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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7화 (27/240)

나 혼자 1원 상점 - 27화

던전은 멧돼지를 닮은 몬스터들 소굴이었다.

레드 플레이어들은 몬스터와 싸우는 정도현을 예의주시했다.

‘뭐야?’

‘실력이 대단하다더니···.’

‘잘 못 싸우는데?’

그들이 볼 때 정도현의 움직임은 영 시원찮았다.

소문으론 칼솜씨가 엄청나다고 해서 내심 긴장했었는데 막상 까보니 평범했다.

“헉, 헉···.”

그런 주제에 또 욕심은 많아서 혼자 몇 마리씩 상대하다 제풀에 지쳤다.

고작 몇 번 전투해놓고 벌써 숨을 헐떡대는 꼴이 어찌나 가관인지.

레드 플레이어들은 속으로 킬킬댔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

“···잠시 쉬었다 가시죠.”

정도현의 간절한 요청에 레드 플레이어들이 슬쩍 눈빛을 교환했다.

그래서 놈을 언제 처리할 거냐.

지금이 적기 아닐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죽일지 말지 각을 잴 때. 류동하가 말했다.

“다들 뭘 망설이고 있어? 본인이 빨리 쉬고 싶다잖아. 그럼 도와줘야지.”

류동하가 더는 참지 못하고 가면을 벗어던졌다.

돈이 목적인 레드 플레이어들과 달리 그는 복수심이 더 앞섰다.

류동하는 정도현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이봐, 정도현. 내가 누군지 알겠냐?”

“예?”

“그래, 모르겠지.”

정도현이 멍청하게 되묻자 류동하는 변신을 풀었다. 그의 진짜 이름과 레벨이 공개됐다.

[류동하][LV.57]

그걸 본 레드 플레이어들이 안도하며 고갤 끄덕였다.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저 정도 레벨이면 그럴 만도 했다.

정도현이랑 무려 12레벨 차이. 그 혼자 싸웠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레드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게 웬 떡이냐?’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겠는데?’

“저 새끼 내 앞으로 끌고 와. 죽이진 말고.”

그렇게 생각하며 시시덕대던 레드 플레이어들에게 류동하가 마치 상관처럼 지시했다.

좋다 말았다. 레드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시키는 대로 했다.

괜히 개겼다간 자기들 목까지 달아날 판이니까.

레드 플레이어들이 포위망을 펼치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러자 정도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들 이러십니까!”

“흐흐, 이 새끼.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했네?”

“등신아. 우린 너 담그러 온 거야.”

“우릴 원망하진 마라. 네가 너무 나대서 뒈진 거니까.”

레드 플레이어들이 악마처럼 웃으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정도현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뒤에서 느긋이 지켜보던 류동하는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곤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 새끼, 설마?’

불길한 예상은 늘 비껴가는 법이 없었다.

촤악! 서걱!

정도현에게 달려들었던 레드 플레이어들이 피를 쏟으며 하나둘 무너졌다.

“끄, 끄아악!?”

“커헉!”

“사, 살려줘···. 제발···.”

맨 처음에 달려든 사내는 한쪽 손목이 날아갔다.

그래도 그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다른 이들은 급소를 찔려 숨도 제대로 못 쉬거나, 내장을 주르륵 쏟아내며 죽었다.

푹-!

정도현은 목숨을 구걸하던 남자에게 칼을 쑤셔 넣었다.

네 명이 순식간에 당하자 류동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정도현도 같잖은 연기는 집어치우고 상대를 빤히 노려봤다.

“이 비열한 놈이···. 날 속였구나!”

“네가 할 말이냐?”

정도현이 어이없단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는 턱을 매만지며 추리했다.

“흑마법사 같은데. 그 레벨이면 최소 간부급일 거고. 블랙 스컬의 길드장이냐?”

“그래! 네 놈 때문에 난 모든 걸 잃었다! 십수 년간 일궈온 길드가 송두리째 망했다고!”

“그거 유감이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이 새끼가!”

정도현의 도발에 류동하가 분노를 못 참고 두 손을 맞댔다.

공격 주문이 날아오나 싶었는데 돌연 류동하의 몸집이 크게 부풀더니 회색곰으로 변했다.

‘몬스터로 변했어?’

얼마 전에 상대한 도마뱀 괴물, 최용민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죽여주마!]

놈은 지성을 제대로 유지했다.

덩치가 커지면서 목소리가 괴상해졌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쿵, 쿵, 쿵!

놈이 네 발로 땅을 뒤흔들며 돌진해왔다. 최용민보다 레벨은 낮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매직 스크롤은 저번에 너무 써서 여분이 얼마 없는데.’

게다가 상대도 고레벨 마법사니 하급 주문은 막힐 확률이 높았다.

쾅-!

놈이 뒷다리로 벌떡 일어서며 앞발을 휘둘렀다. 정도현은 뒤로 뛰어 피했다.

부서진 지면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들었다.

‘정통으로 맞으면 죽겠어.’

어마어마한 괴력이었다.

이성을 잃고 마구 날뛰던 최용민과 달리 놈은 힘을 다루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쾅! 콰앙!

연속으로 내리꽂히는 앞발.

정도현은 막거나 쳐낼 엄두도 못 내고 피하기 급급했다.

[아까처럼 계속 깐족거려봐!]

류동하는 그렇게 외치며 정도현을 점차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툭.

마침내 정도현의 등이 막다른 벽에 닿았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죽어라!]

류동하가 앞발에 체중을 실어 단번에 내리쳤다.

하지만 회심의 일격을 날릴 땐 그만큼 동작도 커지는 법.

“「바람 질주」.”

정도현의 신발이 바람을 내뿜으며 움직임을 가속시켰다.

그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곰 발바닥을 피한 뒤 옆구리를 베며 지나갔다.

[크악!]

류동하가 비명을 지르며 주춤했다.

찢어진 옆구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지만 상처는 얕았다.

실로 무식한 맷집이었다.

‘성수도 안 먹히는 것 같고.’

칼날에 몰래 성수를 뿌려뒀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몬스터로 변하면 주문을 못 쓰는 대신 흑마법사의 약점도 사라지는 모양.

정도현은 적당히 거릴 벌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류동하가 상처에서 흐르던 피를 닦아내고 이빨을 드러냈다.

‘날붙이로는 놈에게 피해를 제대로 줄 수 없다.’

정도현은 그렇게 판단하고 검 대신 전투용 망치를 꺼냈다.

[자이언트 킬러] [레어]

- 착용 조건: LV.40 이상

- 자신보다 덩치가 큰 대상에게 추가 피해를 줍니다.

정도현이 큼직한 망치를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유혹했다.

류동하가 성난 황소마냥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건방진 새끼!’

아깐 방심해서 당한 거다.

놈의 신발에 이동 스킬이 있는 걸 알았으니 이번에야말로 짓뭉개주겠다.

류동하가 그렇게 생각하며 상대를 덮쳤다.

정도현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런데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최용민보다 움직임이 다채롭긴 한데 그게 다야.’

슬슬 상대의 움직임이 읽힌다. 몸집이 워낙 비대해서 속도와 정교함이 뒤떨어졌다.

‘충분히 할 만해.’

콰득-!

빈틈이 생길 때마다 그는 가차 없이 망치를 때려 박았다.

두꺼운 가죽과 살로 보호받는 곳이 아닌 관절 부위와 뼈마디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사람도 방문을 여닫다 새끼발가락을 찧으면 눈앞이 노래지지 않던가.

덩치가 커져도 아픔은 비슷했다.

[끄어어억!]

류동하가 덩칫값을 못하며 아프다고 발광했다. 흥분하니 동작은 더 커지고 빈틈이 생기는 빈도가 훨씬 늘었다.

정도현은 침착하게 요리조리 피하면서 망치를 내리쳤다.

전투보다는 고문에 가까웠다.

꽈득-!

섬뜩한 소리가 울리며 다리뼈에 금이 쩍 갈라졌다.

류동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진다.

[끄, 끄허어어···.]

쿠웅!

그의 앞발이 옆으로 확 쏠리며 엎어졌다.

정도현은 그대로 도약해 놈의 정수리를 노렸다.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대가리를 내리치면 골이 징징 울리겠지.

쾅-!

망치가 곰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놈의 두개골은 그대로 푹 꺼져서 바닥까지 닿았다.

“···?”

뭔가 이상했다.

단단한 두개골을 때렸는데 타격감이 전혀 안 느껴졌다.

야구로 치면 공을 때리지 못하고 헛스윙을 한 기분.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뭐야?”

거대한 곰 마수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도축한 짐승처럼 거죽만 덩그러니 남았고 알맹이는 온데간데없었다.

정도현이 망치를 회수하고 자세히 살펴볼 때, 거죽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죽어라!]

“···!”

곰 가죽을 뚫고 튀어나온 건 사마귀 마수였다.

망치로 정수리를 찍히기 직전, 류동하는 변신을 풀고 다른 몬스터로 변한 것이다.

촤악!

정도현은 급히 몸을 던져 피했지만, 사마귀 마수의 톱날 같은 앞다리에 팔뚝을 쭉 긁혔다.

조금만 더 깊게 들어왔으면 팔이 통째로 찢겼을 것이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샤샤샥-!

사마귀 마수의 앞다리가 정도현을 노리며 마구잡이로 날아든다.

그는 쥐고 있던 망치를 내버리고 피하는 데만 집중했다.

[무기를 버리다니. 멍청한 놈!]

무기가 없으면 반격할 수단도 없다.

류동하는 자신의 승리를 직감하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정도현에겐 또 다른 무기가 있었다.

[···!]

정도현이 꺼낸 걸 본 류동하가 움찔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매직 스크롤이었다. 류동하의 반응에 정도현은 확신했다.

‘몬스터로 변신하면 흑마법도 못 쓰나 보군.’

화르륵-!

전방으로 불길이 휘몰아쳤다.

그 뜨거운 열기에 류동하가 비명을 꽥 지르며 물러났다.

그 틈에 정도현은 거릴 벌리며 회복 포션을 꺼내 사용했다.

물론 류동하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또 껍데기만 남았다.’

불길이 몸에 옮겨붙은 사마귀 마수가 풀썩 쓰러졌다.

이번에도 알맹이는 쏙 사라졌고 거죽만 남아 활활 불탔다.

류동하가 또 다른 무언가로 변했다.

정도현은 주위를 경계하며 칼을 소환했다.

‘변신하면 이전에 입은 부상도 다 없어지는 건가?’

곰 마수일 때 앞다리를 확실히 부러뜨렸는데 사마귀로 변하자 멀쩡해졌다.

부상까지 낫는다니. 정말 성가신 능력이었다.

즉사하지만 않으면 거의 불멸에 가깝다.

정도현은 눈동자를 굴리며 전신의 감각을 끌어올렸다. 그러다 알아챘다.

“···!”

발밑에서 진동이 들렸다. 지하에서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정도현은 곧장 땅을 박차고 풀쩍 뛰었다.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땅속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솟구쳤다.

사람보다 큰 뱀 마수였다.

기습에 실패한 류동하는 다시 지하로 파고들었다.

도약했던 정도현이 절반쯤 내려왔을 때, 착지할 지점의 땅이 들썩였다.

그곳에 구멍이 쑥 뚫리며 뱀이 머릴 빼꼼 내밀었다.

류동하가 간사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뒈져라!]

류동하는 입을 쩍 벌리며 그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한입에 씹어 삼킬 생각 같았다.

낙하 도중엔 도망칠 수도 없다.

스륵.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기다란 창을 꺼내 있는 힘껏 던졌다.

[컥···!?]

예상치 못한 예비용 무기에 류동하는 머릴 꿰뚫렸다. 이번엔 즉사시켰다.

하지만 뱀 마수의 육체는 쭈글쭈글하게 변하더니 마치 허물처럼 변했다.

‘즉사시켜도 소용없다고?’

그럼 어떻게 죽이란 거냐.

정도현이 속으로 투덜대며 지면에 착지했을 때.

뱀의 입속에서 뭔가가 꾸물꿈루 기어 나왔다. 본래 모습의 류동하였다.

이번에는 몬스터로 변신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제, 젠장···. 제기랄···.”

빠악-!

정도현은 축구선수처럼 달려가 류동하의 턱을 걷어찼다.

그의 고개가 확 젖혔고, 입에서 새하얀 치아가 몇 개씩 뽑혀 나왔다.

“아, 으으···.”

“변신 횟수에 제약이 있나 봐?”

걷어차인 충격이 상당했는지, 류동하가 똑바로 대답도 못 하고 새빨간 침을 질질 흘렸다.

“허윽, 헉···. 사, 살려줘···.”

아까 전 기세는 다 어디 갔는지 류동하가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정도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갤 끄덕였다.

“그래, 살려줄게.”

“저, 정말?”

“그래.”

류동하가 눈을 크게 떴다. 목숨을 부지할 수만 있다면 그는 뭐든 할 수 있었다.

“대신 한 번만 죽이고.”

“뭐?”

푹-!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류동하의 목에 칼을 찔러넣었다.

‘개자식, 날 또 속였어!’

그 생각을 끝으로 류동하는 의식이 뚝 끊겼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도현은 곧장 신성한 용의 구슬을 꺼내 들었다.

그걸 가져다 대자 류동하의 목에 난 상처가 아물었다.

“허억! 허으, 헉···.”

류동하는 물속에 오랫동안 잠수하다 막 올라온 것처럼 헉헉댔다. 그는 뚫렸던 목을 만지며 혼란스러워했다.

“어, 어떻게···.”

분명 죽었는데? 류동하는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웅얼댔다.

“야.”

“···예, 옙!”

류동하는 저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했다.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빠르게 파악한 게 마음에 들었는지 정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소원 쓸게.”

“소, 소원이요?”

“살려줬으면 은혜를 갚아야지? 앞으로 나한테 충성해.”

그 말에 류동하는 어쩔 수 없이 고갤 끄덕였다.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거짓으로 복종하는 척하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정도현이 소원을 사용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정도현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그를 배신할 시 즉시 사망합니다.]

“···어?”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도현도 비슷한 메시지가 보이는지 고갤 끄덕거렸다.

‘좋아. 소원 빌어도 페널티는 없네.’

아이템을 직접 써서 그 효과로 이득을 보자 시스템도 간섭하지 않았다.

반면 류동하는 이게 당최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됐다.

정도현은 얼이 빠져 있던 그에게 질문했다.

“저놈들. 네가 고용한 거냐? 아니면 다른 놈이 나 죽이라고 사주했냐?”

“그, 그건···.”

류동하는 오예찬과 피의 맹약서로 약속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장 의원 측과 손 잡은 걸 발설하면 바로 죽는다.

그런데 그의 주둥이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장현민 의원과 거래했습니다. 헙···!?”

“역시 그쪽 짓인가.”

류동하는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비밀을 발설했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는구나.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

“···?”

“왜. 놈들이랑 피의 맹약서로 계약했냐?”

“예? 아, 예···.”

“신경 쓸 필요 없어. 너 아까 한 번 죽었잖아? 그럼 맺었던 계약도 다 사라지거든.”

정도현은 대수롭지 않단 듯이 알려줬지만, 류동하는 입을 쩍 벌렸다.

‘나 진짜로 죽었다 되살아난 거였어?’

이 새끼 뭐지. 혹시 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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