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전주 이씨 동북파 최후의 날(2) >
-부아아아앙!
-부아아아앙!
창칼이 거침없이 난무했다.
사방에 선혈이 가득했다.
진입하려는 마천목의 관군과 막아서는 이성계와 노비로 위장한 사병.
이성계의 사가.
바로 그곳에서 치열하기 이를 데 없는 백병전이 펼쳐진 거다.
...아니었다. 백병전이라고 하기에는 전황이 다소 일방적이었다.
-부아아아아앙!
이성계는 휘둘러지는 창을 피하지도 않았다.
왼손을 거칠게 움직여서 창을 잡았고
-퍼어어어억!
화살로 병사의 이마를 찔렀다.
그렇게 죽은 병사가 벌써 수십 명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의제 이지란 역시 야차처럼 관군을 도륙했다.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한때 동북면에서 맹위를 떨쳤던 가별초 중에서 엄선한 강군이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위력으로 마천목의 관군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성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몸을 움직였다.
-부아아아아앙!
칼이 움직일 때마다 목숨을 거뒀고
-쏴아아아아앙!
쏴대는 화살마다 목숨이 사라졌다.
접근하는 모든 생명체를 도륙 냈다.
가히 군신이라고 부를 정도의 위력적인 무위였다.
마천목은 부여잡은 창끝이 어지럽다는 걸 느꼈다.
치열한 접전 속에서 이성계의 지척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이지란과 가별초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만 급급했다.
좌우를 살폈다.
관군이 얼마나 죽었는지 가늠할 수도 없다.
심지어 사기가 바닥 치고 있었다.
그렇게 관군들은 문밖으로 밀려났다.
마천목은 이를 악물면서 외쳤다.
“이성계 장군!”
그러나 이성계는 대답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또 한 명이 죽었다.
이성계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관군이 왔다.
그러면 어디선가 일이 틀어진 거다.
어디서 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그리고 가문은 멸족당한다.
그러면 방법도 하나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이래도 역적이고, 저래도 역적이다.
그러면 살길을 찾으면 된다.
만일 하륜이 성공했다면 재상들이 사병을 이끌고 동참할 거다. 그러면 된다.
문뜩 이원계가 끌고 간 가별초가 아쉬웠다.
왕선이 멀리 보낸 나머지 사병도 아쉬웠다.
만일 그들이 지척에 있었다면 통솔하여 일거에 개경을 쓸어버렸을 거다.
하지만 괜찮다.
이대로 간다.
이대로 가서 본궐을 장악하고 왕선을 죽일 것이다.
상승 불패의 명장 이성계답게.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하여, 오늘도 이긴다.
외쳤다.
“지란이!”
“형님!”
“단번에 뚫고 간다!”
“알겠습니다.”
이지란이 거칠게 손짓했다.
그러자 사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추행진이었다.
순식간에 기세가 바뀌었다.
마천목은 이를 악문 채로 창을 고쳐잡았다.
“당신은 내가 무장으로서 살아가는 이유였습니다. 당신을 보면서 달렸습니다. 그러나 끝이 참으로 추악합니다.”
“말이 많군.”
이성계는 싸늘하게 내뱉으면서 칼을 휘둘렀다.
마천목은 온 힘을 다해서 창을 휘둘렀다.
-차아아아아아아앙!
마천목은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 틈에
-부아아아아아앙!
이성계는 접근하던 관군을 서너 명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마천목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마천목의 눈동자에는 절망이 내렸다.
...도저히 백병전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랬다.
지금 이 순간 아수라가 강림한 것이다.
이성계가 비웃었다.
“백 년은 멀었다.”
마천목은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자신과 관군의 목숨은 이성계의 손에 달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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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왕선은 헛웃음을 삼켰다.
눈에 보인 광경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수백의 관군이 수십에 불과한 이성계에게 학살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학살의 중심에는 이성계가 있었다.
“······.”
저게 사람이야? 짐승이야?
이렇게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인정했다.
왜 이성계를 상승 불패의 명장이라고 부르는지.
왜 이성계를 사상최강의 명장이라고 부르는지.
확신했다.
저 인간은 뇌도 근육으로 된 거다.
“허.”
정몽주도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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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군을 도륙하던 이성계의 눈에 왕선이 보였다.
사방으로 칼을 휘두르면서 왕선을 노려봤다.
그리고 스산하게 웃었다.
이거 무리해서 본궐까지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며 한걸음 물러났다.
그 자리를 이지란이 대신했다.
힘겹게 막아서던 마천목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그리고 이성계가 활을 고쳐잡고 활시위를 당기는 걸 봤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
왕선이 보였다.
찰나 왕선은 이성계와 눈이 마주쳤다.
-죽어라. 왕선.
온몸에 싸늘한 한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쏴아아아아아아앙!
이성계의 화살이 날아왔다.
그때
-퍼어억!
화살은 허공에서 무언가와 충돌했다.
“참으로 고약하군. 그래도 당신의 핏줄인데.”
이옥이었다.
이성계의 고개를 틀면서 화살과 충돌한 무언가를 확인했다.
“!!!”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철렁였다.
...이방원의 수급이었다.
“내가 죽였네.”
이옥이 활을 고쳐잡았다.
“오늘 확실히 하지. 신궁과 강궁. 두 사람 중 누가 고려 최고의 궁사인지.”
이옥의 활에 화살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성계가 달려왔다.
대경한 이옥이 다급하게 화살을 날렸다.
-쏴아아아아아앙!
그러나 이성계가 피하면서 다가왔다.
그리고 활을 고쳐 잡아서 화살을 활시위에 올렸다.
그것은 무척이나 찰나였다.
화살촉이 향한 곳은 왕선이었다.
“죽어라.”
진득한 살기가 가득한 이성계의 목소리.
-쏴아아아아아앙!
묵직한 위력이 담긴 화살이 왕선을 향해서 날아갔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퍼어어어어어억!
화살은 묵직한 타격음을 자랑했다.
...그런데 왕선은 멀쩡했다.
“허.”
왕선은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안 나왔다.
그랬다.
이성계의 화살이 지척에 다가왔을 때 누군가가 밀치면서 대신 맞은 거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그 사람을 확인했다.
“!!!”
...이성계의 장자 이방우였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피비린내 나는 장내를 침묵의 도가니로 집어넣었다.
“바, 방우야!”
이성계는 괴성을 질렀다.
억겁의 충격이 가득한 그의 목소리.
장내는 괴이함이 자리 잡았다.
이방우는 피를 토하면서 힘겹게 말했다.
“아버님.”
“바, 방우야.”
“아버님을 존경했습니다. 아버님을 연모했습니다.”
“바, 방우야.”
“아버님은 소자의 자부심이었습니다.”
“바, 방우야.”
“소자의 탓입니다. 말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커헉...”
이방우의 각혈이 시작됐다.
이성계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이제 그만하십시오.”
“바, 방우야.”
“이 불효자를 용서해주십시오.”
이방우는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오열했다.
“이승을 떠나는 이 순간 아버님을 존경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숨이 넘어갈 듯한 이방우의 간절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멈춰주십시오. 이방우가 본 가장 넓은 세상이시여.”
그렇게 이성계의 장자 이방우는 숨을 거뒀다.
장내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칼을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이 지경에서도 도저히 싸울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성계가 칼을 멈출 거라고 생각한 거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왕선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성계는 이방우의 근처로 오지 않았다.
...철저하게 전장에 나선 장수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지독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모두 죽일 것이다. 왕선도. 황제도. 이 나라 고려도.
분노로 가득한 이성계의 속내가 읽혔다.
다급하게 외쳤다.
“이옥!”
그 순간 이성계의 손이 움직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에게 남은 화살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 지금 그의 손이 향하는 곳은 칼이었다.
이성계가 칼을 움직이려고 할 때 이옥이 선수를 쳤다.
-부아아아아아아앙!
이성계가 뒤로 물러나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
“천천히 기다리면 될 것이다.”
“뭐?”
“왕선을 죽이고 너도 죽일 것이니.”
“허.”
이옥의 목소리에는 불쾌감이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이성계를 죽일 기세로 노려봤다.
그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앙!
지축을 흔드는 함성이 일었다.
사방에서 수천 명의 병력이 돌격하듯 다가왔다.
설마?
이성계는 눈을 부릅떴다.
저들의 선봉에 하륜이 있기를 바란 거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도전이었다.
본궐의 작당을 해결한 정도전이 온 거다.
명덕태후의 국장에서 파악한 역모.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때 왕선이 즉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수백에 불과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당한 병력이 북상을 대비한 상태로 개경 밖에 주둔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가까운 병력이 있긴 했다. 명덕태후의 국상을 흔들지 않기 위해서 되도록 동원하지 않았다. 개경 안에 있는 수백 명의 병력이면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지금 정도전이 그 병력을 모두 끌고 온 것이다.
“혹시나 해서요.”
정도전이 말을 건넸다.
“혹시 탓하실 겁니까?”
“아니오. 내가 안일했소. 모두 죽을 뻔했거든.”
“그럴 거 같아서 급히 달려왔지요.”
“그게 아니라 애초 병력을 집결시킨 거 같소만. 그게 아니라면 개경 밖의 병력이 이렇게 빨리 집결할 수는 없지.”
“사실 그렇습니다. 수백 명으로는 뭔가 부족할 거 같아서요.”
정도전은 주변을 돌아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인간이 아니군요.”
“내 생각도 그렇소.”
...하륜이 실패했구나.
쓰게 웃었다. 그나마 마지막 희망이라면 바로 그거였다.
하륜이 성공해서 달려오는 거.
...일이 다 틀어졌다.
그러나 이성계는 기세를 꺾지 않았다.
오히려 오연히 서서 주변을 돌아봤다.
그리고 외쳤다.
“오라.”
...미친놈이 아닐 수 없다.
“싸울 때까지 싸워주지.”
왕선은 고개를 저었다.
“군사.”
“예.”
“화약 병기 있소?”
“송구합니다. 모두 서경에 있습니다.”
“젠장.”
“어쩔까요.”
어쩔 수 없다.
왕선은 손을 내저었다.
“돌격.”
“예.”
그 즉시 수천 명의 병력이 이성계와 가별초를 향해서 돌격했다.
그리고
“나는 상승 불패의 명장 이성계다!”
악귀처럼 고함을 지르더니 칼을 휘둘렀다.
“나는 고려 최고의 명문 전주 이씨의 가주이니라!”
야차처럼 악을 쓰면 칼을 휘둘렀다.
또,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의 사병 중 누구도 물러나지 않고 이성계를 따르는 거였다. 죽을 게 뻔한 전투였는데도 말이다.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덕장이었나보다.
그러나 아무리 강인한 인간이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수천의 병력이 들이대는데 이성계든, 척준경이든 방법은 없다.
제법 용을 쓰던 이성계는 결국 사가로 밀려 들어갔다.
병사들이 진입했다.
이성계는 발악하듯 막았다.
안채까지 밀렸음에도 끝까지 버텼다.
“군사.”
“예.”
“무너뜨리시오.”
모호한 말.
하지만, 정도전은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잠시 후 공성전에나 쓰일 병기들이 동원됐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역적들이 버티던 사가는 붕괴했다.
그렇게 이성계는 서까래에 깔려 죽었다.
...참으로 괴이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이렇게 전주 이씨 동북파는 멸족했다.
아주 비극적으로.
< 156화 전주 이씨 동북파 최후의 날(2)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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