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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50화 (50/240)

50화

정도현이 슬라임 던전에 들어가 있었을 무렵.

심정환은 조직원들한테서 심상치 않은 보고를 접했다.

“누가 정도현의 정보를 캐고 다녔다고?”

“예, 몇몇 정보 길드를 들러 정도현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봤다고 합니다.”

“흐음, 플레이어야?”

“아뇨, 일반인이라고 했습니다.”

“하수인을 대신 보낸 건가.”

남자들은 싸우고 난 뒤에 친해진다고 했던가.

심정환은 정도현과 결투하고 난 뒤, 그를 브라더라 부르며 스스럼없이 굴었다.

정도현은 D구역의 정보를 듣고자 친하게 지냈을지 몰라도 심정환은 형 노릇에 진심이었다.

“어째 구린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할까요?”

“우리 애들 싹 다 풀어서 빨리 잡아내. 죽이진 말고 일단 끌고 와 봐.”

“분부대로.”

심정환은 수하들에게 그렇게 지시한 뒤 곧장 정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몇 번을 연락해도 도통 받질 않았다.

“또 던전 들어갔어?”

얜 어떻게 된 게 잠시도 쉬질 않을까.

남들은 던전 한 번 갔다 오면 이삼일 정도 푹 쉬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정도현은 여유가 너무 없었다.

“가끔은 쉬면서 재충전도 하고 그래야지.”

심정환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자를 보내 상황을 간략히 알려 줬다.

추신으로 저번에 만났던 단골 포차에서 술도 한잔하자고 전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수하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심정환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본부 조직원들이 대거 나서서 찾는데 아무 소식도 없다니. 심지어 일반인 한 명 찾는 건데 말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영 불안해서 안 되겠다. 심정환은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그가 허리춤에 검을 메고 나설 채비를 마쳤을 때.

“뭐, 뭐야!”

“끄아악!”

건물 아래층에서 비명이 연달아 들렸다. 나가지 않고 본부에 남아 있던 조직원들 목소리다.

심정환이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고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가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쯤 조직원들의 비명도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무슨 일이야!”

그의 외침에 1층 중앙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조직원 중 누군가가 대표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십수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질러댔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장님이라고 바보 취급하는 걸까. 심정환이 그렇게 투덜대려다 흠칫했다.

“너희들 누구야?”

“…….”

그는 시력을 잃은 뒤 상대와 사물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도록 열심히 단련했다.

목소리가 너무 똑같아서 순간 착각했는데 마력을 감지하고 나서 알아챘다.

방금 대답한 녀석은 그가 알던 수하가 아니었다.

아니, 1층에 모인 십수 명의 조직원 전부 그의 부하들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처음 느껴보는 마력 패턴이었다.

“누구냐니까?”

“…….”

심정환의 추궁에도 수하들은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마치 마네킹을 세워 두고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심정환이 칼을 반쯤 뽑았을 때.

“와, 형, 대단하다. 가짜인 거 어떻게 눈치챘어?”

“……!”

끼이익!

정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왔다.

작은 발소리와 걸음의 간격으로 봐선 작은 체구의 소년 같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발소리가 질척대는데?’

찰박.

미세하지만 분명히 들렸다. 비가 와서 축축해진 흙을 밟는 듯한 발소리.

하지만 오늘 날씨는 화창했다. 밖에 비가 왔을 리 없었다.

“넌…….”

게다가 풍겨 오는 마력도 어딘가 이상했다.

흑마법사가 인위적으로 만든 생명체, 키메라를 조우한 것 같았다.

하지만 키메라가 저리 능숙하게 말할 린 없다. 그의 감이 말해 주고 있다.

저건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무언가라고.

경계심을 곤두세운 그에게 소년이 말했다.

“형이 여기 대장이야?”

“…그렇다면?”

“형 부하들이 우리 누나를 노렸거든.”

“누나?”

“응, 웬 형들이 다짜고짜 누나를 끌고 가려 하길래 내가 먹어 치웠어.”

먹어 치웠다고? 사람을 잡아먹었단 말인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심정환이 검기를 뽑아내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오?”

E구역에서 검기를 볼 줄 몰랐는지 소년이 감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검기를 쓸 줄 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

지금껏 그가 상대한 검사들도 대부분 검기를 다뤘지만, 불멸자인 그를 죽이지 못했으니까.

심정환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너… 정체가 뭐냐? 설마 진짜 몬스터냐?”

간혹 그런 존재가 있다고 들었다.

게이트 붕괴로 던전에서 나온 보스 몬스터가 인간으로 위장하고 인간 사회 속에 숨어들어 사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밤의 귀족이라 불리는 몬스터, 뱀파이어였다.

근거 없는 괴담이지만 상위 구역의 암흑가엔 흡혈귀가 산다고 한다.

어쩌면 저 소년도 인간을 빼닮은 보스 몬스터일지 모른다.

“음, 난 스스로 인간이라 생각하는데… 형 입장에선 몬스터겠지?”

불멸자가 순순히 인정하자 심정환은 망설임 없이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꾸물-!

그러자 주변의 조직원들이 의태를 풀고 본모습을 드러냈다.

시퍼런 슬라임 병사들이 사방에서 쇄도했다.

* * *

“헉, 허억…….”

슬라임 병사들은 심정환의 검기에 전부 갈가리 찢겨 죽었다. 하지만 그의 마력도 바닥났다.

검기가 빛을 잃고 흐릿해지자 칼날이 한층 무뎌졌다.

티잉-!

불멸자를 베었지만 그의 몸이 고무처럼 쭉 늘어나며 충격이 분산됐다.

겨우 생채기만 났다. 그마저도 금방 재생됐고.

“아핫, 간지러워.”

불멸자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몸의 탄성을 이용해 공격을 되받아쳤다.

투웅-! 쿠당탕!

뒤로 튕겨 나간 심정환이 땅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이제 체력이 다해서 일어서지도 못했다. 쓰러져서 숨을 헐떡대던 심정환 앞으로 불멸자가 다가왔다.

“슬라임… 인간이라니…….”

인간에 필적하는 지성을 가진 슬라임은 난생처음 봤다. 게다가 사람을 잡아먹고 의태까지 한다니.

저런 게 어떻게 존재할 수 있지?

심정환의 중얼거림에 불멸자가 고갤 갸웃하며 질문했다.

“플레이어는 개인 특성이란 걸 갖고 있다며?”

“…그래, 난 없지만.”

“그럼 역으로 개인 특성을 가진 몬스터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그중 한 명이고.”

“……!”

불멸자의 말에 심정환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몬스터가 개인 특성을 지닌다고?

그건 상상도 못 했다. 고정 관념이 깨지자 그의 몸이 절로 떨렸다.

불멸자는 공포에 질린 그의 모습을 감상하며 씩 웃었다.

“우리 대장이 그랬어. 난 특수한 개체 중에서도 훨씬 특별하다고.”

“…대장? 설마 너 같은 몬스터들이 더 있단 거냐?”

“응? 그건 아냐. 대장은 인간이야. 몬스터 출신은 나뿐이고.”

몬스터를 아군으로 삼다니.

그 대장이란 놈은 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그 대장이란 놈은 절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잡담은 그쯤 해.”

“아, 누나!”

심정환이 정보를 더 캐내려 할 때, 정문 쪽에서 웬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라 부른 걸 봐선 며칠 전부터 정도현의 뒷조사를 한 사람 같았다.

또각또각.

여자가 심정환에게 다가와 질문했다.

“당신 부하들이 절 노리던데 이유가 뭐죠? 전 그쪽한테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반대로 물어볼게, 아가씨. 우리 브라더 뒷조사는 왜 한 거야?”

“…뒷조사?”

그 말에 여자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당신, 정도현과 아는 사인가요?”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의형제도 맺었지.”

물론 한쪽의 일방통행이었지만 여자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녀가 고갤 끄덕이며 생각했다.

정도현과 퍼플 팬텀의 수장이 그토록 긴밀한 사이였을 줄이야.

이건 정보 길드들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정보였다.

“그래서 절 잡아 오라 시켰군요. 이해했습니다.”

“대답해. 왜 뒷조사를 했지?”

“그에게 영입 제안을 하려고 했어요.”

“…영입 제안?”

여자는 거기까지만 말해 주고 불멸자를 한번 쳐다봤다.

꾸물!

불멸자가 한쪽 팔을 점액으로 바꿔 심정환의 몸을 휘감았다.

거대한 뱀이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그 압박감에 심정환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크윽!”

“음, 이 형은 레벨이 높아서 시간이 좀 걸리네.”

“얼마나?”

“15분.”

불멸자의 개인 특성, 「포식」은 상대를 집어삼키고 능력치 일부를 흡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보다 레벨이 높으면 삼킬 수 없고, 레벨 차가 적을수록 소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게다가 대상을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 마력을 계속 소모해야 한다.

즉, 강한 대상을 삼킬수록 불멸자의 부담도 커진다.

“그래도 먹을래. 잘 먹겠습니다!”

쫘아악-!

점액이 심정환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 속에 파묻힌 그가 벗어나려 버둥댔지만 소용없었다. 이윽고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그 사람은 소화하지 마.”

“…어? 먹으면 안 돼?”

“아까 들었잖아. 그 사람, 정도현의 의형제야. 잘하면 인질로 쓸 수 있을지 몰라.”

원래 그녀는 정도현의 할아버지, 최진영을 인질로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의 의형제를 생포했다.

귀찮게 일을 두 번이나 할 필욘 없지 않겠는가. 물론 안 먹히면 정도현의 할아버지까지 생포해야겠지만.

‘그나저나 F구역 출신일 줄은 몰랐어.’

수소문한 결과 정도현은 E구역 암흑가에서 제법 유명했다.

혼자서 레드 플레이어 수십 명을 해치운 괴물 신인.

게다가 플레이어로 각성한 지 넉 달도 안 됐는데 55레벨을 돌파했다.

‘아마 개인 특성 덕분이겠지.’

개인 특성은 다른 플레이어의 노력과 시간을 비웃음으로 바꾸는 불합리한 능력이었다.

다만 그녀는 예외였다.

솔직히 부럽다. 시샘이 날 정도로.

다른 이들의 개인 특성은 사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데, 그녀는 그렇지 못했다.

물론 없는 것보단 훨씬 낫고, 유용한 능력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투에선 전혀 활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심정환을 가지고 놀 듯 제압한 불멸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내게 저런 강력한 개인 특성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학창 시절 그녀를 괴롭혔던 이들한테 마냥 당하고 살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 남자 휴대폰 좀 꺼내 줄래?”

“응.”

꾸물!

불멸자는 심정환이 입고 있던 겉옷을 뱉어 냈다.

점액질을 먹어서 축축해진 바지의 주머니를 뒤적이던 그녀가 심정환의 휴대폰을 찾아냈다.

그녀는 이걸 써서 정도현을 불러낼 생각이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살펴본 그녀가 멈칫했다.

휑했다.

저장된 연락처가 몇 개 없었다.

이걸 보자 그녀는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그녀도 심정환처럼 마음 놓고 편히 연락할 만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정환에게 동질감을 느낀 그녀가 씁쓸히 웃으며 ‘브라더’라 저장된 번호로 연락했다.

띠리링-!

그런데 전화벨 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그녀가 고갤 돌리자 정문이 열렸다.

들어온 건 정도현과 그의 동료인 박성원이었다.

* * *

정도현 일행은 퍼플 팬텀 본부에 도착했다.

들어오자마자 처음 보는 여자와 소년이 보였다.

중앙홀 곳곳에는 격렬한 전투 흔적이 산재해 있었다. 그 흔적들은 낯이 익었다.

‘검기로 생긴 자국들이야.’

정도현이 알기론 이 근방에서 검기를 쓸 수 있는 건 심정환뿐.

고로 심정환이 저 둘과 싸운 모양이다.

띠리링-!

아까부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번호를 확인해 보니 심정환이었다.

정도현은 휴대폰을 쥐고 있는 여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휴대폰, 심정환 건데. 왜 네가 갖고 있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도현 씨.”

그녀는 쓸모가 없어진 휴대폰을 바닥에 대충 버리고 웃으며 인사했다.

타앙-!

정도현은 인사를 받아 주는 대신 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저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심정환이 당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둘 다 플레이어다.’

머리 위에 레벨과 이름이 뜨지 않았지만 플레이어인 건 틀림없다.

그가 푸른 검기를 생성하자 소년이 활짝 웃었다.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같았다.

꾸물-!

소년의 피부와 신체가 꿈틀대더니 푸른 점액으로 변했다. 오른팔이 쭉 늘어나 채찍처럼 날아든다.

[???] [LV.76]

소년이 능력을 사용하자 머리 위로 레벨이 보였다.

76레벨. 지금껏 만나 본 놈들 중에서 가장 높았다. 심정환이 당할 법했다.

‘적어도 E구역 놈들은 아니야.’

서걱-!

정도현은 눈앞으로 뻗어 오는 점액을 단칼에 썰었다.

검광이 번뜩이며 토막 난 점액 뭉치가 철퍼덕 떨어졌다.

공격이 막혔지만 소년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까 형보다 훨씬 세네? 레벨은 더 낮은데.”

“「바람 질주」.”

타앙-!

정도현이 힘껏 도약하며 단숨에 소년의 허리를 베었다. 아니, 베려 했다.

카가각-!

검로에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땅에서 솟구친 바위기둥에 부딪혀 검의 궤적이 비틀렸다.

소년의 뒤에 있던 여자가 땅에 손을 짚고 있다. 누가 봐도 그녀의 방해 공작이었다.

“성원 씨!”

“예!”

정도현의 외침 한마디에 박성원이 척 하고 알아먹었다.

박성원이 창과 방패를 앞세우고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소년이 그녀를 지키고자 발길을 돌렸지만, 정도현이 앞을 막아섰다.

불멸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형, 나랑 일대일로 싸우게? 괜찮겠어?”

꾸물, 꾸물, 꾸물!

소년의 몸에서 푸른 점액 덩어리들이 마구 떨어졌다.

막 소화를 끝낸 퍼플 팬텀 조직원들로 만들어 낸 슬라임 병사였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50레벨에 육박했다.

병사들에게 포위된 정도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심정환은 죽였냐?”

“아니, 아직 살아는 있어. 하지만 형이 우리 편이 안 될 거면 내가 먹어 버릴 거야.”

아이처럼 앞뒤 맥락 다 자르고 말해 버리니 듣는 입장에선 무슨 소린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이럴 땐 특효약이 있다.

‘일단 쥐어 패면 돼. 질문은 나중에 하고.’

슬라임 병사들에게 포위당한 정도현.

그는 인벤토리에서 버프용 비약, 날카로운 눈동자를 꺼내 사용했다.

“얘네들은 잘 안 죽으니까 열심히 발버둥…….”

서걱! 촤악!

푸른 검광이 불멸자의 말을 뚝 끊었다.

그에게 달려들었던 슬라임 병사들이 펑펑 터져 나갔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슬라임 병사들은 재생력이 뛰어나니까. 칼에 한 번 베인 정도론 안 죽는다.

금방 재생해서 일어나리라.

“…어?”

그런데 슬라임 병사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잠시 흐물거리다 그대로 정지했다.

가뜩이나 강력한 검기에 핵을 썰린 탓이었다.

처음 보는 현상에 불멸자가 얼빠진 소릴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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