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연왕 주체 >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화약 병기의 위력이 지축을 울렸다.
그 엄청난 힘을 앞세운 연왕 주체의 20만 대군은 거침없이 진군했다.
우인열과 양백연은 기를 쓰며 주체를 방어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양군이 가진 화약 병기의 성능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이렇게 밀리다가는 요동성으로 가는 길목을 모두 내어주게 생겼소이다.”
양백연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우인열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소. 당장은 연왕 주체의 진군을 막을 방법이 없소.”
주체는 명군이 보유한 화약 병기의 우세를 철저하게 사용했다.
정확한 사거리를 가늠하여 고려군의 방어선을 완벽하게 와해시킨 것이다.
답답함이 가득 담긴 우인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돌격을 감행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섣불리 돌격했다가 큰 손해라도 입는다면 길목을 내주는 걸 넘어서 명군은 요동성 지척까지 단번에 진군할 것이외다.”
“내 말이 그 말이오. 답답하오.”
우인열과 양백연의 역할은 주체의 요동성 진입을 최대한 막는 것이었다.
격퇴하는 게 아니라 단지 막아서는 것이었는데도 어려움이 컸다.
그만큼 주체는 뛰어났고 휘하의 병사는 강군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소. 조금씩 물러나며 연왕 주체의 돌격을 늦추는 게 유일하오.”
“나 역시 그리 생각하오.”
“적군이 돌격을 시작했습니다!”
부관의 다급한 외침.
그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화약 병기를 앞세우며 천천히 다가오던 적군이 기병을 앞세워 총돌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혼전이 발생했다.
그러나 우인열과 양백연은 백 전을 치른 숙장이다.
최대한 빠르게 병사들의 혼란을 잠재우며 반격에 나섰다.
“좌군은 적의 돌격을 막는다!”
우인열의 외침.
“우군은 적의 예봉을 꺾는다!”
양백연의 외침.
명나라 대군의 압박이 거셌으나 두 숙장의 지휘력은 철통같은 방어체계를 구축함은 물론이거니와 반격의 틈까지 노렸다.
그때였다.
-쏴아아아아아아앙!
거센 파공음과 함께
-퍼어어어어어어억!
화살이 두 장수의 부관을 모두 때려잡았다.
수만의 대군이 얽힌 혼전이었음에도 종횡무진 오가며 화살을 날리는 사람.
연왕 주체였다.
“우 장군! 내가 막겠소!”
양백연은 칼을 고쳐잡은 채로 달려갔다.
그러나
-쏴아아아아아아앙!
주체의 화살은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부상을 피한 양백연은 이를 악문 채로 다가갔다.
그러나
-쏴아아아아아아앙!
다시 날아오는 화살.
대경한 양백연이 급히 몸을 피했으나
-부아아아아앙!
어느새 다가온 칼이 지척에서 휘둘러지고 있었다.
양백연의 본능이 위험을 감지하여 칼을 들어 막았으나
-퍼어어어어어어어억!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실로 놀라운 용력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양백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황급히 상대를 확인했다. 주체였다. 그리고 다시 보이는 건 바로 앞에 다가온 칼이었다.
“!!!”
늦었다.
그때
-쏴아아아아아아앙!
우인열의 화살로 목숨을 구했다.
양백연이 다급하게 몸을 피하며 자세를 고쳐잡으려고 했는데
“!!!”
화살을 피한 주체가 몸을 틀더니
-부아아아아아아앙!
칼을 휘둘렀다.
-퍼어어어어어억!
그것이 양백연이 이승에서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양 장군!”
분노에 가득 찬 우인열의 외침.
즉각 달려들어 주체를 공격했다.
그러자 주체는 기다렸다는 듯 칼을 고쳐잡으며 우인열에게 달려갔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질 때 주체는 온 힘을 다해서 칼을 던졌다.
-차아아아아아앙!
이를 막아낸 우인열의 눈에 보인 건
“!!!”
바로 앞에서 화살을 겨누고 있는 주체였다.
“죽어라. 오랑캐.”
“!!!”
-퍼어어어어어억!
지금 이 순간 치열한 전황의 흐름을 연왕 주체 한 사람의 지휘력과 용맹이 좌우했다.
그렇게 고려군은 대패했다.
-----
요동성은 충격에 휩싸였다.
“허.”
왕선은 말문이 막혔다.
우인열과 양백연이라는 숙장이 대패했다.
애초 두 장수에게 내린 명령은 다른 게 아니었다.
주체의 허를 찌를 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최대한 발목을 잡는 거다.
그런데 발목을 잡지도 못했다. 주체의 진군은 변함없이 저돌적이었다.
심지어 우인열과 양백연이 전사했다.
명군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이대로라면 주체의 대군이 요동성을 포위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러다가 북진을 역사의 무덤으로 보내기 전에 고려군이 무덤으로 가게 생겼다.
“총리님. 지금 이렇게 머뭇거릴 때가 아닙니다.”
최영이었다.
왕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통사. 방책이 있겠소?”
“소장이 나서겠습니다.”
“허.”
“소장이 정면으로 요격하고 북원과 여진족의 기병이 우회하여 공격한다면 주체의 돌격은 제동이 걸릴 겁니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비슷한 방법을 양백연과 우인열도 사용했다.
그리고 대패했고 전사했다.
물론 최영과 두 사람의 능력 차이는 크다. 하여, 결과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만일 최영이 실패한다면?
이건 단순한 패배의 수준이 아니었다.
최영이 무너진다는 건 고려군 전체의 사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게 뻔했다.
물론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패할 수도 있다. 그것도 상당히 높은 가능성으로.
그랬다. 지금까지 눈으로 확인한 주체의 용맹과 지휘력은 앞서 싸웠던 양문, 풍승, 남옥과는 궤를 달리했다.
왕선은 완곡하게 만류했다.
“도통사. 다른 방책을 꺼내보시오.”
그 뜻을 모를 리 없는 최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총리님. 그 외에는 없습니다.”
“음.”
“연왕 주체를 막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가 됩니다.”
그래. 막긴 막아야 한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이대로 곧장 농성전에 돌입하는 것.
나머지는 요격하고 농성전에 돌입하는 것.
최영의 말은 이어졌다.
“바로 농성전을 펼치면 불리합니다.”
병력이 적어도 농성전이 유리하다는 게 병법의 기본이었다.
그런데 최영의 입에서 농성전이 불리하다는 말이 나왔다.
“안타깝지만 명군의 화약 병기를 막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요동성의 높은 성벽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겁니다.”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연왕 주체가 쏘아대는 화포 앞에서 고려의 화약 병기는 존재의 가치를 잃었다.
비록 마지막 최후는 기습적인 돌격에 당했으나 양백연과 우인열의 전투 초기에는 명군의 화포에 속수무책으로 밀린 게 분명한 사실이었다.
왕선은 손톱을 깨물었다.
주체의 북상 이후 생긴 버릇 아닌 버릇이었다.
그만큼 초조한 거다.
그랬다. 명나라의 내재한 뒷심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건 너무나도 먼 미래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당장 싸우는 20만 대군과 주체가 현존하는 최대의 위협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뒤를 걱정하는 건 엄청난 사치였다.
“총리님.”
재촉하는 최영.
왕선은 결정을 더 미룰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승패를 떠나서 최영이 아니면 이 난관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왜? 최영은 고려군 최고의 명장이니까.
...그래서 최영이 패배하는 건 고려의 패배를 의미했다.
“나세 장군.”
“예.”
“최영 장군을 거들게.”
“알겠습니다.”
최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 고려군에서 본인을 제외할 때 가장 뛰어난 장수가 나세다.
그만큼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런데
“천목, 이옥 장군.”
“예.”
“최영 장군을 보좌하게.”
“예.”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네.”
“물론입니다.”
“총리님. 그건 안됩니다.”
최영이 반대했다.
마천목과 이옥은 왕선의 호위 무사였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왕선의 목숨을 지키는 중차대한 역할을 가진 거다.
그런데 본인을 위해서 전장에 내보낸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왕선이 손을 내저으면서 간곡하게 말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덧붙였다.
“장군이 곧 고려군입니다. 그러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이토록 간곡하게 말하는데 최영으로서도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장군을 믿습니다.”
-----
대군을 이끌고 요격에 나선 최영은 감탄했다.
한눈에 봐도 적군의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대단하군.”
질서정연한 군기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백전을 거친 고려 최고의 명장 최영조차도 빈틈을 파악할 수 없는 수준의 진영이었다.
“장군.”
나세였다.
최영이 그를 보면서 연한 미소를 지었다.
“평생 저토록 뛰어난 명장과 자웅을 겨뤄보고 싶었네. 오늘이 바로 그 날이 되겠군.”
결기가 가득한 최영의 목소리.
나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쳐다본 최영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대라’를 울린다고 들었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걸로 시작하지.”
“···이성계를 떠올리셨군요.”
“비록 그렇게 떠났으나 일신의 능력만큼은 고려 최고였네. 만일 그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방어가 아니라 단번에 연왕 주체를 무찔렀을 것일세.”
나세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장군이 하실 수 없다면 이성계도 못 합니다.”
“하하하. 그런가?”
“예. 한데, 이성계가 그렇다면 장군께서도 능히 가능하신 일이지요.”
“이 사람.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군.”
의미심장하게 웃는 최영을 보면서 나세가 힘찬 어조로 말했다.
“선수를 취하시지요.”
“가능하겠나?”
“그동안 아군은 수세로 일관했습니다. 결과, 저돌적인 병법을 사용하는 주체에게 농락당한 겁니다. 장군. 소장이 선봉에 서겠습니다.”
“적군의 화포가 맹렬하게 타격할 걸세.”
“그 뒤는 장군께서 책임져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나세는 목숨을 걸었다.
최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지.”
“하면, 대라를 울리겠습니다.”
“그래. 시작하게.”
그 즉시
-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앙!
장엄한 대라 소리가 진하게 울렸다.
그리고 나세의 1만 기병이 돌격했다.
-----
나세는 자세를 낮추면서 이를 악물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명군의 화약 병기가 엄청난 위력을 보이면서 퍼부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명군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그들의 표정에서 고려군은 절대 지척에 다가오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명군 화포의 공세는 압도적이었고, 이 순간에도 기병의 피해는 누적됐다.
그러나 나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대로 헛된 희생만 치른 채 물러난다면 사기는 곤두박질칠 것이고, 그 즉시 시작될 명군의 돌격을 감당하지 못할 거다.
“물러서지 말라!”
우렁찬 외침.
최선을 다해서 돌격했다.
곁눈길로 확인한 아군의 피해는 엄청났다.
죽어 나가는 기병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나세 역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아니, 넘긴 게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 달고 있었다.
지금 숨을 쉬고 있으나 이 숨이 인생의 마지막 숨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와아아아아아아!”
명군의 기병이 움직였다.
화포의 공격을 돌파해낸 것이다.
드디어 시작이다.
나세는 온 힘을 다해서 외쳤다.
“고려군의 위력을 증명하라!”
바야흐로 정면충돌이 시작됐다.
-----
연왕 주체의 거점 연왕부.
바로 그곳과 인접한 포구에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수백 척의 군선을 이끈 왜구가 출몰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적을 도륙...이 아니라 모든 걸 노략질하라!”
...왜장은 정지였다.
< 169화 연왕 주체 > 끝
ⓒ 날아오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