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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50화 (150/187)

< 150화 미륵의 포효 >

“전제 개혁?”

“예. 드디어 수시중 조준이 칼을 뽑았습니다.”

이성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륜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방향이 조금 이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조준의 칼끝이 지주가 아니라 사찰로 향하고 있습니다.”

“···사찰?”

“사원전입니다.”

이방원이 끼어들었다.

“음. 그러는 이유는?”

“군웅할거 시절 완산공의 행보를 보면 전제 개혁의 의지는 충만합니다. 그러나 반 대명 군사동맹까지 체결하여 명과의 관계가 험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지.”

“예. 이럴 때 나라 전체의 지주와 싸우는 건 미련하지요. 하지만, 전쟁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군량이 따위를 충분하게 비축할 필요는 있습니다.”

“해서, 사찰의 사원전을 정조준했다?”

“예.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이방원의 분석을 들은 이성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륜을 바라봤다.

“자네 생각은?”

“음. 지금으로서는 가장 합당한 분석입니다.”

“자네와 방원이의 의견이 일치하니 그렇게 정리하는 게 좋겠군. 하면, 우리의 행보를 정하도록 하지.”

“포은 사형과 연계하는 건 어떻습니까?”

“연계?”

“예. 우리는 지주의 토지를 대상으로 한 전제 개혁을 선언하는 겁니다.”

“음.”

“명분은 이 경우가 압도적입니다. 완산공과 충돌하더라도 승산이 있습니다. 그러면 정국의 주도권을 우리가 잡을 수도 있고요. 어떻습니까.”

“포은 선생이 협조한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지. 알겠네. 그렇게 진행하게.”

“예. 장군.”

이성계는 미세하게 고개를 틀어서 하륜을 쳐다봤다.

그 눈빛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장군?”

“예?”

“아직도 내가 장군인가?”

“아.”

하륜은 멋쩍게 웃었다.

이방원의 제일 군사가 되었지만,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공식적으로는 이성계의 당여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만일 허락받지 않고 이방원의 책사가 되었다는 걸 이성계가 알게 된다면 곤란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하륜 숙부님이 실언하셨군요.”

이방원이 재치를 발휘했다.

하륜은 곧장 몸을 낮추며 이성계에게 말했다.

“송구합니다. 주공.”

“이번 일을 잘 성사하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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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은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사찰의 사원전은 모두 몰수한다]

감찰도 없었다.

논의도 없었다.

오로지 집행만 존재했다.

그 무지막지함을 직접 눈으로 본 왕선은 감탄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여, 영공전하.”

제왕부에서 잠시 쉬고 있던 왕선의 귀에 들린 다급한 목소리.

요즘 일 열심히 하는 조준이었다.

“무슨 일인가.”

“연좌가 시작됐습니다.”

“연좌? 아. 정몽주와 산림?”

“예. 그렇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염제신 대감을 비롯한 원로들과 이성계 장군도 동참했습니다.”

...반 완산공 연합인가?

“그런데 갑자기 연좌라니?”

“전제 개혁의 전면적 시행을 주장했습니다.”

“그건 수시중이 하는 건데?”

“지주들의 토지부터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참 가소롭다.

왕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두게.”

조준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한 채 다급하게 말했다.

“이러면 전제 개혁의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주들의 토지를 건드리면 저들의 말을 따르는 모양새가 되지 않겠나?”

“···그건 그렇지만.”

조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애초 전제 개혁의 칼끝이 이상하게 움직인 거다.

안타까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전제 개혁이었는가.

칼을 휘두르면서 거세게 뛰었던 심장의 박동 소리는 절대 잊지 못할 거다.

그 설레임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게 허사가 되었다.

참담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찌나 절절했던지 왕선의 마음을 울렸다.

그래서 심드렁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차피 금방 묻힐 걸세.”

“예?”

“지켜보면 알 것이네. 그러니 수시중은 괘념치 말고 계속 이렇게 전념하게. 참으로 잘하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괘씸했다.

또, 이대로 그냥 넘어가면 무서워서 피하는 거처럼 보일 거 같다.

그건 아주 곤란하다.

그래서 이참에 혼쭐을 내주기로 했다.

왕선은 이죽거리면서 조준에게 말했다.

“수시중. 내가 어째서 지주들의 토지는 그대로 두고 있는지 아는가?”

“일러주십시오.”

“그들의 곳간창고에 재앙을 내리려고.”

“예?”

“돌아가는 즉시 선포하게.”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주들의 토지는 꼭 지켜주게. 대대로 물려받은 그들의 사유재산이 아닌가. 암. 아무리 조정의 권한이 크더라도 사유재산을 함부로 침해할 수는 없는 거지. 이렇게 선포하게.”

“···영공전하.”

“그런 다음에 단호하게 이르시게. 대동법 전국 집행을.”

“!!!”

전라도 북부와 충청도는 최후의 보루였다.

그러니까 그곳이 무너지면 왕선도 무너지고, 개혁의 핵심인 남상도 무너진다.

그만큼 중차대한 지역이었다.

그럴 수 있는 여러 이유는 바로 사전 1결당 쌀 500두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세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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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답이 없는 이유는 하나다.

처지가 궁색하다는 거.

하여, 정몽주를 중추로 하는 산림의 연좌는 기세를 올렸다.

“사전을 대상으로 한 전제 개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원전의 부정이 크다고 한들 사전의 부정에 비교하겠습니까.”

“수문하시중의 개혁은 합당한 것이지만 일의 선후를 바로 잡지 못한 겁니다.”

“전격적인 사전 개혁을 단행해야 합니다.”

이미 염제신의 복귀를 관철했다.

이대로라면 또 승리를 맛볼 수 있다.

그랬다. 집단의 존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승리였다.

아무리 포장하더라도 패배는 패배에 불과하다.

지속적인 패배는 집단의 내부를 와해시킨다.

완산공 왕선의 집권 이후 사대부는 끝없는 패배만 맛보았다.

하지만, 산림이 조직된 이후 승리를 경험했다.

하여, 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전제 개혁은 나라의 중대사. 올바르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바로 그때 하늘을 질러대던 그들의 목소리를 파묻어 버리는 소란이 일었다.

관군인가? 강제 해산?

그게 아니라면 이런 소란이 발생할 수가 없다.

사대부들은 굳은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

“!!!”

관군이 아니었다.

...수천 명의 승려였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합장한 채 다가오는 그들은 고작 수백에 불과한 산림의 기세를 덮어버렸다.

이건 일찍이 경험해본 사태다. 산림의 사대부들은 뼈가 시린 패배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건 함정이다. 그래. 그래서 조정의 비답이 없었던 거다.

만일 승려들이 사원전을 내놓으러 왔다면 산림의 연좌는 궁색해진다.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데

“고려의 국교는 불교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모인 곳은 사찰입니다.”

“사찰을 지탱하는 건 사원전입니다.”

“한데, 어떠한 논의도 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사원전을 몰수하는 건 너무나도 부당한 처사입니다.”

사대부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지금 승려들은 사원전을 내놓으러 온 게 아니라 사원전을 내놓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승려들의 연좌였다.

저번처럼 완산공 왕선이 조직한 연좌가 아니라 승려들의 자발적인 연좌였다.

규모도 차원이 달랐다. 전국 곳곳의 사찰에서 주요 인사가 모인 연좌가 분명했다.

이건 파급을 달리할 거다.

그랬다. 전제 개혁을 둘러싼 연좌의 풍향이 완벽하게 바뀐 거다.

사실 이 시절 사찰은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

분명했다. 하여, 그들은 개혁의 대상이었다. 일 순위였다.

그런데 승려들이 사찰의 이권을 위해서 연좌에 나섰다?

원래라면 불가능하다. 민심이 너무나도 싸늘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아니었다.

승려의 연좌는 이미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랬다. 눈치나 보면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그들이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건 왕선이 제공한 거였다.

또한, 왕선의 거점인 전라도 북부와 충청도는 사찰의 부정부패가 상당히 일소됐다. 미륵사를 중심으로 많은 선행이 있었다. 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걷어졌다.

게다가 왕선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재가화상을 비롯한 승려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이런 여러 요소가 모인 결과 강 건너 불구경하던 승려들이 나선 것이다.

이권을 위하여.

승려들의 염불과 외침은 본궐을 무너뜨릴 기세였다.

“지켜보지.”

염제신이었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사찰과 완산공이 대대적으로 충돌할 것을 예상한 거다.

결과에 따라서 움직여도 늦지 않으리라 판단한 거다.

어쩌면 아주 합당한 선택이다.

그런데 정몽주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산림은 산림의 길을 갈 겁니다.”

“포은?”

정몽주는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다시 외쳤다.

“그 어떤 성역도 없는 전제 개혁의 강고한 칼날을 휘둘러야 합니다.”

그의 선창에 산림은 따라 외쳤다.

정몽주는 목이 터지라고 외쳤다.

“사원전을 모조리 몰수하여 전제 개혁의 당위성을 입증하십시오.”

사찰 세력이 이렇게 저항한다면 사원전 몰수도 담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조정의 중론을 모아내는 게 합당하다.

바로 이것이 정몽주가 생각한 산림의 역할이었다.

그의 돌발행동을 본 염제신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당장 달려나가려고 할 때 하륜이 붙잡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포은 사형을 아시지 않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더라도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하. 분명히 약조한 사안이었네. 한데,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파기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네.”

그의 불평이 쏟아질 때 본궐의 문이 열렸다.

완산공 왕선이었다.

그는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승려들에게로 다가갔다.

“허. 참으로 많이 몰려왔군.”

“영공전하. 소승들은 논의를 원합니다.”

“논의가 아니라 사원전을 원하겠지.”

“사원전이 없으면 사찰은 유지할 수 없습니다.”

“사찰이 선행을 베풀면 백성들이 알아서 쌀을 조금씩 내놓을 걸세.”

“그 정도로는 사찰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유지? 유지하려면 군현의 유지를 만나서 유지하게.”

“······.”

“그들은 재물이 많아서 시원하게 후원할 걸세. 그러니 이만 해산하게.”

“소승들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왕선은 턱을 슬쩍 들어 올렸다.

“하나 묻지. 사원전이 얼마나 많은 백성에게 패악질했는지 아는가?”

“과거의 일입니다. 오늘의 사찰은 다릅니다.”

“아니지. 그 엄청난 규모의 사원전이 모조리 혁파되어야 우리 백성들이 경작할 땅이 생긴다고. 그러니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내일의 일일세.”

“영공전하. 불교는 고려의 국교입니다. 이렇게 탄압하실 수는 없습니다.”

“불교는 고려의 국교이지만, 백성은 고려의 근본. 국교가 근본을 괴롭히지 않는가? 그러면 나는 누구를 편들어야 하나?”

승려들이 말하려고 할 때 손을 내저었다.

“무조건 백성이지. 안 그런가? 왜? 국교가 존재하는 건 백성을 통제하기 위함일세. 그런데 백성이 다 죽었는데 국교는 뭐하러 유지하나? 통제할 대상이 없는데. 내 말 틀렸나?”

“소승들이 드린 말씀은 국교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사원전이다?”

“예.”

“당신들도 그 말이 참으로 궁색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

“내가 확실하게 말해주지. 나는 사대부를 내치면서 이미 공자를 죽였다.”

“유학은 통치의 한 부분이지만, 불교는 국교입니다.”

왕선의 눈이 싸늘해졌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담아서 단호하게 외쳤다.

“석가가 살아오더라도 백성을 괴롭히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한데, 이 땅을 썩게 만드는 너희의 잡설을 어찌 듣고만 있겠는가.”

오른손을 들어서 선언했다.

“오늘부터 불교를 이 나라 고려의 국교에서 박탈하노라.”

“!!!”

승려들이 충격에 휩싸인 그 순간 군마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나세가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기병을 끌고 오고 있었다.

왕선은 오른손을 휘저었다.

“모조리 추방하라.”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연좌하던 사대부들을 노려봤다.

“그대들의 연좌에 대해서도 답을 내리지.”

비릿하게 웃었다.

“지금부터 이 나라 고려의 모든 땅은 대동법이 집행될 것이다.”

“!!!”

“버티지 말고, 지껄이지 말라.”

싸늘하게 내뱉었다.

“나는 이미 공자를 죽였다. 부관참시까지 원하지 않으면 숨만 쉬어야 할 것이다.”

부관참시?

왕선은 정확하게 짚어줬다.

“분서갱유를 이르는 것이다. 원하면 설치도록.”

바로 그 순간

수천 승려는 아비규환.

수백 산림은 침묵에 휩싸였다.

단 한 사람. 왕선으로 인해서.

< 150화 미륵의 포효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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