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07화
그날 저녁. 정도현은 송정민에게 연락해 하수도에서 겪은 일을 전부 털어놨다.
얘기가 끝나자 송정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루 푹 쉬고 오랬더니 흑마법사를 죽였다고?]
“예, 블랙 스컬이란 길드 소속이고 이름은 서은찬. 레벨은 26이었어요.”
[하···.]
그는 어떻게 26레벨 흑마법사를 죽였는지 캐묻지 않았다.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하필 건드려도 흑마법사 길드를 건드리냐.]
“···많이 위험합니까? 그래봤자 말단 길드원인데.”
[직책은 별 상관없어. 그놈들. 자기 길드원 건드린 놈 찾아낼 때까지 절대 포기 안 할 거다.]
그 말에 정도현의 눈이 커졌다.
의외였다. 흑마법사 같은 놈들에게 그런 끈끈한 동료애가 있단 말인가.
[뭐, 그놈들이 의리로 움직일 놈들은 아니고. 길드의 존속 때문이야.]
“무슨 소립니까?”
정도현의 반응에 송정민은 흑마법사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설명했다.
흑마법사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자 금기를 어기고 인륜을 저버린 범죄자다.
관리국과 플레이어들은 손을 잡고 오랫동안 그들을 탄압하고 배척했다.
그들이 살아남으려면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흑마법사 길드가 하나둘 탄생했지.]
우리 길드원이 당했는데 그냥 넘어간다?
그럼 그 길드의 질서가 뒤흔들릴 것이다.
말단이 살해당한 건 사소한 문제였다.
우리 식구를 건드린 놈에겐 반드시 피의 복수를 해줘야만 한다.
그래야지만 다른 놈들도 날 함부로 건드리지 않지.
그게 흑마법사들이 길드에 들어가는 이유다.
[게다가 그 녀석, 길드의 간부랑 친하다면서?]
“예,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나 뭐라나.”
[그럼 그 간부가 직접 움직이겠지.]
그렇게 되면 골치가 아팠다.
[간부급이면···. 최소 40레벨은 넘겼을 거다.]
“···큰일이네요.”
40레벨 이상이란 말에 정도현은 가슴이 무거워졌다.
고레벨과 저레벨들의 레벨 차이는 아예 다르다.
예를 들어 20레벨과 21레벨이 붙었다고 치자.
그 싸움의 승자는 그날 컨디션이 더 좋은 사람일 것이다.
저레벨들의 1레벨 차이는 개인 기량으로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그만큼 미세했다.
하지만 40레벨과 41레벨이 붙는다면?
큰 변수가 없는 한, 몇 번을 싸워도 항상 41레벨이 이길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빨리 레벨을 올려야겠군요.”
[그래. 근본적인 해결법은 그것밖에 없겠지.]
하지만 하루에 들어갈 수 있는 던전 횟수엔 한도가 있었다.
그는 더 사냥하고 싶지만 관리국에서 입장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지금은 하루에 한 번. 20레벨을 넘기면 두 번이 최대야.’
블랙 스컬의 간부가 언제 찾아올진 모르겠지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마냥 숨어다니는 것도 해결책은 아니었다.
‘내가 잠적이라도 하면 할아버지를 노릴 거야.’
인질로 삼아 그를 꾀어내거나 분풀이로 죽이겠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 정도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런 일을 막으려면 그가 빨리 강해져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각오를 읽은 걸까. 송정민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이제 레벨이 몇이지?]
“흑마법사를 죽여서 17입니다.”
[···꽤 올랐군.]
송정민은 뭔가 말하려다 잠깐 망설였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님을 알기에 결국 말해줬다.
[이건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은데···. 지금보다 빨리 성장할 방법이 있어.]
“그게 뭡니까?”
[필드형 던전에 들어가는 거다.]
“···필드형 던전?”
처음 들어봤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팁글에서도 그런 건 없었는데.
송정민은 상세히 설명해줬다.
[거긴 일반적인 던전보다 훨씬 규모가 커. 최소 서너 배 이상이라 보면 돼. 나도 아내 치료비 벌려고 종종 갔었어.]
“···!”
즉, 필드형 던전은 던전 몇 개가 합쳐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게 있었다니. 아주 솔깃했다.
“플레이어들한테 인기가 많겠군요.”
[아니, 돈이 급한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안 들어가.]
“어째서죠?”
[오래 버티기 힘들거든.]
필드형 던전은 대체로 오지였다.
뙤약볕이 쨍쨍히 내리쬐는 모래사막.
혹한의 추위와 눈보라가 마구 휘몰아치는 설원.
독사와 벌레들로 가득한 밀림 등등.
플레이어가 아무리 초인이어도, 그런 험준한 환경에서 몬스터와 전투하면 진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거기 몬스터들은 극한의 환경에 적응한 상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 터.
그러니 다들 들어가길 꺼리는 것이다.
[거기서 사냥할 바엔 차라리 안전한 일반 던전을 돌고 말지.]
하지만 정도현은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면 언제 죽을지 모를 처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다.
[정말 할 거냐? 조금만 삐끗해도 죽을지 몰라.]
“예.”
[거기선 아무도 믿지 마라. 몬스터보다 인간이 더 해.]
“무슨 소립니까?”
필드형 던전은 너무 넓어 일반형 던전과 달리 하나가 아닌 여러 파티가 동시에 들어간다.
파티들은 각자 흩어져서 몬스터를 소탕한다.
“그게 뭐가 문젭니까?”
[돈이 급한 사람이 아니면 전부 레드 플레이어들이거든. 그래서 칼부림도 자주 벌어지지.]
“레드 플레이어요? 그런 놈들한테 입장 허가를 내줍니까?”
레드 플레이어와 일반 플레이어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감별용 아이템, ‘카인의 눈동자’.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몇 명이나 죽였는지 알려주는 아이템이다. 단, 선공을 가해서 상대를 죽여야만 킬 카운트가 오른다.
아무튼 관리국은 분기마다 플레이어들을 소집해 킬 카운트를 확인했고, 레드 플레이어인지 아닌지 구분했다.
만약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임시 레드 플레이어로 규정되며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플레이어가 누리는 혜택이 전부 사라진다.
가령, 던전의 입장 허가를 따내는 것도 힘들었다.
레드 플레이어는 신용불량자나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어. 필드형 던전은 인기가 너무 없어서 인력이 늘 부족하거든.]
그래서 필드형 던전은 레벨만 충족하면 레드 플레이어라도 곧바로 출입 허가를 내줬다.
플레이어가 너무 안 들어가면 게이트가 무너진다. 그럼 수백, 수천의 몬스터 군단이 그 구역에 한꺼번에 방류된다.
그렇게 되면 뒷수습이 어려웠다.
최악의 경우 땅이 몬스터들의 마력에 오염되어, 일반인이 거주할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렇게 될 바엔 레드 플레이어를 고용해서 던전을 없애는 편이 나았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들끼리 죽고 죽이는 일이 터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게이트가 무너지는 것보단 그편이 훨씬 싸게 먹히니까.
플레이어는 또 낳으면 그만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었다.
[내일 중으로 일정을 잡아보마.]
“고마워요.”
[죽지 말고.]
송정민은 그렇게 말하곤 먼저 연락을 끊었다.
정도현은 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블랙 스컬의 표적이 된 자신과 엮이면 본인도 위험해질지도 모르는데 성심성의껏 도와주다니. 사람을 잘 만났다.
***
그 후로 일주일이 흘렀다.
정도현은 필드형 던전에서도 파티원 없이 혼자서 움직였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빨리 성장하려면 그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의 행보는 레드 플레이어들을 자극했다.
“···정도현?”
“혼자 필드를 돌아다니던데?”
“뭐? 순 미친 놈 아냐?”
“각성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 20레벨을 넘겼다더라.”
“거기다 F구역 출신이고.”
“거참. 웃기는 새끼네.”
소문이 암흑가에 알음알음 퍼졌다.
문제는 그곳에 사는 플레이어 대부분이 레드 플레이어란 점이다.
괴물 같은 신인의 등장에 그들의 피가 끓어올랐다.
“파티원이 없어?”
“이 건방진 새끼.”
그중 몇몇은 정도현에게 뭐 당한 것도 없으면서 살심을 품었다.
그들은 정도현을 죽이고자 그를 뒤쫓아 필드형 던전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더 흘렀다.
정도현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는 새로운 필드형 던전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를 죽이겠다며 던전으로 향했던 레드 플레이어들은 소식이 뚝 끊겼다.
싸움의 승자가 누구였는지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뭐야, 그 병신들. 한 달짜리 신참한테 당한 거야?”
“그 녀석. 생각보다 좀 치나 본데?”
“에이, 그냥 운이 좋았던 거겠지.”
레드 플레이어들이 주로 모이는 암흑가 술집.
정도현의 생존 소식에 레드 플레이어들이 더욱 열광했다.
이젠 누가 먼저 죽일지 배팅도 걸렸다. 이번에야말로 다들 정도현이 죽을 거라 생각했다.
누구 손에 죽는지가 중요했다.
그로부터 사나흘이 지났다.
정도현은 새로운 필드형 던전에 얼굴을 비쳤다. 심지어 다친 곳 하나 없었다.
그를 죽이러 갔던 자들은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전보다 썰렁해진 술집 풍경에 레드 플레이어들이 숙연해졌다.
“야, 이번 주에 당한 놈들만 거의 스무 명이야.”
“와, 괴물 같은 새끼. 어떻게 이겼냐?”
“설마 개인 특성이라도 있는 거 아냐?”
“씨발, 더러운 재능충.”
레드 플레이어들은 술을 퍼마시며 정도현을 저주했다.
승승장구하는 소식을 보니 절로 증오가 끓어올랐다. 놈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꼴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분했지만 말로 씹어대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라진 놈들의 머릿수를 세어 보면 덤빌 마음이 싹 사라진다.
끼익!
그때 술집 문이 열렸다.
술에 취해서 마구 떠들던 레드 플레이어들이 흘끗 쳐다봤다.
[유승혁][LV.43]
술집에 들어온 건 회색빛 로브를 두른 사내.
레드 플레이어들이 쥐새끼처럼 들끓는 암흑가에 혼자 돌아다닌다니.
나 좀 죽여달라고 외치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의 레벨을 보면 절로 납득이 갔다. 저 정도면 E구역 암흑가에선 최상위 포식자였다.
시끌시끌했던 술집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이봐, 너희들.”
“예, 옙?”
“내가 사람을 좀 찾고 있는데.”
레드 플레이어들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중 한 명은 손에 쥐고 있던 안줏거리도 바닥에 툭 떨궜다.
그 반응이 제법 웃겼는지 유승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혹시 정도현이란 놈을 아나? 레드 플레이어 같은데.”
“저, 정도현이요?”
알다마다. 방금도 그들 입에서 오르내린 녀석이니까.
그들의 표정 변화에 유승혁이 눈빛을 반짝였다.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 형사처럼.
“그 녀석을 왜 찾으시는지···.”
“그놈이랑 풀어야 할 문제가 좀 있어서.”
레드 플레이어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가 정도현을 찾는 이유는 해코지하기 위함이란 걸.
4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한테 원한을 사다니.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그 녀석, 지금 어딨냐?”
“필드형 던전에 자주 온다는 것밖엔 모릅니다.”
“···필드형 던전?”
“예!”
“그래서 코빼기도 안 보였군.”
유승혁은 혀를 한 번 찼다. 필드형 던전은 공략에 하루나 이틀은 족히 걸리니까.
‘그런 곳에 처박혀 있었구나.’
위치도 알았겠다. 유승혁은 곧바로 놈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살해당한 친구의 복수를 해주기 위해.
***
어두컴컴한 밤아래. 정도현은 울창한 밀림에서 야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모닥불로 마수 고기를 굽고 있었다.
1원 상점의 레벨은 그새 8까지 올라갔다.
「생존의 기초」와 「몬스터 도축 및 요리」 스킬북을 산 덕에, 그는 남들보다 몬스터를 능숙히 조리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강인한 정신」, 「대지의 재생」, 「끈질긴 체력」, 「날렵한 발걸음」, 「완력 강화」 같은 유용한 패시브 스킬북도 잔뜩 얻었다.
이것들이 없었으면 그도 혹독한 환경에 굴복했을 것이다.
[하급 마수 고기구이를 섭취했습니다.]
[30분간 모든 능력치가 3씩 상승합니다.]
요리 스킬을 습득하고 몬스터를 조리해 먹으니 버프 효과가 붙었다.
다른 요리의 버프나 도핑제 효과랑 중첩이 가능해서 꽤 쏠쏠했다.
정도현은 마수 고기를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정도현] [LV.26]
- HP: 2800/2800
- MP: 2500/2500
- 근력: 80(+62)
- 체력: 83(+62)
- 마력: 76(+62)
- 민첩: 78(+62)
- 행운: 77(+62)
- 개인 특성: 1원 상점
보름 만에 10레벨 가까이 올렸다.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
물론 몬스터 사냥만으론 그도 이렇게 빨리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드 플레이어들 덕분이야.’
덤벼드는 놈들은 모조리 죽였다.
그가 먼저 공격하진 않았으니, 관리국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를 일도 없었다.
게다가 레드 플레이어는 비슷한 레벨의 몬스터보다 경험치를 더 많이 줬다.
‘레드 플레이어가 왜 그리 생겨나는지 알 것도 같아.’
좀 아쉬운 건 그새 소문이 퍼졌는지 얼마 전부터 그를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의 레벨이 거의 제자리였다.
‘이제 더 어려운 던전을 가볼까.’
물론 그 전에 처리할 문제가 남아 있었다.
슬슬 올 때도 됐는데. 언제 오려나.
정도현이 그렇게 생각할 때.
부스럭-!
근처 수풀이 마구 흔들리더니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유승혁][LV.43]
무려 43레벨 플레이어였다.
그는 정도현을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후, 드디어 찾았네. 이 개새끼.”
유승혁은 그에게 다짜고짜 욕설을 뱉으며 빨간 보석이 박힌 매직 스태프를 겨눴다.
그런데도 정도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오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유승혁은 주변을 두리번대더니 이해가 잘 안 된단 표정으로 질문했다.
“뭐야. 혼자야?”
“어, 아직 싱글이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