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해방단’. 관리국과 현 사회 구조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모여 이룬 결사 조직.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서 해방단에 들어왔지만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관리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것.
그걸 위해 해방단은 지난 수십 년간 온 구역에 숨어 다니며 암약해 왔다.
사회를 향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라면 과격한 테러 행위도 서슴지 않기에 심각한 골칫덩이였다.
“해방단이 부지부장님을 노릴지 모른다고요?”
“예, 윗구역 관리국에서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혹시 모를 해방단의 테러를 경계하고 최대한 대비하라고요.”
정도현과 박성원이 파티를 맺은 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정도현과 박성원은 각각 54, 50레벨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무투전도 무사히 마무리됐다.
정도현과 사냥한 덕에 한층 강해진 박성원은 가뿐히 무투전에서 우승했고, 안태환은 상위 구역 인사들의 만장일치를 받아 다음 지부장으로 발탁됐다.
“며칠 뒤에 지부장 임명식이 열립니다. D구역의 귀빈들도 축하하러 내려오는데, 해방단은 눈에 띄길 좋아하니…….”
“깽판 치러 나타날 수 있겠군요.”
“예, 여차하면 폭탄 테러도 저지르는 놈들이니까요. 실은 저도 얼마 전부터 부지부장님한테서 위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성원의 초감각마저 발동된 상황.
더 볼 필요도 없었다.
해방단은 이번 임명식 행사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런고로 박성원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안태환의 경호를 맡게 되어 당분간 정도현을 따라 던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사정을 전해 들은 정도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성원을 대체할 파티원을 구하긴 어려운데.’
그런 플레이어들은 이미 파티가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서아린만 데리고 던전에 들어가자니 얼마 못 가 그녀가 쓰러질 거다. 정도현은 결정했다.
“저도 경호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성원 씨가 잘못되시면 저도 여러모로 곤란하니까요. 보수만 두둑이 챙겨 달라 전해 주시죠.”
“가, 감사합니다!”
그가 도와준단 말에 박성원이 크게 반색했다.
위험한 일이라 차마 도와 달라 말을 못 꺼냈는데, 정도현이 자발적으로 손을 내밀 줄이야.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아까 말했듯 놈들은 테러를 저지를 때 마력 폭탄을 애용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뜻대로 안 될 겁니다.”
“성원 씨의 초감각이 있으니까요.”
“예.”
행사가 진행될 건물에 폭탄을 숨겨도 박성원이 순찰 한번 싹 돌면 다 찾아낼 수 있다.
“도현 씨가 합류해 주면 부지부장님도 안심하실 겁니다.”
통상적으로 54레벨 플레이어 한 명이 경호에 낀다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터.
하지만 박성원의 생각은 달랐다.
‘도현 씨라면 해방단 간부가 와도 안 밀릴 거야.’
한 달간 던전을 함께 공략해 봐서 잘 안다. 그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괴물인지를.
개인 상점창, 착용 중인 장비들도 몽땅 +10강까지 강화했다.
파티원인 박성원과 서아린까지 덤으로 장비를 강화한 상태.
행사 현장에 해방단 간부가 나타나더라도 두렵지 않았다.
* * *
그 후로 며칠이 지나 지부장 임명식까지 딱 하루 남았다.
관리국의 우려대로 해방단은 이번 행사를 망치기 위해 움직였다.
“퍼펫 님. 건물에 설치해 둔 폭탄이 전부 소실됐습니다.”
해방단의 간부, ‘퍼펫’.
검은 가면을 쓴 그가 수하들의 보고에 짜증스러운지 혀를 짧게 찼다.
“그래. 관리국도 멍청이들만 모여 있진 않을 테니까.”
놈들이 테러를 예상하고 철저히 대비했을 순 있다.
하지만 폭탄을 설치한 지 삼십 분도 채 안 됐는데 싹 다 철거당할 줄이야.
평소답지 않게 대처가 빨랐다.
“둘 중 하나야. 저쪽에 엄청난 탐지 능력자가 있거나 아니면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거나.”
“후자는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나도 알아. 그냥 농담해 본 거야.”
수하의 반문에 퍼펫이 킬킬 웃었다.
그 말대로 이 중에 배신자가 숨어 있을 순 없었다.
그의 수하들은 퍼펫의 개인 특성, 「꼭두각시」에 걸렸으니까.
「꼭두각시」에 당한 사람은 퍼펫의 충실한 수족으로 전락한다.
그 충성심이 어느 정도냐면 그들 몸에 마력 폭탄을 심은 뒤 자폭하라 명해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돌격할 정도.
생존 본능과 자유 의지가 없는,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인형이 되어 버린 셈이다.
“어쩔 수 없지. 내일은 너희가 희생해 줘야겠다.”
몰래 폭탄을 설치하는 게 안 되면, 직접 들고 가 자폭 테러를 감행하면 그만이었다.
퍼펫의 지시에 수하들은 말없이 고갤 끄덕였다. 가서 죽으란 명령에도 일말의 동요조차 없었다.
“내일 있을 불꽃놀이가 기대되는구만.”
플레이어인 안태환은 운 좋으면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행사에 참여한 일반인들은 모조리 죽거나 불구가 되리라.
내일 벌어질 혼란의 도가니를 상상한 퍼펫이 즐겁단 듯 웃었다.
그는 해방단 소속이었지만 관리국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니, 진정한 자유를 되찾자느니 하는 숭고한 사명에는 관심 없었다.
그는 단지 세상이 불타는 걸 구경하는 게 즐거웠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려고 벌레처럼 버둥대는 꼴을 보면 행복감마저 든다.
그래서 해방단에 가입했다.
그의 정신은 어딘가 병들었지만, 해방단은 그의 능력을 아주 높이 사 줬다.
조직에 들어온 지 몇 년밖에 안 됐는데도 간부 자리를 내준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건물 출입은 문제없겠지?”
“예.”
수하들이 저마다 초청장을 꺼내며 고갤 끄덕였다.
그들은 해방단의 정식 단원이 아니라 D구역에서 큰돈을 굴리는 사업가 혹은 자본가였다.
또한 이번 행사에 정식으로 초청받은 귀빈이기도 했다.
얼마 전, 퍼펫은 그들에게 몰래 접근해 꼭두각시로 삼았다.
「꼭두각시」는 플레이어에겐 일절 먹히지 않지만, 일반인에 한해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손쉽게 조종할 수 있었다.
동시에 조종 가능한 인원수에 한도가 있고, 퍼펫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술법이 약해지다 결국 풀려 버리는 단점이 있지만 풀려도 괜찮다.
꼭두각시들은 자신이 조종당했었단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하니까.
완전 범죄를 가능케 해 주는 편리한 능력이었다.
‘하객 중에 테러범들이 숨어들 걸 예상해도, 인제 와서 행사를 중단하진 못하겠지.’
거하게 터트릴 생각에 퍼펫은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했다.
* * *
다음 날 아침.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정도현이 경호원 신분으로 행사 건물에 입장했다.
그의 임시 파티원, 서아린도 정장 차림으로 동행했다.
그와 발맞춰 걷던 서아린이 정도현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뭐, 할 말 있어?”
“…네?”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길래.”
정도현이 이유를 묻자 서아린이 고갤 휘휘 저으며 말했다.
“정장 입은 모습을 처음 봐서 그런가? 좀 낯설어서요. 도현 씨, 평소에도 그렇게 좀 입고 다니면 어때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에나 집중해.”
정도현의 매정한 반응에 서아린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때, 그들 옆에서 웬 금발 머리가 남자가 손을 마구 흔들며 달려왔다.
“형님! 도현 형님 맞죠?”
“응? 넌…….”
“형님, 접니다. 김태양이요!”
[김태양] [LV.41]
김태양. 저번에 납치된 진성이를 구출할 때 그와 함께 의뢰를 수행했던 플레이어였다.
그동안 열심히 던전을 공략했는지 36이었던 레벨이 어느새 41까지 올랐다.
“진짜 형님이셨네요! 레벨이 너무 높길래 긴가민가했습니다.”
“그래, 너도 노력 많이 했네.”
“다 형님 덕분이죠. 식었던 열정에 불을 질러 주셨다고나 할까요?”
“너도 경호원으로 고용된 거냐?”
“예, 민 실장님이 잊지 않고 또 불러 주셔서요. 헤헤.”
김태양은 새로운 지부장에게 환심을 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도현과 악수를 나눈 김태양이 고갤 돌려 그의 일행, 서아린을 쳐다봤다.
김태양은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곤 새하얗게 질렸다.
“너, 넌……!?”
“어머, 이렇게 또 만났네요?”
김태양은 하마터면 비명을 꽥 지를 뻔했다.
이 여잔 분명 죽었는데?
심지어 시체까지 활활 불태웠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김태양은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정도현을 쳐다봤다.
긴장한 그의 어깨를 정도현이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쫄지 마, 이제 갱생했으니까. 이번 경호 임무도 우리랑 같이 설 거야.”
“…갱생이요? 저 사이코패스가요?”
“그래.”
김태양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도 악수를 청했다.
“그,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엔 같은 편이라서 다행이네요.”
그녀의 날이 선 말에 김태양은 그녀에게 죽을 뻔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다리가 절로 후들거렸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생쥐가 된 심정이다.
정도현은 김태양에게 질문했다.
“이번 임무가 위험하단 건 알지?”
“아, 네. 해방단 놈들이 뭔 짓거릴 꾸민다면서요?”
“그래. 안 그래도 어젯밤에 건물에다 마력 폭탄을 설치했었어. 다행히 전부 수거했지만.”
“정말요? 범인은 잡았습니까?”
폭탄이 설치되자 건물 안에서 대기 중이던 박성원의 「초감각」이 발동했다.
빠른 대처 덕에 폭탄은 전부 제거했고 범인도 금방 잡혔다.
하지만 폭탄을 반입한 범인은 해방단 소속이 아니었다.
“잡긴 잡았는데 그냥 건물 청소부였어.”
“해방단 놈들이 청소부한테 뇌물을 먹인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아.”
관리국 요원들이 심문했지만, 청소부는 자기가 뭘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혹시 몰라 뒷조사까지 싹 했지만 해방단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였다.
관리국은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정신 조작 능력자, 코드 네임 ‘퍼펫’이라는 해방단 간부의 소행 같다고 하더라.”
“미친, 정신 조작이요? 그런 놈을 어떻게 잡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조종해 앞에 내세우고, 술사는 안전한 곳에 숨어 있을 것 아닌가.
도저히 잡을 방도가 없어 보였다.
퍼펫이란 녀석이 제 발로 나타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찾을 방법이 없진 않아.”
“예? 어떻게요?”
“관리국 말로는 조종하는 대상한테서 너무 멀리 있진 못한대. 안 그러면 명령에 저항하거나 조종이 풀린다더라고.”
“아, 그럼…….”
행사가 시작할 때쯤엔 퍼펫도 이 근방까지 와야만 한다.
‘건물에 폭탄을 설치해도 소용없단 걸 알았을 테니…….’
남은 테러 수단은 폭탄을 직접 들고 와 터트리는 것뿐.
마침 퍼펫의 능력은 자폭 테러를 감행하기에 아주 편리했다.
‘목숨을 바칠 정도로 강한 명령을 내리려면 술사와의 거리도 상당히 가까워야 하겠지.’
관리국은 그 점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건물 주위에 요원들을 고루 상주시켜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검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분명 허점은 생길 터.
‘이곳 일대를 통째로 봉쇄하지 않는 한 몰래 숨어들겠지.’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게다가 행사를 중단하거나 일정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관리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퍼펫의 존재를 알면서도 행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창과 방패. 뚫느냐 막느냐의 싸움이었다.
* * *
행사에 초청받은 D구역 귀빈들이 하나둘 입장했다. 그중엔 퍼펫의 꼭두각시들도 있었다.
“예,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다음 분.”
삑! 삑!
관리국 요원들은 마력 탐지기로 귀빈들을 검사했지만,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
해방단이 사용하는 마력 폭탄은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특수한 아이템이었다.
해방단 간부 코드 네임, ‘엔지니어’ 덕분에 가능했다.
게다가 크기도 작아서 몸속에 감추거나 체내에 이식하기도 간편했다.
그러니 아무리 꼼꼼히 몸수색해도 소용없었다.
‘꼭두각시들이 자결하는 순간…….’
몸속에 심어 뒀던 폭탄이 펑! 하고 터질 것이다.
근방에 있던 퍼펫은 건물로 들어간 꼭두각시들에게 사념을 보냈다.
‘안태환이 모습을 보이면 모두 자결해라.’
‘예.’
그들에게 자살 명령을 내린 퍼펫이 건물 쪽을 쳐다봤다.
이제 곧 행사가 시작된다.
소형이어도 엔지니어가 직접 「개조」했으니 층 하나를 날려 버릴 정도는 된다.
“……?”
시간이 됐는데도 건물 쪽은 잠잠했다.
퍼펫은 잠입시킨 꼭두각시들에게 사념을 보냈다.
‘어이, 어떻게 된 거냐?’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둘 중 하나였다.
꼭두각시가 죽었거나, 모종의 이유로 의식을 잃었거나.
만약 그들이 죽었다면 몸에 심어 뒀던 마력 폭탄도 일제히 터져 한바탕 소란이 일었을 터.
조용한 걸 보니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기절했단 뜻일 터.
‘꼭두각시들을 바로 찾아냈다고? 어떻게?’
뭔가 일이 꼬였음을 직감한 퍼펫.
그가 황급히 발길을 돌려 현장에서 벗어났다.
휘잉-!
퍼펫이 지나간 곳에 작은 바람이 살포시 불었다.
그건 누군가가 소환한 최하급 바람의 정령이었다. 그 정령은 퍼펫의 발자취를 살금살금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