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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74화 (174/187)

< 174화 단군 이래 최대 판도(1) >

휴전협정의 체결로 연합군은 한숨 돌렸다.

공세적인 진군을 주장했던 나하추 역시 만족했다.

“참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아니외다.”

“그나저나 총리님.”

“왜 그러시오?”

나하추는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약조를 지키셔야지요?”

“요동을 이르시오?”

“물론입니다.”

“음.”

왕선이 고심하자 나하추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변심하신 겁니까?”

“아. 그건 아니외다.”

“그런데 왜 머뭇거리십니까?”

“휴전협정이 한시적이기 때문이외다.”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연합군이 똘똘 뭉쳐서 겨우 상대한 명군이지 않소이까.”

나하추는 고개를 저으면서 이죽거렸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여진족이 무슨 도움이 됐습니까.”

여진족 없었으면 너희는 양문한테 박살 났을 건데?

왕선은 이 어처구니없는 인사를 바라봤다.

“양국이 힘을 합치면 능히 요동을 사수할 수 있습니다.”

“음.”

왕선이 계속 머뭇거리자 나하추는 다급해졌다.

“총리님 말씀대로 휴전협정 이후를 생각하면 영원히 이 상태가 이어질 겁니다. 명의 위협을 우려하면서 말입니다. 그것보다는 본국이 요동을 취하여 빠르게 국세를 팽창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양국의 힘이 강해질수록 명이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구려.”

“하면?”

“귀공의 말대로 하겠소.”

“합당합니다.”

“양국의 영원한 우호를 위하여.”

“양국의 영원한 우호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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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발도는 은근한 눈빛으로 남은을 쳐다봤다.

“대감.”

“왜 그러나.”

“이제 때가 됐지 않습니까.”

“요동?”

“예.”

“음.”

“허. 왜 그러십니까.”

“아. 괜한 생각은 하지 말게. 변심한 건 아닐세.”

불안함을 느끼던 호발도는 내심 안도했다.

짐짓 여유를 부리면서 넌지시 입을 열었다.

“하면, 다른 연유가 있습니까?”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하니까.”

“시기라고 하셨습니까?”

“휴전협정이 체결된 직후 연합군의 내전이 발생하면 명이 어찌 나올지 몰라서 그렇다네.”

“설마 대국 체면에 약조를 파기하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자네 말이 맞아.”

호발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남은은 옅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좋은가?”

“당연하지요. 이 옥토에 우리 여진족이 터를 잡게 되었습니다.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훗날 본국의 은혜를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네.”

“영원히 상국을 따를 겁니다.”

“아.”

“이르시지요.”

“최대한 빠르게 국세를 키워야 할 것이네. 북원의 공백을 자네들이 채울 수 있을 만큼.”

“물론입니다.”

“하면, 준비하게. 북원의 병력을 궤멸시키려면 신경 쓸 게 많을 걸세.”

“알겠습니다.”

호발도는 부푼 꿈을 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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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명의 심장부 남경 포구는 다시 참화에 휩싸였다.

고려 왜장 정지였다.

그랬다. 휴전협정에 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니 고려 왜장 정지는 얼마든지 명을 공격할 수 있었다.

“장군.”

“아. 마 대장. 제법 머리가 자리 잡았군.”

“하하하. 장군도 그렇습니다.”

“그렇지. 해서, 요즘 아주 기분이 좋네.”

두 사람은 여유롭게 웃어댔다.

잠시 잡담을 이어가다가 본론을 꺼냈다.

“명이 허튼 생각 하지 않고 하려던 일을 하겠지요?”

“그럴 거네. 지금 명에게 중요한 건 연합군의 내분이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 왜놈이니까.”

“큭.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명의 수군이 대마도를 타격하다니요.”

“이왕이면 왜국 본토까지 공격하면 좋을 건데.”

“아.”

“왜 그러나?”

마천목은 여유롭게 웃으면서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정지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서 이동했다.

“명 수군이군요.”

“그렇군. 그러면 어서 도주하세.”

“물론입니다.”

고려 수군은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남경 바다에는 동구왕 탕화의 고함만이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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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선은 연신 손바닥을 비벼댔다.

그 모습을 보던 남은이 헛웃음을 지었다.

왕선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지금 삼봉 군사의 버릇을 따라 한다는 막말을 하면 자네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걸세.”

“······.”

귀신이 따로 없구나.

남은은 입맛을 다셨다.

“최영 장군. 아군의 준비는 어찌 되었습니까.”

“완벽합니다.”

“좋습니다.”

왕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합니다.”

모든 장수가 일어나면서 화답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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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의 주둔지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하추도 이를 느꼈고, 호발도도 이를 느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무척이나 흥분됐다.

이 긴장감이 끝날 때 느낄 감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취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진족은?”

“고려국 총리의 말대로 허튼 꿈에 부푼 움직임입니다.”

“고려군은?”

“약조한 대로 여진족의 후미를 타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좋아.”

나하추는 기괴하게 웃었다.

“아군은?”

“호발도의 방심을 유발하고자 최대한 방만한 상태를 펼쳐뒀습니다.”

“전달받은 거사의 시기는?”

“내일 동이 틀 때입니다.”

“좋아. 마무리를 잘 하거라.”

“예. 아버님.”

본격적으로 북원군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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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발도는 한껏 거만하게 어깨에 힘을 준 채로 말에 올라탔다.

“북원군은?”

“고려국 대사헌 대감이 이른대로 헛짓을 하고 있습니다.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퍼질러졌습니다.”

“큭. 좋군.”

“예. 마치 요동 땅의 주인인 양 행동하는 게 참으로 우스웠습니다.”

“좋군. 고려군은?”

“아군의 후미에서 돌격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큭. 완벽하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나하추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고 싶었다.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은 요동에 건국될 위대한 여진족의 국가를 외치고 있었다.

그 엄청난 업적을 해낸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아군의 준비는?”

“완벽합니다.”

“즉각 공격할 것이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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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북원군의 주둔지에서 거대한 함성이 일었다.

“무, 무슨 일이냐?”

“아, 아버님! 여진족이 아군을 향해서 돌격하고 있습니다!”

“!!!”

“아버님! 즉각 반격해야 합니다.”

“부, 분명 거사는 내일이거늘.”

“어디선가 일이 틀어진 게 분명합니다. 속히 명령을 내리십시오!”

문 하라부카의 어조는 다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여진족의 방심을 끌어내고자 오늘까지는 병력의 운영을 방만하게 했다.

그런데 여진족이 기습공격을 했다.

벌써 치명적인 피해를 보았을 거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비록 기습당했으나 아군은 여진족보다 대군이며 정예군입니다.”

“네 말이 옳다! 어서 반격한다!”

“예!”

나하추의 명령이 내려졌다.

기습에 대경실색하기는 했으나 북원군은 빠르게 전열을 정비하여 반격했다.

여진족이 본 늘어진 모습조차 작전 일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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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은 치열했다.

전장의 주역인 두 세력 모두 생각과는 다른 진행에 당혹스러웠다.

북원은 여진족의 기습에.

여진족은 북원의 빠른 반격에.

군세의 자체 역량만 본다면 여진족이 북원군을 감당할 수 없으나 이 기괴한 전투는 팽팽한 접전을 만들어냈다.

그만큼 북원군과 여진족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생사결을 펼치고 있었다.

하여, 이대로라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하추와 호발도 모두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고려군이었다.

고려군이 개입하면 이 어처구니없는 전장의 백중세는 순식간에 종결될 거다.

그때였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장엄한 대라 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나하추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호발도도 눈이 번뜩였다.

두 사람은 외쳤다.

“고려군이다!”

“고려군이다!”

기다리던 ‘아군’이 등장한 거다.

나하추는 미소지었다.

이제 고려군이 여진족의 후미를 타격할 거다.

호발도는 흡족했다.

이제 고려군이 돌격을 함께 하여 북원군을 쓸어버릴 것이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었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대라 소리는 가까워졌다.

호발도는 흥분을 참지 못했다.

“고려군이다! 모두 힘을 내서 적을 단번에 쓸어버려라!”

여진족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대라 소리가 호발도의 귀를 거세게 때렸다.

입가에 미소는 진해졌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과거 이성계의 상징이었던 대라 소리.

그건 여진족에게 경외의 대상이었고 두려움의 증표였다.

그토록 강맹하던 용사들도 대라 소리만 들리면 오금을 지렸다.

대라 소리. 그것은 참으로 끔찍했다. 그야말로 저승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대라 소리가 너무나도 듬직했다.

한때 그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했던 저 소리가 너무나도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드디어 지척에서 들렸다.

드디어 고려군이 전장에 개입한 거다.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던 호발도는 기분 좋게 고려군이 있을 후미를 쳐다봤다.

위대한 대라 소리.

승리의 상징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고려군의 위력이...펼쳐졌다?!

“!!!”

호발도의 눈이 충격으로 얼룩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고려군이 아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머, 멈추시오!”

격하게 외쳤으나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그 순간 호발도의 뇌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속았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대라 소리를 내는 병력은 반드시 적이라는 평생의 교훈을 망각한 결과는 처참했다.

강맹하게 돌격하던 여진족의 기병이 처참하게 도륙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대라의 새로운 주인.”

스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호발도의 눈이 거세게 떨렸다.

“나세다.”

그리고 언월도가 그의 수급을 취했다.

이후 진행된 전장은 그야말로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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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추는 가쁜 숨을 쉬면서 최영에게 외쳤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이 사람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외다.”

“허.”

“아무래도 호발도가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것 같소.”

피 칠갑을 한 최영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나하추는 이를 악물었다.

비록 이겼으나 호발도의 기습으로 병력의 손실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최영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고려군 역시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고려군이 제때 개입하지 않았다면 손실은 더 커졌을 거니까.

최영은 숨을 내쉬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쨌거나 대승을 거뒀으니 다행이외다.”

나하추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멀찍이서 다급하게 달려오는 파발이 보였다.

나하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북원의 파발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선이 파발에게로 쏠렸다.

아직도 살기가 남아 있는 전장터에 파발의 말발굽 소리만 들렸다.

나하추는 괜히 심장이 울렁였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한 거다.

그리고 파발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여, 연왕 주체의 대군이 상도(上都, 북원의 황도)로 북상했습니다!”

“!!!”

비참한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은 때 전해진 통곡의 소식이었다.

< 174화 단군 이래 최대 판도(1)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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