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현장의 요원들은 불멸자에게 모조리 삼켜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꾸물, 꾸물!
불멸자의 몸에서 점액 덩어리가 다 익은 열매처럼 떨어져 나왔다.
본체에서 분리된 점액들이 서서히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방금 불멸자한테 잡아먹힌 요원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치직-!
어떤 요원이 떨군 무전기에서 잡음이 나더니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장, 즉시 응답해라! 무슨 일이지?]
요원으로 변신한 슬라임이 무전기를 줍고선 호출에 응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쪽에서 방금 긴급 신호를 보냈잖아.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 확실해? 괜히 숨기려다 나중에 걸리면 단순 징계로 안 끝나.]
“실수로 눌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실수? 에라이, 씨……. 정신 똑바로 차려!]
치직.
실수란 말에 상대방이 신경질을 내며 무전을 끊었다.
불멸자는 입을 꾹 틀어막고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웃음을 겨우 참았다.
“누나, 기억은 좀 살펴봤어?”
“응, 누가 퍼펫을 죽였는지 알아냈어.”
불멸자가 요원들을 잡아먹는 사이, 관측자는 아스팔트 도로에 손을 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개인 특성은 「사이코메트리」.
사물이나 특정 장소에서 벌어진 과거의 사건을 마치 동영상처럼 살펴볼 수 있었다.
퍼펫이 당했던 순간을 살펴본 그녀가 눈을 뜨며 어떤 건물을 가리켰다.
“놈들이 퍼펫의 시체를 들고 저 건물로 이동했어.”
“시체를 건물로 들고 가? 왜?”
“잘 모르겠어. 저기 가서 기억을 살펴볼게.”
관측자가 그렇게 말하며 건물로 향했다. 불멸자도 궁금한지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뒤쫓았다.
그러자 요원들로 의태한 슬라임 병사들이 불멸자를 따라갔다.
“아, 너흰 여기서 대기해.”
“네.”
불멸자는 슬라임 병사들에게 자리를 지키라 명령했다.
슬라임 병사는 삼킨 존재와 똑같이 생겼지만 보다시피 지능이 한참 낮았다.
감정도 없고, 본체가 명령을 내려 주지 않으면 자율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퍼펫의 꼭두각시보다 여러모로 불편했다.
물론 장점도 있다. 퍼펫의 꼭두각시는 전투 능력이 없지만, 슬라임 병사는 그렇지 않았다.
삼킨 존재와 동등한 마력을 지녔고, 본체인 불멸자만큼은 아니어도 강력한 재생력을 지녀서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이건?”
“왜? 뭔데? 무슨 일인데?”
“…….”
건물에서 벌어졌던 일을 확인한 관측자가 충격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멸자가 궁금해 죽겠단 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죽었던 퍼펫이… 다시 부활했어.”
“뭐?”
“퍼펫을 죽였던 남자가 되살렸어.”
그게 다가 아니었다.
부활한 퍼펫은 그 남자와 뭐라 대화를 주고받다 대뜸 공격을 가했다.
직후 퍼펫이 피를 왈칵 토하며 죽었다.
그녀의 설명에 불멸자는 어려운 수수께끼를 접한 것처럼 낑낑댔다.
“으으… 잘 모르겠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관측자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사이코메트리는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직접 볼 수 있지만, 시각적인 것 외에 다른 오감의 정보는 전부 차단된다.
즉,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퍼펫을 부활시킬 때 새하얀 구슬을 꺼냈어. 아마 그게 죽은 이를 되살리는 아이템 같아.”
“그런 아이템도 있어?”
“…내가 알기론 없어.”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리는 아이템이나 아티팩트라니. 그런 게 있다곤 들어 본 적 없었다.
그런 게 있었으면 세상이 발칵 뒤집혔을 터. 어쩌면 그 남자의 개인 특성일지도 모른다.
‘살아난 퍼펫이 남자를 공격하자마자 급사했어.’
관측자는 자신이 본 정보를 조합해 당시 상황을 유추해 봤다.
남자는 퍼펫을 되살렸고, 그에게 뭔가를 제안했다.
하지만 퍼펫이 이를 거부하고 그를 공격하려다 죽었다.
‘퍼펫이 죽을 때 그 남자도 조금 당황했어.’
퍼펫이 죽을 걸 예상치 못했거나, 그 남자가 원했던 상황은 아니란 소리.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 답을 제시했다.
“…시스템 페널티.”
“응? 뭐라고?”
“퍼펫은 시스템 페널티로 죽은 거야.”
그 아이템으로 부활한 사람은 자신을 살려 준 사람을 공격하거나 적대해선 안 된다. 그런 제약이 있던 거겠지.
관측자는 종이와 펜을 꺼내 퍼펫을 살려 낸 남자의 몽타주를 쓱쓱 그렸다.
그녀의 솜씨는 상당했다.
선이 간결하면서도 얼굴의 특징이 잘 녹아들어 있어 알아보기 쉬웠다.
그 남자 옆에 있던 일행들의 얼굴도 그리자 옆에서 구경하던 불멸자가 감탄했다.
“와… 누나 그림 되게 잘 그린다!”
“플레이어가 되기 전에 그림을 전공했었거든.”
관측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였지만, 불멸자는 아직 어려서 그걸 헤아릴 만큼 세심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 형들이랑 누나가 퍼펫을 죽였단 거지?”
“응, 정보를 더 수집해 볼게.”
퍼펫을 죽인 남자는 무려 검기를 다뤘다. 게다가 포션도 잔뜩 사용했다.
‘C나 D구역 출신일 확률이 커.’
왜 그런 사람이 E구역까지 내려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범상치 않은 자인 건 확실했다.
게다가 성녀처럼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아이템을 지녔다.
개인 특성으로 만들거나 얻은 거라면 부활 아이템을 더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였다.
‘같은 편으로 회유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녀는 퍼펫과 친분이 두터웠기에 그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대의를 위해선 사사로운 감정을 억누를 줄 알아야 한다.
해방단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는 이유 막론하고 최선을 다해 포섭을 시도해라. 그래도 안 된다면 제거해라.
대장이 정한 철칙이었다.
* * *
퍼펫을 처치하고 삼일 뒤.
정도현은 박성원과 함께 던전에 들어왔다.
[메탈 슬라임] [LV.58]
회색깔의 끈적한 액체가 꾸물대며 뱀처럼 기어 왔다.
그것들의 정체를 확인한 박성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도현 씨, 슬라임 상대해 본 적 있으세요?”
“아뇨, 실물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생긴 건 저래도 상당히 흉악한 놈들입니다.”
슬라임은 지능이 낮지만, 불사신이라 불릴 만큼 재생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메탈 슬라임은 제 몸을 금속처럼 단단히 굳힐 수 있는 변종. 날붙이만으론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변종 슬라임들은 저마다 특수한 능력이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뭐죠?”
“놈들의 몸 어딘가에 약점인 ‘핵’이 존재해요.”
무한에 가까운 슬라임의 재생력도 핵을 공격당하면 확연히 약해진다.
그렇게 말한 박성원이 맨 앞에 있던 메탈 슬라임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러자 녀석이 몸을 경화시켰다.
푹-!
하지만 창날은 너무도 쉽게 슬라임의 몸을 파고들었다.
“끼에에엑!”
메탈 슬라임이 총에 맞은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며 흐물흐물해졌다.
몸의 급소인 핵을 다쳐서 경화까지 풀린 것이다.
푸부부북-!
물렁해진 점액을 향해 그가 창을 마구 찔러넣었다. 찌르는 족족 구멍이 뚫리며 슬라임은 수십 조각으로 찢겼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잠깐 한눈팔면 다시 뭉쳐서 되살아나죠.”
푹! 푸욱!
박성원은 흩어진 점액 파편들을 일일이 내리찍었다.
슬금슬금 한 곳으로 모이던 점액들이 창날에 찔리자 발에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그러다 응집력을 잃고 바닥에 쏟아 버린 물처럼 퍼졌다.
뒤에서 구경하던 정도현이 질문했다.
“그 슬라임의 핵을 찾아내는 요령이 뭐죠?”
“핵의 위치는 슬라임마다 다르고, 보시다시피 육안으로는 안 보여요. 저는 감으로 알 수 있지만…….”
“그럼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죽이죠?”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화염이나 빙결 주문을 쓰는 거죠. 간혹 주문이 안 먹히는 변종이나 보스가 있지만, 대체로 잘 먹힙니다. 아, 주문 대신 독화살도 꽤 쓸 만합니다. 독이 퍼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고, 양이 좀 많이 필요하지만요.”
그럼 매직 스크롤을 써야 하나.
하지만 메탈 슬라임의 레벨은 60에 가까웠다. 하급 주문은 안 먹힐 터.
그렇다고 한 놈 상대할 때마다 중급 주문 스크롤을 써 댈 순 없는 노릇이다.
중급 주문 스크롤은 이십여 초의 쿨타임이 있고, 상점의 일일 판매 수량도 그리 넉넉지 않았다.
독은 매직 스크롤보다 여분이 많지만 무기가 금세 손상된다.
한 마리 잡을 때마다 예비용 무기를 꺼내 쓰는 것도 불편했다.
‘혹시 모르니 독을 발라 둔 무기도 미리 준비해 둬야겠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
매직 스크롤이나 독보단 좀 더 근원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나도 저렇게 핵을 간파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박성원은 남은 메탈 슬라임들도 손쉽게 처치했다.
상대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슬라임도 핵을 관통당하니 맥을 못 추렸다.
정도현은 뭔가 쓸 만한 게 없을까 싶어 1원 상점에 ‘약점’을 검색해 봤다.
“…어?”
검색 결과를 쭉 내려보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는 홀린 것처럼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날카로운 눈동자] [소모 아이템]
- 사용 조건: LV.40 이상
- 사용 시, 5분간 상대의 약점 및 급소를 볼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눈동자. 연금술사가 만드는 버프용 비약이었다.
이걸 쓰면 5분 동안 적의 약점을 볼 수 있다.
언뜻 보면 나쁘지 않은 아이템으로 보이지만 실전에서 이걸 쓰는 사람은 없었다.
‘재료 아이템을 모으는 수고로움에 비해 활용처가 한정적이니까.’
슬라임처럼 약점을 간파하기 힘든 몬스터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짐승이나 생명체의 형태를 띠고 있어 급소를 알아보기도 쉬웠다.
활용처가 적으니 찾는 이가 드물고 연금술사들도 굳이 만들어 팔 이유가 없었다.
‘전부 구매.’
띠링-!
정도현은 모두 구매 버튼을 눌러 비약을 100개나 샀다.
바로 사용해 봤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주변 풍경이 흑백의 선으로 보였다.
‘저건가?’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빨간색 점들이 보였다. 저게 슬라임의 급소인 핵일 터.
스스스-!
정도현은 검기를 생성하며 전장에 합류했다.
메탈 슬라임들이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그의 검기는 그마저도 종잇장처럼 찢었다.
“키에에엑!”
“끼이익!”
핵을 베자 두 동강 난 슬라임이 징그럽게 꿈틀대다 물풍선처럼 터져 웅덩이를 만들었다.
“어?”
옆에서 한창 싸우던 박성원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운이 좋았던 건가?’
촤좌좌좍-!
이어지는 정도현의 난무.
그에게 썰린 슬라임들은 재생하지 못하고 얼마 못 가 죽었다.
그는 운이 좋은 것도,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른 것도 아니었다.
‘핵이 있는 부분만 정확히 노렸어.’
박성원은 알 수 있었다.
정도현이 슬라임의 핵만 노려서 단숨에 숨통을 끊었다는 걸.
그나마 정도현보다 잘하는 부분이 있어서 내심 뿌듯했는데 그마저도 곧바로 따라잡혔다. 어째 씁쓸했다.
정도현이 전투에 개입하고 몇 분 만에 슬라임 무리가 싹 퇴치됐다.
박성원은 궁금해 죽겠단 눈으로 쳐다봤다.
“어떻게 간파한 거예요?”
“상점창에 검색해 보니 이런 게 있더라고요.”
“이건…….”
날카로운 눈동자. 약점을 간파하는 비약.
이런 게 있다는 것도 까먹을 만큼 인기가 없는 아이템이었다.
설마 이런 것도 팔 줄이야.
이 정도면 상점에서 안 파는 품목을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몇 개나 사셨는데요?”
“하루에 백 개씩 살 수 있더라고요.”
“…….”
100개를 전부 쓴다고 가정하면 500분. 그럼 8시간이 훌쩍 넘는다.
박성원의 어깨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모처럼 경험치를 잔뜩 얻나 싶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 * *
둘은 금세 보스방까지 도달했다.
보스 몬스터, ‘킹 메탈 슬라임’의 몸에는 핵이 수십 개가 있었다.
박성원 말로는 덩치가 큰 슬라임일수록 핵도 여러 개 있다고 한다.
약점이 많으면 오히려 안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좀 달랐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 여럿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 핵들을 전부 파괴하지 못하면 녀석은 금세 재생하고 만다.
“응? 이 녀석은 핵이 움직이네요?”
“예, 그래서 보스형 슬라임은 죽이기 훨씬 까다로워요.”
보스의 핵은 시시각각 몸속을 돌아다녀서 노리기 어려웠다.
불이나 얼음 주문을 쓰지 않으면 도저히 죽일 수가 없는 공포의 존재였다.
물론 그건 평범한 플레이어 기준이었다.
“끼에에엑!”
푹! 촤악! 서걱!
정도현과 박성원은 놈의 핵이 몇 개가 있든, 어디로 이동시키든 즉각 알아챌 수 있었다.
킹 메탈 슬라임은 그들에게 그저 덩치 크고 맷집만 좋은 메탈 슬라임일 뿐이었다.
둘은 핵이 있는 점액 부위만 집요하게 찌르고 썰었다.
보스의 발악은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어딜 내빼려고.”
“끄에에에엑!”
정도현이 한 번 찔렀던 핵을 또 찌르자 보스는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고통이었다.
퍼엉-!
결국, 보스가 견디지 못하고 한계까지 부푼 풍선처럼 펑 터졌다.
수은처럼 반들거리는 회색 액체가 바닥과 그들을 흠뻑 적셨다.
몸 곳곳과 신발 밑창에 끈적이는 점액이 묻어 찐득거렸다.
“후, 고생하셨습니다.”
정도현은 슬라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 확실히 학습했다.
공략을 끝마친 정도현과 박성원이 몸을 닦아 내고서 던전을 빠져나왔다.
우우웅-!
던전을 나오자 정도현의 휴대폰이 마구 울려댔다.
던전처럼 전파가 닿지 않는 곳에 있으면 이렇게 알림이 한꺼번에 몰아서 온다.
던전 공략 중에 누군가가 그를 애타게 찾았던 모양.
‘심정환이잖아?’
연락한 건 퍼플 팬텀의 수장, 심정환이었다. 심지어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연락했다.
전화를 안 받으니 문자도 보냈다.
[헤이, 브라더. 많이 바빠? 연락을 통 안 받네. 이 문자 보면 바로 연락해 줘.]
[방금 우리 애들한테 들었는데, 며칠 전부터 정보 길드에서 브라더의 정보를 열람한 사람이 있다더라고.]
[수상쩍으니까 일단 붙잡아 놓을게. 시간 될 때 본부로 와.]
[아, 간만에 포차에서 같이 술도 마시고…….]
‘누가 내 뒷조사를 했다고?’
한 시간 전쯤 보낸 문자였다.
정도현은 곧바로 심정환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신호음만 가고 받질 않았다.
‘뭐지?’
정도현은 통화를 끊고 박성원한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박성원이 직접 확인하러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쉽게 당할 녀석이 아니긴 한데.’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정도현은 박성원을 데리고 퍼플 팬텀 본거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