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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83화 (183/187)

< 183화 모든 것은 미륵의 뜻대로 >

하늘이 모든 역량을 퍼부어서 만든 땅이었다.

해서, 이 땅은 천하에서 가장 풍요로웠다.

바로 이 땅을 차지하는 이가 항상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천하만민(天下萬民)은 이 땅을 중원이라고 불렀다.

주로 중원의 주인은 한족(漢族)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풍요로운 땅이었기에 많은 세력이 노렸다.

거란족의 요나라가 그랬으며, 여진족의 금나라가 그랬다. 이처럼 어려움은 있었으나 한족은 중원의 패권을 온전히 넘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강대한 오랑캐 몽골족이 발호했다. 그들은 기어이 전역을 지배했으니 그야말로 한족의 시련이었다.

그러나 시련은 오래가지 않았다. 주원장이 거병하여 천한 오랑캐의 나라를 몰아내고 다시 한족의 나라를 세웠지 않은가.

그랬다. 한족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당당한 중원의 주인이었다. 어려움은 있었으나 최후의 승자는 항상 한족(漢族)이었다.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하다고 자부했다.

한데, 이는 한족의 위대한 역사에 아주 이질적인 사건이었다.

강대한 오랑캐의 침탈도 아니었다.

단지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에 불과하지 않은가.

바로 그 왜구에 의해서 위대한 한족의 나라, 명의 황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고작 왜구에 의해서 말이다.

그랬다. 이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미증유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정지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나세를 바라봤다.

“장군.”

“이르시오.”

“솔직히 말하리다. 해보고 싶소.”

“나 역시 그렇소.”

“하면?”

나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저 오만한 명의 황도를 점령하는 것이외다.”

“목숨을 걸겠소.”

“나 또한.”

“소장은 왜 빼시는 겁니까.”

마천목이 끼어들었다.

정지와 나세는 옅게 웃으면서 답했다.

“우리가 역사를 새로 쓰는 걸세.”

“반드시 이길 것이야.”

“물론입니다.”

바야흐로 고려 왜구의 총공세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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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

대경한 목영은 목에 사레가 걸렸다.

“왜, 왜구에 의해서 황도가 공격을 받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동구왕이 왜구를 토벌하고 있거늘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자세한 내막은 소인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현재 황도 자체의 병력은 왜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목영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렸다.

고려국과 몽골족 그리고 대월국도 부족해서 왜구까지 명의 영토를 탐내고 있지 않은가? 이는 그야말로 오랑캐의 범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군.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랬다. 지금은 결단이 필요했다.

당연히 남하하여 황도를 위협하는 왜구를 격퇴하는 게 합당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가볍게 물러날 줄 알았던 고려군이 진용을 갖추며 회전을 시사하고 있지 않은가.

만일 섣불리 남하를 도모하다가는 고려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가 있었다.

하여,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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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허. 고려 왜장들이 남경을 공격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허.”

이건 계획 어디에도 없던 일이었다.

그만큼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바람직한 변수였다.

“하하하. 우리 고려 왜장들이 기어이 해내는군!”

그랬다.

살얼음판을 걷듯 엄중한 정세에서 이보다 좋은 소식은 없었다.

이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만일 고려 왜구가 남경을 점령해서 명 황제 주원장의 수급이라도 취한다면?

그 즉시 명은 사분오열될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황제가 죽어도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여 종묘사직을 이어가겠으나 명은 아니었다. 고작 수십 년이 된 나라에 불과하지 않은가.

변안열이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장군. 어찌하실 겁니까?”

“작전을 바꾸지.”

이럴 때 굳이 무리하여 목영과 회전을 치를 이유는 없었다.

“목영의 발목을 잡는데 모든 역량을 투입할 것이네.”

그랬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고려 왜장들이 남경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종전의 쐐기를 박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최영이 해야 할 일은 고려 왜장들의 위대한 행보에 방해가 될 돌무더기를 치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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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왜구의 남경 공격 소식은 순식간에 연왕부까지 전해졌다.

“연왕 전하. 정세가 엄중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황도로 달려가야 합니다.”

장수들은 즉각 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왕 주체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하다가 대꾸했다.

“판단을 잘해야 하오.”

“연왕 전하.”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옥의 대군이 남하할 빌미를 줄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라는 말이오.”

“연왕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황도의 수성과 황상의 안위입니다.”

“산동 지역에 목영 장군이 있소.”

“고려군 최영의 대군에게 발목이 잡혀 있지 않습니까.”

“목영 장군 역시 사태의 위중함을 알고 있으니 남하하지 않겠소?”

“최영이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목영 장군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따돌리지 못할 겁니다. 자칫 회전이라도 치러야 한다면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음.”

“연왕 전하. 지금은 이렇게 고심할 때가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음.”

장수들이 계속 재촉했다. 그러나 주체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찌 결정하는 게 합당한지 판단이 쉽게 서지 않아서다.

실로 복잡한 상황이었다.

미륵의 가르침.

연왕부의 안위.

황도 남경과 부친인 명 황제 주원장.

복잡한 가치가 얽힌 탓에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연왕 전하. 이옥이 남하하더라도 황도가 온전하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황도에 변고라도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생길 겁니다.”

“예.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진인사대천명?

주체의 눈썹이 꿈틀였다.

“진인사대천명이라.”

“예. 연왕전하.”

“그렇군. 진인사대천명이군.”

주체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왕부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하고 원군을 보낼 것이외다.”

장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이 사람이 직접 갈 것이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정이었다.

연왕 주체가 직접 원군을 이끌고 간다면 단번에 왜구를 격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리되면 연왕부의 생존은 장담할 수 없다.

아니다. 필시 고려군의 말발굽에 짓밟힐 것이다. 그런데도 연왕은 황도의 안위를 선택했다. 실로 위대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장수들은 크게 탄복했다.

“소장들은 오늘을 잊지 않을 겁니다.”

“모두 준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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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 집요한 공세는 목영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황도가 왜구에게 위협받은 위중한 정세였는데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수적 우위를 이용한 저돌적인 돌격까지 감행했으나 고려군은 대응하지 않고 유격전만 펼쳤다.

목영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그때 연왕 주체의 남하 소식이 들렸다.

이는 실로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되었어. 이제 되었어.”

연왕 주체가 남하한다면 목영의 운신은 자유로워진다.

더는 최영을 뿌리치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즉, 애초 계획대로 산동 지역에서 최영과 전면전을 펼치면 되는 것이다.

이 소식은 최영에게도 전해졌다.

“연왕 주체가 남하한다?”

“예.”

최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장수들의 안색에는 근심이 어렸다.

“장군. 고려 왜구의 남경 공격이 벌써 제국의 황도로 전해진 건 아닐 겁니다.”

“예. 연왕 주체의 남하는 독단적인 결정이 분명합니다.”

“만일 그가 변심한 것이라면 남경 점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려 왜구가 전멸할 겁니다.”

곳곳에서 우려가 터져 나왔다.

최영은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혹시 연왕 주체로부터 연락은 없었나?”

“예. 아무런 기별이 없었습니다.”

“요동의 이옥에게서는?”

“그 역시 이 상황이 당혹스러울 겁니다.”

“음.”

최영은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고려 왜구의 남경 공격부터 계획은 틀어졌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러면 지금부터는 전장에 나선 장수의 판단이 모든 걸 좌우하게 된다.

“음.”

고민의 끝은 아주 지극한 현실이었다.

“연왕 주체가 변심했다고 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네.”

그랬다.

“아군은 목영의 대군과 대치하고 있지 않은가. 연왕 주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여력이 없어.”

가장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그것은 눈앞의 적을 격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극함을 조금 변형시켰다.

“고려군 전군 도통사로서 명하겠네.”

마침내 최영은 결정했다.

“요동의 이옥에게 사람을 보내게. 전력을 다해서 남하하라고 말일세.”

초안이 틀어졌다면 그에 걸맞은 전술을 펼치면 된다.

연왕 주체가 변심했다고 하더라도 고려군의 전력으로 이겨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자면 이옥과 결합하여 목영을 격퇴하는 게 우선이다.

“아. 몽골 기병도 유격전이 아니라 점령전으로 작전을 바꾸라고 전하라.”

지금부터는 총력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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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왜장 정지와 나세 그리고 마천목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다.

생각보다 남경 점령이 수월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거 곤란하군.”

“이대로 가면 각지에서 원군이 달려올 것인데.”

만일 그리된다면 남경 점령은 실패하게 된다.

애초 계획에 없던 일이었기에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긴 했다.

그러나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사(大事)가 아닌가.

고려 왜장들의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만 있으면 능히 가능합니다.”

사태가 위중했으나 마천목의 말이 옳긴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남경의 방어는 쇠약해졌다.

만일 지금 고려군에 화약 병기만 넉넉했다면 능히 점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장기간 보급받지 못한 탓이 화약은 바닥을 보였다.

1년 넘게 바다를 떠돈 정지와 마천목의 병력이 보유했던 화약은 진작에 고갈됐다. 그나마 지금까지 화약 병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중도 결합한 나세의 보급 물량 때문이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고려군의 공세는 대군의 능력에 의존한 게 컸다.

“크, 큰일입니다!”

부관의 외침이 들렸다.

어쨌거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전장에서 큰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적의 원군이었다.

고려 왜장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연왕 주체가 대군을 이끌고 지척에 도착했습니다!”

부관의 말.

고려 왜장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서로 눈을 쳐다봤다.

“하늘이 도왔소.”

“그렇소. 활로가 열릴 수도 있겠구려.”

“예. 연왕 주체가 남하했다는 건 총리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영과 고려 왜장은 차이.

그건 제국의 황도로부터 전해지는 정보의 양과 속도였다.

최영과 달리 그들로서는 연왕 주체의 행보가 치밀하게 짜인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미세한 차이는 전장의 흐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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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왕 주체의 진군은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였다.

“연왕 전하! 천운입니다. 아직 황도가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예. 황도의 병력이 왜구를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남경의 지척에 당도한 직후 들린 장수들의 외침.

주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전해진 급보.

“왜구의 선봉대가 돌격해오고 있습니다!”

장수들은 비웃었다.

“연왕 전하. 소장이 나서겠습니다.”

“아닙니다. 소장이 나서겠습니다.”

모두 앞다퉈 선봉을 자처했다.

연왕 주체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직접 나서리다.”

북방을 지배하는 지휘관 연왕 주체가 직접 나서겠다는데 누가 반발하겠는가.

연왕 주체는 곧장 선봉에 섰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진용을 과시하는 왜구가 보였다.

당장이라도 돌격해올 태세였다.

그때 그들을 바라보던 연왕 주체의 눈이 가늘어졌다.

선봉에 선 왜장이 실로 익숙한 사람이었다.

...나세?

연왕 주체의 볼이 살짝 씰룩였다.

“왜구 주제에 상당한 기세군.”

“그러나 어찌 연왕 전하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패배한다는 말이 아니외다.”

“송구합니다.”

“아니오. 내 생각에는 정면충돌할 필요가 없을 거 같소.”

“무슨 말씀입니까?”

연왕주체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면서 말했다.

“지금 저들은 노략질이 목표가 아니라 황도를 점령하고자 하오. 안 그렇소?”

“그렇습니다.”

“하면, 아군을 패퇴시켜야 하오.”

“하여, 선봉을 보내서 돌격에 나선 게 아니겠습니까.”

“해서, 하는 말이외다. 정면충돌이 아니라 매복하여 격멸하고자 하오.”

주체는 곧장 말을 덧붙였다.

“그 직후 우리는 황도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 왜구의 본진을 섬멸할 거요.”

실로 과감한 전술이었다.

만일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면 난색을 보였을 정도다.

이 엄중한 사태에서 회전을 주장하는 게 아닌가.

지금 중요한 건 황도 남경으로 진입하여 왜구를 물리치는 거였으니까.

그러나 연왕 주체의 말은 묵직한 무게를 가졌다.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말이다.

“한데, 적을 어찌 유인할 수 있겠습니까. 엄중한 사태에서 원군으로 달려온 우리가 물러선다면 속지 않을 겁니다.”

“어렵지 않소. 적이 달려오면 싸우다가 달아나면 되오.”

“···연왕 전하.”

“달아날 때 군수품을 버리시오. 화약이나 군량까지. 모두다.”

“여, 연왕 전하.”

“아군은 연왕부에서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소. 이때 물자를 버리고 황급히 물러선다면 제대로 쉬지 않았으니 기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것이외다.”

잠시 고민하던 장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 만한 방법이라고 여긴 거다.

만일 성공한다면 왜구를 단번에 격멸할 수 있다.

“준비하겠습니다.”

주체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적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되새겼다.

진인사대천명? 아니었다.

모든 것은 미륵의 뜻대로.

< 183화 모든 것은 미륵의 뜻대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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