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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35화 (35/240)

나 혼자 1원 상점 - 35화

한편 정도현은 말없이 떠난 서아린이 신경 쓰였다.

그녀 본인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니 멋대로 끼어들기도 뭣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론 상황을 타개하지 못할 텐데. 왜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내가 휘말릴까 봐 걱정하던데.’

그럴 성격 같진 않았는데. 의외로 배려심이 깊은 여자였다.

그래서 더 신경 쓰였다.

차라리 뻔뻔하게 나왔으면 모를까.

‘블랙 스컬 때도 도움을 받았었지.’

단검을 돌려준다는 조건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물어다 준 정보 덕에 대비하기 편했었다.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아린 말로는 상대도 만만치 않은 조직이라 한다. 그가 깊이 고민할 때.

똑똑-!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서아린이 다시 돌아온 건가 싶어 문을 열어주려다 밖에서 느껴지는 체취가 다르단 걸 눈치챘다.

문 너머에 있는 건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피 냄새도 난다.’

문밖에서 미약하지만 피 냄새가 풍긴다.

정도현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보호구를 전부 착용하고 문을 열었다.

샤악-!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어주자마자 뾰족한 날붙이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공격당할 걸 예상했기에 대응하긴 어렵지 않았다.

“···!”

꽈악-!

단검을 휘두른 상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저지했다.

상대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반대쪽 손으로 예비용 무기를 꺼냈다.

그러나 정도현의 대처가 훨씬 빨랐다.

퍼억-!

복부에 발차기가 꽂히며 상대는 집 밖으로 뻥 튕겨 나갔다. 그대로 몇 바퀴를 굴렀다.

“쿨럭, 크으···.”

상대가 배를 움켜쥐며 일어났지만 정도현은 이미 거릴 좁힌 뒤였다.

남자가 헉 소릴 내며 급히 단검을 휘둘렀지만, 정도현은 슬쩍 몸을 틀어서 피한 뒤 무릎으로 아래턱을 쳐올렸다.

남자가 눈을 까뒤집고 픽 쓰러졌다.

[???][LV.45]

서아린과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이름을 숨겼다. 레벨도 상당히 높은 편.

“뭐야?”

“막내가 당했는데요?”

괴한을 막 제압했을 때, 근처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 주민들이 아니었다.

전부 이름을 감춘 플레이어들, 그것도 네 명이나 있다.

방금 쓰러진 녀석의 동료들로 보인다.

‘서아린이 말했던 조직의 암살자인가?’

그녀를 추적하다 여기까지 온 건가.

서아린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여기가 으슥한 동네긴 해도 대낮부터 흉기를 휘두르다니.

‘사람 여럿 죽여본 놈들이다.’

다 죽여버리는 게 편하고 깔끔하지만 이곳은 암흑가나 F구역 같은 무법지대가 아니었다.

대놓고 칼부림을 벌이다 주민이 관리국에 신고하면 처리반 요원들이 달려와 체포하려 들 터.

그러면 좀 귀찮아진다.

‘나보다 레벨도 낮아.’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상대는 아무리 죽여도 경험치가 안 들어온다.

저놈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쳐다보자, 그들 중 레벨이 가장 높은 사내가 다급히 말했다.

“자, 잠깐만! 우린 너랑 싸울 생각이 없어.”

“먼저 습격해놓고 뭔 개소리냐.”

“너, 필드의 지배자 정도현 맞지? 우린 네가 여기 사는 줄 몰랐어.”

사내는 암흑가 출신답게 정도현을 알아봤다. 그가 억울하단 얼굴로 호소했다.

‘필드의 지배자는 또 뭐야. 레드 플레이어들은 날 그딴 식으로 부르나?’

정도현은 암흑가에 번진 별명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그의 심기가 불편해진 줄 모르던 사내는 희망을 엿봤는지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찾던 건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그냥 보내주면 안 되겠나?”

“검은 뱀?”

“···.”

남자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곡을 제대로 찔렸다. 옆에 있던 조직원들도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50레벨에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막내를 제압한 괴물이다.’

놈과 싸우면 높은 확률로 이쪽이 당하거나 최소 두어 명은 죽을 터.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우린 ‘퍼플 팬텀’이다.”

남자는 조직의 위명을 팔아서라도 몸 성히 돌아가고 싶었다.

“혹시 검은 뱀이랑 친한 사이인가? 아니면 동맹?”

“둘 다 아닌데.”

“다행이군. 그럼 그냥 못 본 체해주면 안 되나? 우린 너랑 엮이고 싶지 않아. 막내가 착각하고 덤빈 건 사과할게. 그 여자가 저 집에 숨어 있는 줄 알았어.”

“사람을 죽이려 해놓고 말로 사과하면 다냐?”

“계좌 불러줘. 사죄의 의미로 섭섭지 않게 챙겨줄게.”

남자는 최대한 원만하게 넘어가려고 용을 썼다. 정도현은 팔짱을 낀 채 고민하듯 눈을 감았다.

‘그래. 내가 굳이 나설 이유는 없긴 해.’

퍼플 팬텀. 서아린 말로는 암흑가 구역 하나를 꽉 쥐고 있다고 했지.

그럼 못해도 레드 스캐빈저보단 규모가 크리라.

굳이 건드려서 피를 볼 필요는 없었다. 분명 그럴 터인데.

‘왠지 그러기 싫어.’

서아린은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퍼플 팬텀한테 쫓기고 있다.

어떤 간부가 열등감을 품고 있다는 같잖은 이유로 말이다.

저들 하는 짓거리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너흴 놔주면 그쪽도 날 건들지 않겠다. 뭐 그런 얘기지?”

“그래. 굳이 우리끼리 싸울 필요 없지 않나?”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뭐?”

“정도현과 검은 뱀이 동맹이었습니다. 너희가 그딴 식으로 날조해서 보고하면 어쩔 건데.”

정도현이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자 남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제길. 나이도 어린 게 잔머리를 좀 굴릴 줄 아는군.

남자는 뜨끔했지만 겉으론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정 못 믿겠으면 피의 맹약서를 써주지. 그 여자가 어디로 갔는지만 알려줘. 그럼 너에 대해선 윗선에 보고하지 않을게.”

“나도 모르는데. 그보다 내가 말 안 했으면 그렇게 보고하려 했나 보네?”

“그, 그럴 리가. 그럼 그냥 보내주기만 해줘. 어려운 부탁은 아니잖아?”

남자가 최대한 굽히고 양보했지만 정도현은 단호히 고갤 저었다.

“애당초 검은 뱀을 왜 죽이려는 건데?”

“그거야 위에서 시켰으니까···.”

“그래. 듣기론 너희 간부가 검은 뱀이 마음에 안 들어서 죽이려 했다지? 근데 나도 너희가 마음에 안 들거든.”

협상이 결렬되자 남자가 답답해 죽겠단 얼굴로 소리쳤다.

“너 검은 뱀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어.”

“근데 왜 그렇게 감싸고 도는데!”

남자의 추궁에 정도현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난 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녀를 도와주려 하는 걸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크게 두 가지.

“그러고 보니 저번에 도움을 좀 받긴 했지.”

“···도움?”

블랙 스컬의 척살대 인원이 몇인지 알려줬다.

그리고 성장형 단검을 돌려준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할아버지를 납치하려던 놈들을 조용히 정리해줬다.

그 덕에 할아버지한테 괜한 심려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깟 도움 좀 받았다고 목숨을 걸겠다고?”

“두 번째 이유는 경험치.”

“뭐, 뭐?”

“너희 보스, 레벨 몇이냐?”

“이 미친···.”

정도현의 입에서 상상도 못했던 이유가 튀어나오자 남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냥 미친놈이잖아!’

정도현은 지인에게 안부 인사를 하듯 자연스레 보스의 레벨을 캐물었다.

저딴 이유로 암흑가의 거대 조직한테 칼을 겨누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죽여!”

남자의 짧은 외침에 부하들이 동시에 달려들며 합공을 펼쳤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는지 제법 짜임새가 있었지만 정도현을 죽이기엔 부족했다.

그는 매번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상대와 싸웠었다. 그러다 보니 저들의 합공은 그에게 위협조차 못 됐다.

카앙! 카가강-!

그는 손목을 교묘하게 비틀며 여기저기 파고드는 단검들을 쳐냈다.

그저 방어만 했을 뿐인데 암살자들이 균형을 잃고 휘청댔다.

서걱-! 푹!

그는 한 놈씩 차근차근 처리했다.

깔끔하게 급소를 찌르니 비명도 못 지르고 허수아비처럼 쓰러진다.

‘검기를 테스트해보고 싶었는데.’

적들 수준이 너무 낮아서 검기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방금 썰어버린 네 명과 맨 처음 제압했던 막내까지 전부 숨통을 끊었다.

자신과 엇비슷한 레벨대 플레이어를 다섯이나 처리했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정도현에겐 일상이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이 봤으면 말도 안 된다며 대경실색했으리라.

하지만 아직 놀라긴 좀 이르다.

“쿨럭, 허윽···.”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다 죽은 협상남이 기침을 토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정도현은 여태 해온 것처럼 소원을 써서 그를 수하로 삼았다.

죽은 암살자들도 차례대로 되살렸다.

정도현은 한 번의 기회를 썼으니, 막 살아난 사람이 다음 사람을 되살리는 식으로 갔다.

그렇게 다섯의 암살자들이 전부 부활했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를게. 혹시 불만 있는 사람?”

“···.”

“좋아.”

정도현은 구별하기 쉽게 레벨이 높은 순으로 1번부터 5번까지 번호를 매겼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협상남, 1번은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직접 겪고 두 눈으로 봤는데도 도저히 안 믿겼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다니? 레벨이 줄어들긴 했어도 엄청난 기적이었다.

“자, 그럼···.”

끼익-!

정도현이 퍼플 팬텀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 할 때, 웬 차량들이 달려와 그들 앞에 급정지했다.

관리국 마크가 붙어 있었다.

드르륵-!

차량 문이 열리고 처리반 요원들이 우르르 내렸다.

전투용 장비까지 챙겨입은 걸 봐선 근처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듯했다.

요원들 뒤에서 깐깐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나왔다.

[안주형][LV.43]

레벨이 가장 높은 걸 봐선 책임자 같았다.

안주형은 정도현과 번호남들을 쓱 훑어보곤 고압적으로 말했다.

“처리반 팀장, 안주형이다. 거기, 너. 신분증 꺼내 봐.”

“여깄습니다.”

“하, 역시나. 내 이럴 줄 알았어. F구역 출신이셨네?”

정도현의 신분증을 살펴본 안주형이 혐오로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관리국에 요청해 자세히 조사할 필요도 없다 판단했는지 그가 이죽댔다.

“어이구. 흉기를 마구 휘둘렀나 보네? 여기가 무슨 F구역인 줄 알아?”

안주형은 번호남들의 상태를 살펴보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감을 잡곤 씩 웃었다.

정도현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지만, 번호남들의 옷은 칼에 찔려 넝마가 된 데다 핏자국이 낭자했다.

안주형은 저들이 왜 칼부림을 벌였는지는 궁금치 않았다.

‘모처럼 큰 건수다.’

싹 다 잡아다 처넣어서 실적으로 삼아주마. 정도현은 안주형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칼을 휘두른 건 맞지만 호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저들이 먼저 흉기를 꺼내 덤벼들었어요.”

“호신은 무슨. 딱 봐도 네가 일방적으로 쑤셔댔구만.”

“다들 멀쩡합니다. 정 못 믿겠으면 살펴보시죠.”

안주형은 콧방귀를 뀌며 부하들에게 눈짓으로 확인하라 지시했다.

처리반 요원들이 번호남들의 몸 상태를 자세히 살펴봤다.

“···어?”

“티, 팀장님!”

“그래, 심하게 다쳤지? 응급 처치부터 해줘.”

한 놈도 죽게 놔둘 수 없었다.

특수 수감소에 산 채로 잡아넣어야 실적으로 쳐주니까.

안주형이 실실 웃고 있을 때 어떤 요원이 말했다.

“다들 멀쩡한데요?”

“···뭐?”

“몸에 상처 하나 없습니다.”

안주형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럴 리가 없다며 부하들을 옆으로 밀쳐내고 직접 확인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없는 상처가 생기진 않았다.

젠장. 포션으로 치료해준 건가?

“야, 대답해! 저놈이 칼로 마구 쑤셨지?”

결정적인 물증이 없자 안주형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받아내기로 노선을 바꿨다.

진위와는 상관없이 대낮에 칼부림을 벌인 고위험 범죄자로 잡아다 넣어야 한다.

조만간 E구역 지부장이 바뀐다.

승진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점수를 따둬야 했다.

“급소는 한 군데도 안 찔렸습니다.”

“저희가 멋대로 착각하고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저분은 죄가 없습니다.”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옹호해주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질 않자, 안주형이 분한 얼굴로 정도현을 째려봤다.

“···레벨 보니까 어디 암흑가 조직의 간부라도 되나 본데.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을 줄 아냐?”

안주형은 정도현이 피해자들에게 조직의 위명을 대고 압력을 가했다고 여겼다.

실제로 암흑가 출신들이 종종 써먹는 방법이기도 했다.

“자세한 얘긴 취조실에서 찬찬히 들어보자고. 뭐해? 연행 안 하고.”

안주형의 지시에 요원들이 주춤대며 정도현에게 다가왔다.

끽해야 30레벨을 겨우 넘긴 요원들.

그런 이들이 50레벨을 구속한다니. 어불성설이었다.

만약 정도현이 연행을 거부하고 날뛰기라도 하면 그들은 전부 죽은 목숨이었다.

“잠시만요. 그 전에 통화 좀 해도 됩니까?”

체포하러 다가오던 요원들에게 정도현이 정중히 부탁했다.

말투는 온화했지만 레벨이 레벨이다 보니 요원들에겐 맹수가 그르렁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원들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안주형을 쳐다봤다. 안주형이 귀찮단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일단 차에 타. 전화는 가면서 해도 되잖아?”

“그러죠.”

“통화는 되도록 짧게 하고.”

정도현은 어딘가로 연락하며 수갑 형태의 마력 억제기를 찼다. 그러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30레벨 플레이어까지는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더니. 과연 효과가 대단했다.

‘레벨이 확 줄어든 느낌이네.’

정도현은 번호남들과 함께 호송용 차량에 탑승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상대방이 연락을 받았다.

[아, 도현 씨! 어쩐 일이십니까?]

“민 실장님. 제가 지금 곤란한 상황인데 도와주실 수 있나 해서요.”

[그럼요.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요원분들에게 오해를 사버리는 바람에 연행되고 있거든요.”

[···예? 연행이요?]

정도현은 핵심만 간추려서 설명했다.

그러자 민규원이 그쪽 책임자를 바꿔 달라고 했다.

정도현은 맞은편에 앉은 안주형에게 휴대폰을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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