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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58화 (58/240)

58화

뇌령검 사건이 마무리되고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정도현은 던전 공략을 끝낸 뒤 집에 돌아와서 잠들기 전까지 뇌령심법을 연공했다.

스킬북이 알려 준 대로 가부좌를 틀고 심호흡을 반복했다. 그러자 몸속에 정제된 뇌기가 조금씩 모였다.

파직-!

그걸 손끝으로 모으니 푸른 스파크가 정전기처럼 수줍게 일었다.

“음, 충전이 너무 느린데.”

틈틈이 연공했다지만 며칠이나 뇌령심법을 펼쳤는데도 뇌기는 본래 그가 지닌 마력의 절반 정도밖에 안 모였다.

물론 천뢰격이 평범한 검기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러니 뇌기를 모으기 힘든 것도 이해는 간다.

게임으로 치자면 밸런스가 무너지는 거니까.

하지만 전투 중에 소모한 뇌기는 마력 포션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오로지 뇌령심법을 써야만 했다.

‘하지만 전투 도중에 가부좌를 틀 순 없어.’

서 있거나 움직이는 상태에서 심호흡만으로 심법을 펼친들 뇌기는 얼마 모이지도 않고.

그러니 전투 중에 뇌기를 다 써 버리면 천뢰격도 쓸 수 없다.

‘그렇다고 그놈처럼 제대로 정제하지도 않은 뇌기로 천뢰격을 만들면 한은성이랑 같은 꼴이 날 거고.’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천뢰격을 쓰고 싶진 않았다.

마력 회로가 망가지면 포션으로도 낫지 않으니까. 적어도 엘릭서 정도는 들고 와야 할 거다.

“뭔가 방법이 없나.”

정도현은 오늘도 1원 상점에서 심법을 검색했다. 수백, 수천 가지의 스킬북이 나열됐다.

그는 하나씩 터치해 설명을 찬찬히 읽어 나갔다.

그러다 「조화심법」이란 걸 발견했다.

“오?”

설명을 읽어 보던 정도현이 눈을 크게 떴다.

심법은 몇 개를 익혀도 단 하나만 활성화된다.

그런데 「조화심법」을 익히면 그 제약을 무시하고, 여러 종류의 심법을 동시에 쓸 수 있다고 했다.

정도현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거였다.

“근데 100레벨이네.”

문제는 100레벨을 넘겨야 이 스킬북을 구매할 수 있었다.

장비 템으로 치면 레전더리 등급.

괜히 좋은 게 아니었다.

100레벨이라. 여태껏 쉬지 않고 달렸지만, 아직 머나먼 영역이었다.

“당분간은 심법 하나만 파야 하나?”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러고 있을 터.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심법을 익힐 수 있는데 하나만 쓰자니 너무 아깝고 아쉬웠다.

뇌령심법이 안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심법들을 모두 포기할 만큼 좋은 것도 아니었다.

뇌령검의 혼이 이 말을 들었으면 게거품을 물었겠지만 녀석은 이미 죽었다.

정도현은 지금 구매할 수 있는 품목으로 조건을 설정하고 심법을 검색했다.

수천 개가 넘던 스킬북이 백여 개로 확 줄었다.

그중 일명 ‘마공’으로 분류되어 익히면 페널티가 발생하는 심법은 싹 다 걸러 냈다.

다른 심법보다 속성 마력을 빠르게 모을 순 있어도, 그만큼 위험하고 극단적이었다.

마공을 제외하자 선택지는 서른여 개로 압축됐다.

‘같은 속성에 제한 레벨이 낮은 하위 호환 심법들도 제외하면…….’

이제 십여 개의 스킬북만 남았다. 그것들을 전부 구매해 익혔다.

그의 머릿속으로 각종 심법의 이론과 깨달음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정도현은 익힌 김에 심법을 써봤다.

그러자 경고창이 떠올랐다.

[뇌기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다른 속성의 마력을 축적할 수 없습니다.]

“역시 안 되네.”

정도현은 이미 몸속에 뇌기를 쌓아 둔 상태였다.

그러니 다른 심법으로 속성 마력을 모을 수 없단 경고가 떠올랐다.

이러면 100레벨을 찍고 조화심법을 익히기 전까진 심법을 여럿 익혀 봤자 무용지물이었다.

“포션처럼 속성 마력을 빠르게 충전할 방법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럼 심법과 검기의 속성을 교체하면서 싸울 수 있을 테니까.

정도현은 뭔가 방법이 없을까 모색하다 문득 뇌령검과 싸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난 그때 몸속에 뇌기가 없어서 녀석의 천뢰격을 흡수했지. 그런데 왜 난 멀쩡하지?’

그건 분명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뇌기였다.

그런 마력을 체내에 받아들이면 상당히 위험할 터.

그런데 정도현은 한은성과 달리 내상을 입지 않았다.

그땐 그냥 전기 내성이 높아서 괜찮았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세세히 따져 보면 앞뒤가 안 맞았다.

‘잠깐이었으니 마력 회로가 망가질 정도는 아니어도, 내상 정도는 입을 법한데?’

왜 멀쩡할까.

스킬북으로 얻은 심법의 이론을 천천히 관조했다. 잠시 후 그는 답을 도출했다.

“…몸속에 보관하지 않아서?”

검기의 원리는 마력을 발산하는 것.

정도현은 상대의 뇌기를 강탈한 뒤 몸속에 축적하지 않고 곧바로 검기의 마력에 섞어 방출했다.

그렇기에 몸과 마력 회로에도 무리가 가지 않았다. 무언가 실마리가 잡혔다.

“그렇다면…….”

뇌령검과 싸웠을 때처럼 상대의 마력에서 속성 마력을 훔쳐 쓰면 된다.

빼앗음과 동시에 검기와 같이 전부 쏟아 낸다면 몸에 부담이 가해지지 않을 터.

돌파구를 찾았다.

‘이론상으론 가능해. 그런데 문제점은…….’

그 기법을 실전에서 써먹으려면 제약이 따라붙는다.

바로 상대의 마력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한다는 점.

가령 상대가 뇌령검처럼 어떤 심법을 익혔다면 마력도 특정한 속성을 띌 터.

그럼 이쪽은 그에 알맞는 심법을 써서 마력을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심법을 익히지 못했고 무속성 마력을 사용한다.

무속성 마력은 심법으로 빨아들일 수 없다.

‘마법 주문이야 속성 마력이니 마법사랑 싸울 땐 이 기술을 무조건 쓸 수 있겠네.’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던 정도현.

그가 흠칫했다. 테스트해 보고 싶은 게 생겼다.

* * *

정도현은 테스트를 위해 한적한 공터로 나왔다.

그는 발상을 전환해 봤다.

상대의 마력을 이용하는 건 뇌령검과의 전투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나 가능하다.

그럼 그런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면 어떨까?

‘마법 주문에서 속성 마력을 뽑아내는 거야.’

예를 들어, 화염 주문은 불 속성 마력의 집합체.

그러니 화염의 마력을 다루는 심법을 써서 흡수할 수 있을 터.

‘하급 매직 스크롤은 썩어 넘칠 만큼 많으니까, 중급도 꽤 모였고.’

매직 스크롤을 마력 포션처럼 쓰는 거다.

그럼 상대의 마력에 의존할 필요도 없어진다. 바로 이렇게.

화르륵-!

매직 스크롤로 화염구를 만들어 낸 정도현.

그는 거기서 불의 마력을 흡수해 검기에 섞었다.

그러자 푸른 검기가 마치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다만 평소보다 크기가 작았다. 칼날의 절반 정도밖에 덮이지 않는다.

“하급 주문으론 오래 유지 못 하겠네.”

그가 검을 몇 번 휘저으니 불꽃의 검기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지속 시간이 너무 짧다. 고로 실전성이 부족하다.

‘중급 매직 스크롤을 써야겠네.’

화르르륵-!

훨씬 농밀한 마력이 그의 숨결을 타고 몸속으로 퍼졌다.

심법을 펼치던 정도현이 눈을 부릅떴다.

“…윽!”

그가 담배를 처음 피워 본 사람처럼 컥컥댔다.

이번에는 주문에 담긴 불의 마력을 오롯이 흡수하지 못했다.

흡수되지 못한 마력이 아깝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중급 주문은 아직 벅차네.’

심법의 이해도나 숙련도가 부족한 건 아니었다.

단지 그의 몸이 수용할 수 있는 속성 마력의 한계치를 일순 넘었을 뿐이다.

화르륵-!

푸른 불꽃으로 변해 활활 타오르는 검기. 평소처럼 칼날을 완전히 휘감았다.

하급 주문과는 마력의 양과 질이 확연히 다르다.

“무작정 빨아들이면 안 되겠어.”

만약 이게 실전이었으면 분명 자멸했을 것이다.

그는 마력을 적당히 흡수하는 것부터 연습했다. 몇 번 해 보니 서서히 감이 잡혔다.

‘파티원들이 항상 회복할 시간을 벌어 줄 순 없어.’

근래 그는 포션을 쓸 때 팀원들을 방패처럼 썼었다. 그게 내심 마음에 걸렸었다.

아군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도 있지만 남에게 계속 의지하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검기에 드는 마력 소모량도 확 줄일 수 있겠어.’

그는 검기를 얻은 뒤로 마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었다.

마력이 부족해서 검기를 생성치 못할 때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 * *

다음 날, 정도현은 어젯밤에 연습했던 기술을 실전에서 써 봤다.

콰앙! 쩌저적! 파직!

그는 온갖 주문을 흡수해 검기에 속성을 담았다. 그걸로 몬스터들을 도륙 냈다.

검기의 속성이 바뀔 때마다 그의 호흡법도 조금씩 달라졌다.

‘심법을 바꾸면서 싸우는 거 은근 어렵네.’

심법을 익힌 자들이 이 광경을 봤더라면 아마 넋이 나갔을 것이다.

심법은 일평생 하나만 익힌다. 저렇게 여러 종류를 구사하는 이는 결단코 없었다.

평생 한 가지 심법만을 갈고 닦아도 10성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가 허다하니까.

그런데도 심법을 여러 개 익힌다니.

시간 낭비였다.

그러나 정도현은 스킬북을 통해 심법을 완벽히 터득했다.

그래서 익힌 심법들의 숙련도도 전부 10성의 경지였다. 그렇기에 저런 미친 짓도 가능했다.

유적형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심법의 서나 무공서, 고대의 마법이 기록된 서적 등등.

그것들은 스킬북 같은 소모성 아이템이 아니다.

이론이 잘 정리된 서적 혹은 논문에 더 가까웠다.

정도현과 달리 다른 플레이어들은 스킬이나 주문 하나 습득하려면 서적을 통해 이론을 이해할 때까지 계속 읽거나 몸을 움직여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스킬북은 그 지루한 학습 과정과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자타공인 사기 아이템.

그래서 어떤 스킬북이 나오든 엄청난 고가에 거래된다.

던전 보상에서 극히 낮은 확률로만 나오며, 한 번 쓰면 곧바로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며칠 사이에 또 뭔 짓을 한 거예요?”

전투가 끝나자 서아린이 뚱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도 그럴 게 정도현 혼자서 몬스터를 거의 다 쓸어 버려서 그녀는 몇 마리밖에 사냥하지 못했다.

매직 스크롤을 꺼내길래 견제용으로 쓰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는 그걸 흡수했다.

그러자 검기가 주문을 머금은 것처럼 강력해졌다. 황당하기 짝에 없었다.

“어제 심법을 몇 개 더 익혔거든. 하나씩 써 본 거야.”

정도현은 그녀에게 어울리는 심법 스킬북도 찾아다 하나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포션을 써서 쌓인 피로를 회복할 때. 지나왔던 통로 쪽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정도현이 먼저 눈치챘고, 서아린은 그보다 한발 늦게 고갤 돌렸다.

잠시 뒤, 낯선 무리가 나타났다.

[윤우빈] [LV.82]

“드디어 따라잡았네. 너희들 뭐가 이리 급해? 좀 천천히 공략해.”

무리 중 레벨이 가장 높은 사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 옆에는 70레벨 초반의 플레이어가 다섯 명 있다. 풍기는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레드 플레이어다.’

레벨로 봐선 E구역 놈들이 아니다.

D구역에서 내려왔다. 게다가 피 냄새가 은은히 풍긴다.

차원 게이트 앞을 지키던 관리국 요원들을 살해하고 들어왔다.

정도현은 망설임 없이 검을 겨눴다.

그러자 윤우빈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 같은 놈들은 다 그렇더라고.”

“……?”

“눈빛이 자신감으로 차 있달까? 내가 질 리 없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 같단 말이지.”

대뜸 뚱딴지 같은 소릴 늘어놓는 윤우빈. 정도현은 놈의 헛소릴 무시하고 서아린에게 질문했다.

“저놈 옆의 떨거지들. 혼자 상대할 수 있겠어?”

“…최대한 버텨 볼게요. 오래는 힘들겠지만.”

“부탁할게. 죽지 마.”

서아린이 고갤 끄덕이며 개인 특성을 사용했다. 「묘인화」를 쓰면 한둘은 상대할 수 있겠지만 다섯을 동시에 상대하긴 어려웠다.

‘까딱하면 죽겠는데.’

정도현이 윤우빈을 최대한 빨리 쓰러트리고 도와주길 비는 수밖에.

서아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묘인화」를 사용했다.

“오, 개인 특성이야?”

서아린이 묘인으로 변하자 윤우빈은 흥미롭단 표정을 지었다.

파지직-!

정도현은 며칠 동안 축적해 둔 뇌기를 방출했다. 천뢰격을 보자 윤우빈이 휘파람을 휙 불었다.

“이야, 진짜 제대로 된 놈이었네?”

타앗-!

정도현이 달려오자 그도 검을 뽑았다.

동시에 윤우빈의 호흡도 기묘하게 변했다.

그걸 본 정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남자의 호흡법, 그에게 아주 친숙했다.

‘빙화심법?’

윤우빈의 칼날에 새하얀 서리가 끼었다.

쩌저적-!

그가 바닥에 칼을 박아 넣자 지면이 빙판길로 변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윤우빈은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꽁꽁 얼어붙은 땅 위에 서 있으면 발끝을 통해 서서히 온몸으로 냉기가 퍼져 나간다.

체온을 뺏기면 사람은 반응과 사고력이 느려진다.

반면에 윤우빈은 이 정도 추위엔 끄떡없었다. 그가 익힌 「빙화심법」 덕분이다.

“후우…….”

빙판 위를 내달리던 정도현이 호흡법을 바꿨다.

검에 맺힌 뇌기가 사라지고 그 대신 얼음 조각들이 칼날 표면에 쩍쩍 들러붙었다.

냉기의 마력은 빙판에서 충당했다.

그가 지나가자 땅바닥의 얼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뭐?”

정도현의 검기가 드라이아이스처럼 새하얀 증기를 내뿜었다. 윤우빈의 검기와 완벽히 일치했다.

얼음의 검기를 완성한 정도현이 이동 스킬까지 쓰며 단숨에 거릴 좁혔다.

콰앙-!

두 남자의 검기가 맞부딪혔다.

“…큭!”

58레벨이 휘둘렀다기엔 너무나도 묵직한 참격.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방심했던 윤우빈이 미끄러지듯 몇 미터나 뒤로 밀렸다.

‘내가 밀렸다고?’

정도현은 지난번 뇌령검 때와 달리 강화를 해 둔 장비 템으로 무장한 상태.

종합적인 능력치만 놓고 본다면 70레벨 후반의 플레이어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윤우빈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너, 너 어떻게 빙화심법을……!?”

윤우빈이 뭐라 따지려던 순간.

화르륵-!

정도현이 매직 스크롤을 꺼냈다.

그의 머리 위로 커다란 화염구가 나타났다. 중급 화염 주문이었다.

그걸 본 윤우빈이 크게 당황했다.

‘E구역 녀석이 매직 스크롤을?’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화염구의 마력이 정도현의 검기와 합쳐졌다.

콰아아!

그의 검기가 폭발하듯 타오른다. 언뜻 보면 불꽃을 두른 것 같았다.

“이건 또 뭔……!”

정도현이 문답무용으로 검을 휘둘렀다. 윤우빈은 기겁하며 그걸 막았다.

콰앙-!

상극의 마력이 충돌하자 둘 사이에 작은 폭발이 일었다.

“…컥!”

쿠당탕-!

윤우빈이 뒤로 튕기며 꼴사납게 땅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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