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45화
- 분해: 강화했거나 특성이 부여된 장비를 분해합니다.
- 장비를 분해할 시, 강화 또는 특성 부여에 소모한 재료 아이템을 추출합니다.
- 분해 완료된 장비는 본연의 상태로 되돌아옵니다.
- 단, 강화 실패 시에 소모했던 강화 재료는 추출되지 않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정도현은 송정민과 머릴 맞대고 논의했다.
“어떤 것 같아요?”
“꽤 효율적이네. 장비 바꿀 때 강화석을 아낄 수 있겠어.”
지금 쓰는 것보다 더 좋은 장비를 얻었을 경우, 다시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강화석을 사려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다. 경매장에 올라오는 매물도 그리 넉넉치 않았고.
그런데 진성이의 분해를 쓰면 이전 장비에 투자했던 강화석을 회수할 수 있다.
“지금 쓰는 무기 평생 쓸 건 아니잖아?”
“그렇죠.”
“넌 합성한 거니까 분해가 의미 없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강화석을 썼을 테니 분해하는 게 훨씬 이득이지.”
돈이 있어도 쉽게 못 구하는 게 강화석이니까.
이전 장비를 경매장에 처분하는 것보단 분해로 강화석을 추출해 쓰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
‘하지만 나한텐 별 이점이 없어.’
정도현은 강화석을 써서 장비를 강화할 필요가 없다.
합성에 필요한 장비템은 차고 넘치니까.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랠 때, 송정민이 불쑥 말했다.
“그런데 특성 부여는 뭐지?”
“예?”
“아니, 아까 진성이가 그랬잖아. 강화 또는 특성을 부여한 아이템을 분해한다고.”
“···!”
특성 부여. 정도현은 그 말을 어디선가 봤었다.
‘성장의 보옥!’
[성장의 보옥] [소비 아이템]
- 사용 시, 선택한 무기에 성장 특성을 부여합니다.
- 성장 특성이 부여된 무기는 주인의 레벨에 비례해 무기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 성장형 무기는 개인당 하나만 소지할 수 있습니다.
바로 쓰려니 너무 아까워서 인벤토리에 묵혀 놨던 성장의 보옥.
개인 특성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물건이라 1원 상점에도 팔지 않았다.
정도현은 흥분감에 손가락이 떨렸다.
진성이의 「분해」가 있으면 성장 특성을 다른 무기에 계승할 수 있다.
“···대박인데.”
“응? 뭐가?”
정도현이 그렇게 중얼대며 어디론가 연락했다.
송정민은 ‘얘 또 왜 이러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몇 초 안 가서 신호음이 끊겼다.
정도현이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곧장 용건을 밝혔다.
“나야. 혹시 오늘 시간 돼?”
[네? 가, 갑자기 왜요?]
“할 말이 있어서. 중요한 거니까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
[···알았어요. 어디서 만날래요?]
정도현은 통화 중인 상대에게 송정민의 사무소 주소를 알려줬다.
그러자 옆에서 듣던 송정민이 궁금하단 눈으로 쳐다봤다.
“누군데? 믿을 만한 사람이야?”
“예. 암흑가 출신이지만 믿을 만해요.”
“뭐? 암흑가?”
송정민이 기겁하며 진성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진성이와 레드 플레이어를 마주치게 하는 건 결사반대였다.
정도현이 걱정할 필요 없다며 몇 번이나 설득하고서야 송정민도 겨우 허락했다.
‘하긴. 그 심정환도 이겼잖아.’
E구역을 샅샅이 뒤져도 정도현보다 센 놈은 몇 없겠지.
개인 연락처도 주고받은 걸 보면 필시 우호적인 관계이리라.
정도현은 사무소로 되돌아가기 전, 박성원에게 질문했다.
“성원 씨는 어떤 특성이 생겼어요?”
“아, 그게···.”
박성원이 머릴 긁적이며 말했다.
- 정의집행: 킬 카운트가 있는 플레이어 혹은 몬스터와 전투할 시 당신의 모든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 상대의 킬 카운트가 높으면 높을수록 능력치도 추가로 상승합니다.
- 전투가 끝나면 능력치도 원상 복구됩니다.
초감각과 연관된 특성이 생길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능력이었다.
설명을 다 듣곤 정도현이 고갤 끄덕였다.
상대가 레드 플레이어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나쁜 능력은 아닐 거다.
‘까다로운 제약이 붙었다는 건 그만큼 성능도 강력한 거겠지.’
능력치가 얼마나 오를진 몰라도 레드 플레이어 상대로는 실로 사기적인 버프 효과를 보이리라.
정도현이 그렇게 말해주자 박성원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여차할 때 이 능력이 파티원들을 지켜주리라.
***
한편, 서아린은 휴대폰을 꼭 쥔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정도현한테 갑자기 연락이 오더니 중요한 얘길 나누자며 만나자 했다.
게다가 만나기로 한 장소도 뜻밖이었다. 정도현이 신세지는 브로커 사무소라니.
‘설마 날 파티원으로 영입하려고?’
서아린은 헤실헤실 웃다가 급히 뺨을 두들겼다.
그럴 리가 없다. 퍼플 팬텀에서 빠져나온 지 몇 년 됐어도 그녀는 엄연히 레드 플레이어.
지금껏 죽여온 사람들만 몇 명이던가.
관리국에 가서 킬 카운트를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백은 족히 넘었으리라.
그런 그녀를 파티원으로 영입한다?
관리국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도현 씨까지 싸잡혀서 끌려갈 거야.’
그럼 왜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을까.
서아린은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릴 다듬으며 생각했다. 한 가지 짚이는 게 있다.
‘성장의 보옥을 썼나?’
쓰기 아깝다고 고집을 피우더니. 결국엔 썼나 보네. 그런 모습도 귀여웠다.
서아린은 머리랑 화장이 잘 됐는지 요모조모 확인하곤 일찍 집을 나섰다.
그냥 사람 한 명 만나러 가는 건데 가슴이 왜 이리 떨리는지 모르겠다.
혹시 엄마처럼 심장이 안 좋아진 걸까. 나중에 병원을 가봐야겠다.
“감사합니다, 손님. 또 오세요!”
빈손으로 찾아가긴 뭣해서 단골 가게에 들러 케이크를 샀다.
그가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E구역에 올라와 처음 맛보고선 푹 빠진 디저트였다.
“후···.”
똑똑!
서아린은 길게 심호흡을 하곤 사무소 문을 두드렸다.
“예, 누구십니···.”
굵직한 남자 목소리와 함께 문이 반쯤 열렸다.
문을 연 건 정도현이 아닌 송정민의 부하 직원, 강용식이었다.
강용식은 제대로 차려입고 온 서아린에게 완전히 넋이 나갔다.
“누, 누구세요?”
“도현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도현 씨라면···. 정도현이요?”
“예. 안에 있나요?”
“아, 저희 사장님이랑 잠깐 어디 갔는데···.”
“혹시 안에서 기다려도 될까요?”
“그, 그럼요! 금방 올 겁니다!”
저런 미녀가 정도현을 만나러 몸소 찾아왔다니.
강용식은 울적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줬다. 그러자 서아린이 빙긋 웃으며 고맙다고 속삭여줬다.
그 한 마디에 강용식이 헤벌쭉 웃으며 자리로 안내했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커피도 있고 주스도 있습니다.”
“커피로 부탁해요.”
“옙!”
서아린은 평소처럼 여유롭고 도도하게 굴었다.
예쁘면 뭘 해도 용서가 된다더니.
그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강용식은 평소보다 친절하게 굴었다.
그렇게 십여 분쯤 지났을까.
외출했던 정도현과 송정민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응?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중요한 얘기라면서요.”
약속한 시각보다 수십 분 일찍 온 서아린. 정도현은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송정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귓속말로 물었다.
“저 사람이 네가 말한 그 사람이야?”
“예.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정도현이 서아린의 맞은편에 앉자, 송정민은 진성이를 데리고 적당히 거릴 벌렸다.
암흑가 출신이니 자연스럽게 경계심부터 일었다.
그런 송정민 옆으로 강용식이 슬그머니 다가와 귓속말로 물었다.
“사장님. 저 여성분이랑 정도현, 둘이 무슨 관계랍니까?”
“나도 잘 몰라. 뭐 확인할 게 있다나 뭐라나.”
“그런데 둘이 분위기가 묘하지 않습니까?”
“묘하다니?”
“여성 쪽에서 저렇게 힘주고 만나러 올 정도면 어느 정도 사심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강용식이 부러워 죽겠단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송정민이 설마 하는 눈으로 서아린을 훑어봤다.
확실히 이상했다. 갑자기 약속을 잡고 만난 것치곤 한껏 치장했다.
누가 보면 남자랑 데이트하러 나온 줄 알 거다.
‘설마?’
레벨업에 미쳐 살던 그 정도현이 그동안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저 녀석은 데이트할 시간도 아깝다며 던전에 들어갈 놈이야.’
게다가 매번 목숨 걸고 위험한 던전에 들어가는 녀석을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는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렇다고 저런 미녀를 홀릴 만큼 정도현이 특출나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진성아, 이리 와볼래?”
서아린과 뭐라 대화를 나누던 정도현이 손짓으로 진성이를 불렀다.
송정민이 진성이의 손을 꼭 붙잡고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러자 서아린이 빙긋 웃으며 그에게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송정민 브로커님이시죠? 도현 씨 상대하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예? 아, 예···.”
송정민은 평소답지 않게 얼빠진 모습으로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사별한 아내를 향한 일편단심이었으나 남자의 본능은 어쩔 수 없었다.
저런 미녀가 웃으며 끼를 부리는데 경계가 풀릴 수밖에.
서아린은 진성이의 머릴 쓰다듬어주며 질문했다.
“이 아이가 무기에서 성장의 보옥을 뽑아낼 수 있다고요?”
“그래. 혹시 모르니 네 걸로 먼저 확인해보려고.”
“좋아요. 진짜면 저도 새로운 무기를 장만할 수 있겠죠.”
서아린은 자신의 단검을 꺼내 건네줬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아, 참. 당신이니까 믿고 넘겨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림도 없었어요.”
“그래. 믿어줘서 고맙다.”
“···.”
정도현이 대충 대꾸하고 단검을 가져가자 그녀의 입술이 삐쭉 튀어나왔다.
그는 진성이에게 서아린의 단검을 건네며 「분해」를 부탁했다.
파아앗-!
단검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조그만 보석이 톡 떨어져 나왔다.
정도현이 그걸 주워 정보를 확인했다.
성장의 보옥이었다.
‘됐다.’
서아린도 단검의 정보를 확인해보곤 고갤 끄덕였다.
“성장 특성이 사라졌어요.”
정말로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어떤 무기를 성장형 무기로 만들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 쓰는 무기에다 보옥을 사용하고, 무기를 교체할 때쯤엔 「분해」하면 그만이다.
오랫동안 앓던 이가 쏙 빠진 것처럼 속이 개운했다.
“자, 그럼···.”
정도현은 곧바로 +7강 롱소드에 성장의 보옥을 사용했다.
[‘요정의 기운이 서린 롱소드’에 성장 특성이 부여됩니다.]
[요정의 기운이 서린 롱소드(+7)] [레어]
- 착용 조건: LV.45 이상.
- 모든 능력치 1.5(+3.5)% 상승.
- 물리 피해량 10(+35)% 상승.
- 요정의 축복 세트 아이템 (5/5)
- 세트 효과: 「항마의 방패」 방어도가 200%만큼 상승, 마법 저항력 100% 상승.
- 【무기 성장】: 당신의 레벨에 비례해 무기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 현재, 50%의 물리 피해를 추가로 줍니다.
- 해당 아이템의 특성은 오로지 당신에게만 적용됩니다.
‘공격력이 50%나 올랐어.’
1레벨당 1%의 추가 데미지가 생겼다.
+7강을 한 것보다 공격력 상승치가 훨씬 컸다.
정도현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무기를 집어넣었다.
“아, 맞다. 서아린.”
“네?”
“내 임시 파티원이 될 생각 없냐? 한 명이 더 필요하거든.”
“읏···!?”
그에게 케이크 조각을 건네주던 그녀가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딸꾹질을 했다.
그 소리가 제법 커서 모두 그녀를 쳐다봤다.
주변 시선이 집중되자 서아린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그, 그런 말로 사람 놀리지 마세요!”
“놀리다니. 내가?”
“···알잖아요. 저 퍼플 팬텀 출신인 거.”
“···헉!”
쭈르륵-!
주스를 마시던 송정민이 입에 머금었던 걸 도로 컵에 뱉었다.
퍼플 팬텀이라니? E구역의 중앙 지역 암흑가를 꽉 쥔 거대 조직이지 않은가.
‘얼마 전에 깽판 쳤던 게 저 여자 때문이었어?’
송정민의 머릿속에서 뭔가 그림이 펼쳐졌다.
그는 아침 드라마를 보는 아줌마처럼 은근한 눈으로 정도현을 쳐다봤다.
서아린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녀가 말했다.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놀리는 줄 알았어요. 근데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뭐가 말이 안 돼?”
“제가 여태 죽인 사람들만 몇인데···.”
“3명.”
“네?”
“내 눈엔 3명으로 보여.”
짤그락!
정도현이 자신의 목걸이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상대방의 킬 카운트를 알려주는 아티펙트, ‘카인의 눈동자’였다.
“그, 그거···. 카인의 눈동자죠?”
“어.”
“엄청 귀할 텐데, 어떻게···.”
관리국이 엄중히 관리하는 아이템이라 일반 플레이어들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다.
“너, 개인 특성 발동되면 킬 카운트까지 초기화되나 본데?”
“아···.”
부활하면 킬 카운트도 초기화된다니.
그 부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설사 알았다 해도 관리국을 제 발로 찾아가 확인해볼 용기가 안 났을 거고.
“3명이면···. 저번에 다쳐서 내 집으로 오기 전에 처리한 녀석들인가 보네. 그 정도면 벌금형으로 끝날 거야.”
그녀 혼자 착각해서 죽여댄 십수 명의 조직원들.
정도현은 그날 저녁 심정환을 따로 찾아가 죽은 자들을 전부 되살려줬다.
죽었던 이를 살려내면 킬 카운트도 줄어드는 모양이었다.
그 효과를 노리고 한 건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쩔래? 들어올 거야 말 거야?”
“자, 잠시만요.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얼마나?”
“···음. 한 일주일 정도?”
서아린은 기쁜 마음을 애써 감추며 평소처럼 도도하게 굴었다.
사실 고민할 필요 없이 냉큼 수락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가벼운 여자처럼 보일까 봐 싫었다.
일주일을 기다려달란 요구에 정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쓸데없이 질질 끄네.’
그는 박성원이 며칠 쉴 동안 대타로 쓸 파티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연락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실력 하난 확실하니까.
그런데 일주일이나 기다리면 당장 던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5.”
“5? 5일이요?”
“4, 3, 2···.”
정도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자 서아린이 다급히 하겠다고 외쳤다.
정도현은 남녀간 밀고 당기기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럴 시간에 던전을 한 번 더 들어가지.
“오늘은 나랑 같이 관리국에 가서 벌금부터 내고. 내일은 던전에 들어갈 거야. 준비해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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