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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0화 (10/240)

나 혼자 1원 상점 - 10화

안태환의 의뢰에 플레이어들은 술렁댔다. 부지부장의 아들을 납치했다니.

간도 큰 놈들이군.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33레벨 여성이 손을 들며 질문했다.

“제가 알기론 슬하에 따님만 두 분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숨겨진 아들입니까?”

“그래. 내연녀가 낳은 자식이지.”

안태환은 자신의 치부를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피의 맹약서를 쓰면 소문날 일도 없으니까.

진실을 안 플레이어들은 고갤 끄덕였다. 사생아라면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을 테지. 사생활이 문란한 점은 승진에 있어 장애물로 작용할 테니까.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더군.”

“돈을 주고 데려오는 편이 안전하지 않습니까?”

금전적 여유가 없다면 모를까. 안태환 정도면 돈이야 썩어 넘칠 터.

여성 플레이어의 질문에 안태환은 고갤 저었다.

“놈들의 목적은 단순히 돈을 뜯어내는 게 아니야.”

“···그럼?”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겁니다.”

안태환 옆에 있던 비서, 민규원이 대신 대답했다.

“누군가의 사주?”

“갱단에 돈을 주면 그걸 악의적으로 편집해, 부지부장님 명성에 흠집을 내려는 거겠죠. 갱단의 인질극이었다고 해명해도 사생아가 있었단 걸 저희 입으로 까발리는 셈이니···.”

이러나저러나 안태환 입장에선 곤란하다는 건가. 그래서 비밀리에 플레이어들을 불러낸 듯했다.

“갱단을 고용한 건 누굽니까?”

정도현이 질문했다.

그러자 민규원이 안태환을 흘끗 쳐다봤다.

뭉치가 할아버지 눈치를 살필 때 짓던 눈빛이랑 똑 닮았다.

안태환은 말없이 고갤 끄덕였다.

그의 허가가 떨어지자 민규원이 설명했다.

“내년 초에 E구역 지부장이 바뀝니다. 그 자릴 노리는 후보들 중 한 명이죠. 거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정치적 문제. 굳이 더 파고들 필욘 없겠지.

정도현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

“갱단의 규모는요?”

“일반인 단원은 수십 명. 간부급은 레드 플레이어로 열 명 내외입니다. 20레벨 후반에서 30레벨 언저리이니 여러분들 솜씨면 몰살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보수는?”

그의 마지막 질문은 상당히 노골적이었지만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궁금한 건 다들 매한가지였으니까.

“인질을 무사히 구출해오면···. 한 분당 이 정도로 드리겠습니다.”

탁탁!

민규원은 계산기를 두들겨 보수를 알려줬다.

그들이 평소에 받던 금액이랑 비교하면 자릿수 하나가 더 많았다.

과연 부지부장답게 통이 컸다. 플레이어들의 눈빛에 의욕이 불씨처럼 피어났다.

“다만 일괄 지급은 좀 어렵습니다. 내년에 지부장 선출 건도 있고, 이렇게 큰 금액을 한꺼번에 움직이면 중앙 관리국에서 자금을 추적할 겁니다. 그럼 저흰 한동안 감시 대상이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서로가 불편할 테니 분기마다 나눠서 입금해주겠다고 했다.

플레이어들도 거기엔 이견이 없었다.

돈을 떼먹힐 일도 없다.

안태환과 민규원 둘 다 플레이어니까 피의 맹약서로 계약만 맺으면 된다.

이번엔 금발남이 손을 들며 질문했다.

“그, 아드님이 죽으면 보수를 못 받는 겁니까?”

“시신을 가져오면 보수의 삼 할을 지급할 거다.”

안태환이 대답했다.

그런데 자식의 죽음에 대해 논하는 것치곤 말투가 차가웠다.

사생아라 애정이 덜한 건가?

정도현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곧장 지웠다.

남의 집안 사정에 관심 가질 때가 아니었다.

“부지부장님.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제가 바라는 보수는 돈이 아닙니다.”

“···음? 무슨 소리지?”

“정도현 씨. 그 부분은 저와 나중에 따로 상의를···.”

민규원이 대화에 끼어들어 흐름을 강제로 끊었다.

하지만 안태환이 손을 들어 민규원을 제지했다.

“계속 얘기해봐. 돈 말고 뭘 원한단 거지?”

“제 할아버지가 F구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당장 E구역으로 모시고 싶은데, 최소 한 달은 걸린다 들었습니다.”

“흐음. 그럼 돈 대신 이주 문제를 해결해달란 건가?”

“예.”

안태환이 정도현을 빤히 쳐다봤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단 눈초리였다.

“자네 프로필을 봤어. F구역 고아 출신이던데. 그럼 그 할아버지와는 생판 남 아닌가?”

“제 하나뿐인 가족입니다.”

“뭐, 일만 제대로 해준다면 못 해줄 것도 없지. 단, 실패하면 그냥 없던 얘기로 하겠네.”

정도현이 고갤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인질을 살려서 데려와야만 한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안태환은 먼저 밖으로 나갔다.

민규원은 정도현과 플레이어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혹시 의뢰를 원치 않으시는 분 계십니까?”

액수가 액수이다 보니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민규원은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작전을 설명하겠습니다.”

***

민규원이 설명해준 작전은 간단했다.

이틀 뒤, 관리국은 마약 단속을 빌미 삼아 E구역의 암흑가를 휘저을 거다.

불시 검문으로 혼란해진 틈을 타, 정도현과 플레이어들이 갱단 소굴로 잠입한다.

인질을 구하면서 갱단 놈들도 말끔히 청소한다.

“어떻게 잠입하죠?”

“놈들이 쓰는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몇 년 전, 다리 부상으로 은퇴한 갱단원을 찾아내 매수했다고 한다.

비밀 통로를 이용하면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건물 내부로 침투할 수 있을 것이다.

“작전 설명은 이상입니다.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설명을 마친 민규원이 플레이어들을 쭉 살펴봤다.

그러자 누군가가 기다렸단 듯 손을 번쩍 들었다. 정도현을 깔보던 금발남이다.

[김태양][LV.36]

“작전이랑 별 상관없는 얘기긴 한데, 물어봐도 됩니까?”

“그럼요. 편하게 말씀하시죠.”

“여기 모인 사람들. 규원 씨가 직접 선별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저 친구는 왜 뽑은 겁니까?”

김태양은 정도현 얼굴에 삿대질하며 따지듯 물었다.

뭐, 저러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정도현은 30레벨로 여기 모인 사람들 중 레벨이 가장 낮았으니까.

갱단의 레드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조금 밀리거나 별 차이가 없을 정도.

“맞아요! 저 사람 때문에 작전이 실패하거나 꼬이면 어떡해요?”

33레벨의 여성 플레이어도 내심 불안했는지 김태양의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둘의 노골적인 불만에 민규원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도현 씨는 각성한 지 이제 한 달밖에 안 됐습니다.”

“···뭐?”

“하, 한 달?”

김태양과 여자의 표정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고작 한 달 만에 30레벨이라니.

‘미친. 얼마나 죽여댄 거야?’

‘혹시 사이코패스 아냐?’

본인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나 플레이어를 쉴 새 없이 죽여야만 가능했다.

종종 운동에 중독되는 사람이 나오는 것처럼, 레벨업에 혈안이 된 플레이어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한다.

자신보다 강한 적과의 전투에서 생존할 확률이 희박한 탓도 있겠지만, 빠르게 강해지기 시작하면 주변의 견제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크흠. 뭐, 근성 있는 건 인정할게요. 그래도 30레벨은 좀···.”

“그래. 팀원 잘못 만나서 일을 그르치긴 싫다고.”

둘은 정도현을 인정하는 척하다 은근슬쩍 돌려댔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같은 생각인지 조용히 지켜봤다.

임무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삐걱대자, 민규원은 어쩔 수 없이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실력을 테스트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실력 테스트?”

“예. 임무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팀원 한 분과 대련하는 겁니다.”

“오호!”

김태양이 눈을 반짝였다.

민규원의 제안이 마음에 쏙 든 모양이다.

33레벨 여성과 다른 플레이어들도 고갤 끄덕이며 찬동했다.

“그럼 대련 상대는···. 윤권호 씨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난 상관없다.”

민규원은 정도현 다음으로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 ‘윤권호’를 지목했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근육질 몸매를 지닌 사내, 윤권호는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아니.”

하지만 정도현이 고갤 저었다.

그러자 민규원의 눈빛에 언뜻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기 싫으시면 안 해도 괜찮···.”

“김태양 씨.”

“응? 왜.”

“한판 붙읍시다.”

“···뭐?”

정도현은 레벨이 가장 높은 김태양을 대련 상대로 지목했다.

다들 잘못 들었거나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도현의 표정은 진지했다.

정신을 차린 김태양이 재확인했다.

“···나랑 붙겠다고? 진짜?”

“예.”

김태양은 머릴 긁적이며 민규원을 쳐다봤다.

민규원도 당황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말렸다.

“도현 씨.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습니다. 그냥 간단한 실력 테스트에요.”

“제가 이기면 다들 군말 없이 제 지시에 따르세요.”

“잠깐만. 그쪽이 팀장을 하겠다고?”

김태양이 웃음기를 싹 지웠다.

어딜 30레벨 따위가 우리한테 명령을 내린단 말인가.

‘건방진 새끼.’

하다 못 해 경력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고작 한 달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각성하고서 몇 년은 됐다.

정도현에게 있어 까마득히 높은 선배인 셈이다.

“야, 농담도 봐가면서 해. 대련이라고 적당히 때릴 줄 알아?”

“아뇨. 진지하게 하세요. 나중에 방심해서 졌다느니 봐줬다느니, 그딴 추한 변명 하지 말고.”

빠득-!

정도현의 당당한 말투에 김태양은 약이 바짝 올랐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흉흉해지자 민규원이 급히 둘을 중재했다.

정도현은 김태양을 바라보며 한 가지를 약속했다.

“만약 제가 진다면 이번 임무가 끝날 때까지 그쪽이 시키는 건 뭐든 하겠습니다.”

“뭐? 진짜로?”

“못 믿겠으면 피의 맹약서를 쓰죠.”

정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민규원을 바라보았다. 있으면 내놓으란 뜻이었다.

민규원은 한숨을 쉬며 피의 맹약서를 꺼냈다.

“대신 두 분, 적당히 해주세요. 심하게 다치면 작전에 지장이 갈 수 있으니까.”

포션으로 몸은 치료해도 마음만은 치료할 수 없다.

팔다리가 꺾이거나 찢어지는 등. 심각한 부상은 포션으로 치료해도 환상통이 생긴다.

그럼 자연히 움직임이 둔해진다. 레드 플레이어드를 소탕하는 작전이니 컨디션 조절은 필수였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정도현은 대련 전에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태양이 씩 웃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아, 그래, 그래. 편하게 싸고 와. 싸우다 지리지 말고.”

잠시 뒤, 정도현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둘은 서로 마주 보며 대치했다.

민규원은 불안한 눈으로 정도현을 바라봤다.

‘내가 괜히 자존심을 건드렸나?’

민규원은 정도현을 레벨보다 고평가했다.

혼자서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모자라, 레드 플레이어가 바글대는 필드형 던전에도 들어갔다.

레벨은 다른 플레이어보다 낮지만, 저들을 서포트할 실력은 충분히 갖췄으리라 보았다.

‘게다가 F구역 출신이니 갱단을 상대하는 것에도 훨씬 능숙할 거고.’

그런데 막상 내용물을 까보니 상상 이상으로 팀워크가 엉망이었다.

‘저 눈. 확신으로 가득 차 있어.’

정도현은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어쩌면 오늘 대련이 처방약이 될지도 모르지.’

실패나 패배를 겪어본 적 없는 이는 저도 모르게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그가 볼 때 정도현은 플레이어로 대성할 재능을 지녔지만, 아직 미숙했고 혈기가 넘쳤다.

이번 대련은 정도현을 보다 성숙하게 만들어줄 회초리였다.

물론 김태양은 그저 상대를 두들겨 팰 생각뿐이겠지만.

“3, 2, 1···. 시작!”

민규원의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둘은 서로에게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퍽-! 퍼억!

두 남자의 주먹과 발이 오가며 마구 부딪혔다. 마치 윗구역의 지하 투기장을 방불케 했다.

땀내 나는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구경하던 이들은 입을 쩍 벌렸다.

“···어?”

“뭐야?”

당연히 정도현이 쪽도 못 쓰고 밀릴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팽팽했다.

아니, 정도현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다. 반면에 김태양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새끼, 뭐야?’

김태양은 당황했다. 마치 바위를 두들기는 느낌이었다.

맷집만 좋은 것도 아니다.

정도현은 맞을 때마다 교묘하게 중심축을 비틀어 충격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김태양은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처럼 서서히 지쳐갔다.

그러다 한순간 스텝이 꼬이며 자세가 삐끗했다.

본인은 곧바로 자세를 다잡았으니 괜찮겠거니 생각했지만, 정도현은 그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콰직-!

정도현의 주먹이 김태양의 명치에 제대로 꽂혔다.

“커헉!”

그다음은 정도현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

주먹이 꽂힐 때마다 김태양의 몸이 들썩였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진다. 시야가 자꾸 흔들렸다.

정도현은 휘청거리던 김태양의 배후로 돌아가 양손으로 목을 휘감았다.

“끄으으···!?”

목을 졸린 그는 마치 물고문을 당하는 죄수처럼 버둥거렸다.

그만하라고 팔꿈치로 힘껏 두들겼지만, 정도현은 조르기를 풀어주지 않았다.

잠시 뒤, 김태양의 팔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마침내 그가 의식을 잃었다.

그제야 정도현도 목 조르기를 풀어줬다.

털썩-!

김태양은 취객처럼 바닥에 고꾸라졌다. 정도현은 심판 쪽으로 고갤 돌렸다.

“···.”

뜻밖의 결과에 민규원은 자기가 심판이었단 걸 잠시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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