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25화
리자드맨으로 변한 최용민은 한바탕 울부짖더니 고갤 돌려 정도현과 권도빈을 노려봤다.
눈동자에서 적의가 느껴졌다.
‘놈에게 딱 어울리는 형벌이네.’
남들을 희생시키며 실험을 강행한 끝에 본인마저 똑같은 괴물로 전락했다.
도마뱀 괴물이 침을 뚝뚝 흘리며 달려들었다.
“뒤로 쭉 물러나 있어.”
“뭐, 뭐?”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괴물을 향해 혼자 뛰어갔다.
무모한 돌격에 권도빈이 발을 동동 굴렀다.
괴물이 돼서 아까처럼 주문은 못 쓰겠지만, 그 대신 최용민은 강인한 육체를 손에 넣었다.
게다가 힘만 세진 게 다가 아니다.
서걱! 촤악-!
정도현이 공격을 피하면서 괴물의 팔뚝과 허벅지를 베었다.
리자드맨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그러는 사이에 상처가 아물더니 출혈이 멎었다.
그 비정상적인 재생력에 권도빈이 낙담했다.
‘저런 걸 어떻게 죽이라고!’
정도현이 준 매직 스크롤은 이미 다 떨어졌다.
화살이라도 쏴서 도와줄까 생각했지만, 그는 팽팽히 잡아당겼던 활시위를 도로 되돌렸다.
그가 화살을 아무리 쏴봤자 아무 피해도 못 줄 거다. 괜히 어그로만 끌릴 뿐.
‘정도현은 그걸 염두하고 물러나라 말한 거야.’
정도현은 괴물을 붙잡아두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권도빈이 괴물에게 노려지기라도 하면 지켜줄 여력이 없을 터.
분하지만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돕는 거였다.
“젠장···.”
촤악! 서걱! 촤좌좌좍-!
정도현은 썰고 또 썰었다.
레벨 차이가 심하게 나는데도 언뜻 보면 그가 싸움을 주도해나가고 있었다.
신체 능력이 올랐어도 지능은 몬스터 수준으로 떨어져 움직임이 단순해졌다.
노림수가 뻔하니 대처하기도 너무 쉬웠다.
‘하지만···.’
권도빈이 볼 때 이건 절대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아무리 칼로 베고 쑤셔도 저 괴물은 순식간에 상처가 낫는다.
게임으로 빗대면 적을 때려서 줄인 HP보다 회복량이 훨씬 많은 셈.
저러다 정도현이 지치게 되면 전황은 역전될 것이다.
“···어?”
권도빈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변이 일어났다.
쿵-!
리자드맨의 한쪽 무릎이 꺾이며 지면에 닿았다.
녀석은 숨이 막히는지 괴로운 표정으로 컥컥 기침까지 했다.
푸확-!
‘각혈까지?’
리자드맨의 입에서 시퍼런 핏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이상했다.
외상은 물론이고 내상까지 말끔히 나았을 텐데.
‘왜 저렇게 피를 흘리지?’
리자드맨이 주춤할 때, 정도현은 뒤로 거릴 벌려 회복 포션을 꺼냈다.
포션이 있는 한 그도 지치지 않고 계속 싸울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던 권도빈이 궁금증을 못 참고 질문했다.
정도현은 정답을 말해주는 대신 보여줬다.
그가 보랏빛 물약을 꺼내 칼날에 뿌렸다.
치이익-!
강한 산성에 닿은 것처럼 금속이 부글부글 끓으며 부식됐다.
[‘멘드라시아의 독’을 무기에 발랐습니다.]
[무기 내구도가 영구적으로 대폭 감소합니다.]
[무기 내구도가 보다 빠르게 줄어듭니다.]
“도, 독?”
정도현이 칼에 뿌린 건 다름 아닌 맹독.
검은 뱀, 서아린이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아이템이었다.
권도빈도 그제야 알아챘다. 정도현이 저 불사신 같은 놈을 어떻게 요리할지.
‘계속 중독시킨 거구나!’
리자드맨은 재생력이 뛰어날 뿐 무적은 아니었다.
때리면 그만큼 데미지가 들어가고, 고통도 고스란히 느낀다.
단지 재생력이 너무 뛰어나서 버텨낼 뿐이다. 그럼 놈을 어떻게 죽여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였다.
재생할 틈도 없이 단번에 즉사시키거나, 놈의 재생력을 웃도는 공격으로 죽을 때까지 패면 된다.
‘혼자선 딜이 모자라니 독 데미지로 보완한 거야.’
정도현은 처음부터 저걸 노렸던 것이다. 그의 칼질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상대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그 결실이 지금 드러난 것이다.
“···캬르르르! 캬아악!”
리자드맨은 몸속에 퍼진 독 때문에 고통스러운지 비틀댔다.
그래도 레벨이 깡패라고 쉽게 죽어주지 않았다.
정도현은 숨을 고르고 다시 달려들었다. 급소를 노리거나 치명상을 입힐 필요도 없다.
촤악! 서걱!
차분하게 한 대씩 치고 빠진다. 일련의 과정들이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전투 관련 패시브 스킬들이 그에게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알려줬으니까.
‘보인다.’
이다음에 상대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공격할지. 그의 눈에 마치 잔영처럼 비쳤다.
물론 상대의 움직임이 너무 뻔해서 순식간에 간파한 것이지만 그래도 대단한 전투 센스였다.
정도현은 예지에 가까운 예측으로 공격을 모조리 피하고, 독 묻은 칼날을 몸뚱이에 마구 찔러넣었다.
“아···.”
그의 싸움을 쳐다보던 권도빈이 저도 모르게 경탄을 자아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이제 리자드맨은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다. 휘청대며 땅바닥에 이마를 몇 번 처박더니 그대로 무너졌다.
“키에에···.”
다 죽어가는 리자드맨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울부짖었다. 그 모습이 처량하기 짝에 없었다.
푹-!
정도현은 놈이 편히 잠들 수 있게 도와줬다.
정수리에 칼을 꽂아 넣고 장작 쪼개듯 두개골을 갈랐다.
그러자 놈의 눈동자에 미약하게 남아있던 생명의 온기가 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단숨에 4레벨이나 올랐다.
정도현은 한층 강력해진 육체를 만끽하며 고양감에 취했다.
“와, 씨···. 미쳤다, 진짜 미쳤어!”
권도빈이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와 정도현에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신이 나서 뭐라 떠들다 정도현의 무기를 보곤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거 이제 못 쓰겠네.”
“그러게.”
정도현의 무기는 맹독 때문에 녹슬어서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졌다.
무기를 희생한 덕에 저 괴물을 죽일 수 있었다.
권도빈이 머릴 긁적이며 말했다.
“돌아갈 때 계좌 좀 알려줘. 내가 돈 좀 보태줄게. 집 사려고 쟁여둔 게 있거든.”
“됐어.”
“아냐. 생명의 은인인데 그 정도는 내야···.”
정도현이 망가진 무기를 대충 버리곤 인벤토리에서 새 무기를 소환했다.
뭐라 말하던 권도빈이 입을 다물었다.
“···응?”
망가진 칼이랑 똑같이 생겼다.
권도빈은 멀뚱멀뚱 쳐다보다 이렇게 말했다.
“아, 노말 등급 무기였어?”
때깔이 좋길래 당연히 레어 등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비용으로 하나 더 들고 다닐 정도면 노말 등급일 터.
권도빈은 무기 정보를 확인했다.
[요정의 축복이 담긴 롱소드] [레어]
- 착용 조건: LV.40
- 착용 시, 모든 능력치가 10씩 상승합니다.
- 요정의 축복 세트 아이템 (5/5)
- 5세트 효과: 물리 공격력 20%, 마법 저항력 10% 상승.
“아니, 레어 등급 맞잖아!”
권도빈은 마술쇼에 당한 사람처럼 방방 뛰며 쫑알댔다.
그 모습에 정도현은 피식 웃으며 슬쩍 화제를 돌렸다.
“시끄럽고. 저 밑이나 확인해보자.”
“···밑?”
정도현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권도빈은 고갤 돌렸다.
최용민과 권도빈이 마법 대결을 펼칠 때 그 여파로 반쯤 허물어진 벽.
그 뒤에 숨겨진 계단이 있었다.
***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넓은 공동이 나타났다.
큼직한 유리관들이 일렬로 쭉 나열되어 있었다.
안에는 파충류과 몬스터와 인간들이 담겨 있었다. 마치 박제된 표본 같았다.
최용민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사람을 납치해와 파충류 몬스터와 키메라 합성을 행했다.
지금껏 저질러온 만행에 정도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
권도빈은 가장 안쪽에 놓인 유리관들을 보곤 털썩 주저앉았다.
몬스터한테 잡아먹힌 줄 알았던 동료들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그들에게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미안, 미안해···.”
권도빈은 유리관 앞에서 무릎 꿇은 채 조용히 오열했다.
그의 동료들 모습은 생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신의 피부가 파충류처럼 비늘로 변했다.
허리 뒤엔 커다란 꼬리도 자라 있고, 몸 곳곳의 기관이 리자드맨처럼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아무래도 최용민이 마셨던 약물을 몸속에 주입 당하고 이런저런 생체 실험을 당하다 죽은 모양이었다.
그 옆에는 어린애도 변이된 채 담겨 있었다.
[해당 개체는 플레이어가 아닌 키메라입니다.]
[몬스터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정도현은 부활 아이템을 슬쩍 꺼내 동료 한 명을 살려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키메라가 된 탓에 시스템이 저들을 플레이어로 인식하지 못했다.
정도현은 권도빈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책상에 놓인 수첩을 발견했다.
최용민의 일지였다. 실험 성과와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도현은 첫 장부터 훑어보곤 고갤 끄덕였다.
‘흑마법사가 아니라 마탑 출신이었군.’
어쩐지 성수에 반응하질 않더라니.
최용민은 흑마법사가 아니라 E구역 마탑 지부 소속이었다.
흑마법사는 강력하지만, 흑마력을 얻게 되는 순간 일반 주문을 못 쓰게 되거나 위력이 확 떨어진다.
그래서 최용민은 흑마법을 익히지 않고, 인체 실험과 키메라 연구만 해온 모양이었다.
정도현은 일지를 빠르게 읽어가며 최용민의 일생을 살펴봤다.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최용민에겐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영원한 젊음. 하지만 그건 금기였다.
그래서 그는 남몰래 연구했고, 동료 마법사들한테 들켰다.
그렇게 도망친 그는 이곳저곳 전전하며 연구를 거듭하다, 이곳 유령 도시까지 흘러들어왔다.
“미안해, 늦어서 미안해···.”
정도현은 일지를 다 읽고선 책상에 대충 던져놨다. 그런 뒤 아직 오열 중이던 권도빈에게 다가갔다.
“권도빈.”
“···흑, 왜?”
권도빈이 힘없이 고갤 들었다.
정도현은 유리관 안에 담긴 동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다며. 근데 왜 다 남자들뿐이야?”
“아, 그러고 보니···.”
동료들의 시신을 보고 충격이 커서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짝사랑한 여자가 안 보였다.
성별이 달라서 다른 유리관 쪽에 따로 담아둔 걸까.
권도빈은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혹시나 그녀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아···. 찾았어.”
“그쪽에 있어?”
“응···. 죽었어.”
권도빈은 건너편에 설치된 유리관들을 둘러보다 그녀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녀도 동료들처럼 싸늘한 시체가 되어 둥둥 떠 있었다.
주요 장기를 적출했는지 복부가 홀쭉했다.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진 권도빈에게 정도현이 다가와 말했다.
“일지에 적혀 있더라. 최용민이 만든 약물은 남성한테만 효력이 있다고.”
“···그래. 근데 그게 왜?”
즉, 그녀는 나중에 실험체로 쓰고자 보관해뒀을 뿐 아직은 인간이었다.
“시체를 꺼내자.”
“···응. 유해는 수습해줘야지.”
몬스터와 합성된 동료들의 시신은 수습할 수 없다.
관리국에 사정을 설명하면 그들과 유착 관계인 마탑에서 최용민의 실험실을 조사할 터.
‘비록 성공은 못 했지만 연구 자료와 표본이 쌓여 있어.’
마탑 놈들이면 악용하고도 남는다. 그러니 여긴 은폐해야만 한다.
정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관을 부쉈다.
방부액이 줄줄 흘러나오며 시신이 빠져나왔다. 권도빈이 그녀를 양손으로 받으며 말했다.
“고마워. 네 덕분에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어.”
“아직 고마워하긴 이른데.”
“···응?”
정도현은 신성한 용의 보주를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권도빈이 멍한 얼굴로 아이템 설명을 몇 번이나 읽었다.
“저, 정말이야 이거?”
“그래. 한다?”
정도현이 구슬을 시신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권도빈의 손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죽었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아왔다.
“···콜록! 콜록!”
“어, 어?”
권도빈이 못 믿겠단 눈으로 정도현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손유정][LV.42]
손유정, 그녀가 눈을 떴다. 그녀는 잠꼬대하듯 중얼댔다.
“여긴···?”
“유정아, 너 괜찮아?”
“도, 도빈아? 너 어떻게 여길···.”
손유정은 점차 의식이 깨어나는지 눈을 크게 뜨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몸에 걸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나신을 눈앞에서 목격한 권도빈이 황급히 고갤 돌렸다.
“···꺅!”
손유정도 수치심에 필사적으로 몸을 가렸다. 정도현은 상점에서 여행용 로브를 구매해 건넸다.
“누,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고맙습니다아···.”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갤 꾸벅 숙이며 빼앗듯 낚아챘다.
로브를 걸친 그녀가 겨우 안도하며 권도빈에게 말했다.
“도빈아, 너도 그 미친 흑마법사한테 잡힌 거야?”
“어? 아니···.”
“저흰 구해주러 왔습니다.”
“구해주러요? 하지만 그 흑마법사 레벨이 무려···.”
“흑마법사는 저희가 처치했습니다.”
최용민을 쓰러트렸단 말에 손유정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정도현은 이어서 말했다.
“다른 동료분들은 안타깝게도 이미 키메라로 변해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
“그래도 손유정 씨라도 살아서 다행입니다.”
손유정은 유리관에 담긴 동료들의 시신을 보곤 훌쩍거렸다.
유해를 수습하고 싶어도 관리국의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고 도시 안에 묻어주자니, 몬스터들이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훼손할 것이다.
“···어쩔 수 없어. 두고 가자.”
“응···.”
권도빈의 제안에 손유정이 힘없이 고갤 끄덕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정도현이 불러세웠다.
“그냥 가면 안 돼. 숨길 거면 확실하게 묻어야지.”
“확실하게 묻다니···.”
“어떻게요?”
그 말에 권도빈과 손유정은 무슨 소린지 몰라서 고갤 갸웃했다.
정도현은 상점창에 ‘폭발’ 키워드를 검색했다.
***
쿠르릉-!
내부에서 폭탄 열매들이 터지자, 지하 방공호도 버티지 못하고 폭삭 무너졌다.
이렇게 최용민의 비밀 연구실과 연구 자료, 실험체들은 모조리 지하 깊이 파묻혔다.
무너진 방공호 입구를 바라보며 권도빈이 말했다.
“넌 없는 게 대체 뭐냐?”
“글쎄다.”
그가 대답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권도빈이 픽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손유정이 고개 숙여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정도현은 두 사람을 데리고 유령 도시를 빠져나왔다.
***
얼마 전, F구역에서 나름 유명했던 흑마법사 길드, 블랙 스컬이 쫄딱 망했다.
정도현을 척살하려다 역으로 병력을 대거 잃은 상태에서 경쟁 길드와 길드전을 치르고 대패.
조직이 공중분해 된 것이다.
살아남은 건 말단 길드원 몇 명과 길드장뿐이었다.
그 말단들마저 길드장을 내버려 둔 채 뿔뿔이 도망쳤다.
“제기랄. 어쩌다 이런 꼴이···.”
길드장은 술집 구석에 혼자 앉아 술을 따라 마시며 처량한 신세를 한탄했다.
‘그래. 그 녀석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어.’
그는 정도현을 저주했다.
그 녀석만 없었으면 길드 전력을 그렇게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경쟁 길드가 야욕을 드러내지도 않았겠지.
길드전은 끝났으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블랙 스컬을 흡수한 경쟁 길드, ‘레드 스캐빈저’가 달아난 그를 찾고 있었다.
분란의 싹을 아예 도려내려는 것일 터.
다행히 그는 개인 특성 덕에 쉽게 잡히진 않겠지만, 평생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실례합니다.”
“···?”
술잔을 다시 채우려던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경을 쓴 말끔한 정장 차림의 사내였다. 딱 봐도 F구역 출신이 아니었다.
“넌 뭐냐?”
“저는 장 의원님을 모시고 있는 ‘오예찬’이라고 합니다.”
“···장 의원이면 E구역의?”
“예. 그분 맞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