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05화
‘상점창.’
<1원 상점 (LV.3)>
- 최하급 체력 회복 포션 [150]
- 최하급 마력 회복 포션 [150]
- 훈련용 무기 세트 [10]
- 최하급 방어구 세트 [10]
- 최하급 도핑제 [70]
- (New) 최하급 마정석 [10]
- (New) 최하급 성장 가속 물약 [5]
상점 레벨이 오르며 새로 추가된 상품들이 보였다.
최하급 마정석. 마법 아이템 및 아티펙트 제작에 쓰이는 재료 아이템이다.
마법사나 제작 스킬을 지닌 플레이어에겐 유용하겠지만, 정도현에겐 당장 쓸모가 없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사둬야지.’
하루에 10개. 고작 10원. 당장 쓸 곳은 없어도 나중에 필요해질지 모른다.
「무투의 기초」처럼 나중엔 마법이나 아이템 제작과 관련된 스킬북을 팔 수도 있으니.
정도현은 다른 신상품을 꺼내 살펴봤다.
[최하급 성장 가속 포션] [소모 아이템]
- 사용 시 30분간 20%만큼 추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다른 아이템의 효과와 중첩되지 않습니다.
···
경험치를 무려 20%나 추가로 얻는 물약.
경매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한 병에 수백만 원으로, 중상급 포션과 비등한 가격이었다.
손재주 좋은 생산직 플레이어와 연금술사들이 괜히 돈을 잘 버는 게 아니었다.
저레벨 플레이어는 살 마음이 뚝 떨어질 정도의 가격대.
그는 그걸 하루에 5개씩 살 수 있었다.
‘나중엔 더 많이 살 수 있을 거고.’
처음엔 100개만 팔았던 최하급 포션이 이제는 150개씩 입고된다.
상점 레벨이 오르면 판매 수량도 함께 늘어나는 모양이다.
쭉쭉 성장해갈 생각에 정도현은 싱글벙글 웃었다.
‘던전을 더 돌고 싶은데 좀 아쉽네.’
정도현은 중간중간 회복 포션을 마셔둬서 아직 여력이 남았다.
비슷한 난이도의 던전은 두세 번 정도는 더 돌 수 있다.
하지만 저레벨 플레이어는 던전 출입이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된다.
관리국이 직접 정한 방침이었다.
욕심 부리다 죽는 경우가 많아서란다.
‘아쉽지만 당분간 참아야지.’
***
그로부터 보름이 흘렀다.
그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적정 레벨대의 던전을 돌며 12레벨을 달성했다.
송정민이 지닌 일감이 떨어지면 다른 브로커를 소개받았다.
던전에 혼자 들어간다는 조건이라 수수료를 두 배 이상 떼였지만 정도현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겐 그깟 돈 몇 푼보단 레벨업이 더 중요했으니까.
“자네 괜찮나?”
“···예.”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눈이 퀭하잖아.”
정도현은 이른 아침부터 송정민의 사무소를 찾아왔다.
드디어 관리국이 15레벨 던전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가를 그에게 내줬다.
이제 더 많은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그런데 기쁜 소식과는 별개로 그의 컨디션은 썩 좋지 못했다.
송정민은 유심히 살펴보더니 혀를 찼다.
“보름 내내 몬스터만 죽였으니 지치지.”
“푹 자서 괜찮은데요.”“몸 말고 정신이 고된 거야.”
송정민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회복 포션을 퍼마신 덕에 그의 육체는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지만, 마음은 서서히 지쳐갔다.
송정민은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은 푹 쉬어. 며칠 더 쉬다 와도 좋고.”
“···따로 할 것도 없는데요.”
“정 할 게 없으면 할아버지라도 만나고 오던가. 나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송정민은 그렇게 말하곤 씁쓸하게 웃었다. 그 말에 정도현의 독한 눈빛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칠 년 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어. 병에 걸렸지.”
당시 송정민은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래서 동료들이 부르는 별명도 수전노였다.
아내의 치료에 드는 포션값을 대려면 거의 매일 던전을 들어가야만 했다.
그땐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포션도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병의 진행을 늦추고 통증을 완화하는 게 고작이었다.
“바빠서 병문안도 자주 못 갔어. 겨우 시간을 내도 얘기하다 꾸벅꾸벅 졸곤 했지. 아내는 그때마다 날 깨우지 않고 자게 내버려 뒀어. 힘든 건 피차 마찬가지였을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잖습니까?”
정도현이 심심한 위로를 표했다.
송정민은 수긍 대신 고갤 저었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그의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정도현이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요. 오늘은 할아버지 뵈러 내려갈게요. 일정은 내일 오후로 미뤄줘요.”
“잘 생각했어.”
송정민은 부드럽게 웃으며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고속 열차표였다. 상당히 비쌀 텐데.
이런 기회가 생기면 건네려고 미리 준비해둔 모양이다.
정도현은 감사를 표하며 표를 챙겼다.
고속 열차를 이용하면 세 시간 안에 도착하리라.
정도현이 사무소를 나서려 하자 송정민이 덧붙여 말했다.
“설마 맨손으로 내려갈 생각은 아니지? 선물도 준비해야지.”
“선물요?”
그건 미처 생각 못 했다.
뭘 드려야 할아버지가 좋아하실까?
곰곰이 생각해보던 정도현은 뭔가가 떠올랐다.
***
정도현의 할아버지, 최진영은 요새 허하고 울적했다.
정도현이 E구역으로 떠난 지 이제 보름 됐는데, 몇 달은 족히 지난 기분이었다.
“쓸쓸하구만···.”
그는 손자에게 신신당부했다.
제대로 자리 잡기 전까진 연락만 하고 직접 내려오지 말라고.
혹시나 손자의 발목을 붙잡을까 봐 그랬다. 그런데 인제 와서 후회됐다.
손자 얼굴이 너무 보고 싶었다.
“이 귀한 걸 잔뜩 보내주고.”
며칠 전에 정도현이 택배를 보냈다.
최진영은 상자를 뜯어보곤 놀라서 까무러쳤다.
안에 든 건 최하급 회복 포션. 심지어 백 개가 훌쩍 넘었다.
동봉된 쪽지에는 매일 아침에 한 병씩 마시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보면 값싼 건강 음료인 줄 알겠다.
“그래도 거기서 잘 적응하고 있구나. 다행이야 정말···.”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
자식은 자신들보다 더 잘살길 바란다.
최진영은 그렇게 중얼대며 TV 전원을 켰다.
조그만 화면에 상위 구역의 주민들이 나왔다.
잘생고 예쁜 배우들의 연기에 점점 빠져들 때쯤.
“할아버지! 저 왔어요!”
“···!”
밖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정도현이었다.
최진영이 버선발로 집밖을 뛰쳐나왔다.
대문을 열자 정말로 정도현이 서 있었다. 최진영은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손주를 반겼다.
“아니, 도현아. 연락도 없이 웬일이냐?”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요.”
“그랬구나. 근데 손에 든 건 뭐니?”
“별 건 아니고 선물이에요.”
“선물?”
정도현은 손에 들고 있던 길쭉한 가방을 내밀었다. 안에 살아있는 뭔가가 들었는지 조금 들썩거렸다.
최진영은 뭘까 싶어서 가방 안을 들여다봤다.
안에 든 건 새하얗고 조그만 털뭉치였다.
“이거 강아지 아니냐?”
“예. 혼자 있으면 적적하실 것 같아서요. 게다가 예전에 키우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개를 키우려면 돈이 제법 들어서 일부러 안 키웠었다.
정도현은 가방을 열어 새하얀 털뭉치를 풀어줬다.
이름도 없는 강아지가 짤막한 꼬릴 열심히 흔들며 최진영 품에 안겼다.
최진영은 강아지의 얼굴을 살살 쓰다듬었다. 선물이 마음에 쏙 드는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빠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시간 내서 내려올게요.”
“아유, 그럴 필요 없다. 너도 점점 바빠질 텐데, 괜한 곳에 심력 쓰지 말고···.”
“달에 하루 정도는 괜찮아요. 그리고 중간중간 푹 쉬어야지. 안 그럼 이 바닥에서 오래 못 버텨요.”
정도현의 너스레에 최진영도 못 이기는 척 고갤 끄덕였다.
둘은 보름간 만나지 못해 쌓인 회포를 풀었다.
최진영은 강아지한테 ‘뭉치’란 이름을 지어줬다.
녀석이 떠는 재롱을 구경하던 중 정도현이 말했다.
“저 없는 동안에 무슨 일 없었죠?”
뭉치의 턱을 긁어주던 최진영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그 어색한 반응에 정도현은 문제가 있었음을 눈치챘다.
집요하게 캐묻자, 최진영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실토했다.
“지난주부터 이 동네 애들이 한 명씩 실종됐단다.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애들이 실종됐다고요?”
지난주부터 지금까지 무려 넷이나 실종됐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간밤에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괴한한테 납치된 게 아니냐면서 마을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며칠 전부터 동네 주민들이 불침번이랑 경계를 섰는데···.”
“범인을 봤데요?”
“아니. 새벽에 깜빡 잠들었다더구나. 하필 그때 범인이 왔다 간 모양이야.”
“경계 서던 사람들이 다 잠들었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그래.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상한데.’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같은 시간에 깜빡 졸다니.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수상했다.
‘플레이어의 짓이다.’
졸음을 유발하는 주문이나 아이템 따위를 쓴 거겠지.
아이들을 납치해 무슨 짓을 꾸미는 걸까.
“관리국은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관리국 처리반이 마을 근처를 싹 뒤졌는데 발견 못했다더구나. 무사해야 할 텐데.”
관리국 요원들은 일 처리가 항상 늦었다.
그나마 범인이라도 잡히면 다행이지.
대부분 대충 찾는 시늉만 하다 철수한다.
세금도 안 내는 빈민촌 아이들이야 몇 명쯤 사라져도 관리국 입장에선 상관없겠지.
납치범도 그렇게 여기고 이번 범행을 계획했을 것이다.
“제가 한 번 찾아볼게요.”
최진영은 위험하니 처리반한테 맡기자고 했다.
하지만 정도현은 그런 놈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더 위험할 것 같았다.
지금은 아이들만 노리고 있지만, 나중엔 뭔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휘말리면···.’
그러고 보니 어떤 소문을 들은 적 있다.
흑마법사. 그들은 자신의 마법 연구에 혈안이 된 족속이다.
그래서 사람을 종종 납치해 생체 실험을 자행한다.
‘아이들만 납치한 걸 보면 레벨은 그리 안 높을 것 같은데.’
고레벨 흑마법사였으면 이리 좀스럽게 행동할 리 없었다.
마을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납치해 실험 재료로 썼겠지.
그럼 놈이 사람들 눈을 피해 숨어 있을 만한 장소는 어딜까.
어쩌면 이미 멀리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아!”
정도현은 어릴 때 가본 장소가 문득 떠올랐다.
‘하수도.’
F구역 아래에는 윗구역에서 쓰고 버린 하수를 내보내는 수로가 있다.
처리 시설이 상당히 넓고 커서 작정하고 숨었다면 들키지 않을 것이다.
‘몰래 실험하기 딱 좋은 환경이야.’
***
정도현은 하수도로 내려왔다.
지하는 터널처럼 어두컴컴했지만 플레이어에게 이 정도 어둠은 문제없었다.
F-21 구역의 하수도 통로부터 수색하던 중 그는 누군가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정도현은 범인의 것일지도 모를 흔적을 뒤쫓아 미로 같은 수로를 헤맸다.
그렇게 한 십 분 정도 걸었을까.
다른 구역으로 이어지는 세 갈래 길이 나타났다.
그런데 맨 오른쪽 통로에서 불빛이 아른거렸다.
“누구냐!”
오른쪽 통로에서 뛰쳐나온 네 명의 남녀. 복장으로 봐선 관리국 요원들 같았다.
그들은 정도현을 빙 둘러싸고 바짝 경계했다.
요원들 중 레벨이 가장 높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말했다.
[이현수][LV.18]
“처리반의 이현수 팀장이다. 죽기 싫으면 당장 시민증 꺼내.”
상당히 고압적인 말투였지만, 정도현은 익숙했기에 군말 없이 시민증을 내밀었다.
원래 F구역 요원들은 대부분 저렇게 불친절했다.
이현수 팀장은 시민증을 훑어보곤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엔 왜 기어들어 왔지? 수상쩍게.”
“요원님들도 아시겠지만 제가 살던 동네 아이들이 실종됐습니다. 여기 아니면 숨을 곳이 없을 것 같아서···.”
정도현의 설명에 이현수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번 사건은 우리가 며칠 전부터 조사 중이었다. 방해하지 말고 꺼져.”
“저도 돕겠습니다.”
정도현은 요원들의 레벨을 쭉 살펴보곤 그렇게 말했다.
팀장인 이현수를 제외하면 요원들의 평균 레벨은 10 언저리.
저들을 믿고 그냥 돌아가자니 영 불안했다. 흑마법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돕긴 뭘 도와? 각성한 지 한 달도 안 된 주제에. 괜히 우리 발목 잡지 말고 그냥 꺼져!”
이현수 팀장은 소릴 빽 지르며 파리를 내쫓듯 손을 휘저었다. 바로 그때.
끼에에에엑-!
왼쪽 통로에서 기이하고 섬뜩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아이들의 비명 같았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요원들.
몇몇이 손전등으로 통로를 비췄다.
쿵쿵! 쿵쿵!
통로 저편에서 뭔가가 빠르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요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괴, 괴물이다!”
“씨발! 저게 뭐야?”
[흑마법사의 실험체][LV.21]
달려오는 건 시뻘건 고깃덩이처럼 생긴 괴물이었다.
옆구리 부근에 사람과 짐승의 팔다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놈은 그걸 써서 거미처럼 움직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웠다.
“끼에에에엑-!”
둥그런 몸통 위에는 사람의 머리통이 몇 개씩 달려 있었다.
머리 크기로 봐선 어린애 같았다.
눈에선 피눈물이 줄줄 흘렀고 쩍 벌어진 입에선 고성이 튀어나왔다.
“튀, 튀어!”
이현수 팀장과 요원들은 괴물을 보더니 기겁하며 도망쳤다.
하지만 정도현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칼을 뽑으며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늦어서 미안해.”
정도현은 괴물로 변해버린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
우어어어-!
괴물은 옆구리에 달린 팔다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정도현은 땅을 박차며 높이 도약했다.
괴물의 공격을 피한 그는 뚝 떨어지면서 힘껏 검을 내리쳤다.
서걱-!
한 줄기 섬광과 함께 실험체의 몸뚱이가 반으로 찢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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