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순리대로 (am 10시 33분 수정/ 재수정) >
국문장에는 죄인들로 가득했다.
국방성에서 개처럼 두들겨 맞으면서 끌려온 하륜과 재상들.
그리고 이성계의 사가에서 도주하다가 잡힌 정창군 왕요, 이색, 염제신까지.
이 인원만 해도 많았다.
그런데 하루만 늦어졌어도 [폐가입진(廢假立眞)]에 동참한 사람은 더 많아졌을 거다.
사대부와 왕실의 종친까지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군.”
왕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이봐. 하륜.”
“······.”
“내가 왜 어처구니가 없는지 아는가?”
“이토록 많은 인사가 당신의 통치에 불만을 가진 게 놀랍겠지요.”
담담하게 내뱉는 하륜의 독설.
그러나
“그게 아니라 겨우 이 정도로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놀랍다고.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 너무나도 우매하고 말일세.”
왕선은 비웃음으로 화답했다.
“만용도 이런 만용이 없지.”
“만용이 아니라 정도를 바로 잡은 겁니다. 비록 실패했으나 폐가입진은 진실이니까요. 언제라도 충의지사가 이 나라 고려를 위해서 들떠 일어설 겁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죽으나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염제신이 끼어들었다.
그는 왕선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결기를 보였다.
“선대 황제께서 이 사람을 웃으면서 반길 겁니다. 고생했노라고.”
“그래? 확신하나?”
“물론입니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네.”
그 말이 끝나자 마천목이 웬 남자를 끌고 왔다.
그를 본 하륜의 눈동자가 철렁였다.
“저 사람 알지?”
“······.”
“발뺌하기는. 이봐.”
“예, 예.”
“시작해.”
“아, 알겠습니다.”
끌려온 남자는 황급히 지필묵을 꺼내서 붓을 들었다.
...그리고 선대 황제의 필체를 그대로 옮겼다.
그걸 본 좌중은 충격에 휩싸였다.
“하, 하륜! 나를 속인 것이냐!”
염제신.
“대감.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나를 끌어들인 것이오?!”
이색.
“나, 나는 억울합니다.”
정창군 왕요.
“······.”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륜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선대 황제의 유훈을 조작하여 역모를 준비하다니. 참으로 대단해.”
“······.”
“국문은 없다. 그냥 다 죽으면 될 것이다. 염제신. 너부터 벌하겠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댄 선대 황제를 만나게 해주지.”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참 추하군.”
“이렇게 갈 수는 없습니다. 선대 황제를 모신 재상으로서의 대우를 해주십시오.”
아주 간단하게 결론만 말하자면 명예롭게 죽을 수 있게 사약을 달라는 말이었다.
왕선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보낼 수는 없지. 선대 황제를 보필한 재상의 대우를 해줘야지.”
염제신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쓰게 웃을 때
“너는 신돈의 잔당에게 죽어야지.”
“!!!”
“이옥!”
그 말과 함께
-쏴아아아아아앙!
거센소리를 내며 화살이 염제신의 왼쪽 어깨를 관통시켰다.
“커헉!”
염제신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오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이옥이 핏발선 눈으로 이를 갈면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은 야차와도 같았다.
“노비로 강등된 순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네놈을 생각했다.”
“가, 감히.”
“매일 밤 꿈에서 이 순간을 그려왔다.”
“가, 감히.”
“그래. 네놈의 입에서 그 말이 언제까지 나올 수 있을지 보겠다.”
이옥은 다시 활을 고쳐 잡았고
-쏴아아아아아앙!
날아간 화살이 염제신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시켰다.
“커흑!”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렸고
-쏴아아아아아앙!
또 다른 화살이 염제신의 왼쪽 무릎을 박살 냈다.
“커헉!”
“말해!”
“커흑...”
“당장 말해!”
이옥은 염제신의 멱살을 잡은 채로 격하게 외쳐댔다.
“내 아버님께 말해! 당장!”
그것은 울부짖음과도 같았다.
“죄를 청하란 말이다!”
“감...히.”
“!!!”
이옥은 거침없이 염제신을 구타했다.
-퍼퍼퍼퍼퍽!
-퍼퍼퍼퍼퍽!
한참이나 구타했다.
“허어억...”
염제신의 입에서 고통이 새어 나왔다.
“말해!”
“허어억..”
다시 구타가 시작됐다.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질 정도의 수준이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금방이라도 염제신의 숨이 끊어질 거 같았다.
이옥은 멈출 수가 없었다.
이 한을.
이 분노가 잦을 때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구도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때
-제, 제발 멈춰다오.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 제발.
왕선의 미간이 꿈틀였다. 다급하게 외쳤다.
“이옥!”
이옥의 구타가 멈췄다.
그리고
“그...만하게. 내가 잘못했네. 용서하게.”
염제신의 입에서 나온 말.
“허억!”
이옥은 오열했다.
그리고 염제신은 죽었다.
이옥은 힘겹게 일어나서 왕선에게 예를 취했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내가 본 자네 모습 중에서 가장 훌륭했네. 암. 내 부모의 원수는 그렇게 갚아야지.”
“주공이 아니었다면 염제신의 말을 듣지 못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옥의 입가에는 진심 어린 미소가 걸렸다.
마침내 그의 한이 풀린 것이다.
왕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색을 쳐다봤다.
“다음은...”
“목은 이색!”
정도전이었다.
그랬다. 여기도 한이 맺힌 인사가 있었다.
왕선은 헛웃음을 지으면서 양보했다.
“아이고. 사부님.”
“······.”
“소생에게 그토록 경고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입니까.”
이색은 파르르 떨면서 노려봤다.
“정도전.”
“아이고. 이거 실수했습니다. 일전에 우리는 사제 간의 연을 끊었지요? 미안합니다? 목은 대감?”
“정도전!”
“아. 이거 또 실수했군요. 목은 선생?”
“하.”
“이것도 아니구나. 그냥 역적이군요?”
“!!!”
정도전은 냉소적으로 내뱉었다.
“이 나라의 유종이시니 하나만 여쭙지요. 공자와 맹자가 왜 틀렸는지 압니까?”
“감히 나를 희롱하는 것이냐.”
“묻는 겁니다. 모릅니까?”
“하. 공맹은 틀리지 않았다.”
“틀렸는지를 묻는데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대체 언제 화법입니까? 신라? 그 옛날 조선? 정말 옛날 분이시군요. 지금은 고려가 건국된 지 무려 500년이건만.”
“이, 이놈이.”
“아. 됐습니다. 소생이 일러드리지요.”
“허.”
“공자와 맹자가 틀려 먹은 이유는 이미 죽은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뭐라?”
“수천 년 전에 죽은 인간들이 지금의 고려를 통치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 나라는 지금 살아가는 고려인이 통치해야지요.”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세요? 내 말이 옳다는 건 바로 당신이 증명했습니다.”
정도전은 낄낄거리면서 노려봤다.
“당신은 고려의 유종. 즉 공자와 맹자를 따라서 지껄이고 행동하는 사람. 결과는? 역적. 아닙니까?”
“!!!”
“바로 당신이 증명했습니다. 온몸으로 공자와 맹자의 지껄임은 구더기보다 못하다는 걸.”
“닥쳐라!”
“싫습니다.”
“듣기 싫구나!”
“아. 그건 해줄 수 있습니다. 이제 죽일 거니까.”
정도전이 비릿하게 웃었다.
“저승에 가서 공자, 맹자 만나서 손잡고 밥이나 해 먹던가. 참 보기 좋겠군.”
그의 손이 올려질 때
“영공전하!”
정몽주다.
“공사는 구분하지?”
“···총리님.”
“왜 부르나.”
“부디 선처해주십시오.”
“그럴 생각이네.”
정몽주가 안도의 숨을 쉴 때
“마 대장!”
정도전의 일갈.
“이 땅에서 썩은 유학의 시체를 치워버리게!”
마천목의 창이 단번에 이색의 어깨를 관통했다.
“참으로 통쾌하도다!”
이번에는 이옥의 화살이 반대쪽 어깨를 관통시켰다.
“참으로 장쾌하도다!”
그리고 이색의 숨이 끊어졌다.
“이런!”
정도전이 탄식했다.
“!!!”
경악한 정몽주.
“삼봉!”
“진정하게. 자네 덕분에 삼봉 군사가 저 정도로 한 거니까.”
“무, 무슨.”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죽였을 거야.”
왕선이 손을 내저었고
-부아아아아아앙!
마천목의 창이 정창군 왕요의 팔을 관통했고
-쏴아아아아아앙!
이옥의 화살이 그의 허벅지를 박살 냈다.
-부아아아아아앙!
또다시 휘둘러진 마천목의 창이 그의 심장을 향해서 움직였고
-쏴아아아아아앙!
이옥의 화살의 정창군 왕요의 이마로 날아갔다.
-퍼어어어어억!
-퍼어어어어억!
실로 참혹한 죽음이었다.
정몽주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고통 없이 죽는 거. 그게 내가 자네를 봐서 대역죄인 이색에게 내린 선처일세.”
“······.”
“아닌가?”
“···감사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정몽주는 끝내 수긍했다.
이제 남은 건 국방성에서 잡혀 온 하륜과 재상들이었다.
왕선은 하륜을 무시한 채로 재상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낯빛은 새하얗게 질렸다.
왕선은 지그시 그들의 눈을 쳐다봤다.
...모두 혐의가 없다.
그러나 죄가 없는 건 아니었다.
“너희도 벌을 내리지.”
모든 재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짓지도 않은 죄로 이렇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다급하게 외쳤다.
“총리님. 소직들은 억울합니다.”
“그, 그렇습니다. 이번 일을 제대로 밝혀주십시오.”
“총리님. 부디 면밀히 파악해주십시오.”
너도나도 외쳐댔다.
그런데
“이 나라 고려 황실의 최고 어른이셨던 태후마마의 국장을 소홀히 했다.”
왕선의 입에서 나온 내용이 조금 희한했다.
“너희 가문은 오늘부터 영원히 태후마마의 위패를 모셔야 할 것이다. 만일 이를 어긴다면 역모의 죄를 적용하겠다.”
“!!!”
“알겠는가?”
이는 역모로 벌하는 게 아니었다.
어찌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재상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바,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태후마마를 지극히 모실 것입니다.”
왕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외쳤다.
아니, 선언했다.
“이 나라 고려의 황상께서는 위대한 태조 황제의 후손이자 고귀한 사해 용왕의 핏줄이니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는 영세불변의 조종성헌이다.”
그리고 왕선은 하륜에게로 다가갔다.
리고 그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네 말이 맞아.”
“!!!”
“나는 왕씨가 아니라 궁씨이니라.”
궁...씨?
서, 설마?
하륜의 눈이 충격으로 얼룩졌다.
“나는 궁예의 후예이니라.”
“!!!”
“태봉국을 세울 것이다.”
“!!!”
“폐가입진. 좋은 기획서였어. 내가 꼭 사용해주겠네. 고맙네. 이 은혜 잊지 않고 자네 제사는 지내지 않겠네.”
“이...!!!”
하륜이 발악하며 고함을 지르려고 할 때
-부아아아아아앙!
마천목의 창이 그의 왼눈을 찔렀고
-쏴아아아아아앙!
이옥의 화살이 그의 오른눈을 찔렀으며
-부아아아아아앙!
마천목의 창이 그의 코를 짓눌렀고
-솨아아아아아앙!
이옥의 화살의 그의 입을 관통했다.
“이들 모두 사지를 찢어서 들판에 버려라. 이 나라에서 흔적을 없앨 것이니라.”
그 끔찍한 장면은 거대한 침묵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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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들어가지.”
“혀, 형님. 그냥 들어가십니까?”
왕선은 피식 웃으면서 마천목을 쳐다봤다.
전주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킬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가 생각 난 거다.
“당연하지.”
왕선은 그대로 대문을 밀었다.
그리고 외쳤다.
“최영 장군! 오랜만에 물 한잔합시다!”
그랬다. 이곳은 철원에 있는 최영의 본가였다.
최영은 황당한 표정으로 왕선을 쳐다봤다.
“뭔가?”
“허. 하대? 이 사람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총리이거늘.”
“나는 조정의 녹을 먹는 사람이 아닐세. 자네와는 사사로운 인연만 남았으니 당연히 하대하는 거지.”
“이런. 그러나 이 사람은 완산공이자 제왕인데요?”
“기분 나쁘면 벌하게.”
“허.”
“단, 그리하면 내 이름이 왜 최영인지 알게 될 걸세.”
그래. 이래야 최영 답지.
왕선은 빙그레 웃었다.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가워서 농을 해봤습니다.”
“우리가 농을 주고받던 사이였나?”
“음. 물 한잔은 내줄 사이는 되지 않겠습니까?”
“아닐세.”
“사사로운 인연만 남았다고 한 건 장군이십니다. 제가 전주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아주 가까웠는데. 아닙니까?”
“말로는 자네를 이길 수가 없군.”
“제가 좀 달변입니다.”
“닥치게.”
“과찬이십니다.”
“미친놈.”
“영광입니다.”
“······.”
잠시 후 하인이 물 두 그릇을 들고 왔다.
왕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발에 안 내오고 찻잔?”
“물 아깝네. 그것만 먹고 가게.”
“허. 개경에서 여기까지 왔는데요?”
“자네 사정이지.”
“이렇게 돌아가면 너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좋은 소식을 들고 왔는데요?”
“흉흉한 소식은 이미 전해 들었네.”
“그래서 왔습니다.”
최영은 대꾸하지 않고 찻잔을 들었다.
왕선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복귀하시지요.”
“음. 자네 좀 맞고 싶나?”
“장군께 맞으면 몸이 성하지 않을 겁니다.”
“알면 썩 꺼지게.”
“그러나 장군께 맞아도 되는 놈들이 있습니다.”
“왜? 나를 사냥개로 쓰려고? 잘 듣게. 나는 이제 개경의 정치에 더는 관여하지 않을 걸세.”
“개경 말고요.”
왕선은 손을 내밀어서 최영의 찻잔을 슬며시 내렸다.
“서경으로 가시지요.”
“뭐?”
“장군. 대업의 총사령이 되어주십시오.”
“대업? 하. 서경 천도의 수작질에 나를 이용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우게.”
“일전에도 말씀드렸지요. 이 나라 고려의 국시 북진에 대해서.”
그 순간 찻잔을 든 최영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왕선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북진. 정말로 할 겁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
“그런데 단 한 가지. 북진군을 이끌 8도 도통사가 비었습니다.”
“······.”
“북진군의 8도 도통사. 최영 장군이 아니면 누구도 역임할 수 없습니다.”
덧붙였다.
“오직 장군만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왕선은 최영의 손에서 찻잔을 넘겨받듯 가져갔다.
그만큼 최영은 아무런 힘을 주지 않았다.
“장군의 남은 시간. 필생의 신념을 위해서 사용할 기회입니다.”
“······.”
“장군의 남은 시간. 이 나라의 국시를 위해서 사용해주십시오.”
“······.”
“북진. 그것은 오직 장군만이 이룰 수 있습니다.”
“······.”
“간곡히 청합니다. 최영 장군.”
최영은 왕선의 손을 밀어내면서 다시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마셨다.
...모두 마셨다.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걸 본 왕선의 눈에 실망감이 어릴 때
“다 마셨네. 당장 나가게.”
...축객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그래야 내가 채비를 할 게 아닌가.”
왕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명심하게. 북진의 대업 앞에 작은 사심이나 수작이라도 있으면.”
“가차 없이 제 목을 베십시오.”
“자네도 물 다 마시고 가게.”
손을 내밀며 권하던 최영이 옅게 웃으면서 말을 고쳤다.
“총리께서도 한잔하시지요.”
오늘 북진군 8도 도통사의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의 결심이 우뚝 섰다.
이 나라 고려의 수문장 최영이었다. 오직 그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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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미간을 와락 찌푸리면서 왕선을 쳐다봤다.
“총리님.”
“왜 그러오?”
“또 어디서 약을 파십니까?”
“...지금 뭐라고 했소?”
“어디서 약을 파냐고 물었습니다.”
“허.”
“왜요?”
“그런 고급진 표현은 어디서 배웠소?”
“도솔천.”
“맙소사.”
“정확하게는 총리님께서 소생에게 이르신 거지요.”
“이런.”
“생각해봤는데 주옥같은 표현이더군요. 하여, 소생도 종종 써먹기로 했습니다.”
...어쩌다가.
왕선이 헛웃음을 지었다.
정도전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다시 물었다.
“어서 답하시지요.”
“거. 오랜만에 한잔하자는 거요.”
“그런데 왜 십자로에서 마십니까? 백성들 피곤하게.”
“내가 가면 백성들 좋아하오.”
“착각은 자유. 망상은 해수욕장이지요.”
...맙소사.
왕선은 정신이 어지러웠다.
“이, 일단 갑시다. 가야 하오.”
“진짜 약 파는 거 아니지요?”
“아니오.”
“한두 번 당했어야지요.”
“정말 아니외다.”
“알겠습니다. 채비하지요.”
“먼저 가 있겠소이다.”
“괜히 자작하고 있지 마십시오. 정 없으니까.”
“······.”
내가 재앙을 만들었구나.
왕선은 한탄하며 십자로로 향했다.
멍하게 주변을 돌아보던 왕선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주막으로 들어갔다.
오늘 여기서 약을 판다.
아. 물론 정도전에게 팔 건 아니었다.
대상은 이제 막 들어온 놈들이었다.
왕선은 느긋하게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 158화 순리대로 (am 10시 33분 수정/ 재수정)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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