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36화
“뭔데?”
“바꿔 달랍니다.”
“참 나. 범죄자 새끼들 하는 짓거린 다 똑같다니까.”
안주형 팀장은 코웃음을 치며 휴대폰을 넘겨받았다.
암흑가 조직의 간부는 처리반 요원에게 뇌물을 먹이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꺼낼 말은 뻔했다.
그쪽 계좌 번호를 불러주면 섭섭지 않게 입금해주겠단 식으로 나오겠지.
‘평소 같았으면 받아먹었겠지만···.’
지금은 시기가 영 안 좋았다.
지부장이 곧 바뀌니 떨어지는 낙엽 하나도 조심해야 할 판국이다.
괜히 뒷돈 받아먹다 걸리면 평가 점수가 나락으로 떨어질 터.
승진은 고사하고 F구역 무법지대에서 근무하게 될 수도 있다.
안주형은 휴대폰을 귀에 대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처리반의 안주형 팀장이다.”
[안녕하세요, 안 팀장님. 저는 민규원 비서실장이라고 합니다.]
비서실장? 암흑가 출신이 입에 담기엔 거창한 단어였다.
게다가 놈들은 요원에게 싹싹한 말투로 굽신대기 마련인데. 조직의 간부가 체포당한 것치곤 목소리에 여유가 느껴졌다.
[정도현 플레이어를 연행 중이라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그래. 민간인들이 사는 동네에서 다른 조직원 놈들이랑 칼부림을 벌였거든.”
[아, 그랬었군요. 혹시 사상자가 있습니까?]
그 말에 안주형이 작게 혀를 찼다.
사상자는커녕 몸에 생채기 하나 없었다.
한두 명쯤 크게 다쳐서 불구라도 됐으면 그 점을 부풀려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웠다.
그가 잠깐 침묵하자 민규원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도 안 죽었나 보군요. 천만다행입니다.]
“다행? 이봐.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난 더러운 돈은 절대 안 받아먹거든.”
[···더러운 돈이요?]
“그래. 이 녀석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뒷돈이라도 찔러주려는 거지? 포기해. 그럴 일 없을 테니까.”
[아, 착오가 있으신 모양인데. 저도 안 팀장님처럼 관리국 소속입니다.]
“···뭐?”
관리국 소속이라고? 안주형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고갤 돌리자 정도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왠지 불길했다.
안주형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소속이 어디지?”
[안태환 부지부장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
부지부장의 측근이라고?
목소리가 젊어서 당연히 말단 요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맨 처음에 비서실장이라 말했었지!’
안주형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지뢰를 밟은 병사의 심정이 이럴까.
“자, 잠깐···. 아니, 잠깐만요.”
부지부장의 측근이 왜 저 녀석을 돕는단 말인가?
부지부장과 긴밀한 관계인 플레이어라면 이름이나 얼굴 정도는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도현에 대해 전혀 들은 게 없었다.
[아무튼, 사상자도 없으니 좋게 끝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 어떻게 하란 겁니까?”
[연행하지 마시고 그냥 풀어주세요.]
혹시 상대가 정체를 속이고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아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대가리에 총을 맞은 게 아니고서야 감히 부지부장의 이름을 팔아먹겠는가.
안주형이 마른침을 삼키며 겨우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야, 당장 차 돌려!”
“예?”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안주형이 윽박지르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요원이 속으로 구시렁대며 핸들을 빙빙 돌려 유턴했다.
그러는 동안 안주형은 휴대폰을 꼭 붙잡은 채 간신배처럼 굽신댔다.
“예, 예. 아유, 그럼요. 주민의 허위 신고였던 걸로 처리하겠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당연한 건데요.”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 했던가.
안주형은 어떻게든 민규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노력했다.
장현민 의원이 몰락한 시점에서 안태환 부지부장은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다음 지부장은 분명 안태환이 될 거다. 관리국 내부에선 그런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잘만 하면 이쪽 라인에 붙을 수도 있겠어.’
안주형은 원래 장현민 의원을 따르던 파벌과 물꼬를 트고 가까이 지냈었다.
그런데 장현민이 구속된 이후 타고 올라갈 사다리가 사라졌다.
그런 와중에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건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그럼 본부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닐 수 있겠지.’
그는 긴급 처리반 팀장으로 이리저리 불려가고 현장에서 구르는 데 아주 이골이 났다.
윗급으로 승진하면 더는 현장에 출동하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으리라.
그가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히죽댈 때, 정도현이 손을 뻗어 휴대폰을 낚아챘다.
“늘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방금 민 실장님이랑 통화했던 안 팀장님 있죠? 굉장히 성실한 분 같더라고요.”
[···그런가요?]
그 말에 민규원이 아리송하단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실하단 느낌은 못 받았으니까.
정도현이 안주형을 흘끗 보며 계속 말했다.
“이번엔 오해해서 벌어진 일이지만 아까 암흑가 놈들한테 절대 뒷돈 안 받는다고 했잖아요.”
[네, 그랬었죠.]
“팀장급 요원 중에 그런 분은 보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죠?]
“괜찮은 자리가 있다면 한 번 기용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도현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안주형을 추천했다. 그의 돌발 행동에 당사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저놈 갑자기 왜 저래?’
막말로 안주형은 정도현한테 재수 없게 굴었다.
사상자도 없었고 당사자들 간 갈등도 원만하게 풀려서 연행할 이유가 없음에도 실적을 채우고자 억지로 체포했다.
즉, 악감정을 품는다면 모를까 저렇게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
그가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벌이자 오히려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철저하게 조사는 해야겠죠.”
[조사요?]
“예. 말만 번지르르하고 뒤에선 다르게 행동했을지 누가 압니까. 장 의원도 그러다 훅 갔잖아요.”
[하긴. 처리반이나 단속반 요원들은 암흑가 놈들이랑 종종 결탁하죠.]
대화 주제가 이상한 쪽으로 확 꺾였다.
안주형은 그제야 정도현이 자신을 왜 추천했는지 깨달았다.
‘이 새끼, 설마!’
정도현은 안주형이 청렴, 강직한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처리반 팀장으로 활동하면서 뒷돈을 챙겼으리라 확신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안주형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 잠깐만! 그럴 필요는···.”
“아뇨. 안 팀장님에겐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50레벨 상대로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모습.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정도현은 마음에도 없는 소릴 했다.
안주형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신의 계좌를 파헤치면 그간 뒷돈을 받아먹었단 것쯤은 금세 알아챌 거다.
그럼 모든 게 끝장이었다.
보통은 감봉 선에서 끝나겠지만 지금은 장 의원 사건으로 내부 분위기가 아주 흉흉하다.
분명 본보기로 삼을 터.
아마 F구역 무법지대로 발령받을 것이다. 직급은 팀장 그대로겠지만 사실상 좌천이었다.
“아, 아깐 내가 정말 미안했네. 이렇게 부탁할 테니 제발···.”
안주형이 정도현의 손을 붙잡고 조곤조곤하게 애원했다.
하지만 정도현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까 일로 미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오해하셨을 수도 있죠. 안 팀장님은 그저 자신의 의무를 다하신 거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민 실장님?”
[예, 마침 인원 조정 기간도 다가오고 있으니 한 번 힘 써보겠습니다.]
‘안 돼!’
안주형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뒷돈을 받아먹었다고 자백하는 꼴.
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하는 사이, 차량이 우뚝 멈췄다.
정도현의 집 앞에 도착한 것이다.
“그럼 수고하세요.”
정도현이 차량에서 내리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탁.
차량 문이 닫히자 안주형은 제 얼굴을 감싸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뱉었다.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들이 눈에 선한지 얼굴이 폭삭 늙었다.
***
한편, 정도현이 연행되어 현장을 떠났을 때.
서아린은 번화가 카페에서 곧장 정도현의 집으로 뛰어왔다.
그런데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게다가 집 바깥에 핏자국과 발자국들이 즐비했다.
“···.”
피가 말라붙은 지 얼마 안 됐다.
남겨진 흔적으로 봐선 여기서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거기다 차량 몇 대가 급히 빠져나간 타이어 자국들까지.
서아린이 무언가 짐작하고 이를 갈았다.
‘그놈들. 도현 씨를 납치했어.’
내 잘못이야. 여기 와선 안 됐는데.
자신 때문에 아무 죄 없는 그가 위험에 처했다.
‘갑자기 기습당했으니 대처하기 힘들었을 거야.’
발자국 수와 차량들이 들어온 걸 봐선 스무 명 넘게 몰려온 것 같았다.
미리 대비했어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급습까지 당했으니 아무리 정도현이라도 이건 벗어날 수 없다.
그는 퍼플 팬텀 조직원들에게 제압되어 끌려갔다.
이유는 뻔했다. 자신을 끌어낼 미끼로 쓰려는 거겠지.
‘함정이야.’
서아린은 놈들의 본거지가 어딨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선 안 된다.
그게 그 여자가 원하는 그림일 테니까.
그러나 서아린은 발길을 돌려 천천히 걷다 이윽고 성큼성큼 뛰었다.
그가 살아있단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망할 년은 본거지에서 함정을 파둔 채 기다리고 있겠지.
멍청한 짓인 건 잘 알지만, 서아린은 퍼플 팬텀의 본거지로 향했다.
처음이었다. 타인을 위해 스스로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면···.”
퍼플 팬텀 본거지 뒷문. 그 근처에서 담배를 태우며 잡담하던 조직원 둘.
서아린이 발소릴 죽이고 그들에게 접근했다.
푹-! 촤악!
단숨에 경동맥을 찔러 처리했다.
그녀의 기습에 두 남자는 비명조차 못 지르고 쓰러졌다.
서아린은 시체를 으슥한 곳으로 치우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그에게 은혜라도 갚고 싶었던 걸까.
솔직히 병신 같았다.
착하고 의리를 지킨다 해서 누가 알아주는 세상도 아닌데.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안 하면 평생토록 후회할 것 같았으니까.
“뭐, 뭐야?”
“검은 뱀···!”
뒷문으로 들어온 서아린과 눈이 딱 마주친 조직원들. 그녀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촤악-!
무방비 상태였던 조직원들이 순식간에 당했다.
하지만 맨 뒤에 있던 조직원 한 명이 죽은 동료들을 놔두고 도망쳤다.
그 탓에 본거지 내부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습격이다!”
“뭐?”
“검은 뱀이 쳐들어왔다!!”
잽싸게 도망친 조직원의 외침이 복도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자 호텔 복도처럼 길쭉한 통로 양옆의 문이 동시에 열리며 조직원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아까 처리한 자들과 달리 무기와 보호구를 착용했다.
‘위험해.’
가뜩이나 레벨도 낮아져서 막막한 상황.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자세를 바짝 낮추며 으르렁댔다.
“민소이. 그년 불러와.”
‘민소이’. 평소 서아린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퍼플 팬텀의 간부.
분명 그 여자가 정도현의 행방을 알고 있으리라.
여기서 한 번 죽더라도 상관없다.
그가 살아있는지 아닌지만은 확인해야 한다.
“죽여!”
조직원들은 서아린의 요구를 무시하고 제각기 흉기를 휘두르며 달려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복도가 길고 좁아서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덮쳐오진 못했다.
선두의 두세 명한테만 집중하면 된다.
푹! 촤악-!
그녀가 조직원들을 차근차근 처치했다.
“컥!”
“크악!”
“이런, 씨발···!”
레벨이 줄었어도 검은 뱀이란 이명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단검이 마치 독사처럼 인체의 급소를 찔러댔다.
복도에 시체가 하나둘 쌓여갔다.
그렇게 열 명 넘게 쓰러트리자 막혔던 길이 뚫렸다.
“헉, 허억···.”
서아린의 몸도 성치 않았다.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몸 곳곳에 난 상처를 부여잡았다.
그녀는 마력을 일부 소모해 상처를 틀어막았다. 마력이 아깝지만 지혈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끼익-!
그녀가 문을 열고 복도를 빠져나오자 넓은 중앙홀이 나왔다.
그곳엔 수십의 조직원들이 잘 훈련된 군인처럼 일렬로 서 있었다.
[민소이][LV.49]
“의외네? 네가 제 발로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머릴 빨갛게 물들인 단발의 여인이 조직원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이번 사태의 원흉인 민소이였다.
서아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사람 어딨어?”
“그 사람? 아, 길드장님? 다른 구역 보스들이랑 회담하러 나갔는데.”
“아니. 길드장 말고. 정도현.”
“···응? 누구?”
민소이가 당황했다. 그녀는 당연히 퍼플 팬텀의 리더, ‘심정환’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답했다. 다른 암흑가 리더들을 만나러 갔다고.
기특하게 제 발로 와줬으니 그 정도는 서비스로 알려준 것이다.
그런데 서아린이 고갤 저으며 다른 사람을 언급했다.
‘정환 오빠를 찾는 게 아니야?’
정도현이라니.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누굴 말하는 건지 갈피가 안 잡혔다.
두 여자 사이에 잠깐 침묵이 일었다.
그러자 서아린의 눈동자가 실시간으로 싸늘하게 변했다.
“···죽였어?”
“뭐?”
“그래. 죽였구나.”
“아니, 누굴 말하는···.”
파바밧-!
서아린은 민소이의 이야길 끝까지 듣지도 않고 암기부터 던졌다.
맹독이 발려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썩는다. 레벨 덕에 죽진 않겠지만 한동안 고생할 터.
민소이가 기겁하며 날아드는 암기를 전부 쳐냈다.
“씨···. 깜짝이야! 너 미쳤어?”
민소이가 어이없단 얼굴로 서아린을 노려보다 옆에 서 있던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저 망할 배신자 년이···. 죽이지 말고 내 앞으로 끌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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