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미륵이니라-160화 (160/187)

< 160화 고려의 국시, 그 위대한 이름이여 >

요동성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요동 총병관 양문의 명령으로 나하추를 타격할 준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사. 어서오시오.”

“나무아미타불.”

선탄은 자애롭게 웃으면 합장했다.

요동성주도 기분 좋게 웃으면 합장으로 화답했다.

“요동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군요. 혹시 전쟁이 발생하는 겁니까?”

“그렇게 보이시오?”

“소승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세간에서 들리는 말을 전한 겁니다.”

“실은 나하추의 본거지를 타격할 생각이외다.”

“허.”

“왜 그러시오?”

“일전에도 그랬다가 고려군의 개입으로 곤란했지 않습니까.”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린 요동 성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걱정하지 마시구려. 고려군의 개입은 일시적이라오.”

“예?”

“그런 게 있소이다. 그나저나 대사를 부른 건 청이 있어서 그러오.”

“이르시지요.”

“대사의 말대로 요동성의 분위기가 어지럽소.”

“그렇지요.”

“큰 법회를 열어서 백성의 동요를 막아주시오.”

“음. 법회를 여는 건 어려운 게 아닙니다. 다만, 그 내용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겁니까?”

“바로 그렇소.”

“음.”

“왜 그러시오?”

선탄은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성주님. 소승은 할 수 없습니다.”

“허.”

“송구합니다.”

“대사.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까지 우리는 잘 협조해왔소만?”

“물론입니다. 소승도 최선을 다해서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미륵의 이름으로 승패가 불분명한 전쟁을 점친다는 건 소승으로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확실한 승산이 있다고 했소이다.”

“음. 하면, 하루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좋소.”

다음날

요동 성주는 불같이 화를 냈다.

“대사! 내가 그동안 베푼 호의를 잊은 것이오?!”

“어찌 성주님의 호의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대로 북진하면 큰 화를 입게 될 겁니다. 그러니 시기를 늦추십시오.”

“하! 요동의 대군이 총력을 다해서 공격하오. 또한, 풍습 장군과 남옥 장군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결합할 것이오. 한데, 화를 입는다?”

“성주님. 소승은 군무의 일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간밤에 도솔천에서 잠시 내려오신 미륵께서 그리 이르셨습니다. 부디 미륵의 가르침을 받는 중생들을 도탄에 빠지게 하지 마십시오.”

“이보시오! 여긴 미륵이 아니라 대명의 황상께서 다스리는 요동이오! 어디서 그따위 사술을 펼치려는 것이오?! 내가 그렇게 우습소?!”

요동 성주의 화는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도 선탄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소승의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 됐소. 법회나 여시오.”

“중생들에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보시오. 대사.”

“소승을 벌하시더라도 그리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대업을 앞두고 있는데 민심을 현혹한다?”

“소승은 미륵의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하! 그대가 말한 통치라는 게 국가의 중대사를 조롱하는 것이었나?”

“성주님.”

“닥치거라! 밖에 누구 없느냐!?”

곧장 병사들이 달려왔다.

“당장 이 요망한 중놈을 하옥하라!”

그런데 병사들이 머뭇거렸다.

그걸 본 요동 성주는 더 화가 치밀었다.

“감히!”

“나를 끌고 가게.”

“허.”

“자네들은 성주님의 명령을 거절해서는 아니 될 것이야.”

그렇게 선탄은 스스로 포박되어 하옥됐다.

-----

국방성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요동성의 소식이 전해진 탓이다.

“최영 장군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을 취하셨습니다.”

“개경만 움직이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왕선은 숨을 크게 쉬었다.

그 숨소리가 모두의 심장을 울렁였다.

왕선은 시선을 바로 잡아서 모든 이의 눈을 쳐다봤다.

-드디어

-때가 됐다.

-이길 수 있다.

-반드시 이길 것이다.

이 나라 고려를 상징하는 숙장들의 결심이 아주 제대로다.

왕선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확실하게 말하겠네.”

왕선의 목소리가 국방성을 울렸다.

“지금부터 우리가 수행해야 할 전쟁의 목표는 딱 하나일세.”

“이르십시오.”

무엇일까.

오만한 명을 심판하는 것?

요동성을 점령하는 것?

여러 가지 생각이 숙장들의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승리.”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 들렸다.

하지만 그건 고작 한 단어에 불과했지만 모든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오직 승리.”

간결하지만 묵직한 그 말은 숙장들의 심장을 울렸다.

왕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500년 거목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었는지 증명하게.”

단호하게 외쳤다.

“반드시 승리하라.”

숙장들은 화답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다시 외쳤다.

“천년 고려의 영광을 위하여.”

화답했다.

“천년 고려의 영광을 위하여.”

-----

요동 총병관 양문은 여유가 넘쳤다.

눈엣가시 같던 고려의 속내를 훤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물론 확실하게 해야 했다. 그래서 정보원을 이용해서 요동군의 움직임을 고려에 흘렸다.

그러자 고려의 반응이 아주 재밌었다.

보란 듯이 대군을 운용하여 움직였다.

그것은 화들짝 놀란 모습이 분명했다.

만일 고려군이 군사동맹을 이용하여 북진하려고 했다면 더 은밀하게 움직였을 거다. 그러나 지금 포착된 모습은 누가 봐도 부랴부랴 군을 움직여서 요동군의 북진을 압박하려는 수준의 움직임이 확실했다.

그러니까 그거다.

명과 북원의 생사결에서 고려의 존재감을 적당하게 보인다.

하여, 훗날 대륙의 패권을 명나라가 거머쥐었을 때 고려의 위치를 분명하게 하려는 것.

즉, 소국(小國)이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수준에 불과한 거다.그래서 더 머뭇거리지 않았다.

요동의 전력을 투입하여 나하추를 끝장내기로 한 거다.

어디 그뿐인가? 조만간 풍습과 남옥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북원 본토를 타격하기로 했다. 이번에야말로 나하추만이 아니라 북원까지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유가 넘칠 수밖에 없었다. 홀로 고립된 나하추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반면, 나하추는 사정이 달랐다.

“요동에서 10만이라.”

“아버님.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나하추와 문 하라부카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고려는?”

“일찍이 사신을 보냈습니다. 때가 되면 지원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허. 벌써 요동군이 북진을 시작했거늘.”

“···정상적이라면 진작에 압록강을 넘어서 요동의 움직임을 막았어야 했습니다.”

“본국도 풍습과 남옥이 공격할 태세입니다.”

“···이럴 때 고려가 변심했다면 파국이다.”

“······.”

칭제건원을 하고 대명 선전포고를 한 고려국이다.

주원장의 신경을 긁어댄 나라가 아닌가.

해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엄습하는 불안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다급한 외침.

두 사람은 직감했다.

요동의 대군이 지척에 당도했음을.

“싸운다.”

“예.”

-----

요동 총병관 양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연전연승이었다.

작은 실수도 없었다. 어느새 나하추의 본거지 금산을 완벽하게 포위했다.

이대로라면 금산을 함락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군.”

여유롭게 말했다.

“전군에게 이르거라. 단번에 금산을 점령할 것이다.”

“예!”

마침내 10만 대군이 총공세를 감행할 준비에 나섰다.

그때였다.

멀찍이서 다급하게 달려오는 파발이 보였다.

“그, 급보입니다!”

급보? 갑자기?

양문의 눈에는 의구심이 크게 감돌았다.

“고, 고려군이 압록강을 넘었습니다!”

“하! 금산으로 향하고 있는가?”

“아, 아닙니다.”

“뭐?”

...아니라고? 압록강을 넘었는데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 그러면 왜 압록강을?

그 순간 양문의 머릿속으로 스치는 게 있었다.

...설마?

“요동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

“소인이 성을 벗어났을 때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다급한 말은 이어졌다.

“족히 5만은 되는 대군입니다.”

“!!!”

5만이라니.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다.

단지 엄포가 아니다.

단지 나하추를 구하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다.

...요동성을 점령하기 위한 군세다.

...속았다. 완벽하게.

양문은 하늘이 노래졌다.

그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요동성을 버릴 수는 없다.

“즉각 회군한다!”

-----

나하추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금산 함락이 눈앞에 다가왔다.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아버님! 양문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문 하라부카의 외침.

“뭐라?”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습니다.”

“함정?”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전황이지 않습니까. 필시 무슨 일이 터진 겁니다.”

“설마? 고려군이 북상했나?”

“그게 가장 유력합니다.”

때마침 달려온 부관의 외침.

“고려군이 요동성을 점령했습니다!”

“!!!”

그리고

“요동군의 후미를 공격해달라는 고려군의 요청입니다.”

“후미?”

“포위 공격을 청했습니다.”

나하추는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반격의 순간이었다.

-----

“···마 대장.”

“···예.”

“이거 누구 생각인가. 혹시 삼봉 장관인가?”

정지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아닙니다.”

“허. 설마?”

“예. 총리님의 결정입니다.”

“허.”

정지는 허탈하게 웃었다.

허망한 눈으로 하늘만 쳐다봤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장군.”

“그래. 자네는 더 그렇겠군.”

“평생 고려의 국방을 위해 싸우신 장군께 비하겠습니까.”

“자네는 총리님과 줄곧 함께했는데 이처럼 모진 대우를 당한 게 아닌가.”

그러자 마천목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정지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네도 고생이 많군.”

“······.”

“오늘따라 유독 하늘이 원망스럽도다.”

정지의 한탄.

마천목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만류했다.

“장군. 고정하십시오.”

“걱정하지 말게. 이 또한 작전이니까. 반드시 작전이니까.”

“···예. 그렇습니다.”

“모든 게 끝나면 아주 제대로 따질 것이네.”

“소장도 그리할 겁니다.”

“반드시 대승을 거두세.”

“예. 그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이 몰골이 억울하지 않으니까요.”

그때 웅성거림이 들렸다.

마천목은 아련한 시선으로 전방을 쳐다봤다.

...드디어 때가 된 거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정지를 쳐다봤다.

“장군. 어서 끝내고 이 몰골에서 벗어나지요.”

“···그래야지. 이 치욕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으니까.”

그랬다.

지금 두 사람의 갑주는 참으로 희한했다. 고려 무장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앞 윗머리를 밀고 정수리 쪽에서 머리를 묶고 있었다.

촘마개라고 불리는 왜인의 상투였다.

...서로 몰골을 보던 두 사람은 정말로 죽고 싶었다.

정지는 한숨을 쉬면서 외쳤다.

“全軍! (전군!)”

...그의 입에서 나온 건 고려 말이 아니었다.

“砲撃せよ! (방포하라!)”

...왜국의 말이었다.

마천목도 뻘게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全軍! 砲撃せよ! (전군! 방포하라!)”

그러자 아주 잠시 거대한 괴성이 들렸다.

“ちくしょう!(제기랄!)”

“偶さか! (어쩌다가!)”

“すべて 明国 からだ! (모두 명나라 때문이다!)

그랬다.

바쁘게 움직이는 병사들도 영락없는 왜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바다를 울렸다.

그랬다. 명의 심장부 남경.

그 남경의 앞바다를 뒤덮은 ‘왜선’으로 추정되는 수백 척의 군선이 일제히 포격을 가한 것이다.

족히 500여 척은 되는 엄청난 규모였다.

그리고 지휘관은 정지와 마천목이었다.

바야흐로 시작이었다.

500년 고려의 유일한 국시.

[북진]

그 위대한 대업이.

< 160화 고려의 국시, 그 위대한 이름이여 > 끝

ⓒ 날아오르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