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22화
다음 날 아침. 플레이어의 절반이 의뢰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도시 안쪽의 변종 리자드맨들한테 몇 팀이나 몰살당한 게 주요했다.
할당량을 못 채우고 돌아가면 위약금을 물지만, 목숨을 잃는 것보단 훨씬 쌌다.
정도현은 권도빈과 함께 유령 도시로 향했다.
어제 수송 차량을 몰았던 요원이 이번에도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정도현과 권도빈이 붙어 있는 걸 보곤 넌지시 물었다.
“두 분이 팀을 짜셨나 봐요?”
“예.”
“위험하니 될 수 있는 한 깊이 들어가지 마시고, 혹시라도 놈들이 보이면 무조건 도망치세요.”
그들이 변종 리자드맨을 사냥하러 갈 거라곤 상상도 못 하는지 요원이 그리 말했다.
정도현과 권도빈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달리던 차량이 서서히 감속했다. 한층 음산하게 느껴지는 유령 도시 입구에 도착했다.
“위에서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복귀 시간이 한 시간 당겨졌으니 다들 무리하지 마시고···.”
요원은 팍 줄어든 플레이어들에게 주의사항을 전한 뒤 차를 몰고 떠났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려던 정도현 일행에게 다른 플레이어들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형씨들.”
“인원수가 부족해 보이는데, 우리랑 뭉치는 게 어때?”
고작 두 명이선 위험할 거다. 남자가 선심 쓰듯 말했다.
그 말에 권도빈은 솔깃했지만 정도현이 단칼에 거절했다.
“마음은 고마운데 우린 도심까지 들어갈 거다.”
“뭐? 그렇게 깊이 들어가겠다고?”
“죽으려 환장했어?”
도시 외곽이나 훑으려 했던 플레이어들이 질겁했다. 몇몇은 대놓고 비웃기도 했다.
레벨도 낮은 게 천지 분간 못 한다고.
“가자.”
“어? 으응.”
그들의 말에도 정도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개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권도빈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플레이어들이 고갤 절레절레 젓거나 야유를 보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정도현 옆에서 발맞춰 걷던 권도빈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정말 우리끼리 가도 괜찮을까? 몇 명 더 구해서 움직이는 편이···.”
“단서 찾으러 도심까지 들어갈 거잖아. 거기엔 아무도 안 들어가려 할걸?”
“그건 그렇지만···.”
둘은 어제 이런저런 얘길 나누면서 꽤 친해졌다. 마침 또 동갑이라 말도 편하게 놓았다.
‘후, 막상 들어오니까 엄청 떨리네.’
권도빈은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생각했다.
어제만 해도 복수심에 활활 불탔었는데, 도시에 들어오자 집 나갔던 이성이 되돌아왔다.
하다못해 사람이라도 좀 모았으면 안심이 될 텐데. 전위로 설 사람이 정도현밖에 없었다.
권도빈은 뒤에서 활을 쏴 팀을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어제도 운 좋게 도망칠 수 있었다.
‘비겁하게 도망쳐놓고 이제 와 복수라니.’
죽은 동료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분명 역겨워하겠지. 도망친 배신자가 뒤늦게 착한 척한다면서.
‘이번엔 절대 도망 안 쳐.’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상념은 정도현이 돌연 멈추면서 뚝 끊겼다.
스릉-!
정도현이 칼을 뽑았다. 그것만으로도 무슨 뜻인지 의미가 전해졌다.
권도빈도 화살통에 손을 뻗으며 귀를 기울였다.
‘어디지?’
권도빈은 남들보다 귀가 밝은 편이라 자부했지만, 적의 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정도현은 한곳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권도빈도 그를 따라서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
있었다. 무너진 건물 파편 뒤에 교묘히 몸을 숨기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오는 랍토르 한 마리가.
저걸 용케 알아챘다.
“캬르르!”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이 낮게 울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곧바로 도망쳤다.
그걸 보며 권도빈이 말했다.
“미끼 작전이야. 놈들이 사냥감을 꾀어낼 때 자주 쓰는 방식이지.”
랍토르는 가족 단위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그런데 한 마리만 돌아다닌다는 건 사냥감을 유혹하는 미끼거나, 영역 다툼에서 가족을 잃은 녀석이었다.
후자보단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권도빈도 첫 의뢰 수행 때 당해봤다.
“빨리 쫓아가서 처리해야 덜 귀찮···.”
타앙!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도현이 땅을 부술 듯 박차며 질풍처럼 달려 나갔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주변으로 바람이 휘몰아쳤고, 권도빈의 머리칼은 커튼처럼 펄럭였다.
“어, 어?”
촤악-!
권도빈이 놀라서 어버버하는 사이에 정도현이 랍토르의 머릴 단칼에 날렸다.
머리와 분리된 몸뚱이가 관성에 떠밀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목구멍에서 푸른 피가 잉크처럼 꿀렁거리며 흘러나왔다.
“···방금 뭐야?”
엄청난 주력에 권도빈은 입을 못 다물었다.
그의 파티에서 전위를 서던 동료들 레벨이 각각 48, 49였는데, 정도현은 그들보다 훨씬 빠르고 힘도 밀리지 않았다.
‘저거 진짜 41레벨 맞아?’
혹시 고레벨 플레이어가 날 놀리려고 레벨을 속인 건 아닐까.
권도빈은 순간 그런 생각까지 했다.
순식간에 랍토르를 해치운 정도현이 칼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미끼라고?”
“어, 어···. 죽였으니 괜찮아.”
기습에 실패하고 도망친 랍토르는 근처에 있는 일행을 이끌고 뒤쫓아온다.
하지만 그 전에 처리했으니 랍토르 무리도 따라붙지 않을 것이다.
권도빈의 설명에 정도현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럼 그냥 보내줄 걸 그랬네.”
“뭐?”
“놔두면 일가족이 알아서 죽어주러 와준단 거잖아. 경험치 손해 봤네.”
“···.”
정도현은 랍토르의 습성을 몰랐었다.
어제 그가 사냥한 놈들은 하운드 울프들의 후각을 이용해 찾아냈다.
“어제 혼자 덤비는 놈들 몇 마리 있었는데, 보이는 족족 다 죽였거든.”
즉, 몇 무리를 놓친 셈이다.
정도현의 사고방식에 권도빈은 말문이 막혔다.
‘레벨업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50레벨이 넘는 변종 리자드맨을 사냥하겠다고 말할 때부터 범상치 않았는데. 아무래도 머릿속에 나사 하나가 빠져 있었다.
‘그래도 실력은 확실해.’
다행인 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만용을 부리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저 정도 실력이면 그의 동료들보다 한 수 위. 아니, 몇 수 위였다.
권도빈이 활을 움켜쥐었다.
정도현과 함께면 동료들의 복수를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생각은 도시 안쪽으로 향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캬악!”
“키에엑!”
정도현은 길 가다 마주치는 몬스터들부터 뒤따라오는 랍토르 무리까지 전부 도륙을 냈다.
권도빈은 겁에 질려 도망치는 놈들의 다릴 맞춰 자빠트리는 식으로 지원해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정도현 혼자서 몇 인분 몫을 해주고 있으니까.
게다가 아직 전력을 다한 것 같지 않았다.
권도빈은 그를 완전히 다시 봤다.
‘대단해.’
혼자서 몇 인분 몫을 떠맡고도 지친 기색조차 없었다.
게다가 그는 전투가 한 차례 끝날 때마다 회복 포션을 사용해 쌓인 피로를 바로바로 풀어줬다.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돈이 아까워서 저렇게는 못 했으리라.
“너도 필요해?”
“아, 아냐! 난 괜찮아.”
정도현이 포션 하나를 건넸지만 권도빈은 손사래를 쳤다.
‘나 말고 저 녀석이 쓰는 게 맞지.’
마음 같아선 자기 포션도 쓰라고 정도현에게 주고 싶었다. 물론 그에겐 건넬 포션이 없었지만.
그렇게 정도현 일행은 이십 분가량 뛰어 도시의 중심지에 들어왔다.
권도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거의 다 왔다.’
안개로 드문드문 가렸지만 주변 풍경이 낯익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동료들이 죽었던 장소에 도착한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호흡도 점차 거칠어졌다.
잔뜩 긴장한 권도빈의 등을 정도현이 툭 치며 말했다.
“좀 흥분했어. 숨 좀 돌려.”
“···미안.”
“파티원들이랑 많이 친했나 봐? 목숨까지 걸고.”
정도현은 긴장을 풀어주고자 슬쩍 화제를 돌렸다.
권도빈이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그가 대답했다.
“···응.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었어.”
권도빈은 뭔가 더 말할 게 있는지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결국 그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좋아했던 여자애도 있었어. 병신같이 고백도 못 했지만.”
“···.”
정도현은 권도빈이 목숨을 걸고 따라온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방금 얘기로 납득했다.
짝사랑하던 여자를 놔두고 홀로 도망쳤다. 살아남았지만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을까.
“그 애가 죽기 직전에···. 날 쳐다보면서 살려달라고 외쳤어.”
당시 상황이 떠오른 걸까. 권도빈은 죄의식에 찌든 목소리로 중얼댔다.
정도현은 그의 고해성사를 가만히 들어줬다.
“···다들 날 엄청 원망했겠지?”
그건 당사자들한테 물어보기 전까진 모른다.
정도현은 부활 아이템, 신성한 용의 구슬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아이템은 살릴 대상의 시신이 근처에 있어야만 쓸 수 있다.
아직 24시간은 안 지났지만, 동료들은 몬스터한테 필시 잡아먹혔을 터.
그로서도 도울 방법이 없었다.
“이 근처야. 여기서 놈들이랑 마주쳤어.”
도심은 외곽보다 훨씬 안개가 짙었다.
이젠 한 치 앞도 겨우 보일 지경.
권도빈이 주위를 두리번대며 전투 장소를 찾아내려 했다.
“멈춰봐.”
“응?”
정도현은 하급 소환석을 바쳐 하운드 울프를 몇 마리 소환했다.
회복 포션에 이어 이번엔 소환석인가.
권도빈은 헛웃음만 나왔다.
소비 아이템을 저렇게 펑펑 써대면 항상 적자일 텐데. 용케 밥 벌어 먹고사는구나.
“혹시 B나 C구역 출신은 아니지?”
“F구역 출신이야.”
“···진짜? F구역이라고?”
권도빈은 정도현의 강함보다 그게 훨씬 충격이었다.
E도 아니고 F구역이라니.
거긴 빈민들로 가득 찬 곳이잖은가.
진흙 속에서 연꽃이 핀다더니. 정도현에게 딱 맞는 비유였다.
“이렇게 펑펑 쓰면 대체 뭐가 남아?”
“쉿. 집중해야 해.”
킁킁!
하운드 울프들이 땅에 코를 갖다 대며 인간의 피 냄새를 찾아 헤맸다.
컹-!
그러다 한 녀석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찾았대. 따라가자.”
하운드 울프들을 길잡이로 써먹는 모습에 권도빈은 감탄했다.
돈지랄이긴 했지만 그만큼 효과도 확실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복잡한 미로 같은 도심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크르릉!”
“컹! 컹!”
한참 앞서가던 하운드 울프들이 돌연 자세를 낮추며 마구 짖어댔다.
적이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잠시 뒤, 안개 속에서 인간 형태의 그림자들이 일렁였다.
“그놈들이야!”
권도빈이 그렇게 외치며 놈들을 향해 화살을 마구 쏴댔다. 그의 눈빛과 손끝에서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
“샤아악!”
“쉬익!”
화살이 날아들자 변종 리자드맨들이 위협적인 소릴 내며 포위망을 펼쳤다.
철그럭! 철그럭!
놈들이 움직일 때마다 맑은 쇳소리가 울린다. 그러자 권도빈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저 개자식들이···.”
변종 리자드맨들이 낯익은 보호구와 무기로 무장했다.
동료들을 죽이고 노획한 아이템이다.
권도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젠장, 숫자가 너무 많아!”
안개 때문에 몇 마린지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얼추 둘러봐도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인다.
포위망이 촘촘해서 저번처럼 빠져나갈 구멍도 없었다.
권도빈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생각했다. 나도 여기서 죽겠구나.
‘그럼 한 마리라도 더 죽인다.’
어제의 난 비겁하게 동료들을 내버리고 도망쳤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그가 동료들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졌을 때. 정도현이 넌지시 말했다.
“파충류 몬스터의 약점이 뭔 줄 알아?”
“뭐?”
“맞춰봐.”
뜬금없는 퀴즈에 권도빈은 얼빠진 소릴 냈다.
긴박한 상황에서 얜 또 왜 이래. 미친 건가?
그래도 권도빈은 대답해줬다.
“···냉기 마법 아냐?”
“맞아. 내가 마법은 못 써도 아이템은 잘 쓰거든.”
“갑자기 뭔 소릴···.”
권도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퍼런 얼음 포탄이 리자드맨 쪽으로 날아들었다.
쩌저적-!
얼음 포탄이 떨어지자 주변 온도가 급감했다.
캬아악!
냉기 주문에 휘말린 리자드맨 몇 마리가 꽁꽁 얼어붙어서 옴짝달싹 못 하며 마구 울부짖었다.
“매, 매직 스크롤? 너 그런 것도 들고 있었어?”
정도현이 사용한 건 하급 주문, 「프로즌 캐논」이 저장된 매직 스크롤.
하급 주문이라고 얕봐선 안 된다.
30레벨대 몬스터까지는 하급 주문 한 방만 맞아도 즉사하거나 최소 치명상이니까.
그래서 파티의 화력은 마법사의 솜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파티에 실력 좋은 마법사가 있냐 없느냐로 받는 보수가 배로 뛴다.
게다가 냉기 주문은 파충류과 몬스터에겐 아주 치명적이었다.
“자, 받아.”
“어, 어?”
정도현은 권도빈한테 「프로즌 캐논」이 담긴 매직 스크롤을 한 아름 내밀었다.
당황하며 받아든 그에게 정도현이 악마처럼 속삭였다.
“저놈들한테 복수해야지? 실컷 갈겨. 분이 풀릴 때까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