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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30화 (130/187)

< 130화 Come on, Baby >

또다시 천지가 개벽했다.

오등작이 부활하더니 고려가 황제국이 된 것이다.

누가 반대하는 걸 새도 없었다.

실로 순식간에 황제 즉위식이 거행됐다. 참으로 성대한 즉위식이었다.

수천 명의 병사가 황제의 권위를 치켜세웠고, 수백 명의 승려가 법회를 열어서 황제의 만세를 기원했다.

즉위식의 끝에는 지천에서 ‘만세 만세 만만세’가 울려 퍼졌다. 실로 장엄한 순간이었다.

또한, 말 그대로 반대할 틈도 없는 전광석화와도 같은 진행이었다.

재상들은 왕선의 준비 정도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철저하게 준비하여 진행한 일이 분명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현재 이 나라 고려는 왕선의 손바닥에 올라갔다는 걸.

“콩밥 맛이 어떻소?”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은 그만...”

최영은 말을 멈췄다.

왕선은 이죽거렸다.

“왜 말을 하다 멈추시오?”

최영은 입술을 깨물면서 힘겹게 말했다.

“하시지요. 영공 전하.”

“오.”

“하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요?”

“고단하군요.”

“하하하. 그래야지요. 편히 쉬시오.”

왕선은 기분 좋게 손을 흔들어줬다.

“아. 연호는 ‘대동’ 이외다.”

최영의 안색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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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한데, 이성계 장군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요?”

마천목의 물음.

왕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성계?”

“예. 주의할 인물은 다 저항하다가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성계 장군만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되질 않아서요.”

“천목아.”

“예.”

“내가 그걸 알아야 하느냐?”

“예?”

왕선은 시선을 돌렸다.

“내가 그걸 알아야 하오?”

“뭐하러 알아야 하겠습니까.”

정도전.

“굳이 알 필요는 없지요.”

남은.

“백만대군이 적을 상대할 때는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세.

“토끼가 무슨 생각하는지 호랑이는 고민하지 않지요.”

이옥.

다시 마천목을 바라봤다.

“들었느냐?”

“아.”

“이성계가 꼬리를 말아 내렸을 수도 있고, 와신상담 중일 수도 있지. 그러나 이미 고려 왕실의 권위가 복원된 이상 그는 약간 사병이 많은 재상에 불과해. 자. 묻겠네. 내가 신경 써야 하나?”

“아닙니다. 소제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왕선은 옅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 전주의 준비는?”

“전 선생에게는 실수라는 게 없지요.”

“역시. 음.”

“왜 그러십니까?”

“이참에 전 선생을 개경으로 부를까 해서.”

“그러면 전주를 누가 책임집니까?”

그 말이 끝나자 모든 사람의 눈동자가 정도전에게로 향했다.

정도전은 헛웃음을 삼키면 어색하게 웃었다.

“이러지 마십시오.”

“왜?”

“영공 전하.”

“왜 부르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재빨리 덧붙였다.

“험험. 잘 하겠습니다.”

왕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즉시 정도전은 도끼눈을 뜨고 다른 사람들을 쏘아봤다.

모두 동시에 먼 산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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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사신 축맹이 압록강을 넘었습니다!”

충격적인 장계였다.

선인전은 충격에 휩싸였다.

...드디어 우려하던 일이 터진 것이다.

모든 재상의 싸늘한 시선이 왕선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딴짓하지 말고 빨리 오라고 전하라.”

...예상을 벗어나는 왕선의 답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분명하게 전하게. 접대하지 말라고.”

“영공 전하!”

“오늘 선인전은 여기까지.”

“!!!”

곧장 선인전을 파했다.

재상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완산공 왕선이 제정신이 아니다. 분명하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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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생겼습니다.”

최영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정몽주를 쳐다봤다.

“방법? 혹시 명을 이용하자는 건가?”

“···예.”

“진심인가?”

“예.”

정몽주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최영은 힘없이 실소를 머금었다.

“참으로 고약한 시절일세. 안 그런가?”

“대감.”

“고려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고 내던질 수 있었던 포은 정몽주였네.”

“···대감.”

“이인임이 아무리 국정을 농단할 때 외세를 이용해서 그를 끌어내리자는 의견이 있었지. 그러나 자네는 결사적으로 반대했지. 왜? 그건 고려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것이니까. 그래. 포은 정몽주는 그랬지.”

“대감.”

최영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나 최영. 평생 이 나라 고려의 부강함만을 바랐네. 하여, 죽기 전에 칭제건원을 이뤄낸 고려를 보고자 했네. 황제국 고려 말일세.”

“대감. 모든 건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그래. 지금 고려는 황제국이지. 그런데 전혀 반갑지가 않네. 아무런 기쁨도 느껴지지 않네. 나 또한 이렇게 되었군.”

“대감.”

“고려를 대표하는 문무. 왕좌 지재 정몽주와 백전노장 최영이 이렇게 변했어. 참으로 한스럽네.”

정몽주는 무거운 한숨을 쉬면서 최영의 손을 잡았다.

“대감.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 권신과 싸우고 있습니다. 완산공 왕선은 괴물입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

“대감. 명 사신을 존중하지 않는 왕선입니다. 지금쯤 축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을 겁니다.”

“···최악의 경우는?”

“전쟁입니다.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화가 난 축맹을 잘 이용하면 모든 걸 정리할 수 있습니다.”

최영은 한탄하듯 말했다.

“고려의 부강함. 그걸 이루는 건 북진이라고 생각했네.”

“대감.”

“고려의 북진이 이뤄질 때 싸워야 할 상대는 명나라지. 그런데 내 필생의 신념을 버려야 하는 순간일세.”

“대감. 그건 훗날 논의할 문제입니다.”

“지금은 자네 말대로 괴물이 되어야겠지.”

“모든 일이 끝나면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정몽주는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덧붙였다.

“훗날 우리의 조정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정치로 이 나라를 이끌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일단 사상 초유의 괴물부터 치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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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에 당도한 축맹의 몰골은 참 볼썽사나웠다.

정말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게 분명했다.

서슬 퍼런 기세로 선인전에 들어온 축맹.

재상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그러자 축맹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왕선은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역관? 통역하게.”

“음. ‘대국의 사신을 이렇게 대접하는 법도는 없소이다!’라고 합니다.”

“그래? 그러면 ‘고려에 왔으면 고려 법도를 따라야 한다.’ 이렇게 전하게.”

“알겠습니다.”

역관의 말을 들은 축맹은 다시 고함을 질러댔다.

역관이 통역하려고 하자 왕선은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됐고. ‘선인전에 기어 들어왔으면 황상 폐하께 대가리 박고 절하는 게 고려의 법도다.’ 이렇게 전하게.”

“정말 대가리라고 합니까?”

“밥 떠 먹여줘야 하나?”

“송구합니다.”

역관이 통역했다.

축맹의 얼굴은 시뻘게졌다.

다시 고함을 질렀다.

“음. 영공 전하.”

“됐고. 셋 셀 동안 법도를 따르지 않으면 개처럼 끌려나갈 거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이어진 역관의 통역.

축맹은 눈을 부릅뜬 채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왕선은 오른손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하나.”

“영공 전하.”

“둘.”

“사신이 ‘고려왕 왕우는 칭제건원을 거두고, 황상께 죄를 고하지 않으면 백만대군이 압록강을 넘어서 고려의 사직을 끝장낼 것이다’라고 합니다.”

“셋.”

“가볍게 듣지 말라고 하는군요.”

“물어봐. 개처럼 끌려나가고 싶은지, 개처럼 두들겨 맞으면서 끌려나가고 싶은지. 이 정도 선택지는 줘야지.”

왕선과 역관의 대화가 이어졌다.

재상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명나라 사신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런데 어찌 저런 태도를 보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분위기가 황망함의 끝을 향해갈 때 정몽주가 나섰다.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영공 전하. 이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조정의 중론을 모아야 합니다.”

“음. 조정의 중론? 보나 마나 칭제건원을 철회하라고 할 거 같은데?”

“대화를 해봐야 합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겁에 질린 개처럼 명나라가 쳐다봤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거 같은데. 안 그런가? 수시중?”

“아무리 명나라가 전쟁을 꺼내서 겁박하더라도 원인은 우리 고려가 제공했습니다.”

“원인? 무슨 원인?”

...말이 안 통한다.

정몽주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말했다.

“그건 논외로 하지요. 차분하게 외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전하처럼 명나라 사신을 모욕하고 우롱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묻지 않나. 그 외교의 끝이 칭제건원을 거두는 거. 아닌가?”

“······.”

“음. 그러면 명나라가 볼 때 우리 고려는 병신 중에서 상 병신이 되겠군?”

정몽주는 격분했다.

“허. 이 사달이 누구 때문에 났는지 진정 모르십니까?”

“명 황제.”

“영공 전하입니다.”

“멀쩡하게 있는 나라에 선전포고를 한 건 명 황제가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이 문제는 영공전하께서 초래하신 겁니다.”

“음. 희한하군. 왜 그렇지?”

“허. 참으로 정치를 고약하게 하십니다? 이제 와서 책임을 회피하는 겁니까?”

“아닌데?”

“판을 난장으로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아닌데?”

너무나도 태연 자작한 왕선.

...또 무슨 수작질을 하려는 것인가. 심지어 대명을 상대로.

정몽주는 입술을 깨물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이 문제는 재상들에 맡기시지요. 명 사신은 영공 전하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나서서 잘 해결하겠습니다. 일단 전쟁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상들에게 맡겨라?”

“예.”

“지금 수시중은 도당을 부활하고자 하는 건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재상들에게 맡기지? 이런 중대사를? 선인전이 있는데?”

“잘 해결해낼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곤란하네. 맡겼다가는 고려는 최고 병신 인증하는 거니까.”

“······.”

“아. 도솔천의 말일세.”

“···그런 참담한 말이 나오지 않게 해낼 겁니다.”

“왕좌 지재. 포은 정몽주. 당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도 있지.”

“하면?”

“그래도 이번은 아닐세.”

“어째서 그렇습니까.”

왕선은 싱긋 웃으면서 정몽주의 눈을 정면으로 주시했다.

“나는 이 나라 고려의 자존심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네.”

“······.”

“눈동자 떨지 말고. 사신이 보고 있는데 재상 체면은 지켜야지. 안 그런가?”

...이번에도 왕선이 모든 걸 알고 있다. 대체 무슨 수로 매번 모든 걸 파악하는 것이란 말인가.

정몽주는 이를 악물었다.

“하면, 이 문제를 어찌 해결하실 겁니까.”

“지금부터 보여주리다.”

왕선은 자세를 고쳐잡고 축맹을 쳐다봤다.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눈을 부라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 본국의 칭제건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역관이 통역했다.

“그렇습니다.”

축맹의 답변.

드디어 왕선과 축맹이 대화라는 걸 하는 순간이었다.

“만일, 철회하지 않는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징할 겁니다. 이는 지엄하신 대명 황상 폐하의 뜻. 그러니 지금이라도 악행을 바로 잡고 제후국의 의무를 다하길 바랍니다.”

왕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났다.

양팔을 넓게 펼쳤다.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대명 황제의 결정을 격하게 지지하오.”

그러면 그렇지.

축맹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 순간 왕선의 환한 미소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나는 고려와 명의 전쟁을 환영하는 바이오.”

“!!!”

상상을 초월하는 선언.

축맹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고, 재상들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왕선은 의연했다.

“이 나라 고려는 500년. 너희는 역사라는 것도 없지? 이제 막 싹을 피우는 잡초 따위가 500년 거목에게 덤비는 꼴이 아닌가. 천하에서 가장 어린 나라가 가장 성숙한 나라를 상대로 제멋대로 지껄이는 그 모습이 실로 가소롭도다.”

비아냥댔다.

그리고 오른손을 내밀면서 검지를 까딱거렸다.

“Come on. Baby.”

< 130화 Come on, Baby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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