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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78화 (178/187)

< 178화 제국의 통치(2) >

연왕 주체가 보낸 화약 기술자는 곧장 최무선에게로 인계했다.

“이, 이럴 수가.”

최무선은 희열에 찬 눈을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왕선은 싱긋 웃었다.

“문하시중. 그렇게 좋소?”

“물론입니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하하하. 문하시중이 그렇게 좋아하니 이 사람도 기쁘오.”

“필생의 신념이었습니다. 명의 화약 병기를 들여다보는 거 말입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예. 실은 무척이나 큰 자괴감에 빠진 상태로 식음을 전폐했었습니다.”

“허. 어째서요?”

조금 전까지 마냥 기뻐만 하던 최무선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일전에 왜구를 격멸했을 때만 하더라도 큰 자부심을 품었습니다.”

“그랬지요. 문하시중의 화약 병기가 아니었다면 크게 고생했었을 거요.”

“그러나 그건 화약 병기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왜구를 상대했기에 가능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문하시중.”

“이번 북진에서 아군의 화약 병기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전장의 치열함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문하시중으로서 모든 내용을 전달받았을 거다. 그리고 고려의 화약 병기를 일방적으로 짓밟는 압도적인 명 화약 병기를 떠올리면서 무척이나 괴로운 세월을 보낸 게 확실했다.

왕선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문하시중의 화약 병기가 아니었다면 요동의 대승은 불가능했소.”

이 또한 옳은 말이었다.

요동성을 붕괴시키면서 주체를 제압한 전투 역시 최무선의 화약을 사용한 거니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문하시중. 빈말이 아니외다.”

“소직 또한 그렇습니다.”

최무선은 쓴 미소를 거두면서 빙그레 웃었다.

“만일 휴전 직후 이르셨다면 속만 상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명의 화약 병기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열렸으니까요.”

참으로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었다.

그제야 왕선의 표정도 밝아졌다.

“제국의 화약 병기를 천하제일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문하시중을 믿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총리실로 돌아가던 왕선은 뛸 듯이 기뻐하던 최무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옅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미소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여기서 뭐 하오?”

...정도전이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아. 총리님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언제부터 밖에서 기다렸다고?”

평소 정도전이라면 총리실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렸을 거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달리 예를 차리는 걸 보면 아쉬운 말을 하러 온 거다.

“그나저나 참으로 기가 막히는군요.”

정도전은 키득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요동 쟁탈전에서 연합군을 압도했던 명의 화약 병기를 우리가 보유할 수 있다면 국방력이 엄청나게 강화될 겁니다.”

“요동 쟁탈전에서 연합군을 압도했던 명의 화약 병기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 뭘 안다고 나서오?”

“···왜 이러시는 겁니까?”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요.”

정도전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따지려다가 말았다.

“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모양이다.

내심 정도전의 말대답을 기대했던 왕선은 김이 샜다.

“또 왜 그러시오?”

“포은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실 겁니까?”

“일전에 논의를 같이했소만?”

“그런 걸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는 건 아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도 되오?”

“예.”

“요동으로 보내고 싶소.”

“초, 총리님.”

중앙 정계에서 변방으로 간다는 건 사실상 정치적 귀양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일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최전방이라면 더 그랬다. 설령 그 지역이 전략적 거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정도전이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왕선은 그의 우려를 가볍게 일축했다.

“괜한 심정으로 하는 말이 아니외다.”

“···중용(重用)의 의미라는 겁니까?”

“요동에서 상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토. 누구를 보내면 탈 없이 통치할 수 있겠소?”

만약 딱 한 명을 고르라고 한다면 정몽주다.

물론 정도전이나 조준을 보내더라도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몽주에게 미치지 못하는 건 사실이었다.

“음. 한데, 어째서 공론화하지 않으십니까.”

“허. 당장 군사부터 내 의도를 의심했소만?”

“총리님과 포은은 격한 대립을 했던 사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희한하오. 딱 깨 놓고 이 시국에 포은이 나를 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음. 그건 아니지요. 포은이 아니라 이 나라의 누구라도 총리님을 해할 수는 없지요.”

정도전은 짓궂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만일 그랬다가는 연왕 주체가 총돌격을 감행할 거니까요.”

“시비 거는 거요?”

“사실을 이른 거지요.”

“내 힘이 연왕 주체 때문에 유지된다고 말하는 거 같은데?”

“그건 아니지요. 오해하신 겁니다.”

정말 그렇게 여긴다면 아주 혼을 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농에 불과했다.

왕선은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불필요한 정쟁(政爭)을 막고자 포은의 요동행을 유예하는 거요.”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외다.”

“한데, 왜 불교를 그렇게 진흥하십니까.”

“고루한 유학자를 보내서 설교하게 하는 것보다는 백배는 나으니까.”

“허.”

“유학자에게 몽골족과 여진족을 교화하게 한다면 결과는 안 봐도 훤하오.”

“통치는 유학이지요.”

왕선은 손을 내저었다.

“훤하다니까?”

“어떻게요?”

“보나 마나요.”

“그러니까 어떻게요.”

“여진족을 잡아놓고 오랑캐를 운운하면 괴롭힐 거요.”

“······.”

“몽골족을 잡아놓고 불구대천의 원수라면서 고함을 지를 거요.”

“······.”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할 거요. ‘성현의 가르침을 따라라.’ 이렇게 말이외다. 아니오?”

“······.”

“반면, 승려들은 단지 그들을 보듬을 것이니 어찌 훌륭하지 않소이까.”

정도전의 안색은 시뻘게졌으나 반박하지는 못했다.

왜?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곧장 말을 돌렸다.

왕선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하루에 하나씩만 가져오시오.”

“오늘 두 개 올리고 내일은 쉬지요.”

“미쳤소?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내놓으시오.”

왕선이 손바닥을 내밀자 정도전은 품에서 서찰을 꺼냈다.

그 내용을 꼼꼼하게 살피던 왕선의 입가에는 미소가 올라왔다.

“몽골족과 여진족의 기병을 양성한다?”

“예. 요동 방어선에 투입한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는 잘 알지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해야 하는 일입니다. 고려본토의 군사력은 10만을 넘지 못합니다. 저 넓은 제국의 전선을 유지하려면 10만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몽골족과 여진족을 제국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많은 일이 진행되고 있는 이때 굳이 그들을 경계하여 큰 전력을 놀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음.”

정도전은 곧장 말을 이었다.

“순식간에 2만의 기병을 요동 방어선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좋소. 그리하겠소.”

“합당한 결정이십니다.”

“단, 내가 종종 가보도록 하겠소.”

“무슨 말씀입니까. 설마 요동 통치를 직접 하시겠다는 겁니까?”

이 시국에 왕선이 요동을 직접 통치하는 건 여러 가지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제국 방어선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요동을 완산공 왕선이 영지로 가지려는 의도로 보일 수도 있는 거다.

이건 제국 내부에서 정쟁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정도전이 우려하는 건 당연했다.

“가끔 간다고 했소. 말을 좀 제대로 들으시오.”

“음. 정말이지요?”

“나는 전주를 영지로 가지고 있소만?”

“전주가 풍족하더라도 요동에 비교하겠습니까.”

“계속 비아냥거릴 거요?”

“송구합니다.”

“됐고. 어쨌든 방어선 구축은 그렇게 진행하시오.”

“예. 총리님.”

“아.”

정도전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왕선은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얼굴 좀 치우시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아.”

“······.”

“수군도 최대한 육성하시오.”

“어느 수준을 원하십니까.”

“마음만 먹으면 명의 해상을 봉쇄할 수 있을 수준으로.”

“그러자면 군선은 1만 척, 수군은 100만 명이 필요할 겁니다. 물론 최소치로 잡은 겁니다.”

“그걸 목표로 해보시오.”

“···진심입니까?”

“물론이외다. 앞으로 우리 고려가 품어야 할 곳은 대양(大洋)이니까.”

“국시를 바꾸시려고요?”

“그런 건 천천히 합시다.”

“음. 알겠습니다. 수군 증설은 검토해서 방안을 올리겠습니다.”

“그러시오.”

대화가 마무리됐다.

그런데

“아.”

정도전의 입에서 나온 익숙한 외침.

그리고

“좀 떨어지십시오. 부담스럽습니다.”

“······.”

“아. 이제 한결 편해졌군요.”

왕선의 눈이 가늘어졌다.

“진짜 죽고 싶소?”

“그게 아니라 수군 하니까 생각난 게 있습니다.”

“제대로 된 내용이 아니면 기꺼이 그대의 사지를 찢어주리다.”

“정지 장군과 마천목 대장은 어찌합니까?”

“······.”

“설마 잊으셨습니까?”

“그럴 리가 있소?”

“음.”

“됐고. 명 수군이 대마도 원정을 단행했소?”

“아직 아닙니다.”

“한데, 무슨 자격으로 귀국하오?”

“그건 그렇군요.”

“더 열심히 하라고 전하시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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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체결한 1년의 휴전협정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동안 고려는 제국의 국경선을 방비하기 위해서 참으로 큰 노력을 했다.

물론 고작 1년으로 완벽한 준비를 해낸 건 아니었다.

단지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하여, 작은 성과들이 곳곳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제국의 북방 곳곳에는 크고 작은 사찰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몽골족과 여진족을 보듬기 위한 왕선의 적극적인 불교 정책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이는 1년의 가장 큰 성과였다.

통치가 아니라 종교로 접근한 승려들의 노력으로 여진족과 몽골족이 점차 현실에 순응한 것이다. 그 결과 요동 방어선에는 2만의 몽골, 여진 기병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왕선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는 요동을 2번에 걸쳐서 오갔는데 그때마다 몽골족과 여진족을 크게 감화시켰다.

관심법의 권능으로.

이렇게 제국의 유지는 순탄하게 이뤄졌다.

고작 1년의 세월이었으나 그 어떤 시기보다 값지고 알찬 시간이었다.

그리고 총리실로 서찰이 한 장 날아왔다.

“음.”

“왜 그러십니까?”

“정지 장군이 서찰을 보냈소.”

정도전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짓궂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철군하지 않았군요.”

“임무를 수행 못 했으니까.”

“응당 그래야지요. 암요.”

“한데, 서찰 내용이 조금 묘하구려.”

“어떤 내용이길래요.”

“머리를 다시 잘랐다는데?”

“뭐하러요?”

“누가 봐도 고려 장수처럼 보인다면서?”

“허. 고려 장수가 고려 장수처럼 보이는 게 뭐가 문제라고요?”

“내 말이 그 말이외다. 참으로 희한하오.”

정도전은 죽을 힘을 다해서 웃음을 참았다.

“그나저나 이제 철군을 명하실 겁니까?”

“명군이 대마도 원정을 단행했소?”

“그건 아니지요.”

“그 말은 결국 정지 장군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오.”

“더 적극적으로 명 해안가를 타격해야지요.”

“그래서 하는 말이외다. 혹시 왜선에 여유가 좀 있소?”

“음. 최근 왜구를 토벌한 뒤 노획한 왜선이 수십 척은 됩니다.”

“잘됐군.”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격언이 있지.”

정도전의 웃음보는 결국 터져버렸다.

“총리님은 만세에 남으실 겁니다.”

“과찬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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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와 마천목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어색함은 하늘을 찔렀다.

결국, 참지 못한 정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경험자로서 말해주리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외다.”

“······.”

“우리는 벌써 1년이 넘었소.”

“···나는 고려의 무장으로서 명예를 가지고 있소.”

“우리도 그렇소.”

“···목숨을 걸고 북방에서 싸웠소.”

“우리는 그럴 기회도 없었소.”

“한데, 어찌 이런 모욕을 내리실 수가 있소?”

“그래도 장군은 북진의 대업에서 고려 장수로 싸우기라도 했소. 우리는 허구한 날 왜장이었소.”

지금 정지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몰골이 참으로 희한했다.

우선 갑주는 누가 봐도 왜장의 그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앞 윗머리를 밀고 정수리 쪽에서 머리를 묶고 있었다.

촘마개라고 불리는 왜인의 상투였다.

그랬다. 그는 나세였다.

정지는 한숨을 쉬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세 장군.”

“···말씀하시오.”

“내가 잘 가르쳐주리다.”

나세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정지는 어깨를 펴면서 위용찬 모습으로 외쳤다.

“全軍! 砲撃せよ! (전군! 방포하라!)”

“!!!”

충격으로 얼룩진 나세의 눈.

정지는 담담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거요.”

“!!!”

“해보시오.”

“!!!”

“처음이 어렵지만 두 번 세 번 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요.”

나세는 절망의 늪에 빠졌다.

그리고 정지의 목소리가 진하게 뇌리에 새겨졌다.

“정확한 발음으로 해야 하오. 全軍! 砲撃せよ! (전군! 방포하라!). 이렇게.”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 178화 제국의 통치(2)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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