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원 상점 - 04화
정도현은 기절한 강용식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무소로 돌아왔다.
툭.
강용식을 바닥에 대충 던져놓자, 송정민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이겼지?”
송정민이 표정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
그가 아는 상식으론 4레벨이 14레벨을 꺾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정도현은 그걸 보란 듯이 해냈다.
“운이 좋았죠. 방심한 틈을 잘 노렸습니다.”
그 말에 송정민은 피식 웃었다.
“이건 운으로 될 영역이 아니야.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군.”
얼추 감이 왔다. 정도현이 그걸 갖고 있다면 말이 된다.
“개인 특성인가?”
“개인 특성?”
정도현은 모르는 척 연기했다.
하지만 송정민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노련한 사내였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 아무한테도 발설 안 할 테니까.”
“···.”
“아, 개인 특성이 뭔지 캐낼 생각도 없어. 넌 던전 공략을, 난 실적을 올리는 게 목적이잖아?”
송정민이 볼 때 정도현은 거목으로 자랄지도 모를 새싹이었다.
그런 고객이 제 발로 찾아와줬다. 그로선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그런데 정도현의 표정은 영 심드렁했고 눈빛엔 불신이 가득했다.
“내가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찰 멍청이로 보이나?”
“아뇨. 하지만 바로 믿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정도현은 기본적으로 남을 믿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F구역의 악질들에게 시달리며 살아왔으니까. 자연스레 타인을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진정으로 마음을 연 건 할아버지뿐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피의 맹약서를 작성할 테니까.”
“···피의 맹약서?”
“들어본 적 없나? 플레이어들끼리 중요한 약속이나 거래를 맺을 때 쓰는 아이템인데.”
정도현이 모르는 눈치자 송정민은 인벤토리에서 둘둘 말린 양피지를 하나 꺼냈다.
“시스템의 힘이 개입된 계약서다. 계약 내용을 정하고 서로 서명하면 돼.”
“만약 조항을 어기면 어떻게 되죠?”
“형벌을 받게 돼.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지만, 보통은 죽는 걸로 설정하지.”
이런 아이템도 있었구나.
정도현은 속으로 안심했다.
이 계약서를 쓰면 적어도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테니까.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초짜 플레이어를 위한 팁글들에선 피의 맹약서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다른 브로커들도 이걸 써서 계약합니까?”
“아니. 막 들이미는 건 아니고. 중요한 일이나 전속 계약을 맺을 때만 써. 이거 가격이 좀 나가거든.”
“전속 계약이면···. 당신 말고 다른 브로커와 거래하면 안 되는 거죠?”
“그야 그렇지?”
“그건 곤란한데요.”
“곤란하다고?”
차원 게이트의 생성과 소멸 주기는 무작위였다.
생성된 게이트들은 관리국의 등급 판정을 받고, 각 구역의 브로커들에게 적당히 할당된다.
‘그러니 전속 계약을 맺으면 던전에 못 들어가는 공백기가 생길 거야.’
물론 플레이어는 그 며칠의 공백기를 휴가인 셈 치고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던전 공략 한 번 한 번이 플레이어의 심신을 지치게 만드니까.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하면서 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도현에겐 대량의 포션이 있었다.
지쳐서 쌓인 피로를 말끔히 회복시켜주는 마법과도 같은 물약.
그러니 남들보다 훨씬 오래 버틸 수 있다.
이유를 들은 송정민이 황망하단 표정을 지었다.
“며칠 쉬는 것도 아깝다고?”
“휴식은 최소화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전속 계약은 안 될 것 같네요.”
“마음은 알겠지만 그런 식으론 오래 못 버텨. 혹시 급전이라도 필요한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빨리 레벨을 올리고 싶어서요.”
욕심이 과했다. 아무리 재능과 개인 특성이 있어도 정도현은 고작 4레벨.
던전을 혼자 공략하는 건 그렇다 쳐도 휴식마저 최소화하겠다니.
마라톤으로 치면 시작과 동시에 전력 질주를 하는 꼴이었다.
“던전 공백기엔 다른 브로커랑 거래할 수 있게 해주세요.”
송정민은 이마를 꾹꾹 눌러대며 한참 고심했다.
저 요구는 그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항이었다.
정도현이 성장하고 소문이 퍼지면 다른 브로커들이 분명 접근할 테니까.
물론 송정민도 E구역에선 제법 잘나가는 브로커였다.
하지만 상위 구역에는 그보다 걸출한 브로커들이 차고 넘쳤다.
송정민이 한참 말이 없자 정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고레벨 플레이어가 되면 당신도 분명 이득을 보겠죠.”
송정민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 말대로 고레벨 플레이어와 연줄이 있는 브로커는 출세할 수 있었다.
송정민은 7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즉, 여기가 그의 한계였다.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모험을 해야 한다.
안전함만 추구해온 방식을 뒤바꿔야 했다.
송정민도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겁이 났다. 괜히 출세욕 부리다 손에 쥐고 있는 것까지 잃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무리해가며 고레벨이 되려는 이유가 뭐지? 넌 뭘 하고 싶은 건데?”
“···글쎄요.”
송정민의 당연한 질문에 정도현의 표정이 멍해졌다.
지금껏 먹고 살기에만 급급해서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돈? 명예?’
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정도현은 곰곰이 고민하다 문득 어릴 때 할아버지랑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너보다 어렸을 땐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지 않았단다. 빈부 격차가 있긴 했어도 지금보다 훨씬 덜했지.’
F구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
혹은 윗구역의 부모가 세금을 감당치 못해 버려진 아이들.
정도현은 깨달았다. 자신이 줄곧 뭘 하고 싶었는지를.
‘나처럼 버려지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어.’
3, 4등급 시민은 둘째 아이를 낳으면 세금을 몇 배로 문다고 했다.
게다가 피임 도구나 불임 및 낙태 수술도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힘들고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유지된다.
위의 정책들은 그 노동력을 채우기 위한 중앙 관리국의 방침이었다.
그렇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F구역에서 자라 죽을 때까지 일한다.
정도현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할아버지 말대로 부조리한 시스템이었다.
정도현은 그 제도를 뜯어고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힘이 필요했다.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힘이.
하지만 그런 속내를 대놓고 드러내면 반동분자로 찍힐 터.
“F구역 출신이라 계속 무시당하며 살아왔어요. 이젠 지긋지긋합니다. 겨우 얻은 인생 역전의 기회인데, 죽을 각오로 달려봐야지 않겠습니까?”
“멋진 각오군.”
적당히 둘러댄 변명이지만 송정민은 조금 감탄했다.
송정민은 한참 전에 자신의 재능과 한계를 받아들이고 레벨업을 포기했었으니까.
그는 보고 싶었다. 정도현이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 말이다.
“전속 계약은 없던 거로 하지. 대신 고레벨 플레이어가 되면 내 자리도 챙겨줘.”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잘해보자고.”
“예. 저도 잘 부탁합니다.”
두 남자는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다. 계약이 성립됐다.
***
정도현은 송정민의 도움으로 당분간 머물 곳을 구했다.
여유 자금은 그리 많지 않아서 좁고 컴컴한 반지하로 들어왔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 살았던 단칸방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적어도 생쥐나 벌레들이 버젓이 기어다니진 않았으니까.
새 보금자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정도현은 아침 일찍 일어나 송정민이 문자로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엊그제 발생한 차원 게이트. 그 앞엔 경계 근무를 서는 관리국 요원 두 명도 보였다.
정도현이 다가가 입장 허가권과 시민증을 내밀었다.
그들은 별말 없이 그를 안으로 들여 보내줬다.
그가 차원 게이트로 사라지자, 요원들 중 선임 쪽이 혀를 차며 말했다.
“F구역 놈들은 진짜 대가리가 텅텅 비었나?”
“그러게요. 혼자서 뭘 하겠다고···.”
“던전 몇 번 깨보곤 혼자서도 해볼 만하다 싶었겠지.”
요원들은 정도현의 선택을 비웃었다.
던전 안에선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잠깐 방심하다 죽거나 반병신이 되어서 돌아오는 일은 허다했다.
운이 좋으면 오늘은 무사히 돌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고 빠르고의 차이일 뿐.
정도현은 틀림없이 인생의 쓴맛을 보리라. 요원들은 그리 될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혼자 공략하러 들어갔다 화를 입은 플레이어를 몇 번이고 봤었으니까.
“야, 담배 걸고 내기할래? 그놈 살아서 나올지 아니면 죽을지.”
“전 십 분 안에 공략 포기하고 튄다에 걸겠습니다.”
“난 뒈져서 나오지도 못한다에 건다.”
정도현이 들어간 지 어느새 십여 분이 흘렀다.
기다리다 지루해진 선임 요원이 하품을 쩍 하며 중얼댔다.
“흐아암···. 그 새끼 벌써 뒤졌나 본데?”
십 분이 지났는데도 나올 기미가 없자 후임의 표정은 흙색으로 변했다.
반면에 선임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담배는 윗구역 주민들을 위해 생산되는 기호품이었다.
갱단 놈들이 조악하게 흉내 내서 만든 싸구려 말고, 제대로 된 건 가격이 만만찮았다.
“아오, 그 병신 새끼 진짜!”
그걸 한 갑이나 뺏기게 됐으니 후임의 입에선 욕설이 절로 나왔다.
선임 요원은 후임의 반응을 보며 킥킥 웃다 숨을 훅 들이켰다.
후임은 고갤 갸웃거리며 그를 불렀다.
“엥? 왜 그러십니까?”
“야야! 게이트!”
“예?”
후임이 고갤 돌려 차원 게이트 쪽을 살펴보곤 표정이 얼어붙었다.
차원 게이트가 마구 요동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저런 반응의 원인은 단 하나. 던전 보스를 누군가가 처치했다는 뜻이다.
요원들이 입을 쩍 벌리고 서로를 쳐다봤다.
“공략했어? 4레벨 혼자서?”
“말도 안 돼!”
아무리 최하급 던전이라도 그렇지.
4레벨 혼자 공략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할 수 있다 쳐도 고작 십여 분만에 보스까지 처치하는 건 불가능했다.
최하급 던전의 평균 공략 시간은 20~30분 정도. 그것도 3인에서 4인 파티 기준으로 말이다.
스스스-!
서서히 소멸해가는 차원 게이트를 뚫고 정도현이 현실로 돌아왔다.
시커먼 피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꼴로 봐선 방금까지 격전을 치른 모양.
요원들의 열렬한 시선을 느낀 걸까.
정도현이 지친 얼굴로 그들을 돌아봤다.
“왜 그러십니까?”
그가 말을 걸자 요원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움찔했다.
선임이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예?”
“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다.”
정도현은 괜찮다며 고갤 저었다.
방어구에 들러붙은 핏자국은 전부 몬스터가 흘린 거였다.
잇달아 싸우느라 좀 지쳤을 뿐 다친 곳은 없었다.
“그, 4레벨 맞으시죠?”
“예? 예. 허가증에 적혀 있었지 않나요?”
그러자 선임과 후임은 곤혹스러워했다.
그의 클리어 기록을 위에다 보고하면 아마 한바탕 난리가 날 거다.
“그, 그게···. 아직 13분밖에 안 지나서요···.”
“아.”
그 말에 정도현도 아차 싶었다.
첫 공략이라 긴장하고 흥분한 탓에 페이스 조절을 실패했다.
‘내가 너무 빨리 깨서 당황했구나.’
그가 들어간 던전은 5~6레벨 플레이어에게 적합한 난이도였다.
솔직히 그보다 어려운 던전을 들어가고 싶었으나, 정도현은 공략 경력이 아예 없어 이 이상의 허가를 받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4레벨 혼자 십여 분만에 깰 난이도는 아니긴 했다.
정도현은 어떻게 둘러댈지 머릴 굴려봤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봤던 정보가 떠올랐다.
“이 던전, 몬스터가 몇 마리밖에 없더군요.”
“예?”
“그게 무슨···.”
“보스 몹이랑 그린 고블린 대여섯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아!”
선임도 어디서 들어본 정보가 머릿속에 번뜩였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꽝이라 부르는 던전이 있다고.
보통 던전은 일반 몬스터가 다수 출몰한다.
하지만 간혹 소수 정예처럼 변종 몬스터만 나오는 변종 던전도 있었다.
변종 몬스터는 레벨에 비해 강력하거나 특수 능력을 지녀 토벌하기 까다로웠다.
그 대신 일반 몬스터보다 비싼 아이템을 떨굴 확률도 높았다.
하지만 확률이 높다 해서 무조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즉, 재수 없으면 경험치도 조금밖에 못 얻고, 아이템도 못 건진 채 빈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로 변종 던전은 꽝 취급을 받았다.
될 놈은 된다고 간혹 대박을 터트리는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변종 던전이었나 보군요.”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정도현의 공략 기록은 대단히 빨랐다.
‘이 사람, 아예 타고났구만.’
선임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는 정도현에 대한 평가를 실시간으로 수정했다.
뭣도 모르고 날뛰는 머저리가 아니라, 타고난 싸움꾼이라고.
고레벨 플레이어는 노력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저런 재능이 반드시 필요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엄청난 괴물이 되겠어.’
정도현. 선임은 그의 이름을 또 듣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선임이 공략 기록을 보고하려 통화를 걸려던 찰나. 정도현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저기, 요원님. 한 가지 부탁 좀 해도 될까요?”
“아, 그럼요! 편하게 말씀하시죠.”
“제 공략 기록. 적당히 늦춰 줄 수 있을까요?”
“예? 어, 어째섭니까?”
“관리국에서 주시하면 좀 피곤할 것 같아서요.”
공략 기록을 늦춰달라니?
물론 요원들 뒷주머니에 돈을 넣어주고, 공략 기록을 슬쩍 조작하는 건 왕왕 있었다.
하지만 다들 기록을 단축하려 하지, 그처럼 늘리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요원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 하나씩 건넸다.
“제 성의입니다.”
“아휴, 뭘 이런 걸 다···.”
정도현은 마법 재료 아이템, ‘최하급 마정석’을 쥐여줬다.
몬스터를 처치하다 보면 종종 습득하는 아이템으로, 마탑 지부에 넘기면 개당 이십 만 원은 챙길 수 있었다.
그 돈이면 최고급 담배를 대여섯 갑 사고도 남는다.
요원들은 이게 웬 떡이냐며 헤벌쭉 웃으며 챙겼다.
하지만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정도현이 건넨 게 1원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이란 걸.
‘어차피 난 되팔지도 못하니까.’
정도현은 겨우 2원만으로 관리국의 요원들을 구워삶았다.
거래 페널티도 걱정할 필요 없었다.
‘기록을 단축한 게 아니라 늘렸으니까.’
관리국은 공략 기록으로 플레이어의 점수를 평가한다.
공략 기록을 늦추면 평판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더 좋아질 일은 없었다.
그럼 이득을 본 게 아니므로 페널티도 발동하지 않을 터.
‘다음 공략 땐 흥분하지 말고 조금 힘을 빼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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