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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81화 (181/187)

< 181화 한 곳만 팬다 >

이옥은 대군을 이끌고 국경을 넘었다.

“장군. 연왕 주체의 대군이 북상을 시작했습니다.”

부관의 보고.

이옥은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최대한 충돌을 피하면서 주체의 대군을 유인한다.”

“알겠습니다.”

국경을 넘은 직후 명의 군현의 타격하던 이옥의 고려군은 주체의 북상 소식을 접하자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그건 누가 보더라도 퇴각은 아니었다.

적절한 지형을 찾아서 대회전을 준비하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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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왕 전하. 고려군의 남하가 멈췄습니다.”

“지금 움직임은?”

“아군을 요격하기 위한 준비에 나선 거 같습니다.”

부관의 말을 들은 주체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적의 보급로를 알아보라.”

“보급로라고 하셨습니까?”

“감히 아군과 회전을 준비하는 거 같은데 보급로를 차단할 수만 있다면 쉽게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즉각 파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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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장군!”

다급함이 가득한 부관의 외침.

“아군의 보급부대가 궤멸당했습니다!”

“퇴각한다.”

“예?”

“보급부대가 궤멸당했는데 어찌 싸울 수 있는가. 퇴각하는 게 옳다.”

“아.”

“왜 그러나?”

“아, 아닙니다. 다만 큰 성과 없이 이대로 물러나는 게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부관의 호승심.

“이런.”

“송구합니다. 그런데 소직이 공을 탐한 건 아닙니다.”

그러자 이옥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군은 이미 수십 개의 군현을 타격했네. 이것만 하더라도 큰 성과일세. 비록 보급부대가 궤멸 되었으나 큰 피해 없이 퇴각한다면 이긴 거나 마찬가지.”

“아.”

“전투는 적의 주력군과 정면으로 전투를 치러야만 승패가 갈리는 건 아닐세. 이해했는가?”

“송구합니다. 장군. 생각이 짧았습니다.”

“괜찮네. 그리고 주체의 대군을 앞에 두고 주눅 들지 않는 자네야말로 제국의 장수답네.”

격한 칭찬을 들은 부관은 감동하며 물러났다.

그의 뒷모습을 본 이옥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연왕 주체. 언제 봐도 대단하군. 따로 서찰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귀신같이 알아서 일을 처리하다니.”

다시금 연왕 주체가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랬다. 주체가 타격한 보급부대가 싣고 있던 건 군량이 아니라 짚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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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지전으로 아군은 언제라도 명의 군현을 타격하고 변방을 어지럽힐 수 있다는 기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한 셈이오.”

“그게다 여진족과 몽골족을 포섭한 결과이지요.”

“적이었다면 무척이나 골치 아팠을 건데 아군으로 있으니 참으로 듬직하오.”

“과연 그렇습니다.”

이옥이 이끌고 간 대군의 주력은 여진족과 몽골족의 기병이었다.

이번에 확인한 그들의 기동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왕선과 정도전의 반응은 절대 과한 게 아니었다.

“반면, 연왕 주체는 출격만으로 적의 기동을 멈추게 했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단번에 빈틈을 찾아내서 보급부대를 궤멸시키는 무공을 세웠습니다.”

“그 결과 변방을 어지럽히는 적군이 일거에 물러났고.”

“북방에 대한 연왕 주체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질 겁니다.”

“적절하오. 이제 남은 건 남경이오. 남경이 생각대로 움직여주기만 하면 좋을 건데.”

정도전이 손바닥을 비벼대면서 대꾸했다.

“움직이게끔 해야지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더 세게 비벼대면서 말을 이었다.

“고려 왜구가 작전에 성공한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자고로 열심히 찍어대면 나무는 무너지는 법이지요.”

그러자 왕선도 히죽거리면서 손바닥을 마구 비벼댔다.

“하긴. 명 수군을 꼬아내려고 1년 넘게 바다를 떠돌기도 했는데.”

왕선이 하는 모양새를 보던 정도전의 눈이 가늘어졌다.

...흥분되거나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 늘 하던 자신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왕선이 굳이 저러는 건 자신을 희롱하는 거다.

무조건이다. 10할 확신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말하고 있소.”

“···손바닥은 왜 비벼댑니까?”

“추워서.”

“이 더운 여름에 춥다고요?”

“내가 몸에 한기가 좀 많소.”

“그건 또 처음 듣는 내용이군요.”

“그건 군사가 이 사람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오.”

“허.”

어처구니없는 정도전.

그러거나 말거나 왕선은 놀리듯 손바닥을 더 맹렬하게 비볐다.

“어쨌거나 숙장들이 모두 수군으로 파견되었으니 좀 아쉽긴 하오.”

“수전은 실전이고 육전은 짜고 치는 윷놀이입니다. 최영 장군을 비롯한 숙장들이 어디에 배치되어야 하는지는 자명하지요.”

“허. 짜고 치는 윷놀이?”

“도솔천.”

“거. 그건 또 어디서 들었소?”

“간밤에 도솔천에 좀 다녀왔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내가 흘린 말이겠지.”

그런데 정도전이 단호하게 답했다.

“다녀왔습니다.”

“거길 다녀 왔으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했을 거요.”

“고스톱? 그건 뭡니까?”

“도솔천 본토 발음이요.”

“음. 그 또한 신묘하군요.”

...미쳤네.

왕선은 헛웃음을 삼키며 손을 내저었다.

“시끄럽소.”

“너무 신묘해서 그렇습니다.”

“됐고. 요동에 사람을 보내서 계속 진행하라고 하시오.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는 걸 각인시키는 것도 잊지 마시오.”

“그러지요. 그런데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괜히 불안했다.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닙니까.”

...이거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

왕선은 후회가 막심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정도전은 도솔천에 푹 빠져버린 거다.

그런데 그쪽 역사에서는 자신이 역적으로 죽었다는 걸 죽어도 모를 거다.

말해주고 싶었다. 노발대발하는 꼴을 보고 싶었다.

...그래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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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의 대군은 수시로 국경을 넘어서 변방의 군현을 타격했다.

그럴 때마다 적절한 시점에 주체가 북상하면 이옥은 물러났다.

때로는 주체의 병력이 요동 경계를 넘어서 고려군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렇게 요동과 연왕부의 경계에서는 치열한 대치가 장기적으로 이어졌다.

대치국면이 길어질 때 고려군은 활로를 모색하려는 듯 전선을 넓혀서 명군의 허점을 찾고자 했다.

“총돌격하라!”

이옥의 고려군은 맹위를 떨치면서 명군을 공격했다.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싸웠는데 그때마다 명군은 대패했다.

그러다가 연왕 주체가 지원군을 이끌고 나타나면 곧장 퇴각했다.

이런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자 명군으로서는 확실하게 깨닫는 게 있었다.

고려군은 주체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즉, 고려군의 작전은 주체를 피하면서 명의 변방을 타격하는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이후 점차 명나라 북방의 병권이 주체에게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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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 기세로 명 해안가를 타격하던 고려 수군의 공세가 잠잠해졌다.

5갈래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던 고려 군선이 일제히 물러난 것이다.

“장군.”

박위, 배극렴, 변안열, 이원계 그리고 최영.

고려 최고의 숙장들이 바다 위에서 모였다. 천하 대국 명의 해안을 공격하는 와중이었음에도 그들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최영이 양팔을 벌리며 그들을 환대했다.

“다들 고생하셨네.”

“아닙니다. 고려 왜구가 다한 일을 거들었을 뿐입니다.”

“고려 왜구? 하하하. 참으로 적절하네.”

박위는 멋쩍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국방성에서 정지 장군의 수군을 일컬어 고려 왜구라고 하더군요.”

“그래. 그렇지. 그런데 나중에라도 그들을 만났을 때 그리 말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 걸세.”

“물론입니다. 노발대발할 겁니다.”

장수들 사이에는 가벼운 농이 오갔다.

“이제 어찌하면 됩니까.”

“크게 타격하고 물러날 걸세.”

“크게 타격한다고 하셨습니까?”

“그동안 우리 수군은 5갈래로 나뉘어서 명 해안을 타격했네. 지금은 일시 물러난 상태일세. 당연히 명군도 아군이 퇴각했다고 믿지 않을 거고.”

“그렇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찌 움직일지 가늠할 수 없겠지.”

“하면, 역량을 집중하여서 한 지역을 타격하자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여건만 허락한다면 상륙까지 하는 걸세. 두말할 여지가 없는 대승을 거둔 후 퇴각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고려 수군이 향한 곳은 이원계가 타격하던 남경의 북쪽에 있는 포구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100여 척의 고려 군선을 대비하던 명군은 갑작스레 밀고 들어온 500여 척의 고려 군선을 감당하지 못했다. 최영은 내친김에 상륙까지 단행하여 명의 내륙을 대대적으로 타격했다. 또한, 보급로가 하루 이상 길어지는 지역으로는 진입하지 않았다.

부랴부랴 명군이 반격했으나 최영은 전리품까지 챙기면서 유유히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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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님!”

흥분과 희열이 가득한 정도전의 목소리.

왕선은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남경에서 연왕 주체에게 10만의 대군을 지원했습니다!”

때가 됐다.

“군권은?”

“요동과 관련한 명나라의 모든 전권이 주체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왕선의 입꼬리가 미친 듯이 떨리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즉각 상도로 연락을 취하시오.”

덧붙였다.

“한때 천하를 호령한 몽골족의 솜씨를 제대로 구경합시다.”

“이거 무척이나 기대가 큽니다.”

“나 역시 그렇소.”

10만에 이르는 명의 중앙군이 연왕부로 집결하여 기세를 올리면서 요동 경계를 오갔다.

북방의 전운이 요동와 연왕부에 집중될 때였다.

각 1천 여기로 이뤄진 몽골 기병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상도 이남 명의 변방을 유린했다. 점령을 목적으로 두지 않은 저돌적인 돌격이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최영의 지휘를 받은 고려 수군이 산동성에 상륙했다.

500여 척의 군선에서 상륙한 고려군의 규모는 5만을 넘었다.

대경한 명의 중앙군은 다급하게 산동성으로 진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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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는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정지장군.”

“말씀하시구려.”

“이게 진짜 마지막이오?”

정지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런데 그 모습이 뭔가 어색하다.

나세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하오?”

결국, 재차 확인하는 나세.

이리되자 정지는 쓰게 웃으면서 진실을 말했다.

더는 거짓을 말해서 나세를 고문할 수는 없다고 여긴 것이다.

“사실 그건 아니외다.”

“허.”

나세가 헛웃음을 짓자 정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정확하게는 가늠할 수 없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요동을 장악했을 때 나와 마 대장은 철군할 거라고 생각했소. 안 그렇겠소? 당연히 그럴 줄 알았소.”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한데, 총리님이 서찰을 보냈더군요. 더하라고.”

“허.”

“그 결과는 장군도 보고 있는 데로요.”

“하면, 설마? 이번에도?”

“만일 이번에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우리는 영락없는 왜구가 되는 겁니다.”

“이런.”

“이렇게 바다를 떠도는 영혼 없는 왜구가 될 바에는 실력을 갖춘 고려구(高麗寇)가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거요. 십 할 장담하오.”

경험자의 진심 어린 조언.

“나세 장군. 총리님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외다. 실로 무서운 분이시오.”

정지는 나세의 손을 부여잡으면서 읊조리듯 말했다.

“반드시 성공합시다. 그게 아니면 그 마수(魔手)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소.”

“물론이외다. 내 모든 걸 걸어서라도 성공할 것이오.”

고려 왜구의 군선이 향하는 곳은 명의 심장부 남경이었다.

< 181화 한 곳만 팬다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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