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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63화 (163/187)

< 163화 너의 뒤통수가 보여(1) >

요동 총병관 양문이 진군한 이후부터 고려군과 나하추의 급습을 대비한 요동 성주는 초조한 낯빛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직 적군의 공격은 없었지만 언제 공세가 펼쳐질지 모른다.

잠시의 방심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현재로서 가장 이상적인 건 요동 총병관 양문이 돌파구를 확보하여 요동성으로 진군했다는 소식이다. 그리만 된다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서, 성주님!”

다급한 목소리.

요동 성주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군의 본진이 대패했습니다!”

“!!!”

둔기로 뒤통수를 후려 맞은 느낌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지 않은가.

[화를 당하게 될 겁니다.]

다시 선탄의 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이럴 때가 아니다. 본진의 대패 소식을 접한 적군이 언제 공세를 취할지 모른다.

우선 본진과 결합할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총병관님은? 퇴각하셨나?”

“전사하셨습니다.”

“!!!”

요동 성주는 크게 휘청였다.

그리고

“적군이 나타났습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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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성주의 저항은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변안열, 배극렴, 박위와 나하추의 군세가 돌격하자 순식간에 전열이 와해한 것이다. 요동 성주는 반격은커녕 도주하기에 바빴다.

오랜 기간 포위된 형세로 어려움에 봉착한 상태에서 사지에 남겨진 병사들이었다. 가뜩이나 사기가 떨어진 상황에서 본진까지 붕괴했다. 싸울 여력 따위가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반갑소. 고려군 8도 도통사 최영이외다.”

“심양행성승상(審陽行省丞相) 나하추이외다.”

요동성에서 만난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회담은 화기애애했다.

막강한 명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요동성을 수월하게 점령했지 않은가.

나하추는 요동을 품은 채로 북방의 대 군벌로 성장할 내일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경솔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아직 요동성을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보는 건 어려웠으니까.

“고려군의 계획을 듣고 싶소.”

“조만간 본국의 총리님께서 4만의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을 것이외다.”

나하추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과거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었다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지금 양국의 위치다.

최영의 말대로라면 고려군은 10만의 대군이 된다. 거기다가 고려에 복속된 호발도의 여진족도 1만 명이나 된다.

심지어 이번에 요동성을 확보한 것도 고려군이고, 대승의 주체도 고려군이다.

그런데 전력까지 압도적으로 밀린다면 주도권은 고려군이 가지게 된다.

일전에 밀약을 통해서 요동성을 넘겨주기로 한 고려가 아닌가.

그렇다면 전쟁의 주체는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사정은 그게 아니었다.

내심 불안해졌다.

그러나 티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귀국의 도움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외다.”

“음.”

“···왜 그러시오?”

“조만간 명의 지원군이 도착할 거요.”

“풍승과 남옥이 20만을 이끌고 오고 있소.”

“본래 귀국의 황도를 공격할 계획이었다고 들었소.”

“그랬는데 양문을 지원하러 회군했다가 사정이 이리되었으니 요동성으로 곧장 올 것이외다.”

“해서, 하는 말이외다. 귀국의 주력군이 요동 전선에 참전하기를 청하오.”

“···본국의 주력을 이르시오?”

“물론이외다. 명은 강대하오. 10만을 격퇴했는데 20만이 오고 있소이다. 기가 막힌 일이지요. 만일 요동성 전투에서 시일을 끌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오.”

나하추는 잠시 고심했다.

최영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명군이 황도를 공격할 경우의 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요동성 전투가 북방의 패권을 좌우하게 될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국에서 지원군이 오면 고려군보다 열세인 군세를 비등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알겠소. 즉각 원군을 청하겠소.”

“바람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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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찌 상국과 북원만 만나서 회담을 한다는 말입니까.”

호발도는 격분했다.

규모는 1만 명에 불과했지만, 이번 작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또한, 이번 일과 명나라와는 확실하게 척을 지게 되었다. 사실상 세력의 명운을 걸고 중대 결정을 한 건데 이렇게 홀대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호발도는 불안함이 올라왔다.

“혹시 요동을 준다는 약조를 어기시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있는가?”

남은은 달래듯 말했다.

“오늘 일은 마음에 담아 두지 말게.”

“대감.”

“북원은 우리의 밀약을 모르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토사구팽(兎死狗烹)”

“!!!”

“그러니 함구하게.”

호발도는 마른침을 넘기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소인 역시 그리될까 두렵습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하게.”

남은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냥이 끝나지 않았으니 나는 쓸모가 있다고 말일세.”

겁박이라면 겁박이었다.

호발도는 입술을 잘게 깨물면서 말했다.

“사냥하라고 하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약조는 꼭 지켜지길 바랍니다.”

“물론일세. 요동은 반드시 자네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네. 그러니 지금은 최선을 다하는 게 좋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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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난 요동 성주가 패잔병을 이끌고 달려간 방향은 풍승과 남옥이 진군해오는 쪽이었다. 만일, 두 장군의 대군과 결합하지 않으면 고려군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이었고 그건 적중했다.

언제부터 고려군의 집요한 추격이 멈춘 거다.

“배극렴 장군.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겠소?”

변안열의 물음에 배극렴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영 대감께서 요동 성주는 살려두라고 하셨으니 이 정도면 충분할 거요.”

“저자는 우리가 남옥, 풍승을 두려워해서 물러났다고 생각할 거요.”

“하하하. 그럴 것이외다.”

두 장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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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심장부 남경을 충격으로 빠트린 대사기극의 주인공 정지와 마천목은 유유히 바다를 누비고 있었다.

“지금쯤 명 조정은 약이 바짝 올라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이제 어찌할 생각입니까.”

정지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간단하게 답했다.

“자네 꼴을 생각해보게.”

“···또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긴. 전주에서 총력을 기울여 양성한 군선일세. 요동 전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면 더 활약해야지. 안 그런가?”

마천목의 눈이 가늘어졌다.

“···단지 그 이유 때문입니까?”

“당연히 아닐세.”

정지는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봤다.

“생각해보게. 우리가 이 몰골을 하고 돌아다니는 이유가 고작 군량 10만 석 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고말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만 이 흉측한 왜놈의 촘마개를 풀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이를 이른 것일세.”

그제야 마천목은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면서 격하게 동조했다.

“예. 맞습니다. 적어도 앞 윗머리가 멀쩡해질 시간은 필요하지요.”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라야지.”

“예. 죽어도 이 몰골을 하고 개경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끔찍하지.”

“무엇보다 총리님께서 보신 뒤 어떤 반응을 보일지 훤합니다. 죽을 때까지 놀려 먹을 겁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따져보려면 몰골이 멀쩡해져야 하네.”

그러더니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지금쯤 남경 포구에는 상당한 병력이 요격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는 걸세.”

“어차피 우리가 남경을 도모할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닙니다. 무리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포구를 타격하는 건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은 방법일세. 그러나 그건 차선책으로 하는 게 좋을 걸세.”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명군이 지금 남경 포구에 주둔한 건 그저 반응한 것일세. 그들은 우리가 군량 10만 석을 얻었으니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할 거니까. 다시 방심할 때 남경을 타격하는 걸세.”

“합당합니다.”

“그렇게 바다를 떠돌다 보면 우리의 앞 윗머리도 풍성해질 걸세.”

“과연 장군이십니다. 탁월한 혜안입니다. 오늘 소장의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과찬일세.”

정지의 판단대로였다.

며칠이 지나자 명군은 포구에서 물러날 움직임을 보였다.

바로 시기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다시 대대적인 포격을 가했다.

퇴각하던 명군은 부랴부랴 전열을 정비하여 반격에 나섰으나 그때는 이미 군선이 물러난 직후였다.

그리고 얼마 후 소식이 전해졌다.

“동구왕(東甌王) 탕화라.”

“예. 그가 300여 척의 군선과 6만의 정예군을 이끌고 출병했다고 합니다.”

지속해서 당하던 명군이 드디어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출병 규모와 동구왕 탕화라는 지휘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왜구를 완벽하게 소탕하겠다는 강력한 뜻을 표출한 거다.

“그는 명 황제가 총애하는 숙장으로 이름이 높지.”

“예. 우리 고려에도 알려진 인물이니까요.”

“음. 그리고 300척이라.”

“군선의 규모는 아군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군은 왜선. 명의 군선에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네.”

“그건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마천목은 정지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바로 묻지 않고 연유를 생각해봤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번 작전의 실무준비를 전녹생이 했지만, 전투에 나설 병사의 훈련과 수군의 양성은 정지가 했다. 왕선이 그를 일찍 전주로 내려보낸 이유도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니까 현 고려의 수군은 사실상 정지가 육성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만큼 그는 뛰어난 무장이었다.

그랬다. 그러니까 그런 거다.

동구왕 탕화가 명의 숙장이라면, 정지는 고려를 대표하는 숙장이다.

지금 정지는 호승심을 느끼고 있는 거다.

“···장군. 안됩니다.”

“대륙을 흔들어댄 숙장과 자웅을 겨뤄보고 싶었을 뿐일세.”

“그 심정을 소장이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패할까 봐?”

마천목의 안색은 다소 굳어졌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지 않습니까.”

“······.”

“패하면 문제지만 이겨도 문제입니다.”

“···자네 말이 맞네.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작전이 우선이지.”

“합당한 말씀입니다.”

“이럴 때마다 요동에서 싸우고 있을 다른 장수들이 부럽군.”

정지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최대한 빨리 명의 바다에서 벗어나지.”

“예. 장군.”

그렇게 왜선으로 위장한 고려 군선은 빠른 속도로 회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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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성은 철통같은 방비 체계를 유지했다.

고려군과 나하추 그리고 여진족은 철저하게 구역을 나누어서 방비에 열중했다.

다른 지휘계통을 가진 군세가 함께 있으면 괜한 마찰이 발생할 걸 우려한 탓이다.

물론 일사불란한 지휘를 위해서는 군권을 하나로 모아야 하겠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최영과 나하추 두 사람 중 한 명이 지휘권을 내려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건 단지 두 사람의 자존심 문제를 떠나서 양국의 위계를 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

만일 이를 공론화하면 최영은 고려가 주도하는 전투라고 말할 것이고, 나하추는 북원이 대국임을 내세울 거다. 이리되면 갈등만 생길 뿐이다.

그래서 군권을 모아내지는 않았으나 암묵적으로 고려군의 8도 도통수인 최영이 작전을 입안하여 나하추와 논의하는 형식을 취했다.

만일, 나하추가 자존심을 내세우는 아둔한 인물이었다면 이런 형식조차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 고려가 큰 역할을 맡으며 많은 준비를 했다는 걸 알기에 비공식적인 작전의 주도권을 양보한 것이다.

최영 역시 괜한 거로 트집 잡아서 충돌을 일으키는 인사가 아니었다.

하여. 두 사람의 논의는 아주 순탄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급보가 전해졌다.

“풍승과 남옥의 대군이 요동성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요동성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다급하게 전해졌다는 건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수일 내로 당도할 것입니다.”

바로 지척에 왔다는 거다.

최영은 나하추를 바라봤다.

“이번에도 우리 작전에 동의해주시겠소?”

“물론이외다.”

“하면?”

“이르시지요.”

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려 군권을 상징하는 부월을 들었다.

조금 전까지 미소를 띄던 노장의 눈에 강건함이 실렸다.

“전군.”

명령을 내렸다.

“요동성에서 퇴각한다.”

< 163화 너의 뒤통수가 보여(1)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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