랬다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젠장, 이런 거 없어도 나 같은 건 쉽다 이거냐?’
서찬희는 굴욕감에 파들파들 떨었다.
비록 열등반이긴 했어도 그는 아카데미에서 상위권을 한 번도 놓친 적 없었다.
그런데 F구역 출신한테 이런 모욕을 당할 줄이야.
분했지만 그의 전투 센스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화 수치만 보지 마시고 능력치도 같이 살펴보세요.”
“능력치?”
“이, 이게 무슨……?!”
서 씨 부자는 또 한 번 경악했다.
강화 효과로 올라간 무기 공격력도 어째 범상치 않았다.
‘이 정도면…….’
‘강화 효율이 거의 두 배잖아. 뭘 어떻게 한 거지?’
꿀꺽-!
서찬희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이런 무기가 있으면 자신보다 레벨이 훨씬 높은 몬스터도 손쉽게 요리할 자신이 있었다.
“자네 어떻게 이런 장비를 만든 건가?”
“「합성」이란 개인 특성 덕입니다. 같은 장비 템을 합쳐서 강화하는 능력이죠. 강화 실패로 파괴될 일이 없고, 강화 효율도 훨씬 좋습니다. 그만큼 돈이 더 들지만요.”
“…개인 특성. 그럼 납득이 가는군.”
외부에 절대 발설해선 안 됩니다.
정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서광원에게 피의 맹약서를 내밀었다.
서찬희는 이미 그의 꼭두각시이니 걱정할 필요 없고.
“그래서 자네의 비밀을 알려 준 이유가 뭔가?”
“아드님한테 들었습니다. 서광원 씨의 개인 특성에 대해서요. 아이템의 기본 성능이 남들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죠?”
“그래, 그 대신 조합 재료가 몇 배는 더 들어가지.”
그게 서광원의 개인 특성, 「덧대기」의 효과였다.
조합 아이템을 추가로 소모해 장비 아이템의 성능을 한층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제작된 장비 템은 전부 비싼 값에 팔렸다.
“앞으로 제가 원할 때마다 장비를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자네, 설마…….”
“서광원 씨가 만든 장비들로 이 롱소드처럼 합성 강화를 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서광원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자신과 정도현의 개인 특성이 합쳐지면 분명 강력한 장비 템이 탄생하리라.
“하지만 자네의 합성도 결국… 똑같은 장비 템이 잔뜩 필요하지 않나?”
“예, 그렇죠.”
“내 능력으로 장비를 양산하려면 조합 재료가 엄청나게 필요하네.”
분명 강력한 장비가 나오겠지만 거기에 들 재료값을 고려하면 너무도 비효율적이었다.
서광원이 난색을 표하자 정도현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필요한 조합 재료는 제가 전부 조달하겠습니다.”
“…자네가 구해 온다고?”
“제가 재료를 구해 올 테니 서광원 씨는 아이템만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죠?”
“그런 조건이라면 상관없지만… 정말 감당할 수 있겠나? 한두 푼 드는 게 아닌데.”
조합 재료는 대체로 구하기 어렵고 가격도 비쌌다.
네임드 몬스터나 보스를 잡을 때 낮은 확률로 나오니까.
그런 걸 무슨 수로 구해 오겠는가.
돈이 있어도 양산할 만큼 구하긴 힘들 거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시고 필요한 조합 재료들을 알려 주세요.”
“음, 알겠네.”
서광원은 정도현이 착용할 만한 장비 템들의 재료 목록을 쭉 불러 줬다.
에픽 등급이다 보니 보스가 드롭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재료가 구해지는 대로 날 찾아오게나.”
“기한이나 횟수 제한 없이 계속 제작해 주시는 겁니다?”
“알겠네.”
서광원은 큰 걱정 없이 맹약서에 이름을 써넣었다.
정도현이 조합 재료를 모아 봤자 뭐 몇 개나 만들겠는가?
“자, 그럼 오늘은 가볍게 각 파츠당 10개씩 만들어 보죠.”
“뭐?”
후두둑-!
정도현은 1원 상점에서 막 구매한 조합 재료들을 꺼냈다.
그의 발치에 가득 쌓인 몬스터의 부산물들. 얼추 세어도 수백 개가 넘는다.
서씨 부자는 그걸 멍하니 쳐다봤다.
* * *
정도현은 기본 성능이 더 우수한 에픽 아이템을 수십 개나 얻었다.
물론 진성이한테 가져가서 합성까지 하면 몇 개 안 남겠지만, 그건 전혀 상관없다.
필요한 재료를 사서 또 만들면 되니까.
아이템을 제작하던 서광원이 마력 고갈로 헉헉대자 그는 마력 회복 포션을 손에 쥐여 줬다.
그러자 그는 정도현을 마치 진상 고객 보듯 쳐다봤었다.
그러니까 계약서에 이름 쓸 땐 신중히 했어야지.
‘템빨에 너무 의존하면 획득 경험치가 줄겠지만…….’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 만들어 둬야 한다.
매번 여유 부리며 싸울 순 없을 테니까.
여차할 때를 대비해 이런 보험도 들어 둬야 했다.
우우웅-!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정도현은 누가 연락했는지 확인하곤 고갤 갸웃했다. 강민겸 지부장이었다.
“예, 지부장님.”
[도현 군, 미안한데 당장 본부로 와 줄 수 있겠나?]
“예?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후…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네. 자네가 꼭 좀 도와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