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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74화 (74/240)

74화

정도현이 부르자 좋다고 헐레벌떡 달려온 조세아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뭐?”

“네 약혼자, 서찬희가 날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어. 그놈한테 지시를 받은 레드 플레이어들이 얘네고.”

정도현이 자기 뒤에 서 있는 남자들을 엄지로 가리키며 그리 말했다.

조세아는 너무 충격받아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설마 그 남자가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그녀는 척살대 대원들을 보며 질문했다.

“저, 정말… 그 남자가 살인 청부를 맡겼어요?”

“네, 예전부터 종종 저희 길드를 이용했었습니다.”

“아…….”

마음에 안 들었던 사내였지만 언젠간 결혼할 남자였다.

그런데 이토록 추악한 면모를 감추고 있었을 줄이야.

직접 죽이지만 않았을 뿐, 사람들을 죽인 살인마지 않은가.

“당장은 넘겼지만, 내가 살아 있단 걸 알면 다시 손을 쓸 거야.”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돼?”

조세아는 그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때 들떠서 백화점에 끌고 가지 않았어도.

아니. 애당초 자신이랑 엮이지만 않았으면 이런 식으로 휘말리지 않았을 텐데.

그를 도울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놈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불러 줘.”

“불러내서 뭘 어쩌려고?”

“차분히 설득해 봐야지, 이 녀석들처럼.”

그 말에 일렬로 서 있던 척살대가 식은땀을 흘렸다.

설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죽이고 살린 뒤 노예로 삼았지 않은가.

그들 입장에서 정도현은 흑마법사나 다름없었다.

그의 가증스러운 거짓말에 그들은 속으로 아우성을 외쳤다.

“말이 통할 사람이 아니잖아. 오빠, 내가 할아버지한테 얘기해서 어떻게든 해결해 볼게.”

“그렇게 일을 키우면 여러모로 귀찮아져. 날 지켜 주면 너도 입장이 곤란해질 거고.”

조세아가 정도현을 도와주면 일가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리라.

서찬희는 물러나도 다른 이들이 그를 탐탁지 않게 보겠지.

“그냥 당사자들끼리 만나서 조용히 해결하는 게 깔끔해.”

“그 말도 맞는데, 그 사람이 오빠 말을 들을 리 없잖아.”

조세아는 걱정되는지 자꾸 말꼬릴 물고 늘어졌다.

정도현이 여유롭게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넌 그 남자를 불러 주기만 하면 돼.”

“…알았어. 그럼 오빠만 믿고 연락해 본다?”

조세아는 서찬희에게 따로 만나고 싶단 문자를 보냈다.

* * *

[말씀하신 대로 잘 처리했습니다.]

정도현을 처리하러 갔던 사냥개한테서 짤막한 문자가 왔다.

보고 내용을 확인한 서찬희는 입꼬릴 슬며시 올렸다.

“그러니까 왜 내 걸 탐내.”

이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이 땅에서 결코 살아갈 수 없으니까.

이렇게 누군가가 처리됐단 보고를 받을 때마다 그는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우웅-!

휴대폰이 연달아 울렸다.

누가 문자를 보냈는지 확인한 그는 눈을 부릅떴다.

조세아였다. 그녀가 먼저 문자를 보내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답신했다.

[서찬희 씨, 갑작스럽지만 저희 내일 좀 만날 수 있을까요?]

- 무슨 일이죠?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요.]

그는 의아했다.

둘은 약혼한 사이긴 해도 공적인 자리 외엔 따로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다가가려 하면 그녀가 한사코 멀어졌으니까.

그런데 중요한 얘기라니.

그게 뭘지 감도 안 잡혔다.

- 알겠습니다. 내일 일정 비워 두겠습니다. 편하신 시간대 알려 주세요.

[고마워요.]

* * *

서찬희는 그녀가 알려 준 장소로 차를 몰고 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중앙 지역에서 상당히 떨어진, 조세아의 개인 별장이 있는 사유지였다.

관리인을 제외하면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중요한 얘기길래 이런 먼 곳까지 불러낸 거야?’

서찬희는 별장 근처에 차를 세워 두고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뒤, 또다른 차가 들어왔다.

조세아가 몰고 다니는 차였다.

그러나 거기서 내린 건 조세아 한 명이 아니었다.

조수석에서도 웬 남자가 내렸다.

[정도현] [LV.67]

“……!”

정도현. 죽었던 놈이 멀쩡히 살아서 나타났다. 그것도 조세아랑 같이.

서찬희는 차에서 내려 그 둘을 노려봤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사냥개가 분명 놈을 처리했다고 보고했는데.

‘사냥개가 역으로 당했다고?’

하지만 67레벨 주제에 무슨 수로 사냥개를 쓰러트렸단 말인가.

정도현은 서찬희의 복잡한 표정을 보더니 픽 웃으며 질문했다.

“오만 잡생각이 다 들지?”

“…뭐라고?”

“도현 오빠한테 다 들었어요. 서찬희 씨가 레드 플레이어들을 고용해 죽이려 했다고.”

조세아가 차갑게 그를 노려보며 따졌다.

서찬희는 자신의 잘못을 들킨 것보다, 조세아가 정도현을 오빠라고 부르는 게 더 신경 쓰였다.

“…세아 씨랑 무슨 사이지?”

“그냥 친구.”

빠득-!

서찬희가 이를 갈았다.

저 새끼가 어떻게 살아 있는진 모르겠으나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저놈. 뭔가 숨기고 있다.’

서찬희는 심호흡하며 감정을 가라앉혔다.

“조세아 씨, 중요한 얘기란 게 이거였습니까?”

“도현 오빠한테 당장 사과해요. 그리고 관리국에 가서 죄를 자백하세요.”

“…사과? 자백? 무슨 소릴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조세아가 앙칼지게 소리치자 서찬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뻔뻔한 태도에 조세아는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정도현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됐어. 저렇게 나올 거 너도 알았잖아.”

“하지만……!”

“넌 먼저 돌아가 있어. 내가 담판 지을게.”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자 조세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에 정도현이 같잖단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 실력 알잖아.”

“…그래서 더 걱정이야.”

조세아는 정도현이 해코지를 당할 거라곤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걱정하는 경우는 그 반대였다.

서찬희가 얻어터지거나 죽어 버리는 것.

그렇게 되면 그녀의 힘만으론 그를 지켜 줄 수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 저런 놈들 내가 몇 번이나 만나 봤고 갱생도 시켰어.”

“…절대로 싸우면 안 돼? 저쪽이 먼저 덤비면 그냥 도망쳐. 알았지?”

“알았어.”

정도현이 등 떠밀듯 그녀를 차에 태웠다.

조세아는 차를 돌려 별장의 부지를 빠져나갔다.

그녀가 떠나자 서찬희는 앞머릴 쓸어 넘기며 말했다.

“서로 솔직해져 보자고. 뭘 원해?”

“원하는 거?”

“그래, 바라는 게 있으니 날 여기로 불러낸 거잖아. 사죄 같은 시시껄렁한 건 아닐 거고. 돈? 아니면 우리 공방의 장비 템?”

서찬희가 협상 테이블을 펼쳤다.

그가 저렇게 나오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정도현이 이번 일을 공론화시키면 그도 뒷수습하기 귀찮아지니까.

집안이 지켜 줄 테니 처벌을 받지 않고 요리조리 빠져나가겠지만, 그러는 것보단 돈이든 뭐든 적당히 쥐여 주고 입단속을 시키는 게 훨씬 쉬웠다.

“눈치 볼 거 없어. 편하게 말해 봐. 들어줄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보상해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해 놓고 나중에 또 척살대 보내려는 건 아니고?”

“의심이 많네. F구역 출신이라 그런가?”

서찬희는 정 못 믿겠으면 피의 맹약도 맺어 주겠다고 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정말로 그를 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조세아도 알고 있으니 섣불리 건드리기 뭣하겠지.

“단, 오늘 이후로는 세아 씨랑 일절 연락하거나 만나지 마.”

서찬희도 슬그머니 본심을 드러냈다.

정도현은 대충 알 것 같단 표정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지껄였어?”

“……?”

정도현이 노말 등급 세트 아이템을 장착했다.

그의 행동에 서찬희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지금 뭐 하잔 거야?”

“원하는 걸 말하라며? 한판 붙자고.”

스릉-!

정도현이 칼을 뽑으며 그렇게 말했다.

서찬희는 진짜 미친놈인가 싶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시비 거는 거겠지?”

“알아.”

“알면서 이딴 개짓거릴…….”

파스스-!

정도현은 검기를 생성했다.

그러자 서찬희가 정색하며 말했다.

“이래서 아랫것들한테 좋게 대해 주면 안 된다니까. 너처럼 주제 파악 못 하고 기어오르거든.”

서찬희는 정도현이 울분을 못 참고 급발진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선 협상 테이블을 제 발로 걷어찰 이유가 없었으니까.

서찬희도 무기와 방어구들을 장착했다.

그가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날 못 이기는 이유가 세 가지 있어.”

“세 가지나? 궁금한데. 어디 지껄여 봐.”

“첫째, 레벨 차이.”

75레벨과 67레벨. 누가 우위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두 번째는?”

“너와 난 시작점이 달라. 난 아카데미 교육을 이수했지만, 넌 F구역 버러지잖아?”

기본기도 못 배워 먹은 놈은 두렵지 않았다.

“마지막은 아이템 격차다.”

서찬희는 자랑스럽게 두 팔을 벌리며 자신의 장비 템을 선보였다.

확실히 예사롭지 않았다.

“내 장비는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준 걸작들이야.”

서찬희의 아버지, 서광원.

그는 개인 특성 보유자로 일명 ‘마이스터’라 불린다.

그가 아이템을 만들면 같은 등급의 아이템들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보유한다.

“거기에 전부 +7까지 강화해 뒀지.”

+7강이지만 올라가는 능력치만 보면 +10강과 맞먹는다.

마이스터 서광원이 만든 장비였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정도현도 그 말엔 감탄해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신 분이네.”

그런 장비 템을 제작할 수 있으니 돈을 싹 쓸어 담고, D구역 길드들과도 돈독히 지낼 수 있겠지.

“이제 좀 주제 파악이 되냐?”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은 서찬희가 으스댔다. 그러자 정도현은 가소롭단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서찬희의 목에 핏대가 섰다.

밑바닥 출신이라 이렇게까지 설명해 줘도 알아듣질 못하는 건가.

“난 분명 기회를 줬어. 전부 네놈이 자초한 일이야.”

“그래, 그래. 좋은 환경에서 크고 장비도 좋은 거 알았으니까 한판 붙자고.”

정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마력 억제구만 해제했다.

그와 동시에 서찬희가 창날을 앞세우고 돌격했다.

카앙-! 채재쟁!

창날과 검이 부딪히고 또 부딪힌다.

둘은 수 초 동안 십여 합을 겨뤘다.

정도현과 공방을 주고받은 서찬희는 희비가 엇갈렸다.

‘뭐야?’

내 공격을 버틴다고?

나보다 레벨도 낮고, 저딴 노말 등급 템으로?

놈의 검기는 흔들림 없이 견고했다.

아카데미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온 자신보다 더.

카가가각!

수십 합이 넘었는데도 서찬희는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능력치는 분명 이쪽이 우위 같은데, 도저히 녀석의 수비를 깨트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정도현의 얼굴은 처음과 똑같이 여유로웠다.

뿌득-!

서찬희가 이를 꽉 깨물었다.

“…죽여 버린다!”

서찬희가 격정에 사로잡혔다.

내가 저딴 놈 하나 못 이길 리 없다.

그런 알량한 자존심이 자꾸 채찍질한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동작도 점차 커졌다.

정도현은 날아오는 창날을 가볍게 흘려보내며 훈수했다.

“창술을 배운 티가 나긴 하는데 너무 정직하잖아.”

“뭐, 뭐라고!”

“창술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정도현은 창술 스킬북도 구매했기에 창술에 통달했다.

그에 비하면 서찬희의 창술은 삼류 수준.

레벨이든 아이템이든 조건 하나만 동등했으면 벌써 승부가 났을 것이다.

“이 새끼가!”

정도현의 노골적인 조롱에 서찬희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 질렀다.

정도현은 잔뜩 흥분한 그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었다.

서찬희의 경악 어린 표정. 실수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서걱-!

창을 쥐고 있던 팔뚝의 힘줄을 베었다.

서찬희는 무기를 놓친 채 비틀댔다.

“끄, 끄으… 이, 개새끼가!”

서찬희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털썩 주저앉은 그의 목에다 정도현이 칼을 겨눈다. 그러자 서찬희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큭, 큭큭… 너 이러고 뒷감당할 자신 있냐? 조세아 그년 믿고 이리 뻗대나 본데. 너 내가 반드시…….”

푹-!

정도현은 가차 없이 그의 목에 칼을 쑤셔 넣었다.

“…끄르륵!?”

서찬희가 피거품을 부글부글 물었다.

설마 찌를 줄은 몰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정도현은 칼을 회수하며 말했다.

“뒷감당은 무슨, 너랑 나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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