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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87화 (에필로그) (187/187)

< 에필로그 [제국실록(帝國實錄) 총리전(總理傳)] >

제국실록(帝國實錄)

제국의 수립 : 실록 본문 참고

총리전(總理傳)

[2대 총리(總理) 삼봉 정도전]

초대 총리 왕선의 남자라고 불린다. 그는 전주 시절부터 왕선의 제일 군사로 활약하면서 제국의 수립에 깊게 관여했다. 왕선의 집권기에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시절의 정도전에 관한 내용은 실록 본문을 참고하길 바란다.

본 총리전에서는 그의 집권기를 중점으로 다룬다.

2대 총리로 취임한 정도전의 제국이 제일 가치로 내건 건 ‘제국의 위상’이었다. 그가 이끈 제국의 10년은 실로 공세적이었다.

정도전은 그는 초대 총리 왕선이 내걸었던 중원 불간섭주의를 과감하게 엎고 칭제건원을 포기한 나라를 모두 제후로 삼았다. 하여, 하북 이남의 중원을 평정하려는 명국에게 강한 경고를 가했다.

무엇보다 그의 성향은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국의 황제 탕화가 노발대발하면서 국시를 선포했을 때 잘 나타났다. 탕화가 선포한 국시는 바로 ‘정한론’이었다. 즉 제국을 정벌하여 명 태조 주원장의 한을 갚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정도전은 외교적 해결을 일절 고려하지 않고 강대한 제국의 수군을 동원하여 오국의 해안을 일제히 타격했다. 이 공격으로 오국의 포구는 초토화되었고 감당하지 못한 탕화는 해안지역의 군영은 당연하거니와 백성까지 내륙으로 이동시켰다. 이처럼 감히 바다를 넘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실로 잔혹할 정도의 해안 봉쇄령이었다. 그랬다. 정도전은 제국의 힘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사관은 평한다.

[2대 총리 정도전은 제국의 힘을 아끼지 않았으니 그의 집권 10년 만에 제국은 하늘 아래 가장 두려운 나라가 되었다. 그야말로 제국의 기틀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위력은 훗날 제국의 번영에 실로 큰 힘이 되었다. 비록 정도전은 속이 좁고 옹졸했으나 국정의 책임성과 과단성은 하늘이 내린 것이었으니 그의 10년은 하늘이 제국에 내린 축복이었다.]

[3대, 4대 총리(總理) 포은 정몽주]

2대 총리 정도전의 외사랑이라고 불린다. 그는 제국 건설 이전 초대 총리 왕선과 치열한 대립을 했던 내부의 적이었다. 그러나 제국 건설 이후 보인 국정 운영의 전폭적인 협조는 그가 사사로운 욕심으로 정략을 펼친 게 아니라 강고한 신념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3대 총리로 취임한 정몽주가 내건 제국의 기치는 ‘제국의 안정’이었다. 그는 제국 내에 존재하는 본토인, 여진족, 몽골족, 한족을 아우르고자 쉬지 않고 정책을 펼쳤다. 일체의 차별을 없앴고 군현의 문화를 존중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그가 강제한 건 바로 글자였다. 초대 총리 왕선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미륵의 글자를 제국의 모든 백성이 익히게 하였다. 바로 이 부분에서 타협하지 않는 그의 성향이 도출됐다. 즉, 미륵의 글자를 익히지 않은 백성은 조세와 군역에서 크게 차별했다. 이는 큰 효과를 보았고 미륵의 글자는 명실상부한 제국의 글자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정몽주는 초대 총리 왕선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대동법을 현실적으로 조정하여 제국 전역에 집행했다.

아울러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고자 제국 곳곳을 도로로 연결하는 토목 공사를 단행했다. 그의 집권 후반기는 사실상 토목의 시기라고 불릴 정도였다. 또한, 그는 토목 공사를 요역이 아니라 철저하게 상단의 입찰로 진행했는데 이는 제국의 상단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내정에 집중한 정몽주였으나 국방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다. 화약 병기 제조과 기병의 육성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변방에는 강군을 배치했다.

이처럼 2대 총리 정도전과 다른 방침을 내걸었던 정몽주였는데 유일하게 같은 길을 걸었던 게 있다. 그것은 ‘정한론’을 국시로 삼은 오국에 대한 대대적인 파상 공세였다. 정몽주 역시 쉬지 않고 오국을 압박하는 해상봉쇄령을 펼쳤다.

그랬다. 정몽주에 이르러 제국은 반석에 올랐다.

사관은 평한다.

[초대 총리 왕선이 제국을 건설하고, 2대 총리 정도전이 제국의 힘을 구현했다면 3, 4대 총리 정몽주는 제국을 반석에 올렸다. 그의 집권 10년 동안 바야흐로 제국은 최고의 성세를 구가했다. 백성은 입을 모아서 태평가를 불렀으며 천하 만민이 부러워하는 진정한 천자국이 되었다. 또한, 외부의 누구도 제국의 국경을 쳐다보지 못했으며, 모든 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책봉을 청하고 조공을 바쳤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황금기였다. 일찍이 포은 정몽주는 뜻이 담대했고 배포가 넓었다. 항상 주변에 사람이 많았기에 국정을 이끌었던 시기에도 작은 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10년간 보인 성세는 누구도 넘볼 수 없었다. 하여, 그를 천년에 한 번 나올 만한 명재상이라 하여 천고일신(千古一臣)이라고 칭했다. 이는 조금도 과장이 없다.]

···(중략)···

[역대 최악의 총리(總理) 이균]

200여 년의 성세를 구가하던 제국에 적색 신호가 커진 건 이균에게 이르러서였다. 본래 그는 대단치 않은 능력을 갖췄는데 유일하게 뛰어난 것이 바로 불세출의 초대 총리 왕선도 기겁할 수준의 정치술이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간질을 해낸 인물이었다.

그는 조정 내부의 붕당 대립을 심하게 유발해서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 재임 기간 내내 통치보다는 권력의 유지에 몰입했는데 절대적인 총리의 권한을 사용하여 피의 숙청까지 일으켰다. 이는 제국 건설 이후 없었던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기겁한 재야의 인사들이 대대적으로 총리 퇴진 상소를 올리고 연좌를 펼쳤다. 말 그대로 제국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하늘이 제국을 시기했을까?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전쟁을 진행했던 바다 건너 위치한 추악한 오랑캐의 땅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무려 200년간 대립했던 오국과 왜국의 전쟁이 종결 난 것이다. 정한론을 국시로 삼고 있는 오국의 통일은 제국의 안위에 심각한 위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군웅할거가 지속했던 대륙도 청나라의 등장으로 통일이 가시화됐다.

제국은 말 그대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했다.

그런데도 이균은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구축하는데 몰두했으며 급기야 영세불변의 조종성헌이었던 제국 법전에 손을 대려고 했다. 5년 중임제의 총리가 아니라 종신제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혼란을 가중됐고 뜻있는 인사들의 총리 퇴진 운동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바로 이때 오국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제국을 공격했다. 이때 보여준 이균의 행보는 실로 엄청났다. 그는 방책을 수립하지 않고 소식을 접한 즉시 황도를 버리고 요동으로 도주한 것이다.

제국의 위기였다. 이는 고작 5년 동안 발생한 일이었다.

사관은 평한다.

[최악이다. 그의 집권 5년은 전지전능한 미륵의 글자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냥 최악이었다. 하여, 제국의 백성은 이균을 내린 하늘을 지금까지도 욕하고 있다. 진실로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 없는 광인(狂人)이었다.]

[제국을 구한 총리(總理) 류성룡]

영원한 성세를 이어갈 거라고 예측됐던 제국이 단 한 명의 미치광이로 위기에 처했을 때 등장한 건 구국의 명 총리 류성룡이었다.

그는 가히 정몽주의 재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미치광이 총리 이균을 탄핵한 직후 총리로 선출된 류성룡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몰아치는 오군의 공세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곽재우, 조헌 등의 명장을 후방에 투입하여 적의 보급선을 흔들었다. 그 직후 권율, 김시민, 정충신 등의 명장에게 명하여 오군의 육군을 격멸시켰다. 또한,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무명 장수를 발탁하여 오군의 수군을 모조리 수장시켰다. 바로 오국 본토를 초토화한 구국의 명장 이순신이었다. 이는 류성룡의 빛나는 여러 업적 중에서 최대 업적으로 칭송받는다.

류성룡의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청과 명으로 재편된 중원의 정세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이때 류성룡의 선택은 내부의 거센 저항에 봉착했다. 오랜 세월 우방이었던 명을 지원하지 않고 먼저 군사를 일으키는 나라를 적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완숙한 제국의 힘은 대륙의 전쟁을 억제했다. 이로써 광인(狂人) 이균이 초래한 사상 초유의 위기가 극복됐다.

사관은 평한다.

[하늘은 이균을 내리시고 류성룡을 내리셨기에 그나마 지금도 하늘에 대고 복을 비는 사람이 있다.]

[초대 총리(總理) 왕선]

:실록 본문 참고

사관은 평한다.

[고려를 태조 황제께서 여셨다면 제국은 왕선이 열었다. 그는 실로 비범하여 무엇하나 허투루 하는 게 없었다. 진실로 거인(巨人)이었던 그의 업적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그의 최대 업적은 ‘황제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기조로 표현되는 유사 이래 보지 못한 재상 총재제의 완벽한 구현이었다. 이는 영원한 제국의 시작을 알리는 위대한 행보였다. 단 한 명의 선택으로 제국의 정치는 치열했으나 추악하지 않았으며, 다퉜으나 존재를 인정했다.

···(중략)···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제국의 최고 성세는 그가 생존한 시기였다는 거다. 이는 사실상 제후국이었던 명이 왕선 사후 전과 달리 쉽게 통제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반면, 이를 통해서 그는 존재만으로 대륙을 좌지우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 그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초인(超人)이었다. 아니, 미륵이었다. 이에 사관은 그에게 인간의 언어로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찬사를 바친다.]

< 에필로그 [제국실록(帝國實錄) 총리전(總理傳)]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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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후기]

드디어 3달에 걸친 [내가 미륵이니라] 연재가 완결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건 정말 치열하게 이를 악물고 연재하는 거였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유료화 첫날 받은 성적이 정말 초라했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습니다. 제 역량이 허락하는 선에서 끝없이 에피소드를 생성하고 작게라도 질질 끄는 부분을 없애보려고 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제가 가장 중점으로 둔 화두는 ‘흑화’였습니다. 여말선초라는 혼란 시기에 무수한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할까? 그리고 그들이 권력과 가진 기득권에 초탈할 수 있을까?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캐릭터를 잡는 게 무척이나 어렵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제 그들에 대한 평가보다는 소설이 진행되는 전후 개연성을 바탕으로 ‘흑화’시켰습니다.

물론, 독자님들이 어떻게 생각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글의 수준을 만족하는 게 아니라 독자님들이 여기까지 함께 해주셔서 만족합니다.

비록 마지막에는 흐트러졌으나 전체적으로 연독률이 지켜지는 글을 처음 써보기도 했습니다.

또, 처음으로 독자님들과 소통하면서 글을 써본 거 같습니다.

또, 처음으로 작가라는 직업이 어떤 마음으로 연재에 임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내가 미륵이니라]는 성적과 무관하게 저에게 작가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알려준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많이 아낍니다.

비록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가장 아낍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2대 총리, 3대 총리까지 내용을 이어가려고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결국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괜히 질질 끌어대다가 글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요.

작가는 아쉬움이 남지만, 독자님들은 진한 여운이 남겨졌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앞으로도 독자님들께서 허락해주신다면 계속 이렇게 어울리겠습니다.

끝으로 여기까지 함께 해주신 모든 독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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