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미륵이니라-161화 (161/187)

< 161화 썩은 동아줄 내리기(1) >

왜구였다. 왜구가 분명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명히 왜구였다.

“全部殺せ! (모조리 죽여라!)”

말투도 왜구다.

분명했다.

“ウハハハハハ! (우하하하하하!)”

전장에 퍼지는 괴이한 웃음.

그 천박함은 누가 봐도 왜구가 분명했다.

“ここが楽園だね!(여기가 낙원이구나!)”

살육을 즐기는 광폭함.

확실했다. 왜구다. 왜구였다.

남경 포구에 상륙한 수천 명의 왜구로 추정되는 불한당들은 미친 듯이 칼을 휘둘러댔다.

-부아아아아아앙!

피칠갑을 한 마천목.

...포악한 야차가 따로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왜놈의 그것이었다.

전황을 살피던 그는 곧장 정지에게 달려갔다.

“장군!”

“이...!!!”

정지의 칼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더니 마천목의 목 바로 앞까지 날아갔다.

마천목은 당황했다.

“자, 장군.”

“미, 미안하네. 왜놈인 줄 알았네.”

“······.”

“자네 꼴이 완전 왜놈이네. 평생 싸웠던 적의 수뇌부가 내 눈앞에 나타난 게 분명하다고 느껴졌다네.”

“······.”

“피 칠갑한 자네 모습은 왜구가 분명하네.”

...본인 모습은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러나 마천목은 감히 따지지 못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이만하면 물러나도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래야겠지?”

“예. 이만하면 충분하게 노략질을 했습니다. 왜구답게.”

“그래. 더 버티다가는 명군과 정면충돌할 수가 있으니까. 퇴각하지. 왜구답게.”

“예. 왜구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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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 양문의 대군이 회군을 시작했습니다.”

“나하추는?”

“적절한 거리를 둔 채로 양문을 따르고 있습니다.”

부관 임정유의 보고를 받은 최영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감돌았다.

“나하추가 제법 잘하는군.”

양문의 군세는 무려 10만이다.

반면, 최영은 5만, 나하추는 3만.

수적 열세가 분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면 각개격파를 당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양측의 긴밀한 협조였다.

“변안열 장군, 박위 장군, 배극렴 장군.”

“예. 대감.”

“각자 1만의 병력을 이끌고 양문의 남하를 최대한 차단하게.”

“알겠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발목만 잡으면 될 것이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양문이 양측으로부터 포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끔 하겠습니다.”

“훌륭하군. 즉각 출병하게.”

“예.”

최영은 신속하게 명령을 이었다.

“양백연 장군, 우인열 장군.”

“예. 대감.”

“자네들은 각자 5천의 병력을 이끌고 동북면에서 요동으로 진입하는 길목을 차단하게.”

“알겠습니다.”

“자네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게.”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원계 장군.”

“예.”

“자네는 1만 기병을 이끌고 적의 사방을 유린하게.”

“혼백을 어지럽게 만들겠습니다.”

최영은 흐뭇하게 웃었다.

눈앞에 있는 장수들이 너무나도 듬직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이는 평생 기다린 순간이다.

평생의 염원이자 필생의 신념.

고려의 모든 숙장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요동 땅을 밟는 것.

지금 이 순간 바로 그것이 아주 생생하게 구현되고 있지 않은가.

노익장의 심장이 따뜻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주 조금 허전했다.

...이 위대한 대업에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이 없어서 그러했다.

쓰게 웃었다.

어쩔 수 없으니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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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추의 추격을 적절하게 견제하면서 회군하던 요동군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

요동성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을 고려군이 차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만에 이르는 아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수입니다. 과감하게 돌격한다면 단번에 돌파할 수 있습니다.”

요동 성주의 말을 들은 양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만일 그리한다면 전투가 발생하는 동안 아군은 완벽하게 포위될 것이네.”

양문은 사방을 둘러싼 적군의 형세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아무리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더라도 포위당하면 제대로 싸우는 게 어렵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알아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타개하자면 고려군이 주둔하고 있는 거점 중 한 곳을 뚫어야 하는데 그 행위 자체가 포위 공격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요동성을 뺏긴 상태에서 요동 전선을 구축한다는 건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차라리 아군도 분군하여 각개격파하는 게 어떻습니까.”

“음.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분군하더라도 수적 우위에 있습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양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포위된 형국에서 분군을 한다고?”

“그것이 아니라···.”

“섣불리 분군했다가는 우리가 각개격파 당할 건 불 보듯 뻔해. 아무리 수적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포위된 형세는 그걸 상쇄할 수 있는 법. 한심하군.”

“···송구합니다.”

양문은 한숨을 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형세였다.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수는 하나였다.

“지원군을 기다린다. 풍습 장군과 남옥 장군이 당도하면 일은 해결된다. 그전까지 우리는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는 데 힘을 쓰면 될 것이야.”

“초, 총병관님!”

부관의 목소리.

“적의 기병이 나타났습니다.”

“규모는?!”

“1만은 됩니다.”

“동요하지 말고 침착하게 요격하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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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추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기가 막히는군. 단번에 10만 대군의 발목을 잡았어.”

“그런데 이대로 전황이 고착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풍습과 남옥의 20만 대군이 요동으로 향하는 건 시간 문제니까.”

그랬다. 작금의 전황은 여전히 엄중했다.

문 하라부카는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풍습과 남옥이 끼어들기 전에 양문을 정리하는 게 최선입니다.”

“네 말이 옳다. 한데, 그건 아군 단독으로는 어렵다. 고려군과 긴밀히 연계해야 가능해.”

“고려군이 1만 기병을 운용하여 양문을 희롱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유격전에 불과하다. 본군이 포위에만 집중한다는 건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거지.”

“음. 그러면 사람을 보내서 우리 생각을 전하는 건 어떻습니까.”

“최영이 이런 상황을 분석하지 못했을 리 없지. 한데도, 양문을 포위하는 형국을 유지하는 건 분명히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노림수를 아군에게까지 비밀로 한다는 겁니다. 이처럼 엄중한 상황일수록 양군의 협조가 더욱 튼튼해야 하지 않습니까.”

“고려군으로부터 사람이 왔습니다.”

때마침 들려온 목소리.

곧장 사신을 들어오게 했다.

“고려군 팔도 도통사 최영 대감의 서찰을 가져왔습니다.”

사신은 서찰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군은 본격적으로 공격을 감행할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서찰의 내용을 확인한 나하추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걸렸다.

기가 막힌 묘안이 적혀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즉각 출병할 것이라고 대감께 전하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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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세게 입술을 깨물었던지 피가 새어 나올 정도였다.

양문은 한탄하듯 말했다.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

기세등등하게 요동성을 나올 때만 하더라도 단번에 북방을 평정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꼴이 너무나도 우스웠다.

이원계의 기병이 수시로 나타나서 보급부대를 집요하게 노리더니 마침내 고려군의 본군과 나하추가 사방을 에워싸면서 공격해온 것이다.

쉬지 않고 사방에서 압박하는 탓에 피해는 갈수록 누적됐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당한 것만은 아니었다.

대대적으로 공세를 취했는데 그럴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다른 측면에서 후미를 노리고 맹렬하게 공격해왔다.

그 결과 오히려 피해만 늘어난 거다.

풍습과 남옥의 지원군을 기다리기에는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총병관님!”

부관의 목소리.

양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최근 좋은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탓이다.

“여진족의 호발도가 은밀히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호발도?”

“예.”

본래 호발도는 오랫동안 요동의 지원을 받았다.

그 지원으로 고려의 동북면을 공격하기도 했을 정도로 우호적인 세력이었다. 하지만 동북면 공격 당시 이성계에게 크게 패하여 세력이 약해지더니 급기야 고려에 복속됐다.

그 뒤로 소원해지긴 했으나 간헐적으로 사람을 보내왔다.

그때마다 호발도는 당장 처지가 궁색하여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으나 언제라도 반격의 기회를 찾겠다고 했다.

이런 사정이 떠오른 양문은 황급히 호발도의 사람을 불렀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대인.”

그동안 오갔던 호발도의 수족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보아하니 여진족치고는 제법 서책을 읽은 거 같다. 게다가 명나라 말도 유창하다.

호발도가 신경 써서 사신을 엄선했다는 게 느껴졌다.

...이거 좋은 소식이 분명하다.

양문은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호발도가 보냈다고?”

“그렇습니다.”

“네 주인 호발도는 본국과 전쟁 중인 고려에 귀속됐다. 한데, 내게 사람을 보냈다?”

“대인. 우리는 오랫동안 대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비록 힘이 부족하여 고려에 머리를 숙였으나 어찌 마음 까지 변했겠습니까.”

양문은 살피듯 사신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호발도가 전할 내용은?”

“고려가 압박을 가했습니다.”

“여진족도 참전한다?”

“사정이 고약하게 되었지요.”

“해서, 대명과의 의리를 생각하여 참전하지 않을 것이니 대가를 달라?”

“고작 그 정도로 어찌 대가를 바라겠습니까. 어차피 승자는 대명이 될 게 뻔한 전쟁인데.”

...이것 봐라?

양문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2만의 기병을 이끌고 왔습니다.”

“···뭐라?”

생각하지도 못한 엄청난 규모.

무려 2만의 기병.

양문은 놀라움을 숨길 새도 없었다.

뒤늦게 침착하며 말했다.

“···그래서?”

“동쪽을 포위하고 있는 양백연과 우인열을 돌파하여 명군과 결합하겠습니다.”

그때를 틈타서 명군이 기민하게 움직인다면 포위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

그리만 된다면 요동성으로 곧장 진군하거나, 지긋지긋한 적군에게 역습도 가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회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지원을 약조하지.”

“대인. 우리 여진족도 사활을 걸었습니다.”

대가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양문이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어차피 대명은 이긴다. 한데, 감히 흥정하려는 것이냐?”

“대명은 이깁니다. 그러나 대인께서 이기는 건 아니지요.”

“뭐라?”

사실이다. 지금 양문이 할 수 있는 건 풍습과 남옥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거다.

그렇게 이긴 이후에는?

10만 대군을 이끌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죄로 크게 문책당할 거다.

그리고 모든 이가 비웃을 거다.

양문은 입술을 깨물었다.

반면, 사신은 눈치를 살피는 시늉을 했으나 그 행동에는 당당함이 담겨있었다.

즉,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표출한 거다.

그걸 본 양문의 볼이 씰룩였다.

불쾌했으나 지금은 여진족의 도움이 절실했다.

“원하는 걸 말해보라.”

“사는 곳이 좁습니다.”

“뭐?”

“요동 동쪽의 땅을 우리가 가지고 싶습니다.”

“미쳤군.”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조건을 황상께서 허락하실 거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대인께서 하시기 나름이지요?”

“뭐?”

“어차피 요동 동쪽은 황상께서 크게 관심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만일 일이 성사만 된다면 소인들은 대인께서 통치하실 요동에 큰 우군이 될 겁니다.”

여진족은 신뢰가 없다.

문제는 누구에게 신뢰가 없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거다.

호발도가 고려와 손을 잡은 채로 계략을 꾸미는 건지, 요동과 손을 잡고 고려를 공격하려는 건지 쉽게 가늠할 수가 없다.

해서, 양문은 사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고심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확신했다.

이토록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건 진실이라는 거다.

만일 고려와 손을 잡았다면 거절당할 수도 있는 조건을 말하지 않고, 성사될 가능성이 큰 거래를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만일 고려와 손을 잡고 수작질을 펼치는 거라면 조금 전에 제안한 과거의 지원을 약조한 것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양문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하면, 전장에서 뵙겠습니다.”

“살펴 가게.”

“예. 대인.”

홀로 남은 양문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반격의 때가 온 것이다.

주먹을 꽉 쥐었다.

한편, 명군의 주둔지를 벗어난 사신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탄하듯 내뱉었다.

“어쩌다가 이리되었는지 모르겠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려말이었다.

몰골은 영락없이 여진족의 그것이었는데 말이다.

“고려국의 대사헌이 여진족의 복색이라니.”

그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가 봐도 여진족처럼 보이는 그는 고려의 대사헌 남은이었다.

“대업이 완수되면 평생 따질 것이다.”

다시 한탄했다.

그러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짐승보다 못한 왜놈 흉내 내는 것보다는 낫지.”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위안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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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ウハハハハハ! (우하하하하하!)”

남경 포구에 상륙한 왜구로 추정되는 병력.

그 선두에는 실로 강인한 위력을 뽐내며 실성한 듯 웃어대는 장수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왜장이었다.

실로 놀라운 무위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정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무장이었다.

그 모습을 본 마천목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최대한 거리를 뒀다.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 정지는 실성한 게 분명했으니까.

그랬다.

일시 물러났던 그들이 다시 남경 포구 타격을 시작한 것이다.

< 161화 썩은 동아줄 내리기(1)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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