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28화
죽은 사람을 되살리다니.
그건 신의 영역이지 않은가.
물론 부활 스킬을 지닌 고레벨 플레이어, 성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녀가 왜 성녀란 별명으로 불리며 추앙받겠는가?
부활 스킬이 그만큼 사기적이기 때문이다. 류동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새로운 부활 스킬 소유자?’
만약 그게 사실이면 정도현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원석이었다.
당장 레벨은 좀 낮아도 분명 성녀 못지않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 도현 님?”
“왜?”
“혹시 부활 스킬을 지니고 계신 겁니까?”
“뭐, 비슷하지. 제약은 좀 있지만.”
“제약이라 하심은?”
“레벨 감소.”
“예?”
“너, 4레벨 떨어졌네.”
“···!”
류동하는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레벨을 확인하더니 머릴 마구 쥐어뜯었다.
‘53레벨이라니. 내가 53레벨이라니!’
어떻게 올린 레벨인데! 류동하는 눈앞이 컴컴해졌다.
“그래도 죽는 것보단 이게 낫지?”
“그, 그렇긴 하죠···.”
정도현이 웃으며 위로해주자, 류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긍했다.
하지만 속으론 욕설을 뱉었다.
어찌 살아나긴 했으나 사실상 정도현의 노예로 전락했다.
자유가 없는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네가 불만 품는 건 이해해. 자길 죽인 놈한테 충성하는 게 아니꼽겠지.”
“···.”
“그래도 내가 그렇게까지 쓰레긴 아니거든? 난 지킬 것만 잘 지키면 터치 안 해.”
“그, 그러시군요.”
류동하가 애써 웃으며 주인님의 비위를 맞췄다.
물론 그는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분명 말만 저렇게 해놓고 마구 부려먹겠지.
류동하가 정도현이었어도 분명 그렇게 했을 거다.
대충 상황 설명이 끝나자 정도현은 본론을 꺼냈다.
“장 의원이 날 죽이려 했어.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글쎄요?”
“내가 살아있단 걸 알면 그쪽에서 다시 손을 쓰겠지.”
그러니 이번엔 이쪽에서 반격할 차례다.
정도현의 발언에 류동하는 속으로 좆됐다고 생각했다.
반격한다니? 장현민 의원이 어떤 인물인 줄 알고 저런 소릴 한단 말인가.
일단 장 의원은 레벨이 61이다.
안태환 부지부장과 지부장 자릴 놓고 겨루는 E구역의 실세 중 하나였다.
안태환이 그나마 정도를 지킨다면, 장 의원은 무력을 앞세워 패도를 추구했다.
눈에 거슬리는 건 없애고, 장애물은 때려 부수고 나아간다.
게다가 소문으로는 암흑가의 몇몇 조직들과 긴밀한 사이라고 했다.
즉, 고위 공직자의 탈을 쓴 갱단 연합의 수장이나 다름없었다.
“장 의원을 건드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래. 잘못 건들면 우리가 죽겠지.”
그럼 난 빼주면 안 될까? 류동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불충한 소릴 입 밖으로 꺼냈다간 페널티로 죽을지 모른다.
류동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정도현의 복수극에 협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
[놈은 해치웠어. 그런데 네가 고용했던 놈들, 다 뒈져버렸다.]
“아, 그렇습니까? 엄선해서 데려온 자들이었는데···. 아무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술이랑 음식은 잘 준비해뒀지?]
“그럼요. 주소 보내드리겠습니다.”
오예찬은 류동하한테 연락을 받았다.
고용했던 레드 플레이어들은 다 죽었지만, 정도현을 죽이는 데엔 성공했다.
그제야 오예찬도 한시름 놨다.
‘지금까지 행보가 예사롭지 않아서 좀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변은 없었다.
그래. 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F구역 출신이다. 오예찬은 추악하게 웃으며 중얼댔다.
“그러니 주제를 알았어야지, 주제를.”
감히 내 제안을 거절해?
계약 조건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영입을 거절당한 순간부터 그는 정도현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처리한 것이다.
앓던 이가 빠진 것마냥 속이 후련했다.
다만 놈의 최후를 지켜보지 못했단 게 조금 아쉬울 따름.
‘류동하. 흑마법사지만 변신 능력만큼은 쓸만해.’
죽은 지 얼마 안 된 대상으로만 변신할 수 있지만, 잘만 쓴다면 정치적 공작으로 활용할 여지도 있다.
괜찮은 인재를 아주 싼값에 영입했다.
오예찬은 류동하의 복수심을 슬쩍 자극했을 뿐. 덕분에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오예찬은 진수성찬이 차려진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이제 무투전만 남았는데···.”
성기사, 박성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를 이길 만한 사람이 없었다.
얼마 전, 박성원이 던전에서 죽었단 급보가 들어왔을 때 그는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었다.
하늘이 우릴 돕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정정 소식이 날아들었다. 박성원은 던전에서 죽은 게 아니라 크게 다쳐서 입원한 거였다고.
‘그 여우 같은 놈.’
오예찬은 그쪽의 책략가, 민규원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딴 시답잖은 장난질이나 치다니.
그 녀석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기필코 장 의원을 다음 지부장으로 만든다.’
그는 장현민 의원이 설립하고 후원해준 E구역 고아원 출신이었다.
그곳에서 요원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다, 정령이 눈에 보이게 되었고 장현민 눈에 들었다.
그 밑에서 일하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장현민을 지부장으로 만들 것이다.
충성심이나 고아원을 설립해준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그런 시시껄렁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래야 내 가치를 입증할 수 있으니까.’
난 선택받았다. F구역 무지렁이들이랑은 급이 다르단 말이다.
꼭 출세해서 권력을 거머쥐고야 말겠다.
오예찬이 그렇게 생각하며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렇게 삼십 분가량이 흘렀지만 류동하는 오지 않았다.
‘좀 늦는데. 무슨 일이 생겼나?’
문자를 넣어봐도 곧 도착한다는 답장만 돌아왔다. 통화하려고 번호를 누르던 순간.
팟-!
갑자기 전등이 꺼지며 주위가 컴컴해졌다.
‘정전인가?’
오예찬은 최하급 불의 정령을 소환해 촛불 대용으로 사용했다.
옆방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보아하니 건물 전체가 맛이 간 모양.
“하필 이럴 때 전기가 나가다니. 류동하, 그 자식이 투덜대겠군.”
[어두우면 뭐 어때? 술만 잔뜩 있으면 되지.]
“···!”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오예찬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갤 돌리자 테이블 위에 생쥐 한 마리가 올라와 있었다.
녀석은 마치 사람처럼 두 손으로 육포를 쥔 채 오물거렸다. 더 볼 것도 없이 류동하였다.
[근데 이거 웃기는 새끼네. 내가 네 친구냐? 그 자식?]
“아,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말실수를···.”
류동하의 지적에 오예찬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설마 류동하가 방에 들어와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스스스-!
류동하가 변신을 풀고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오예찬은 마른침을 삼키며 머릴 굴렸다.
‘괜찮아. 날 어쩌진 못해.’
피의 맹약서로 동맹을 체결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배신할 수 없다.
즉, 류동하가 할 수 있는 건 말로 갈구는 정도일 터. 그런 건 이골이 났다.
오예찬이 안심한 그 순간.
푹-!
서늘한 감촉이 그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컥!”
류동하가 단검으로 자신을 찔렀다.
오예찬은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비틀대다 털썩 주저앉았다.
설마 그에게 공격당할 줄 몰랐기에 반응조차 못 했다.
“어, 째서···?”
이런 짓을 하면 본인도 계약의 페널티로 죽을 텐데?
류동하가 아무리 성질 더러운 흑마법사여도 제 목숨은 아까울 터.
오예찬은 피를 울컥 토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시야가 점차 흐릿해진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래도 맞후임이 바로 들어와서 다행이야.”
“무, 슨···.”
맞후임이 들어왔다니? 저건 또 무슨 헛소리지?
죽어가는 중이라 환청이 들리는 걸까.
오예찬은 문 쪽으로 질질 기어갔다. 그가 지나간 곳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권력을 움켜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난 태어났다.
그런데 여기서 죽어버리면 다른 무지렁이들과 크게 다를 게 없어진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 죽어도 싫었다.
끼익-!
때마침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가게 종업원인가?
오예찬은 작은 희망을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오예찬 비서실장님.”
“···!”
“전에 잠깐 통화했었죠?”
방 안은 어두컴컴했지만 플레이어인 오예찬의 눈에는 잘 보였다.
방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정도현.
정도현과 류동하.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건···.
‘류동하가 배신했다?’
류동하가 계약을 어기고 정도현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어떻게?
계약에 기한을 따로 정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효력이 유지되는데.
“씨발, 뭐가 어떻게 된···.”
오예찬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그가 죽자, 류동하는 정도현에게 받은 부활 아이템을 꺼내 사용했다.
정도현은 이미 오늘치 구슬을 사용해서 누군가를 되살릴 수 없었다.
그래도 딱히 상관없었다.
그의 충실한 수하, 류동하가 대신 되살린 뒤 소원을 빌면 되니까.
1원 상점 페널티 때문에 정도현이 그 소원을 마음대로 쓰진 못하겠지만.
“쿨럭, 커흑···.”
오예찬이 다시 숨을 쉬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다급히 가슴팍부터 확인했다.
단검에 찔린 상처가 없어졌다.
오예찬은 어안이 벙벙한지 정도현과 류동하를 번갈아 쳐다봤다.
류동하는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머릿속으로 오만 생각이 다 들겠지.
“야, 오예찬. 넌 앞으로 나한테 충성해라.”
“···뭐?”
“그게 내 소원이다.”
류동하가 소원이란 키워드를 언급하자 어김없이 그들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용을 읽어본 오예찬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자, 잠깐만! 이게 무슨···.”
“어허! 선임한테 말투가 그게 뭐야. 나이도 어린놈이!”
“윽···!?”
류동하가 발끈하며 호통치자 오예찬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저 반응으로 봐선 시스템이 페널티를 내리겠다고 경고한 듯싶었다.
오예찬은 어쩔 수 없이 굽신댔다.
“죄, 죄송합니다.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새끼, 젊은 놈이 벌써 얼이나 타고. 나 때는 말이야.”
류동하가 주절주절 잔소리를 늘어놓자, 정도현이 그만하라고 눈치를 줬다.
“그리고 앞으로는 도현 님도 나처럼···. 아니지. 나 이상으로 깍듯이 모시도록. 알겠냐?”
“···예?”
“왜? 하기 싫어? 페널티 맛 좀 볼래?”
“아, 아닙니다!”
류동하가 삿대질을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도 그의 혓바닥에 오예찬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오예찬은 하겠다고 대답하면서도 좀처럼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정도현이랑 왜 손을 잡은 거지?’
정도현을 죽이고 싶다며 노랠 불러댈 땐 언제고. 이젠 아예 한편이 되었지 않은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러다 오예찬의 어깨가 움찔했다.
‘설마?’
류동하도 자신과 똑같은 처지란 말인가?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오예찬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정도현. 대체 정체가 뭐지?’
그 사이 정도현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으며 술과 안주를 집어 먹었다.
류동하가 싱글벙글 웃으며 합석하려 하자, 정도현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오예찬이 흘린 피가 너저분하게 뿌려져 있었다.
“먹기 전에 청소부터 해야지. 종업원이 들어와서 보면 어쩔 거야?”
“아, 넵! 야, 바닥 빨리 닦아.”
“예···.”
“후임한테만 시키지 말고 너도 같이 도와.”
“앗···.”
류동하가 눈을 부라리며 오예찬에게 턱짓으로 치우라 지시했다.
그러자 정도현이 류동하를 내리 갈궜다.
두 사람은 결국 사이좋게 바닥을 닦았다.
오예찬이 소환한 물의 정령 덕에 피 한 방울 빠트리지 않고 말끔해졌다.
그 직후, 방의 전등이 깜빡거리며 불이 들어왔다.
오예찬은 그제야 정전의 비밀을 알아챘다.
‘저 녀석, 일부러 전력을 차단한 거였어.’
방이나 복도에 설치된 CCTV를 일시적으로 무력화하기 위함이겠지.
오예찬을 살해하는 장면이 녹화되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테니까.
“다 닦았으면 앉아.”
“···예.”
정도현이 옆자릴 툭툭 두들기며 오예찬을 불렀다.
F구역 출신한테 명령을 들어야 한다니.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넌 머리가 좀 돌아가는 놈이니 알겠지. 내가 왜 이러는지.”
“···예. 장 의원에게 보복하려는 것이겠죠.”
오예찬이 계획을 주도했으나 지시는 장현민 의원이 내렸다.
즉, 장현민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하면 정도현은 E구역에서 맘 편히 살 수 없을 터.
“장현민을 처리할 방법이 있을까? 무력으로 밀어내긴 힘들 것 같은데.”
아무리 정도현이라도 61레벨 플레이어를 조용히 처리하는 건 어려웠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말해봐.”
오예찬은 밝히고 싶지 않았던 장현민의 약점을 털어놨다.
지금껏 저질러온 각종 비리와 범죄.
암흑가 갱단들과 결탁해 값싼 마약을 제조하고 주민들에게 유통해온 일.
하나 같이 고위 공직자가 손대선 안 될 짓이었다.
“마약을 제조해서 팔아먹었다고?”
“예. 장부는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조 공장들의 위치도 알고 있고요.”
“그걸 폭로하면 어떻게 되지?”
“사형은 아니어도 죽을 때까지 징역을 살아야 할 겁니다.”
들키지 않았으면 모를까.
각종 비리와 마약 사업까지 해왔단 걸 까발리면 중앙 관리국도 칼을 뽑아 들 것이다.
안 그러면 다른 놈들까지 슬금슬금 비리나 부정부패를 저지를 테니까.
그러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정도현은 류동하와 오예찬에게 술을 한 잔씩 따라주며 건배를 제안했다.
“지킬 것만 잘 지켜. 그럼 나도 터치 안 해. 무슨 말인지 알지?”
“암요.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류동하는 그새 노예 생활에 적응했는지 간신배처럼 아첨을 떨었다.
오예찬은 정도현이 따라준 술을 쭉 들이켰다. 평소보다 많이 썼다.
류동하는 죽상을 짓고 있는 오예찬에게 명령했다.
“야, 뭐해? 분위기 띄우게 노래 좀 불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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