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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3화 (3/240)

나 혼자 1원 상점 - 03화

“정도현 님. 각성을 축하드립니다.”

정도현은 F구역 관리국에 들렀다.

플레이어가 된 걸 알리고 새로운 시민증을 발급받기 위함이다.

[정도현] [식별 번호: AD396571]

[3급(임시)]

[각성 여부: O]

[출생지: F-21A]

···

시민 등급이 5에서 3급으로 바뀌었다.

물론 아직은 임시였다.

석 달간 법을 어기지 않고 세금도 착실하게 내야만 정식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사람이 갑자기 힘을 얻으면 더러 엇나가기도 하니까.

그래도 감개무량했다. 평생 5급 시민으로 살다 죽을 줄 알았는데.

그는 마침내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섰다.

“저희 관리국 처리반에 들어오시면 세금 감면과 각종 혜택들이···.”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던전 공략 쪽을 노리시는 겁니까?”

“예.”

정도현은 관리국 요원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했다.

1원 상점이 아니었다면 솔깃했을 것이다.

관리국 요원은 대부분 던전에 들어가지 않고 게이트 붕괴로 튀어나온 몬스터들만 처리한다.

레벨 성장은 느려도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거기다 관리국에서 여러 편의도 봐준다.

하지만 정도현의 목표는 고레벨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그···. F구역 출신은 윗구역 플레이어들한테 좋은 취급을 못 받습니다. 차별과 배척을 당연시하고, 대부분의 길드나 파티가 동료로 받아주려 하질 않아요.”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관리국 요원은 정도현을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윗구역은 F구역 출신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고.

하지만 정도현의 이글대는 눈빛을 보더니 미련없이 포기했다. 그의 욕망을 읽어낸 모양이다.

‘저런 부류는 말로 해선 절대 못 알아먹지.’

요원이 볼 때 정도현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부딪치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저런 스타일은 윗구역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F구역 태생이 고레벨 플레이어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마저도 대다수가 레드 플레이어였다.

요원은 떠나려던 정도현에게 마지막으로 충고했다.

“한두 달 지나면 레드 플레이어들이 당신한테 접근할 겁니다. 자기 길드에 영입하려고요.”

레드 플레이어들과 어울리면 관리국의 플레이어 혜택이 사라지고,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제안을 거부하면 죽이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현은 태평하게 대답하곤 떠났다.

요원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더니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저래선 얼마 못 버티겠지.”

***

정도현은 태어나 처음으로 E구역 땅을 밟아봤다.

고작 한 단계 차이인데도 도시 규모와 건물의 높이가 배 이상 차이 났다.

주민들의 행색도 멀끔했다.

정도현이 지나가자 E구역 주민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며 수군댔다.

그의 추레한 모습을 보곤 어디 출신인지 눈치챈 것이다.

모멸에 찬 눈빛들이 화살처럼 빗발쳤다. 하지만 정도현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어차피 다 일반인이야.’

그에게 뭐라 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는 하나같이 텅 비어 있었다.

플레이어가 아니라 일반인이란 뜻.

그와 저들의 차이는 좀 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느냐 아니냐일 뿐.

그 차이는 사소했다. 플레이어가 됐으니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음, 여긴가?”

정도현은 던전 브로커들이 도착했다.

던전 브로커. 그들은 관리국의 하청을 받아, 플레이어의 수준에 맞는 던전을 중개해주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던전에 들어가려면 던전 브로커 몇 명과 물꼬를 터놓는 게 편했다.

플레이어 개인이 관리국한테 던전 입장 허가를 받아내려면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평판 좋은 브로커들부터 쭉 돌아보자.’

정도현은 파티 단위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F구역 출신이란 이유로 온갖 혐오와 차별을 당할 바엔 그 혼자 도는 편이 낫다. 성장도 빠를 거고.

문제는 던전 브로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저레벨 플레이어 혼자 던전에 들어가는 건 누가 봐도 자살 행위였으니까.

‘플레이어가 죽으면 그 던전의 난이도가 오른다지?’

플레이어가 죽으면 던전의 몬스터들 레벨도 점차 성장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차원 게이트가 무너지면 큰 낭패였다.

그렇기에 브로커들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에게 파티 플레이를 강력히 권고했다.

정도현의 요구를 접한 던전 브로커들의 반응이야 안 봐도 뻔했다.

“뭐? 너 혼자 공략하겠다고?”

“이거 순 미친 새끼 아냐. 썩 꺼져!”

“이보쇼, 죽으려 환장했어?”

“당장 나가!”

“F구역 출신이 자기 주제도 모르고!”

몇 군데나 들렀지만 바로 쫓겨났다.

F구역 출신에 레벨도 낮아서 그런가.

정도현의 요청에 브로커들은 그를 대놓고 비웃거나 불같이 화를 내며 쫓아냈다.

정도현은 굴하지 않고 다른 사무소를 돌아다녔다.

‘신뢰할 수 있는 던전 브로커가 필요해.’

평가 점수가 높았던 사무소 대부분이 지뢰였다.

불친절하거나 갑질을 해대는 건 기본이고, 그의 얘길 조금도 들어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F구역 출신이라 더 심한 걸지도 모른다.

차라리 잘됐다.

그가 잘나가게 될 때 손을 비비며 다가와도 바로 거를 수 있으니까.

그가 바라는 브로커는 저레벨 플레이어란 이유만으로 무시하지 않고 이야길 들어줄 수 있는 도량을 지닌 사람이었다.

“실례합니다.”

똑똑!

정도현은 열 몇 번째 사무소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들어오라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송정민][LV.23]

문을 열자 덩치가 곰처럼 큰 중년 사내가 앉아 있었다.

던전 브로커, 송정민은 피고 있던 담배를 끄고 정도현을 아래위로 살펴봤다. 그가 말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신입인가?”

정도현은 임시 시민증을 내밀었다.

송정민은 대충 알 것 같단 표정을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F구역 출신이었군. 다른 사무소 놈들은 안 받아주거나 푸대접했겠지. 걱정하지 마. 난 그런 놈들이랑 다르니까. 출신지로 차별 안 해.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건 능력이지.”

송정민은 그에게 앉으라며 자릴 권했다.

이번엔 느낌이 좋았다.

정도현은 사무소 직원이 내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가 일터에서 뽑아 마시던 싸구려 커피보다 훨씬 풍미가 깊었다.

“그래, 당분간 머물 곳은 구했나? 언제부터 일할 예정이지?”

“집은 아직 못 구했고, 던전 일정은···. 최대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네요.”

“의욕 넘치는 건 마음에 드는군.”

송정민은 비슷한 수준대의 파티 몇몇을 추천해줬다.

정도현은 고갤 저으며 속내를 밝혔다.

“전 혼자 공략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송정민의 눈썹이 작게 꿈틀했다. 그는 머릴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혼자 하려는 이유가 뭐지?”

“빨리 성장하고 싶으니까요. 파티원들에게 차별이나 무시당하는 것도 싫고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무섭지 않냐는 송정민의 질문에 정도현은 고갤 저었다.

죽음은 두려웠다. 하지만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걸어야만 한다.

그가 F구역에서 배운 인생의 법칙이었다.

“흐음···.”

송정민은 턱수염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혼자서 던전에 들어가겠다니.

사리 분별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마수 가죽 보호구를 입고 있어. 4레벨이 끼고 다닐 만한 아이템은 아닌데.’

아무래도 모아둔 돈을 전부 쏟아부은 모양.

F구역 태생이 그만한 돈을 모을 정도면 보통 독종이 아닐 터였다.

“브로커에게 중요한 건 전담하는 플레이어 머릿수가 아니야. 그보단 던전 공략률과 플레이어의 무사 생환이지.”

“관리국이 그걸 토대로 브로커들의 점수를 매기는군요?”

“그래. 평판이 깎인 브로커는 자격을 박탈당하지. 그래서 대부분 고객을 가려서 받아.”

관리국이 바라는 건 던전을 확실하게 공략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레벨 플레이어를 혼자 들여보내 죽게 만들었다?

점수가 확 깎이거나, 브로커 자격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

“공략은 못 하고 와도 괜찮아. 하지만 죽으면 절대 안 돼. 그러니 한 번 증명해봐. 네게 살아 돌아올 저력이 있는지.”

“증명? 어떻게요?”

“용식아.”“예, 사장님.”

아까 커피를 타준 사무소 직원이 다가왔다. 송정민 못지않게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몸매의 사내였다.

[강용식][LV.14]

송정민한테 집중하느라 미처 몰랐는데, 이 남자도 플레이어였다.

14레벨.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정쩡한 수준이었다.

아마 죽는 게 두려워 레벨 성장을 포기한 듯했다.

“용식이가 자네 실력을 테스트해줄 거야.”

“이기면 됩니까?”

“뭐? 푸하핫! 이거 웃기는 양반일세?”

정도현의 질문에 강용식이 껄껄 웃었다.

4레벨과 14레벨. 그 싸움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브로커 송정민은 슬며시 웃으며 고갤 저었다.

“이길 필요는 없고. 5분간 기절 안 하고 버티면 인정해주지.”

“에이, 5분은 무슨. 3분이면 충분합니다, 사장님.”

강용식이 으스대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정도현은 고갤 끄덕이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근처에 공터 있으니 거기서 한 판 붙고 와. 단, 무기랑 급소를 노리는 건 금지. 필요 이상의 폭력도 마찬가지.”

“아무렴요.”

송정민은 강용식을 빤히 보며 말했다.

적당히 하란 의미였다.

하지만 강용식은 간만에 하룻강아지를 괴롭힐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

송정민은 이번엔 정도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통과 못 하면 파티원을 구하거나 F구역으로 돌아가. 그 실력으로 혼자 활동하면 오래 못 살아남으니까.”

괜한 고집부리다 죽을 바엔 관리국 요원으로 사는 편이 나을 거다.

송정민은 그렇게 말하며 나가라 손짓했다.

강용식은 실실 웃으며 정도현을 공터로 인도했다.

***

정도현과 강용식은 사무소 근처 공터에 도착했다.

‘멍청한 자식.’

강용식은 몸을 푸는 정도현을 같잖게 바라봤다.

그는 과거에도 몇 번 상대했었다.

혼자 던전에 들어가겠다던 고집불통 멍청이들을.

‘그래도 그놈들은 10레벨은 찍고 그런 소릴 했으니 양반이지.’

하지만 정도현은 딱 봐도 던전 몇 번 못 들어가 본 초짜였다.

4레벨에 경험도 부족한 놈 혼자 던전에 들어가겠다니. 미친 소리다.

“하여간. F구역 놈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이쪽 사무소는 출신으로 차별 안 한다고 했지 않았나요?”

“아이고. 그건 우리 사장님만 그렇고요. 난 아니걸랑.”

뚜두둑!

강용식이 주먹을 주무르며 위압적인 소릴 냈다.

정도현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를 빤히 응시했다. 오히려 주먹을 치켜들며 격투가처럼 자세를 잡았다.

“···!”

그의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확 바뀌었다.

랫맨과 싸웠을 때의 엉성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제법 싸워본 티가 났다.

‘무투의 기초 덕분이야.’

도핑제와 함께 구매했던 스킬북, 「무투의 기초」.

정도현은 그걸 써서 패시브 스킬을 습득했다.

그러자 각종 무기와 맨손 격투를 어느 정도 능숙히 할 수 있게 됐다.

“···흥. F구역에선 좀 놀았나 보지?”

강용식은 속으로 조금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가 콧김을 훅 뿜으며 성큼성큼 다가온다.

“어디 실력 좀 볼···.”

타앗-!

정도현은 땅을 박차며 그의 말을 끊었다.

4레벨답지 않은 속도에 강용식은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어?”

퍼억!

강용식은 가까스로 가드를 올려 펀치를 막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묵직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팔뼈가 욱신거렸다.

“이 새끼가!”

사람이 얘길 하는데 기습하다니.

강용식은 욕설을 뱉으며 반격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매섭게 날아드는 주먹.

하지만 정도현에겐 날아드는 궤적이 빤히 보였다.

샥-!

그는 상체만 슬쩍 움직여 피했다. 마치 프로 복서 같았다.

설마 피할 줄이야. 강용식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주먹을 크게 내지른 탓에 자세가 흐트러졌고 옆구리가 훤히 드러났다.

정도현은 거기로 주먹을 팍 꽂아 넣었다.

“억···!?”

아찔한 통증에 강용식이 짤막한 비명을 토해냈다.

정도현은 공터로 오면서 은근슬쩍 최하급 도핑제를 사용했다.

능력치가 30씩 상승해 모든 스탯은 50을 넘긴 상태.

그 덕에 능력치만 놓고 본다면 14레벨인 강용식에게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

상대와 레벨 차이가 나면 데미지가 줄어드는 시스템 페널티가 있지만 그 정도는 소소했다.

‘쓰러질 때까지 패면 돼.’

퍽! 퍼억!

정도현은 샌드백을 두들기듯 연타를 날렸다.

강용식은 이를 악 물고 버티며 반격했지만 그런 빤한 공격에 당해줄 만큼 정도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새끼 뭐야!’

뒤로 밀려난 강용식이 침을 질질 흘리며 복부를 부여잡았다. 내장이 배배 꼬인 느낌이었다.

빠악!

정도현은 주먹을 날리는 척하다 기습적으로 로우킥을 먹였다.

강용식이 버티지 못하고 무릎 꿇었다.

그가 그대로 마무리 일격을 날리려던 순간. 강용식이 다급히 외쳤다.

“자, 잠깐만! 져, 졌어. 내가 졌다고!”

멈칫.

정도현의 주먹이 얼굴 앞에서 딱 멈췄다.

그 틈에 강용식은 땅바닥의 모래를 움켜쥐고 앞으로 쫙 흩뿌렸다.

암기처럼 날아드는 모래알. 정도현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몇 걸음 물러섰다.

강용식이 비열한 미소를 머금고서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넌 뒤졌···!”

퍼억-!

강용식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가 땅바닥에 꽂혔다.

정도현은 눈에 모래가 들어가 앞이 잘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발차기를 날렸다.

그게 강용식의 관자놀이에 꽂혔다.

바닥에 고꾸라진 강용식은 그대로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했다.

정도현은 꺼끌꺼끌한 눈을 비비며 중얼댔다.

“후, 덕분에 좋은 거 하나 배웠네.”

실전에선 절대 자비를 베풀어선 안 된다는 걸.

강용식의 레벨이 더 높았으면 그가 졌을지도 모른다.

정도현은 절대 이런 실수를 거듭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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