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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67화 (67/240)

67화

“뭐야?”

“게이트 색이……!?”

우우웅-!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빨갛게 변했다.

몇몇은 다급히 게이트로 달려갔지만 소용없었다.

[보스를 처치하기 전까지 출입할 수 없습니다.]

경고문과 함께 그들이 뒤로 밀려났다.

그제야 피닉스 길드원들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폐쇄형 던전.”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길드원들은 숨이 턱 막혔다.

무거운 정적이 감돌 때,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철부지 아가씨가 조잘댔다.

“폐쇄형 던전? 그게 뭐였지? 들어 본 것 같긴 한데.”

아카데미 졸업생이면서 그것도 모르다니.

길드원들이 한심하단 눈으로 조세아를 바라봤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그녀는 표정을 확 구겼다. 평소 같았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으니까.

“뭐야, 눈을 왜 그렇게 떠? 너희 단체로 미쳤어?”

“아가씨. 잠시 진정하시고…….”

그녀의 보좌관이자 공략대 부팀장을 맡은 사내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리려 했다.

탁-!

조세아는 그의 손을 맹렬히 뿌리쳤다.

“진정? 저것들이 먼저 잘못했잖아!”

조세아가 소리쳤지만 부팀장은 반응이 없었다.

그가 평소처럼 굽신거리질 않자 조세아는 씩씩대며 그의 얼굴에 삿대질했다.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 길드장한테 다 말해 버릴 거니까!”

“못 나갑니다.”

“…뭐?”

“저희만으론 나가기 어렵습니다, 아가씨.”

“그, 그게 뭔 헛소리야?”

조세아가 당황했는지 눈을 끔뻑거렸다.

“여긴 폐쇄형 던전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말 그대로 바깥과 완전히 격리된 겁니다. 보스를 잡기 전까진 던전을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뭐, 뭐야 그게? 그럼 보스를 잡으면 되는 거 아냐?”

그녀가 천지 분간 못 하며 땍땍댔다.

마치 부모님한테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 같았다.

그러자 길드원 중 누군가가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아카데미도 졸업한 사람이 폐쇄형 던전도 몰라?”

“뭐, 뭐? 야, 너! 지금 말 다 했어?”

“하기야, 공부를 했을 리 있냐.”

“사고도 자주 쳤다며?”

“회장님이 아카데미 이사장이랑 친하잖아. 그거 아니었으면 진즉 퇴학당했을걸?”

“이, 이… 닥쳐!”

조세아가 발끈하며 길드원들 쪽으로 지팡이를 겨눴다.

한마디라도 더 말하면 주문을 날릴 기세였다.

그녀의 레벨은 65.

평균 레벨이 70을 넘는 길드원들에 비하면 수준이 한참 낮았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건 에픽 등급의 마법 지팡이였으니까. 물론 그건 주문을 쓸 수 있을 때 얘기였지만.

탁-!

옆에 있던 부팀장이 그녀의 마법 지팡이를 단숨에 빼앗았다.

“어, 어?”

조세아는 멍청한 표정으로 텅 빈 손을 보다 부팀장한테 돌려 달라며 매달렸다.

하지만 부팀장은 그녀를 가볍게 밀쳤다.

“꺅!”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조세아.

수치심에 그녀가 부들댔다.

부팀장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단호히 말했다.

“아가씨, 던전에서 아군에게 무기를 겨누는 짓은 반란으로 간주하며 즉각 사살합니다. 길드 규칙까지 잊진 않으셨죠?”

“이, 씨이…….”

조세아가 뭐라 따지려다 주변의 흉흉한 시선을 느끼곤 고갤 떨궜다.

그녀는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앞으론 안 그럴 테니 돌려줘.”

“그건 안 됩니다.”

“뭐? 왜!”

“죄송하지만 아가씨를 못 믿겠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말 바꾸셨잖아요.”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돌려줘! 악!”

콰당-!

그녀는 학습 능력이 부족했다. 똑같이 달려들다 그대로 자빠졌다.

부팀장은 다른 길드원한테 에픽 등급 지팡이를 건네줬다.

“여기서 나가면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마 힘들겠지만요.”

달그락-!

부팀장은 길드원의 지팡이를 조세아한테 던져 줬다. 레어 등급이었다.

에픽에 비하면 성능이 한참 부족했지만, 그녀는 지금 그런 거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부팀장은 길드원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얼추 이해했겠지만 제대로 짚고 넘어가겠다. 폐쇄형 던전의 몬스터들은 상당히 강력하다. 그러니 높은 확률로 전멸하겠지.”

다 죽을 거란 말에 조세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아카데미 수업 때 얼핏 들었던 것 같았다.

그래, 이제야 떠올랐다.

폐쇄형 던전은 몬스터들이 강력해진다고.

다만 특수형보다 발생 빈도가 훨씬 적기에 실제로 볼 일은 없을 거다.

아카데미 강사가 그렇게 설명했었지.

‘폐쇄형에 갇힌 공략대는 대부분 죽는다고 했어.’

쿵쿵!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그녀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부팀장이 계속 말했다.

“보스를 쓰러트릴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설사 해낸다 치더라도 대부분 죽거나 크게 다치겠지.”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

실낱같은 희망에 목숨을 걸고 나아갈 것인가.

공략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인가.

후자를 고르면 적어도 몬스터들한테 살점을 뜯어먹히는 고통을 느끼진 않으리라.

부팀장의 설명이 끝나자 조세아가 울먹대며 외쳤다.

“시, 싫어! 난 죽기 싫다고! 보스 잡으러 가자, 응?”

그녀의 행실은 마음에 안 들지만 저 말엔 다들 공감했다.

죽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는가.

길드원들 대부분이 지지하는 눈빛을 보내자 그녀도 용기가 솟았는지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시도조차 안 해 보고 포기하는 게 어딨어!”

“포기한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 그럼 아까 말한 건 뭔데? 무슨 의도로 그런 소릴 한 거야!”

전쟁에서 중요한 건 병사들의 사기였다.

그런데 부팀장의 발언은 길드원들의 사기만 떨어뜨릴 뿐인 행동이었다.

조세아가 그렇게 주장하며 성을 내자 부팀장은 담담히 대꾸했다.

“설령 싸우더라도 저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해 둬야 하니까요.”

“으…….”

그가 정론을 들이미니 할 말이 없어진 조세아.

그녀가 입을 다물자 부팀장은 작은 수첩을 꺼내 종이 몇 장을 뜯어냈다.

“공략할지 말지 투표로 정할 겁니다.”

“투, 투표라고?”

“예, 무작정 싸우라 강요할 순 없으니까요.”

강압적으로 선택지를 들이밀면 팀워크에 악영향을 줄 수 있었다.

자칫하면 내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군끼리 싸우기 시작하면 절대로 탈출할 수 없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종이를 나눠 줄 테니 O, X로 적어서 제출해라. 다른 걸 적거나 공백으로 제출하면 무효표로 간주한다.”

“예!”

팀장은 조세아였지만 길드원들이 진정으로 따르는 건 부팀장이었다.

그녀는 그저 실적이나 채우고자 공략대를 따라온 들러리일 뿐.

낮은 레벨에 실력과 경험도 부족하니 사실상 짐짝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안 내친 것만 해도 다행이지.’

정도현은 조세아를 쳐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탁-!

자존심이 제대로 구겨진 그녀는 부팀장이 내민 투표용 종이를 빼앗듯 채 갔다.

저러는 걸 보면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 했다.

몸만 다 컸지 정신은 어린애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저희도 투표하는 건가요?”

“당연합니다.”

부팀장은 정도현과 서아린한테도 투표 용지를 건넸다.

그는 짐꾼이라고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았다. D구역에서 보기 드문 성품의 소유자였다.

[권유담] [LV.73]

‘레벨만 더 높았으면 팀장급까지 올라갔겠어.’

그러기엔 재능이 부족했었나 보다.

정도현은 그를 딱하게 여기며 종이를 받았다.

몇 분 뒤, 투표 결과가 공개됐다.

“찬성 8표. 반대 3표.”

당연하게도 공략하자는 쪽이 우세했다.

여기 가만히 있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다만 두려움을 이겨 내지 못한 이들이 몇 있었다.

무기명 투표였지만 정도현은 길드원들의 눈빛과 안색을 통해 누가 반대표를 던졌는지 대강 눈치챘다.

“세 명이나 반대해? 그놈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다들 쉬쉬하는데 조세아 혼자만 불평했다.

사람마다 생각과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물론 목숨이 걸렸으니 화가 날 순 있으나, 굳이 저런 말을 입밖으로 꺼내다니.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정도현도 그녀의 말에 무심코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도 이렇게 참기 힘든데, 그간 시달려 왔을 길드원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대기업 회장님의 손녀딸이라 하소연할 수도 없었겠지.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 권유담 부팀장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누가 반대했는진 몰라도 우린 너흴 탓하지 않아.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솔직히 나도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나 혼자였다면 분명 X를 적어 냈을 거야.”

“…….”

“다들 두렵겠지만 모두 한마음이 되어 싸우자.”

그의 중재로 흉흉해졌던 분위기가 다소 부드럽게 풀렸다.

정도현이 웃으며 그 말에 찬동했다.

“저희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짐꾼 두 명이 낀들 전황이 바뀌진 않겠지만 권유담은 고갤 살짝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정도현의 발언에 다들 감화된 걸까. 길드원들 표정이 차츰 살아났다.

* * *

‘쳇, 나만 나쁜 년 됐네.’

조세아는 속으로 툴툴대며 분을 삭였다. 이런 취급 받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녀는 어디서든 대우받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손에 넣었다.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 전부 길드에서 내쫓아 버릴 테니까.’

그녀가 그렇게 이를 갈아 댈 때.

앞장서서 가던 길드원들이 무언가 발견하고 다급히 소리쳤다.

“전방에 몬스터다!”

“악마족이야!”

“젠장, 가뜩이나 까다로운 놈들인데 하필…….”

키헤헤헤헤-!

고블린을 닮은 하급 악마들이 박쥐 날개를 퍼덕대며 다가왔다.

녀석들은 공략대 주위를 빙빙 돌며 괴기한 웃음소릴 흘렸다.

악마는 신성력을 제외한 모든 마력에 내성을 지녀서 데미지가 반감되는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성수는 몇 개 없는데.’

권유담은 입안이 바짝 말랐다.

혹시 몰라서 하급 성수를 챙기긴 했으나 길드원마다 한 병씩밖에 없었다.

성수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교단에서 독점 생산하기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몰려온 악마들은 얼추 세어 봐도 스물이 넘는다.

게다가 폐쇄형 던전이라 전투력도 한층 강력해진 상황.

“다들 수비 대형으로!”

권유담의 지시에 길드원들이 제각기 자리를 잡았다.

정도현과 서아린도 눈치껏 그들의 진형에 맞춰서 움직였다.

“어, 어? 나, 날 지켜 줘야지!”

그런데 조세아가 어정쩡한 자리에 홀로 남아 허둥댔다.

평소였으면 그녀를 중심으로 길드원들이 대형을 짰겠지만, 지금은 그녀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그녀의 외침에 길드원들은 권유담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시선을 보냈다.

권유담은 잠시 고민하다 결단을 내렸다.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해!”

“뭐, 뭐라고? 야! 권유담! 너 여기서 나가기만 해 봐. 내가 절대 가만 안 둔… 꺄아악!”

하급 악마가 혼자 남겨진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급히 주문을 캐스팅했다.

샥-!

악마는 그녀가 날린 주문을 보곤 공중에서 선회했다. 얼음 조각이 허망하게 빗나갔다.

하급 악마는 사냥감을 내려다보며 입꼬릴 올렸다.

“사, 살려 줘!”

그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근처에 없었다.

길드원들은 다른 악마들과 대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캬아아!”

하급 악마가 이빨을 씩 드러내며 쇄도했다.

그녀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다.

주마등도 보였다.

조세아는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푹-! 꿰에엑!

살갗을 꿰뚫는 날카로운 파열음.

그녀에게 달려들던 하급 악마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어?”

하급 악마의 등짝에 화살 한 발이 꽂혀 있었다.

조세아가 고갤 돌려 확인하자 남자 짐꾼이 쏜 거였다.

치이익-!

화살에 찔린 부위의 살점이 썩어 문드러져 줄줄 흘러내렸다.

악마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그대로 죽었다.

“뭐, 뭐야?”

악마의 뼈와 살을 녹이려면 성수 혹은 신성 주문이 필요했다.

아카데미에서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조세아도 그 정도쯤은 알고 있었다.

정도현이 쏜 건 평범한 화살이 아니다.

‘짐꾼이 성수를 갖고 있어?’

그녀는 이해가 안 돼서 멍하니 정도현을 쳐다봤다. 정도현이 활을 다시 장전했다.

푹! 푸욱-!

그는 위태로워 보이는 길드원들 쪽으로 화살을 쏴 줬다. 쏘는 족족 악마의 급소에 명중한다.

절묘한 지원 사격 덕분에 길드원들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캬, 캬아악!”

“끄르륵…….”

화살에 맞은 악마들이 맥을 못 추렸다.

덕분에 수세에 몰린 길드원들이 역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승산이 보이자 권유담이 길드원들을 독려했다.

“이길 수 있다! 계속 몰아붙여라!”

“와아아아!”

길드원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거침없이 밀고 나갔다. 그러자 악마들이 허겁지겁 달아났다.

피잉-! 푹!

도망치는 악마들의 뒤통수에 어김없이 화살이 꽂혔다.

치이익!

살점이 녹으며 허연 두개골이 반쯤 드러났다.

그걸 뒤늦게 알아챈 권유담이 놀란 눈으로 정도현을 쳐다봤다.

“방금 어떻게 하신 겁니까?”

“화살에 성수를 발라 뒀거든요.”

“성수를요?”

짐꾼이 성수를 어떻게 입수했지?

게다가 한두 발도 아니고 열 발 넘게 쐈다.

“성수 좀 나눠 드릴까요?”

“예? 여분이 더 있으십니까?”

“네, 던전 공략에 쓸 만큼은 있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아, 비용이라면 탈출한 뒤에 꼭 저희 길드가 지불하겠습니다.”

“아뇨, 돈은 됐고. 오늘 던전에서 있었던 일, 절대 발설하지 마세요.”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자 권유담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귀한 걸 공짜로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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