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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7화 (17/240)

나 혼자 1원 상점 - 17화

정도현의 뜬금없는 요구에 박성원과 파티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긴 적정 레벨이 43인 던전.

39레벨 혼자 돌아다니다간 죽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자, 잠시만요!”

누가 봐도 자살행위였기에 박성원이 정도현의 팔을 붙잡고 뜯어말렸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대장. 그냥 보내주죠?”

“야, 곽민기. 너 아까부터 진짜 왜 그래!”

보내주자고 말한 건 아까 정도현을 조롱했던 남자, ‘곽민기’였다.

박성원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곽민기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이 아주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발언에 눈치를 살피던 파티원들도 한마디 거들었다.

“성원 오빠. 본인이 가고 싶다는데···.”

“이건 어쩔 수 없어요.”

다른 파티원들까지 대놓고 버리자는 식으로 얘기하자, 박성원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러는 사이에 정도현 혼자 토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박성원은 차마 그를 붙잡지 못하고, 분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곽민기와 파티원들은 정도현의 뒷모습을 보며 속내를 토로했다.

“쯧, 혼자 사냥하면 뭐 다를 줄 아나?”

“어차피 우리랑 같이 있어봤자 저 사람이 꼴등 확정이잖아.”

“그건 그래.”

그들은 정도현의 행동이 무의미한 발버둥이라 생각했다.

***

정도현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흙거미][LV.45]

토굴의 주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빛의 거대한 거미들이 인간 냄새를 맡고, 구멍 곳곳에서 머릴 빼꼼 내밀었다.

몸길이가 거의 2m는 되어 보인다.

녀석들은 입에서 초록색 타액을 뚝뚝 흘리며 빠르게 기어 왔다.

“바위 병사, 소환.”

그는 하급 소환수, 바위 병사를 소환했다.

저번엔 하운드 울프를 전투 파트너로 골랐지만, 흙거미 상대로는 바위 병사가 제격이었다.

지하에서 솟구친 돌덩어리들이 사람처럼 변했다. 마치 돌을 깎아서 만든 마네킹 같았다.

“키이익!”

“캬악!”

갑자기 생겨난 바위 병사들을 보고도 흙거미들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사냥감이 늘어나서 기쁘단 듯 이빨을 딱딱거리며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카각! 카가각-!

놈들은 바위 병사에게 이빨을 박아넣고 마비독을 듬뿍 흘려보냈다.

하지만 바위 병사한테 이깟 독은 소용없었다.

부웅! 퍼억-!

느리지만 묵직한 돌주먹이 흙거미를 후려쳤다.

“키에엑!?”

“캬륵!”

흙거미는 철퇴에 맞은 것처럼 몸이 찌그러졌다.

놈들은 배를 까뒤집은 채 마구 꿈틀거리다 그대로 멈췄다.

위험한 독을 지닌 대신 레벨에 비해 맷집이 약했다.

“가라.”

쿵! 쿵!

정도현은 바위 병사들을 앞세운 채 진격했다.

바위 병사들이 발을 맞춰 걷자, 약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지축이 울렸다.

안타깝게도 흙거미의 지능은 벌레답게 상당히 낮았다.

녀석들은 바위 병사에게 통하지도 않을 독니를 찔러 넣으려다 무참히 짓밟혔다.

“좋아.”

정도현은 앞으로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저 바위 병사들 뒤에서 화살만 쏴댔다.

그렇게 그는 몇 분 만에 흙거미 수십 마리를 쓸어버렸다.

바위 병사는 몸이 튼튼한 대신 엄청 무거워서 움직임도 둔했다.

그래서 도망치는 적을 뒤쫓을 수 없었지만, 여기서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멍청한 흙거미들은 알아서 달려와 주니까.

“순위는 어떻게 확인하지?”

팟-!

그렇게 중얼대자 순위표가 표시됐다.

[1위: 정도현]

입가에 미소가 절로 맺혔다.

예상대로 소환수가 몬스터를 죽여도 그의 기여도에 합산되는 모양.

이대로 쭉 가면 이변이 없는 한 1위는 그의 것이었다.

‘곽민기였나? 그 녀석은 몇 위일까.’

아쉽게도 다른 사람의 순위는 볼 수가 없었다.

곽민기. 그를 은근히 놀려댔던 녀석.

박성원이 대신 사과해줘서 일단 참았지만, 그게 아니었으면 얼굴을 한 대 후려쳤을 것이다.

‘그 녀석, 레벨이 46이었지.’

녀석은 파티장인 박성원 다음으로 레벨이 높았다. 그러니 꼴등은 절대 아닐 터.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유치한 생각인 건 알지만, 놈이 꼴등이었으면 꽤 볼만 했을 텐데.

***

“흐압!”

“대장, 그쪽으로 한 마리 샜어!”

“알았어!”

박성원 일행은 다른 루트로 나아갔다.

인간 냄새를 맡고 우르르 몰려오는 흙거미들.

45레벨 몬스터답게 상당히 강력했다.

그래도 몇 년간 합을 맞춰온 동료들답게 잘 이겨냈다.

“다들 고생했어. 5분간 쉬었다 가자.”

첫 전투에서 흙거미 십여 마리를 소탕했다.

박성원은 고생한 파티원들을 독려해주곤 땅바닥에 앉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웃고 떠드는 파티원들과 달리 어두웠다.

그런 그의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앉았다.

“대장, 정도현이 신경 쓰이십니까?”

“···응.”

“대장 잘못이 아닙니다. 아니,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렇게 말한 건 이 파티의 마법사, ‘주재혁’이었다.

그가 담담한 어조로 박성원을 위로해줬다.

하지만 박성원은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댔다.

“그래도···. 혼자 보내면 안 됐어. 못 가게 말렸어야 했는데.”

흙거미들과 싸워보니 확실해졌다.

정도현 혼자선 절대 저것들의 공세를 버틸 수 없다. 어쩌면 벌써 죽었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 죽었겠지.’

박성원은 고갤 푹 떨구고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저희랑 같이 있었어도 어차피 꼴등이었습니다.”

주재혁이 냉철하게 말했다.

박성원은 팀의 체력을 책임지는 성기사이자, 파티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런 그의 정신이 이렇게 어지러우면 남은 전투에 지장이 생길 터.

“대장, 이럴 때일 수록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죠. 정도현의 희생을 개죽음으로 만들 순 없잖습니까.”

“···그래. 네 말도 맞아.”

박성원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주재혁의 말이 맞았다. 던전을 공략할 땐 절대 감정에 휩쓸려선 안 된다.

박성원은 제 뺨을 연거푸 두들기며 새로 기합을 넣었다.

그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휴식 중이던 파티원이 갑자기 소릴 질렀다.

“아, 아아···!?”

“쿨럭, 켁, 켁! 아, 씨. 깜짝이야! 갑자기 뭔데?”

비명을 지른 건 파티의 힐러, ‘한유경’이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파티원들이 깜짝 놀라서 다 쳐다봤다.

바로 옆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곽민기는 사레가 들려 입에 머금었던 걸 전부 뱉어버렸다.

아까운 식수를 낭비한 그가 그녀를 째려봤다.

“미, 민기야. 나, 나 이제 어떡해?”

“뭐야. 왜 그러는데?”

한유경은 톡 건드리면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급기야 그녀는 곽민기 품에 매달리듯 안겼다.

아무리 같은 파티원이라도 그녀의 행동은 너무 스스럼이 없었다.

사실 한유경과 곽민기는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서 몰래 사귀던 사이였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곽민기가 심히 당황하며 팀원들 눈치를 살폈다.

“유경 씨. 왜 그래요?”

“어디 다쳤어요?”

박성원과 주재혁이 급히 뛰어왔다.

다른 파티원들도 그녀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한유경이 울먹이며 파티원들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꼴등이에요.”

“예?”

“제가 꼴등이라고요! 흑, 흐윽···.”

한유경은 힐러다.

즉, 전투에 기여하는 법은 파티원들에게 회복 스킬 및 버프를 걸어주는 것뿐.

파티원들이 몬스터를 죽여주면 함께 기여도가 오르지만, 직접 처치한 사람보다는 적게 얻는다.

그러니 기여도 순위도 파티원 중에서 가장 낮을 수밖에. 하지만 꼴등이라니?

그건 이상했다.

“잠깐만. 유경 씨가 꼴등이면···.”

“그 녀석이 꼴등이 아니라고?”

“아니, 그보다 아직 살아 있어?”

곽민기가 믿을 수 없단 얼굴로 그렇게 중얼댔다.

곽민기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정도현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저 흙거미들을 혼자 무슨 수로 감당한단 말인가.

‘운이 좋았나?’

어쩌면 다른 통로에서는 몇 마리씩만 나온 걸 수도 있다.

곽민기는 그렇게 믿으며 파티원들에게 질문했다.

“다들 몇 등인지 불러봐요. 난 3등.”

파티원들이 각자 순위를 불렀다.

그런데 1위일 줄 알았던 박성원은 2등이었고, 꼴등 바로 다음인 6위가 파티원 중에 있었다.

“대장, 장난치지 마세요!”

“장난치는 거 아니야. 진짜 2등이야!”

“그럼 그 자식이 1등이란 소린데, 그게 말이 됩니까!”

그래.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벌어졌다.

순간 일동 침묵했다.

‘뭔가 잘못됐어.’

곽민기가 머릴 쥐어뜯으며 한참 고민했다.

그의 여자친구가 매달리며 훌쩍댔다.

아직 죽기 싫다고 중얼댄다.

곽민기가 벌떡 일어나더니 박성원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대장, 빨리 서둘러요. 이러다 유경이가 죽겠어요!”

“뭐? 하지만···.”

5분이라는 짧은 휴식조차 끝내지 않고 다음 구역으로 가자니. 박성원은 당혹스러웠다.

그러자 주재혁이 곽민기의 어깨를 붙잡고서 말했다.

“민기야, 일단 좀 진정해. 너무 서두르면 우리가 전멸할 수도 있어.”

“하지만!”

곽민기는 울고 있는 한유경을 애처롭게 쳐다봤다.

그녀가 죽는다니. 받아들이기 싫었다.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그럼 정도현을···. 죽이죠.”

“···뭐?”

“한 명만 죽으면 꼴등은 안 죽어도 되잖아요.”

퀘스트 마지막에 명시된 규칙.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꼴등의 벌칙도 없어진다.

정도현이 어떻게 1위를 차지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레벨 이상으로 강한 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유경을 살리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박성원은 말도 안 된다며 곽민기를 만류했다.

정도현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런데 죽이자니. 그런 건 잘못됐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 파티원들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그놈, 아직 부지부장님이랑 계약도 안 했잖아?”

“맞아, 따지고 보면 우리랑 아직 같은 편도 아니라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과 몇 년을 함께 해온 동료.

둘 중 한 명만 살릴 수 있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는 게 인간이었다.

파티원들의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자 주재혁이 박성원을 쳐다봤다.

“대장, 어쩌실 겁니까?”

“···.”

그는 리더로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팀원과의 의리를 택하느냐. 아니면 양심을 지키느냐.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죽일게.”

***

정도현은 파죽지세로 쭉쭉 밀고 나갔다. 어느덧 그가 쓰러트린 흙거미만 수백 마리.

레벨도 올라서 40레벨이 됐다.

‘갈수록 레벨이 안 오르네.’

45레벨 몬스터를 수백 마리나 학살했는데도 고작 1레벨 올랐다.

경험치 증가 물약까지 꾸준히 썼는데도 말이다.

‘꼴등은 아마 힐러겠지.’

힐러는 파티에 필수였지만 다치는 사람이 적을수록 힐러의 기여도도 줄어든다.

박성원 파티는 경험이 풍부하고, 평균 레벨도 높으니 부상자가 드물 터.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미리 빠져나오긴 했는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골치가 아팠다.

저들은 분명 동료를 살리고 싶을 거다. 하지만 힐러가 꼴등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럼 그녀를 살릴 방법은 딱 하나.

‘다른 누군가가 대신 죽어야 해.’

저들은 몇 년을 함께 해온 팀이고 정도현은 그저 외부인이었다.

그러니 희생양 후보는 자신밖에 없었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곱게 죽어줄 생각도 없었다.

“다 왔군.”

쭉 걷다 보니 토굴의 천장과 통로의 너비가 확 넓어졌다.

앞에는 보스방이랑 연결된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몬스터는 이쪽이 더 많이 잡았지만, 먼저 도착한 건 정도현이었다.

그는 평평한 돌에 걸터앉고,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십 분 정도가 지나자 사람 발소리가 들렸다.

박성원 일행도 던전의 끝에 도착했다.

“···너!”

먼저 도착해 있는 정도현을 보더니 곽민기가 얼굴을 확 일그러트렸다.

그 옆에 있는 힐러, 한유경은 펑펑 울어서 눈가가 부어 있었다.

“도현 씨.”

파티장, 박성원이 몇 걸음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정도현은 칼자루에 손을 얹고서 그를 예의주시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역시 날 죽이기로 했군.

정도현은 단숨에 칼을 뽑으며 자세를 갖췄다.

상대는 여섯 명. 게다가 저번의 흑마법사들과 달리 균형 잡힌 조합이었다.

‘그래도 이길 수 있다.’

여차하면 소환수를 부르면 된다.

소환석은 아직 백 개 넘게 남았으니까.

그가 소환석을 꺼내려던 찰나. 박성원이 말했다.

“저랑 일 대 일로 붙으시죠.”

“···?”

“이게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입니다.”

일 대 일로 싸우자고?

정도현은 순간 함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박성원을 제외한 파티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뒤로 쭉 물러났다.

정도현은 미심쩍은 눈으로 박성원을 쳐다봤다.

“당신을 죽이면 저 사람들이 저한테 달려들 것 같은데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피의 맹약서가 하나 있었거든요.”

즉, 박성원이 패해서 죽더라도 파티원들은 정도현을 공격하지 못한다.

정도현은 혼란스러웠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한테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야.’

파티 전체를 상대하는 것보단 박성원 한 명을 꺾는 게 쉽다. 정도현은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둘의 대결이 성사됐다.

[박성원이 결투 신청을 걸어왔습니다.]

[결투를 수락하시겠습니까?]

결투 시스템을 이용하면 설령 상대를 죽이더라도 킬 카운트가 오르지 않는다. 정도현은 바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

“「신성의 축복」.”

결투 시작과 동시에 박성원은 성기사답게 축복을 사용했다.

동시에 정도현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의 칼이 상대의 급소를 향해 쭉 뻗어나갔다.

푹-!

살을 꿰뚫는 소리와 함께 박성원의 갑옷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쿨럭!”

박성원이 피를 토하며 쥐고 있던 무기를 땅바닥에 떨궜다.

정도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급 도핑제로 능력치를 올려두긴 했으나, 이렇게 차이가 날 수준은 아니었다.

최소 수십 합은 겨뤄야 결판이 날 줄 알았는데.

‘이러면 마치···.’

일부러 맞아준 것 같잖아.

정도현은 쓰러지는 박성원을 몸으로 받쳐줬다.

그러자 박성원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

그는 거기까지 말하곤 그대로 고갤 떨궜다. 칼끝으로 전해지던 박동도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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