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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9화 (9/240)

나 혼자 1원 상점 - 09화

유승혁은 땅바닥을 기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정도현에게 금세 따라잡혔다.

콰득!

정도현이 전투용 망치를 꺼내 그의 다리를 내리쳤다.

“끄억, 끄아악!”

다리뼈가 산산이 부러지는 고통에 유승혁이 비명을 토했다.

마력 강화제의 부작용으로 피눈물을 줄줄 흘려 몰골이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동정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길드원 죽인 건 어떻게 알고 왔어?”

길드원을 살해하면 머리 위에 표식이 뜬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 마주치기 전까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승혁은 정도현이 범인인 걸 알고서 찾아왔다. 어디서 정보를 캐냈을까.

“끄으, 끄···.”

유승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정도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콰직-!

망치로 나머지 다리도 으스러뜨렸다.

그러자 녀석도 쓸데없는 고집은 집어치우고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했다.

“꺼으, 헉, 허억···. 관리국 처리반! 그, 그놈들을 붙잡아 심문했어···.”

“처리반?”

“그놈들이 실종 사건을 해결했다길래···.”

유승혁은 친구가 처리반 요원들 손에 죽은 줄 알았다.

그래서 사건을 담당했던 요원들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에겐 길드원을 살해했단 표식이 없었다. 그래서 심문했다.

누가 진짜 범인이냐고.

“하수도에서 네 놈이랑 마주쳤다더군. 그럼 너 말곤 없잖아.”

“아.”

정도현은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이해했다.

하수도에서 그와 마주쳤던 처리반 요원들.

‘그놈들이 내 공로를 슬쩍했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애먼 놈이 챙긴다더니.

그놈들은 실험체를 보자마자 냅다 도망쳤다.

게다가 그가 도와준다고 했을 때도 신경질적으로 굴며 그를 내쫓으려 했다.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그 요원들은 어떻게 했어. 다 죽였냐?”

“흐, 흐흐···. 왜, 알던 사이였냐?”

“대답이나 해.”

정도현이 망치를 흔들며 재차 묻자, 유승혁은 비릿하게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다 죽였지.”

“그래? 고마워.”

“···뭐?”

“처리반 팀장이 좀 싸가지 없었거든.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러게 남이 해준 걸 왜 가로채?”

유승혁은 불현듯 떠올랐다.

붙잡은 요원들 중 레벨이 가장 높았던 사내가.

그 녀석은 유승혁한테 이렇게 말했다.

흑마법사 주제에 감히 누굴 건드린 줄 아느냐고.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끽해야 F구역이나 담당하는 최하급 요원이면서, 마치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길래 거슬렸다.

그래서 본보기로 죽였다.

눈앞에서 상관이 살해당하자 부하 요원들은 겁에 질려 묻는 말에 아주 성실히 대답해줬다.

물론 대답해준다고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유승혁은 정도현이라는 플레이어가 그날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날 죽인다고 다 끝난 것 같지? 천만에. 내가 당한 걸 알면 다른 간부들도 나설 거다. 이제 너 한 명 죽는 거론 안 끝나. 네 주변인들도 싹 찾아내 죽이거나 실험 재료로 써먹을걸?”

유승혁의 눈빛에 다시 독기가 이글거렸다. 슬슬 고통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과연 40레벨을 넘긴 플레이어다웠다.

“죽기 전에 협박하는 건 친구랑 똑같네.”

유승혁의 살벌한 협박에도 정도현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런 걱정은 이미 할 만큼 했으니까.

정도현의 심심한 반응에 유승혁은 이를 갈았다.

“먼저 가서 친구랑 좀 놀고 있어. 다른 놈들도 금방 보내줄게.”

“이 개새···!”

촤악-!

정도현은 목을 그어 주둥아리를 막았다.

유승혁은 절단면을 부여잡고 컥컥대다 그대로 고갤 떨궜다.

호흡이 끊겼는데도 눈동자에는 분함과 원통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는 단숨에 4레벨이 올라, 30레벨에 도달했다.

시체에선 마법 지팡이와 로브도 잊지 않고 챙겼다.

암시장에 팔아넘기면 짭짤하게 받을 것이다.

‘할아버지를 E구역에 들이려면 돈이 많이 필요해.’

그의 할아버지는 현재 F-06 구역에 머물고 있다.

얼마 전에 급히 웃돈을 주고 방을 구해다 피신시켰다.

F구역 관리국이 바로 옆에 있어서 F구역에서는 치안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마냥 관리국만 믿고 있을 순 없어.’

F구역 관리국 지부가 지닌 힘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반면에 정도현은 말단 길드원에 이어 고위 간부까지 살해했다.

블랙 스컬은 지금부터 사력을 다해 정도현과 그 주변인들을 찾아내 보복하려 들 터.

그들이 그럴 마음만 먹으면 F구역을 샅샅이 뒤져, 사람 한 명 찾아내 납치하거나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닐 터.

‘그러니 E구역으로 이주해야 해.’

그놈들도 E구역에선 마음대로 날뛰지 못할 것이다.

자칫하다 꼬릴 밟히면 E구역과 F구역의 관리국과 전면전을 치를 테니까.

그럼 블랙 스컬도 망한다.

***

“진짜로 해냈네.”

“운이 좋았죠.”

“운은 개뿔.”

던전에서 나와 곧장 송정민의 사무소로 온 정도현.

송정민은 며칠 동안 변동이 없던 레벨이 한꺼번에 오른 걸 보곤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했다.

‘정말로 간부급을 쓰러트렸어.’

26레벨이 40레벨 이상의 흑마법사를 혼자 힘으로 이기다니.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보란 듯이 해냈다.

그 업적에 송정민은 작게나마 경외심마저 느꼈다.

게다가 정도현은 각성한 지 불과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 30레벨이 됐다.

‘저게 진짜 재능인 거겠지.’

레벨을 올리는 건 정말, 정말로 어렵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중압감. 그게 얼마나 무거운지 송정민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게다가 상대보다 레벨이 낮으면 시스템이 페널티도 부여하지 않던가.

급소를 찔러도 치명상이 잘 터지지 않고, 역으로 이쪽은 데미지가 더 많이 들어온다.

정도현은 그 부조리한 페널티를 감수하면서 묵묵히 사냥했다. 그것도 혼자서.

과연 저렇게 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몇이나 될까.

‘녀석은 분명 더 높이 올라갈 거다.’

정도현은 죽음의 공포에 겁 먹고 주춤할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결말은 둘 중 하나였다.

엄청난 거물로 성장하거나, 견디지 못하고 뚝 부러지거나.

부디 전자이길 빌었다. 정도현의 손에는 자신의 성공도 달려 있었으니까.

“간부를 죽였으니 다음번엔 간부들이랑 부하들도 몰려올 거다.”

“쉴 틈이 없겠네요.”

“너 혼자 이기긴 힘들 거다. 슬슬 파티원을 구해두는 게 어떠냐?”

송정민은 불안해서 그렇게 조언했다.

정도현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혼자서 길드를 상대한다니. 너무 무모했다.

하지만 정도현은 고갤 저었다.

“믿을 만한 파티원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설사 찾더라도 괜히 저 때문에 휘말리면 미안하죠.”

“그러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송정민은 조금 놀란 눈으로 정도현을 쳐다봤다.

차별주의적인 말이지만 F구역 출신은 대부분 팍팍한 생활을 견디다 이기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현은 또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할아버지한테 잘 배웠나 보군.’

송정민도 더는 파티원을 권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도현에겐 파티원들이 걸림돌일지도 모르지.

“우리야 E구역 시민으로 등록되어 있으니 당분간 괜찮겠지만, 네 할아버지가 문제다. 일반인이 상위 구역으로 이주하는 게 쉽지가 않거든.”

“돈만 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돈 말고 하나가 더 필요해.”

“뭐죠?”

“시간.”

거액을 내고 상위 구역으로 이주 신청을 넣어도 관리국은 곧장 받아주지 않는다.

“이주 신청을 넣으면 심사 순번이 배정돼. 차례대로 검사하고 들여보내 주는 거지.”

“심사 순번? 얼마나 걸립니까?”

“빨라야 한두 달. 대기 인원이 많으면 반년까지도 걸려.”

예상치 못한 복병의 등장에 정도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질문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어요?”

“보통은 선착순이지만, 윗선에 연줄이 있으면 순번을 앞당길 수 있어.”

“관리국 간부한테 뇌물을 주라고요?”

“그게 확실하긴 한데···. 우리 같은 놈들한테 그렇게 큰돈이 어딨냐.”

간부에게 먹일 뇌물에다 이주 신청비까지. 그렇게 큰돈을 쉽게 마련할 수 없었다.

1원 상점에서 산 회복 포션이나 각종 아이템들은 거래 불가다.

그럼 그 아이템을 뇌물로 찔러주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불가능했다.

시스템이 그 정도 꼼수도 생각 못 했겠는가.

1원 상점에서 산 아이템으로 정도현이 이득을 취하면 시스템은 이를 거래로 인식할 것이다.

‘할아버지의 심사 순번이 앞당겨지면 내가 죽겠지.’

가슴이 답답했다.

30레벨이 된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소중한 사람 한 명 구하질 못하는데.

“시간이 없어요. 이번엔 간부가 당했으니 놈들도 금방 눈치챌 거예요.”

송정민도 뾰족한 대안은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사무실에 어색한 침묵만이 깔렸다.

‘후, 포기하라 말할 수도 없고.’

송정민도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뼈저리게 잘 안다.

그래서 안타까웠다. 어떻게든 정도현을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도현의 할아버지를 살릴 방도가 없었다.

관리국의 고위 간부를 어떻게 매수한단 말인가.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마당에.

띠리리리-!

침묵을 깬 건 사무소 전화기였다.

송정민은 목소릴 가다듬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예. 던전 브로커 사무소, 송정민입니다. 무슨 일로···. 예? 누구시라고요?”

상대방의 얘길 듣던 송정민이 정도현을 힐끔 쳐다봤다.

정도현은 비켜달란 의미로 해석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송정민이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정도현은 어정쩡한 자세로 고갤 갸웃거렸다. 송정민이 이어서 말했다.

“예, 제 옆에 있습니다. 무슨 용건으로 찾으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

“의뢰 요청···. 말씀이십니까?”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정도현을 찾고 있었다.

‘나한테 의뢰라고?’

정도현은 다시 자리에 앉아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송정민이 작게 속삭였다.

“관리국 부지부장의 비서야.”

“···부지부장?”

정도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지부장이면 E구역 관리국 최고위 간부였다. 그런 사람이 날 왜 찾는단 말인가.

“정도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정도현 플레이어님. 저는 부지부장님을 보좌하는, ‘민규원’이라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연락을···.”

용건을 묻자, 민규원은 부탁하고픈 의뢰가 있다고 했다.

‘왜 하필 나한테?’

그는 이해가 안 됐다.

공직자들이 플레이어를 용병처럼 고용해 의뢰를 맡기는 일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신출내기 플레이어한테 의뢰를 맡길 이유가 있나?

플레이어는 레벨도 중요하지만, 경험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날 버리는 카드로 쓰려는 건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민규원은 그의 속내를 읽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내용을 들어보고 내키지 않으시면 거부하고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단, 의뢰 내용을 남에게 발설하지 않겠단 피의 맹약서만 써주시면 됩니다.]

“혹시 의뢰를 거부하면 제게 불이익이 있습니까?”

그런 건 없다고 답했다.

내용을 들어보고 마음대로 거절해도 된다니.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정도현은 관심이 생겼다.

“보수는 어떻게 됩니까?”

[그건 직접 만나서 의뢰 내용과 함께 상의하시죠.]

“왜 저한테 의뢰를 맡기시려는 거죠? 전 한 달 밖에 안 된 신출내기인데요.”

[암흑가에선 소문이 파다합니다. 필드형 던전에서 레드 플레이어를 여럿 죽이셨다고요.]

레드 플레이어를 죽인 걸 높이 쳐줬다.

‘그럼 의뢰 내용도 그와 관련된 내용이겠군.’

정도현은 고갤 끄덕이며 가장 궁금한 부분을 질문했다.

“혹시 돈이나 아이템 말고 다른 걸 보수로 받을 수 있습니까?”

[다른 것이라 하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정도현의 뜻밖의 질문에 민규원은 잠시 당황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의뢰 보수로 돈이나 아이템을 받아가니까.

다른 건 상상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정도현은 그것도 직접 만나서 논하자고 했다.

[알겠습니다. 접선 장소와 시각을 발송해드리겠습니다.]

***

정도현은 만나기로 한 주소에 도착했다. 낡은 건물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입구를 지키고 있던 남자들이 손을 뻗어 제지했다.

“받으신 문자를 보여주시죠.”

민규원이 보낸 문자를 보이니 남자들은 곧바로 비켜섰다.

건물 안쪽 방에 들어오자 그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보였다.

30레벨을 훌쩍 넘는 네 명의 플레이어들. 정도현이 들어오자 그들의 시선이 일시에 집중됐다.

“뭐야. 30레벨? 하, 자존심 상하게 진짜.”

36레벨의 금발 사내가 정도현을 보더니 코웃음 쳤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별말 없이 시선을 거뒀다. 명백한 무시였다.

정도현은 개의치 않고 적당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몇 분 뒤, 문이 열리며 두 남자가 방에 들어왔다.

[민규원][LV.35]

[안태환][LV.62]

검은 안경을 쓴 정장 차림의 사내.

새치가 희끗희끗 자란 중년 남성.

둘 다 플레이어였다. 게다가 중년 남성은 무려 60레벨이 넘는다.

‘저 사람이 E구역의 부지부장인가.’

나이를 꽤 먹긴 했어도 풍겨오는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지부장, 안태환은 다섯의 플레이어를 쓱 둘러보곤 말했다.

“전부 왔군. 자네들을 부른 건 조용히 처리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네.”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까?”

“그렇네.”

정도현을 대놓고 무시했던 금발남이 대표로 질문했다.

그러자 안태환은 고갤 끄덕이며 설명했다.

“이틀 전에 내 아들이 갱단한테 납치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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