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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48화 (48/240)

48화

정도현의 검을 막아 낼 때마다 퍼펫의 숨이 턱턱 막혔다.

그의 마력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정도현은 포션으로 체력과 마력을 자꾸 회복해 댔다.

저 미친놈, 중급 포션을 대체 몇 개나 들고 다니는 거지?

‘젠장, 이 성가신 연놈들만 없었으면!’

정도현이 뒤로 물러나 포션을 꺼내면 박성원과 서아린이 퍼펫에게 득달같이 달라붙는다.

50레벨 둘이서 68레벨한테 덤비다니.

누가 봐도 자살 행위였지만 퍼펫은 저 둘을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다.

저 둘도 정도현처럼 본인의 레벨대 수준을 넘어섰다.

“왜, 왜 안 죽냐고!”

궁지에 몰린 퍼펫이 남은 마력을 전부 써서 실을 뽑아냈다.

수십 가닥의 마력실이 인체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든다.

카앙-!

박성원은 큼직한 검투사의 방패를 앞세워 철옹성처럼 버텼고, 서아린은 마치 고양이처럼 유연하고 날렵하게 움직이며 전부 피하거나 공격을 흘렸다.

“물러나.”

포션을 써서 또 회복한 정도현. 그는 동료들과 자리를 바꿨다.

채앵! 챙!

정도현이 마력실을 가뿐히 쳐 내며 성큼성큼 거릴 좁힌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퍼펫은 다가오는 그를 보며 무력감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아…….”

서걱-!

푸른 검광이 퍼펫의 목을 어루만졌다.

그의 머리가 땅바닥을 데구루루 굴러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박성원과 서아린의 레벨이 2씩 올랐다.

끝났다. 두 사람이 안도하며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체력은 이미 한계였다.

[정도현] [LV.57]

기여도 차이로 경험치를 더 받은 정도현. 그는 무려 3레벨이나 올랐다.

그가 무기를 집어넣고 탈진해 쓰러진 둘에게 다가왔다.

“다들 괜찮아? 다친 곳은?”

“좀 힘들지만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순식간에 당했을 거예요.”

박성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말했다.

그동안 레벨을 올리고, +10만큼 강화된 장비에, 「정의집행」까지 발동됐는데도 퍼펫을 붙잡아 두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목숨이 몇 개여도 부족했으리라. 그는 정도현 덕에 또 한 번 목숨을 건졌다.

‘해방단 간부가 이렇게 강할 줄이야.’

고작 세 명만으로 쓰러트린 게 기적이었다.

간만에 목숨을 내건 전투를 치렀다. 거기서 살아남은 박성원은 고양감에 휩싸였다.

“근데 서아린, 너 왜 개인 특성 안 썼어?”

“…부끄럽잖아요.”

“죽거나 다치는 것보단 잠시 쪽팔린 게 낫잖아.”

“이번엔 안 쓰고도 아슬아슬하게 버틸 만했어요. 봐요, 하나도 안 다쳤잖아요.”

정도현의 지적에 서아린이 볼멘소리로 변명했다.

그녀도 파티에 합류하면서 특성 강화의 비약을 선물받았다.

그런데 그녀는 새로 얻은 능력을 쓰길 껄끄러워했다. 남들 앞에서 쓰기 부끄럽다면서.

정도현은 이해가 안 갔다.

“고양이 귀랑 꼬리 생기는 게 뭐 어때서?”

“맞아요, 잘 어울리시던데.”

“…전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고요!”

서아린이 얼굴을 붉히며 둔감한 두 남자에게 빽 소릴 질렀다.

정도현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목숨이 오가는 전투에서 「묘인화」란 강력한 버프기를 아낀다니. 합리적이지 못했다.

“다들 무사하셨군요! 천만다행입니다.”

그들이 잠시 숨 돌릴 때, 저 멀리서 김태양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그는 퍼펫과 정도현 일행이 전투에 돌입하자마자 정도현의 지시대로 퍼펫에게 조종당한 운전수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어차피 그가 싸움에 껴 봤자 방해만 될 테니까.

“어우, 깔끔하게 써셨네.”

머리가 날아간 퍼펫의 시신을 보며 김태양이 혀를 내둘렀다.

“김태양, 넌 관리국에 신고부터 하고, 현장에 아무도 접근 못 하게 망 좀 보고 있어.”

“예, 형님.”

정도현은 시체를 어깨에 짊어지고 근처 건물로 이동했다.

이다음부터는 남들에게 보여 줘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건물 안으로 들어온 정도현은 부활 아이템을 꺼냈다. 그러자 박성원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퍼펫을 살리실 겁니까?”

“예, 정보를 캐내고 해방단에 심어 둘 겁니다.”

“아, 스파이로 써먹게요?”

해방단은 오랫동안 관리국과 투쟁해 온 결사 조직.

간부인 퍼펫을 수하로 삼고 조직의 주요 기밀들을 빼낸다면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정도현이 부활 아이템을 쓰자 잘렸던 퍼펫의 머리가 다시 자라났다.

“…허윽, 컥!”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처럼 숨을 토해 낸 퍼펫.

덥석!

정도현은 곧장 놈의 목을 붙들었다. 팔다리는 동료들이 제압해 줬다.

빈사 상태로 되살아나선지 퍼펫은 옴짝달싹 못 했다.

“앞으로 내게 충성해라, 퍼펫. 그게 내 소원이다.”

“이 새끼… 뭔 개수작을 부린 거냐!”

정도현이 소원을 빌고서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퍼펫이 가래 끓는 목소리로 따졌다.

퍼펫은 목이 베였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했다.

난 분명 죽었는데 되살아났다.

부활이라니, 그건 낙원 길드의 성녀나 가능한 일인데.

‘이놈, 대체 정체가 뭐야?’

띠링-!

정도현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죽는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걸 본 퍼펫이 헛웃음을 흘렸다.

“해방단에 대한 정보를 아는 대로 불어.”

“큭, 큭큭! 크하하핫!”

정도현의 지시에 퍼펫은 미치광이처럼 웃어 댔다.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페널티로 죽을 텐데 그런 것치곤 여유가 넘쳤다.

정도현이 다시 채근했다.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나?”

“킥킥! 사태 파악 안 되는 건 내가 아니라 네 놈이지.”

“…뭐?”

“미친놈이 왜 미친놈인 줄 알아? 상식이 안 통하거든.”

퍼펫은 그가 묻는 말에 답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만 내뱉었다.

정도현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퍼펫이 이어서 말했다.

“날 보고 이런 생각은 안 해 봤냐? 저런 능력이 있는데 왜 해방단을 들어갔을까? 돈 있는 놈들 몇 명 조종하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텐데. 안 그래?”

“…….”

정도현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궁금했다.

퍼펫이 이번 자폭 테러에 써먹으려 했던 사람들만 해도 D구역에서 제법 잘나가는 사람들.

‘그들 재산만 있어도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퍼펫은 그러지 않았다.

위험하게 해방단에 들어갔고 결국 붙잡혔다.

그렇다고 놈에게 강한 사명감이 있거나 사회 혁명을 바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살았어. 돈이든 여자든 갖고 싶은 게 생기면 전부 손에 넣었지. 그래야 직성이 풀렸지. 그런데 갈수록 사는 게 재미가 없더라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어.”

“그래서 해방단에 들어갔나?”

“맞아. 놈들은 용케 날 찾아냈지. 생각해 보니까 관리국에 엿을 먹여 본 적은 없더라고? 그래서 가입했어.”

퍼펫은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쭉 돌이켜 보며 추억에 취했다.

“해방단에 들어오고서 인생이 달라졌어. 하루하루가 재밌었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난 눈빛만 봐도 대충 알아. 그 사람이 나처럼 미친놈인지 아닌지.”

퍼펫은 그렇게 말하며 정도현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봤다.

마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꺼림칙했다. 퍼펫이 낄낄대며 말했다.

“너도 정상은 아니긴 한데, 광기가 부족해. 마지노선은 지킬 놈이야. 그런 녀석을 따라간들 재미없겠지.”

“…….”

“난 지루했던 시절로 돌아가긴 싫어.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말이야.”

파앗-!

그렇게 말한 퍼펫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한 줄기의 마력실이 기습적으로 쏘아졌다.

“도, 도현 씨!”

서아린이 기겁하며 단검을 뽑았다. 그러나 정도현이 팔을 들어 올리며 그녀를 제지했다.

“…컥!? 쿨럭!”

마력실은 정도현의 터럭도 건들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퍼펫이 피를 왈칵 토하며 뒤로 넘어갔다.

박성원이 다가가 맥박을 확인하더니 고갤 내저었다.

“죽었어요.”

퍼펫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사회와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람을 마구 괴롭히고 죽이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던 놈이다.

그걸 억압하려 드니 강력히 반발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 수하로 삼을 수가 없었다. 소원도 완벽하진 않았다.

‘해방단 간부들은 죄다 이놈처럼 미쳤나?’

이기긴 했는데 결말이 영 찝찝했다.

삐이이-!

건물 밖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김태양의 신고로 관리국 요원들이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 * *

[8년 전, 해방단에 가입해 자폭 테러를 주도해 온 간부 퍼펫이 E구역 요원들 손에 사살됐습니다.]

[이번 작전을 진두지휘한 안태환 지부장. 지부장으로 취임하자마자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E구역에 또 다른 해방단 간부가 나타난다면 즉시 처단하겠다며 강경한 의사를 밝혀…….]

퍼펫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온 구역에 퍼졌다.

관리국은 이 기세를 이어 남은 해방단 간부들까지 송두리째 뽑아 버리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이 소식은 당연히 당사자들 귀에도 전해졌다.

각 구역에 흩어져 활동하던 해방단 간부들이 한 곳에 긴급 소집 됐다.

“알다시피 퍼펫이 당했어.”

“그놈, 레벨이 좀 낮긴 했어도 E구역 요원들한테 당할 정도는 아니었잖아?”

“혹시 관리국의 거짓 선전 아닐까?”

“아뇨, 그가 죽은 건 확실해요. 파트너인 제가 확실히 느꼈으니까.”

코드 네임, ‘관측자’의 말에 일동 침묵했다.

해방단 간부들은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한 쌍을 이뤄 ‘인연의 반지’를 착용한다.

인연의 반지는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다른 한쪽에서 바로 알아챌 수 있게 해 주는 아티팩트.

관측자는 퍼펫과 인연의 반지를 나눠 가진 파트너 간부였다.

“방심하다 당한 걸까?”

“퍼펫이 그렇게 되기 전에 저랑 잠깐 교신했어요.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이상했다고?”

“관리국의 대응이 평소보다 너무 빠르다고, 마력 폭탄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관측자의 설명에 간부들이 침음을 흘렸다.

“뭐, 그거야 어찌 됐든 퍼펫을 잃은 건 뼈아픈데.”

“맞아. 녀석이 약하긴 했어도 특성 하난 끝내주게 편리했잖아?”

퍼펫의 죽음은 해방단 입장에서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그의 개인 특성으로 조직에 필요한 자금을 상당량 수급했는데, 그가 죽으면서 돈줄도 함께 날아갔다.

이렇게 되면 조직 운영과 테러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진다.

“누가 퍼펫을 죽였는지 조사하러 갔다 올게요.”

“바로 움직이게?”

“사태가 좀 잠잠해지고 나서 가는 게 낫지 않아?”

“그럼 너무 늦어요.”

보다 선명한 기억을 읽어 내려면 한시라도 서둘러야 했다.

관측자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소년이 말했다.

“나랑 같이 가, 누나.”

코드 네임, ‘불멸자’의 제안에 관측자도 고갤 끄덕였다.

관측자의 레벨과 전투 능력은 간부 중에서 최약체.

혹시라도 퍼펫을 죽인 자들과 마주치면 상당히 위험해질 터. 하지만 불멸자가 따라와 준다면 든든했다.

“둘 다 명심해. 대장 구출 작전까지 얼마 안 남았어. 너희마저 잘못되면 작전이 꼬여서 골치 아파지니까 최대한 몸조심해.”

덩치 큰 근육질 사내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불멸자가 개구쟁이처럼 깔깔 웃었다.

“골리앗 형은 너무 진지해서 문제라니까? 누나는 몰라도 내가 죽을 리 없잖아?”

불멸자의 자신감에 골리앗이라 불린 사내가 한숨을 푹 쉬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녀석이라 그런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늘 제멋대로 굴었다.

그나마 관측자 말은 잘 들으니 그녀가 잘 제어해 주길 비는 수밖에.

* * *

다음날, E구역으로 내려온 관측자와 불멸자.

둘은 퍼펫이 사망한 현장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깨지고 갈라진 아스팔트 도로. 그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게 경고용 띠가 빙 둘러 있었다.

불멸자와 관측자는 망설임 없이 선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기 여성분! 이 안에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꼬마야, 여긴 위험하니 나가렴.”

경계를 서고 있던 요원들이 두 사람을 발견하곤 다가왔다.

머리 위에 이름과 레벨이 뜨지 않아 요원들은 두 사람이 당연히 일반인인 줄 알았다.

요원들 손에 붙잡힌 불멸자가 관측자한테 질문했다.

“누나, 이 주변에 CCTV 같은 거 있어?”

“세 개 있는데 화면은 전부 가려 놨어.”

“그럼 다 잡아먹어도 되지?”

꾸물-!

불멸자의 피부가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그가 능력을 발동하자, 요원들 눈에 보이지 않던 레벨이 표시됐다.

[???] [LV.76]

“프, 플레이어다!”

덥석-!

불멸자의 팔이 끈적한 액체처럼 변하더니 앞에 있던 요원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걸 본 다른 요원들이 기겁하며 무기를 찔러 넣었지만, 날붙이는 불멸자의 물컹거리는 육신을 관통했을 뿐,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그 기이한 감촉에 어떤 요원이 멍하니 중얼댔다.

“스, 슬라임?”

“딩동댕. 그럼 잘 먹겠습니다.”

쫘아악-!

불멸자가 점액을 쭉 펼치며 요원들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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