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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6화 (6/240)

나 혼자 1원 상점 - 06화

“끼에엑···.”

쿵!

반으로 갈라진 실험체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핏물을 쏟으며 쓰러졌다.

놈은 죽기 싫은지 꿈틀대다 이윽고 움직임이 멎었다.

‘역시 경험치는 안 들어오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몬스터나 소환수는 죽여도 경험치를 얻지 못한다.

좀 아쉬웠다. 21레벨이면 그가 깬 던전의 보스보다 경험치를 많이 줄 텐데.

그는 칼날에 묻은 피를 휙 털어내고 그렇게 생각했다.

짝짝-!

괴물이 달려왔던 통로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고갤 돌리자 뼈 지팡이를 쥔 젊은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서은찬][LV.26]

“12레벨치곤 제법이네? 그 녀석, 꽤 공들여서 만들었는데···.”

정도현은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들었다.

공들였다느니 뭐니 지껄여대는 걸 봐선 저 남자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일 터.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흑마법사, 서은찬은 뼈 지팡이를 휘저으며 작게 중얼댔다.

그러자 그들의 옆에 흐르던 수로에서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수에서 무언가가 하나둘 기어 올라왔다. 그건 부패한 시체였다.

놈들은 좀비처럼 비척대며 일어서더니 우르르 몰려왔다.

‘15레벨?’

아까 쓰러트린 실험체에 비하면 어린애 수준이었다. 정도현은 자신 있게 검을 휘둘렀다.

촤악-!

가까운 시체부터 베어 넘기자 녀석들의 몸이 터지며 거무죽죽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중 일부는 몸에 닿았고 그의 눈앞에 새빨간 경고문이 떠올랐다.

[중독됐습니다!]

[일시적으로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HP가 서서히 줄어듭니다.]

그의 피부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시체의 핏속에 독을 섞어둔 모양이다.

정도현은 공격을 멈추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서은찬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이게 시체술사의 전투법이거든. 설마 비겁하다고 하진 않겠지?”

정도현은 대답 대신 인벤토리에서 최하급 해독제를 한 병 꺼내 사용했다.

그걸 본 서은찬이 살짝 감탄했다.

“오, 해독제가 있었어? 준비성은 좋네. 근데 그거 가격 좀 나갈 텐데. 얼마나 더 있는지 볼까?”

서은찬은 부패 병사를 더 불러냈다.

수로 속에서 거머리처럼 기어 나오는 시체들.

방금 쓰러트린 것들보다 더 많은 수가 보충됐다.

부패 병사 같은 언데드는 시체랑 마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해독제는 연금술사나 생산직 플레이어만 만들 수 있는 아이템.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절대 질 수가 없다. 서은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너도 공들여서 만들어줄게.”

서은찬은 한눈에 알아봤다. 정도현의 칼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지금까지 본 10레벨대 플레이어랑은 결이 달랐다. 아마 같은 레벨대에선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정도현은 소위 말하는 천재였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어.’

서은찬은 부패 병사들을 일제히 돌격시켰다. 짐승처럼 몰려드는 수십의 시체들.

정도현은 덤덤하게 칼을 고쳐잡았다.

왼손에는 어느새 회복 포션이 들려 있었다. 서은찬은 그런 그를 보며 조롱했다.

“죽기 전에 발악이라도 해보겠다?”

서걱! 촤악!

체력을 풀로 회복한 정도현이 다시 날뛰었다.

그의 손에서 검광이 쏘아졌고 부패 병사들이 통나무처럼 쪼개졌다.

“···어?”

서은찬이 무언갈 보고 제 눈을 의심했다.

정도현은 몇 마리 썰고 뒤로 쭉 거릴 벌렸다. 그다음 해독제랑 포션을 번갈아 꺼냈다.

수십의 부패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그의 포션과 해독제는 마를 기미가 안 보였다.

‘씨발. 뭔 포션이 저리 많아!’

정도현은 회복 포션과 해독제를 각각 열 병 넘게 썼다. 돈으로 환산하면 최소 몇백만 원.

서은찬은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죽인다고 끝난 게 아니거든!”

컬쳐 쇼크에서 겨우 헤어나온 서은찬.

그는 악에 받친 얼굴로 비장의 주문, 「시체 폭발」을 발동했다.

정도현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었다.

그것들은 곧 한계에 도달하며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콰앙-! 콰과광!

피할 틈도 없이 정도현은 휩쓸렸다.

“흥. 꼴좋다.”

서은찬은 뼈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두들기며 다가왔다. 정도현의 시신이 온전히 남아 있길 빌면서.

후웅-!

바로 그 순간. 은빛 칼날이 연막을 찢으며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뭣!?”

설마 그걸 맞고도 살아남았을 줄이야!

서은찬은 기겁하며 급히 주문을 발동했다.

카앙-!

서늘한 칼날이 서은찬의 목을 훑기 직전, 시커먼 보호막이 그를 에워쌌다.

장벽에 막힌 칼이 역방향으로 튕겼다.

“후···.”

서은찬은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혹시 몰라서 「블랙 실드」를 메모라이징 해두길 잘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필시 주문 발동 타이밍이 늦었을 것이다. 그럼 목과 머리가 분리됐겠지.

‘그래도 최후의 발악을 막아냈어. 내 승리다.’

서은찬은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연막을 뚫고 튀어나온 정도현은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그의 칼날이 전보다 더욱더 빠르고 세차게 날아든다.

카각! 카가가강-!

칼날이 보호막을 망치처럼 마구 두들겼다. 서은찬은 대경실색하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정도현은 바짝 쫓으며 계속 보호막을 갉아댔다.

“뭐, 뭐야!”

쩌적!

블랙 실드에 큼직한 균열이 생겼다.

보호막이 완전히 깨지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 한다.

서은찬은 지팡이를 총구처럼 겨누고 신중히 흑마력을 끌어올렸다.

스스스-!

축구공 크기의 시커먼 구체가 날아든다.

정도현은 피하지 않고 포수처럼 왼손을 쭉 내밀었다.

거기엔 조그만 두루마리가 들려 있다.

그걸 본 서은찬이 비명을 내질렀다.

“···매직 스크롤!?”

그는 정도현이 내민 게 뭔지 한눈에 알아봤다.

매직 스크롤. 저것만 있으면 일반인도 마법 주문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고위층 자제들은 호신용 도구처럼 들고 다녔다.

일회용 아이템에 제작자의 마법 실력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란 게 단점이었지만.

파앗-!

매직 스크롤이 한순간 반짝이며 사라졌다.

동시에 정도현 주변에 반투명한 보호막이 펼쳐졌다.

서은찬이 날린 흑마법은 보호막에 부딪혀 맥없이 소멸했다.

“이 자식이···. 아까부터 계속 돈지랄이야!”

매직 스크롤이라니. 12레벨이 들고 다닐 만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상위 구역 출신이면 모를까.

‘F구역 천민 주제에 어떻게!’

서은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제 흑마력이 얼마 안 남았다.

마력이 다 떨어진 마법사가 칼잡이를 뭔 수로 이기겠는가.

레벨은 그가 높아도, 신체만 놓고 보면 정도현이 훨씬 강인했다.

서은찬은 남은 마력을 모조리 끌어모아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정도현도 땅을 박차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둘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서은찬의 주문이 딱 완성됐다.

“이제 좀 뒈져! 「흑랑의 송곳니」!”

시커먼 마력이 늑대 형상으로 변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검은 늑대가 아가리를 쩍 벌리며 정도현을 씹어 삼키려 했다.

하지만 정도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휙-!

그 대신 왼손에 쥐고 있던 걸 직구로 던졌다.

그건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담긴 유리병이었다.

‘포션인가? 아냐, 색깔이 달라.’

저게 대체 뭐지?

콰직!

유리병은 흑랑과 충돌하며 산산조각이 났고, 내용물이 터져 나왔다.

치이익!

내용물을 뒤집어쓴 흑랑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흑마력이 증발한 것이다.

“서, 성수까지 있다고?”

정도현이 칼을 찔러넣었다.

서은찬은 뼈 지팡이로 어떻게든 막아보려 시도했지만, 궤도를 살짝 비튼 게 최선이었다.

푹-!

칼날이 서은찬의 어깨를 관통했다.

“끄어억!”

정도현은 칼날을 비틀며 상대에게 고통을 가했다.

서은찬이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외쳤다.

“나, 나 블랙 스컬 소속이야! 날 죽이면 너도 죽어!!”

정도현은 그 말을 듣고도 멈추지 않았다.

송정민의 부하 직원, 강용식과 대련하면서 한 가지 배웠기 때문이다.

실전에선 이길 때까지 방심하거나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라.

‘일단 반 정도 죽여놔야 해.’

게다가 상대는 흑마법사. 또 어떤 주문으로 반격할지 모른다.

콰직!

정도현은 상대의 양쪽 발을 짓밟았다.

마법사라서 신체는 그리 튼튼하지 않았다. 서은찬의 발목이 수수깡처럼 뚝 부러졌다.

“끄허헙···!?”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고통이 서은찬을 뒤덮었다.

그는 눈을 까뒤집고 간질 환자처럼 경련했다.

정도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양쪽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인벤토리에서 훈련용 단검을 꺼냈다.

그가 뭘 하려는지 눈치챈 서은찬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 그만해···.”

콰득!

칼날이 무자비하게 손등을 뚫고 바닥까지 박혔다.

서은찬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토해내며 끅끅댔다.

정도현은 그의 머리채를 거칠게 휘어잡고 그대로 바닥에 짓눌렀다.

“끄, 끄어, 어···.”

“후우.”

정도현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 말했다.

“그래서, 블랙 스컬이 뭔데?”

“···.”

서은찬은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블랙 스컬이 뭔지 모르는 건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제압이랍시고 양다리를 부러트린 뒤, 손등에 칼을 쑤셔 넣다니.

‘이 사이코패스 새끼!’

서은찬은 정도현을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그러자 정도현이 원을 그리듯 칼자루를 빙글 돌렸다.

손등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피부가 찢어지고, 뼈를 긁히는 고통에 서은찬은 무너졌다.

“그, 그만···. 제발 그만해주세요···.”

“빨리 말해. 블랙 스컬이 뭔데.”

“흐, 흑마법사···. 길드입니다.”

그쪽 업계에선 제법 알아주는 조직이라고 한다.

정도현은 의아한 눈으로 서은찬을 바라봤다.

“그런 곳에 들어갈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

역린을 건드렸는지 서은찬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서은찬은 잠시 심호흡하더니 솔직하게 털어놨다.

“제 친구가 거기 간부입니다.”

“낙하산?”

“···예. 그런 셈이죠.”

“여기까진 왜 기어들어 왔어? 흑마법사들은 더 밖에서 활동하잖아.”

구역 뒤에 붙은 숫자가 클수록 중심지에서 멀어진다.

F-21 정도면 그래도 관리국의 힘이 어느 정도 작용하는 구역.

범법자인 흑마법사들이 활동하기엔 껄끄러운 곳이었다. 생체 실험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그, 그게···. 플레이어의 시체를 몇 구 구하고 싶어서···.”

서은찬은 이런 일을 저지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얼마 전에 던전 보상으로 고대의 시체술사가 남긴 비전서를 얻었다.

운이 좋았다. 그 스킬북 덕분에 전보다 한층 강력한 부패 병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욕심이 났다.

일반인 말고 플레이어의 시체로 병사를 만들면 더 어려운 던전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일 년 가까이 정체된 그의 레벨도 쭉쭉 올릴 수 있을 터.

그러면 길드의 간부직도 충분히 노려볼 만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시체는 많이 비쌉니다. 더군다나 저 같은 말단은 돈이 있어도 구매할 수가 없죠.”

모든 권리는 힘에서 나온다.

암시장에 쓸만한 플레이어 시체가 올라오면 뭐 하나.

그보다 레벨이 더 높은 간부급 시체술사들이 싹 쓸어가는데.

서은찬은 뒤에서 손가락이나 빨아야 했다.

고로 플레이어의 시체를 얻으려면 직접 죽여 공수해와야 했다.

“그래서 관리국 요원들을 여기로 꾀어내려 했다?”

“예···.”

빈민가 아이들만 납치하면 별 볼 일 없는 잡범 정도로 보일 것이다.

그럼 관리국 요원들도 경계심을 늦출 터.

실제로 그의 작전은 먹혀들었다. 정도현이 있어서 실패했지만.

“친구가 간부급이라며. 걔한테 시체 구해달라 부탁하면 되는 거 아냐?”

“그 녀석은 시체술에 재능이 없어서 안 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흑마법사는 자기가 다룰 수 있는 분야 외의 재료는 탐내선 안 된다.

그게 흑마법사들의 규율이었다. 이를 어기면 숙청당한다.

“그래. 대충 뭔 상황인진 알았어.”

“사, 살려주십쇼! 저, 절 죽이면 제 친구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내가 널 죽였는지 걔가 어떻게 알고 찾아와?”

“머리 위에 살해 표식이 뜹니다!”

“···표식?”

길드원을 죽인 사람은 머리 위에 칼 모양의 표식이 생기며, 같은 길드원들 눈에는 그게 보인다.

즉, 서은찬을 죽이면 블랙 스컬과 완전히 적대 관계가 되는 셈이다.

“음. 확실히 귀찮겠네.”

“그, 그렇죠? 살려만 주시면 오늘 일은 그냥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다시는 이 동네에 얼씬도 안 할 테니···.”

서은찬은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줄줄 뱉었다.

정도현은 그의 목에 칼을 겨누며 대답했다.

“너 같으면 그 말을 믿겠냐?”

“···꺼흑!?”

푹-!

정도현은 망설임 없이 서은찬의 목을 베었다. 그의 머리가 데구루루 구르며 수로에 풍덩 빠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죽이든 살리든 어차피 후환은 남는다.

그럼 그냥 죽이는 편이 낫다.

26레벨 플레이어라 그런지 상당한 경험치가 들어왔다.

단번에 5레벨이나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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