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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23화 (123/187)

< 123화 전주 이씨 삼분지계(2) >

“큭.”

이성계의 입에서 기괴하게 뒤틀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문정.”

“이성계! 아무리 상황이 이렇더라도 가문의 어른이거늘! 어찌 언행을 함부로 하는가!”

이원계가 크게 호통쳤으나 이성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일찍이 전주에서 대동군 왕선의 주구가 되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어.”

“······.”

“전주 이씨를 가지려고 한 거였어.”

“이 장군이 전주 이씨의 가주로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걸세.”

“큭. 내가? 나 이성계가 부족하다고?”

“전주 이씨는 고려왕실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야 하네. 그러나 자네의 행보는 아니었어. 틀렸나?”

“내가 이 나라의 운명을 되돌린 게 몇 번인 줄 아는가?”

“돌렸지. 그런데 과하게 돌렸어. 결국, 제자리니까.”

“감히.”

노기로 가득 찬 이성계가 움직이려고 하자 이원계가 가로막았다.

“멈추게.”

이성계는 핏발선 눈으로 이원계를 노려봤다.

“형제의 연을 오늘까지입니다.”

“······.”

“그리고 분명하게 이릅니다. 전주 이씨는 분열하지 않으며, 가주는 오직 한 명, 바로 이 사람 이성계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이성계는 차갑게 내뱉으며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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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당장 남경으로 진군해야 합니다.”

격분한 이방원은 연신 호전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대로 있으면 전주 이씨는 사분오열됩니다. 조기에 진압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개경 지척에 가별초가 있습니다. 단번에 남경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

“아버님. 결단을 내리십시오.”

“방원이.”

“예. 당장 이지란 숙부님에게 가보겠습니다.”

이성계의 눈빛이 섬뜩하게

이방원은 멈칫했다.

“남경으로는 가지 않는다.”

“예?”

“개경으로 진입한다.”

완벽한 승부수.

이방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면 소자가 몇 가지 더해도 되겠습니까?”

“말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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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 유혈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사람은 전주에 적을 두고 있네. 이성계가 전주를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니 염려하지 않네. 자네가 걱정이지.”

이문정의 우려에도 이원계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각오한 일입니다. 한 번쯤은 감내해야 할 일이고요.”

“내가 제안을 하나 해도 되겠나?”

“대동군과 손을 잡으라는 겁니까?”

“그렇네.”

“최영 대감의 세력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대동군과 손을 잡으면 제 처지가 너무 궁색하지요.”

“음. 알겠네. 하지만 위기가 도래하면 언제라도 말하게.”

“알겠습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이문정은 수염을 만지면서 옅게 웃었다.

“이 늙은이를 믿어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선생이시라면 전주 이씨의 직계 가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고맙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전주 이씨 직계 가주님.”

“하하하. 참으로 고맙네. 전주 이씨 남경파 가주.”

두 사람의 웃음소리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건 왠지 모를 쓸쓸함이었다.

오랜 세월 그토록 튼튼하게 단합했던 전주 이씨가 분열된 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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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사방팔방으로 번졌습니다.”

전주 이씨의 분열을 빗댄 남은의 말이었다.

왕선은 싱그럽게 웃었다.

“자고로 불구경, 싸움 구경이 가장 재밌는 법이지.”

“하하하. 그렇습니다. 하지만 참으십시오. 이성계 장군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아주 불길이 거세겠군. 괜히 나한테 번질 수도 있겠어?”

“하하하. 바로 그렇습니다.”

아주 흡족했다.

전주 이씨를 완벽하게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아닌가.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이성계 장군의 행보를 놓치지 말게.”

“그렇지 않아도 개경 밖에 주둔하고 있는 가별초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음. 군사는 이성계 장군이 남경으로 진군할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군.”

“예. 소생의 생각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원계 장군이 이길까?”

“농이라면 거두시지요.”

“최영 대감이 도와줄 수도 있지 않겠나.”

“아무리 최영 대감이라도 전주 이씨 내부의 일에 개입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두 장군 모두 최영 대감과 막역한 사이가 아닙니까.”

왕선은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내 말은 그게 아닐세. 최영 대감이 거들면 승산이 있지 않겠느냐고.”

“예? 아. 이성계 장군의 가별초가 개경 지척에 있긴 하지만 동북면과 분산된 전력입니다.”

“그러니까 최영 대감이 도와주면 이원계 장군이 이기겠군.”

“그럴 가능성이 커집니다.”

“만일 그렇다면 변수는?”

“이성계 장군이지요. 그는 항상 전력의 열세에서도 이겼으니까요.”

“하긴. 괴물이지.”

“예. 상승 불패의 명장 아닙니까.”

“어쨌거나 우리로서는 이원계 장군이 이길 수 있도록 판을 잘 만드는 거지.”

“하면···.”

왕선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이성계. 이번에 끝을 낼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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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미쳤나 보구려. 대동군.”

최영은 싸늘하게 내뱉었다.

“음. 오늘은 물도 안 주십니까.”

“당장 꺼지라는 뜻이외다. 미친 소리는 방구석에서 혼자 지껄이고.”

“음. 그러면 이원계 장군은 죽겠군요.”

-쾅!

거세게 탁자를 내리쳤다.

...이 순간 왕선은 탁자의 생사가 걱정됐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최영의 사자후.

“이 사달을 만든 장본인이 그따위 막말을 지껄이는가!”

굉장한 기세였다.

왕선은 지금 탁자의 생사 따위나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걸 제대로 각인했다.

...오금이 지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쫄았다는 티를 낼 필요는 없다.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서 거래를 하자는 겁니다.”

“당장 나가라고 했소.”

“일단 들어나 보시지요?”

“얼마든지. 들어주지. 그런데 말할 수는 있을지.”

최영이 오른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그의 칼이 있었다.

오른손이 칼을 잡는 순간

“태후마마. 이제 물러나셔야지요.”

오른손이 멈췄다.

최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믿지?”

“이 사람이 약조를 어긴 적은 없습니다.”

“미쳤군.”

“다 말하지 않을 뿐이지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명덕태후의 수렴청정을 거둔 이후 무슨 수작질을 펼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건 따로 대응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군왕의 친정이 시작된다면 대동군 왕선의 기세는 한풀 꺾일 거다. 해볼 만한 거래다.

최영의 오른손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왕선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내심 안도하는 미소? 뭐 그런 거다.

물론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의도한 미소처럼 보이게 했다.

“정확하게 해야겠군. 내 역할. 나중에 딴말할 수도 있으니까.”

“별거 없습니다. 이성계 장군을 무찔러야죠.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미친 소리. 이원계를 도와주는 거로 하겠소.”

“음. 그러면 손해를 보는 거 같은데요?”

“설마 내가 이성계와 싸우리라고 생각한 거요?”

“아. 두 분이 겨루면 누가 이길지 궁금하긴 했습니다만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요.”

현재로서 가장 기본은 전주 이씨 분열이다.

그리고 가장 최고의 수는 이성계의 대패. 이것의 전제조건은 최영이 열심히 싸우는 거다. 이성계와.

...괜한 말이 아니고 정말 궁금하긴 하다. 누가 이길지.

“그러면 거래는 이걸로 하겠소.”

“뭐. 알겠습니다.”

“썩 물러나시오.”

최영은 축객령을 내렸다.

최영은 적당하게 이성계를 어르고 달랠 생각이다. 그러면서 이원계도 다시 설득해볼 거고. 아마도 이문정도 만나볼 거다.

그렇게 해줄 생각은 없었다.

다음 수가 마련되어 있으니까.

최영이 이성계의 숨통을 끊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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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 밖에 주둔한 가별초는 이성계의 의제이자 백전의 장수인 이지란이 통제하고 있었다.

“그래. 어서 와라. 아버님의 뜻을 가져왔느냐?”

“예. 숙부님.”

“음. 표정을 보아하니 기가 막힌 방책이 있나 보군.”

이방원은 진하게 웃었다.

“숙부님. 개경의 모든 사람이 가별초가 남경으로 향할 거로 생각할 겁니다.”

“방원아. 이 숙부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나.”

짓궂은 말.

엄중한 정국이었으나 이방원은 옅게 웃었다.

“나는 전장에서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데 이런 판에만 오면 정신이 없다. 그래서 내가 뭘 어쩌면 되겠느냐. 아주 쉽게 설명해다오.”

“남경으로 가는 시늉을 하면 됩니다.”

“시늉이라. 그러면 목표는 남경이 아니겠군. 혹시?”

“예. 개경으로 진입하셔야 합니다.”

“사병 진입이 금지됐는데?”

“도당의 중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당은 해산됐지요. 그러면 없는 법도입니다.”

“음. 기가 막힌 논리군. 아주 좋아.”

이지란은 흡족하게 웃었다.

언제봐도 영특한 조카였다.

“그래도 개경진입을 하려면 막아설 것이니 이번 작전을 준비했겠군.”

“예. 지금 개경의 모든 시선이 가별초를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데 아무리 은밀하게 개경진입을 시도하더라도 성문은 굳게 닫힐 겁니다.”

“그렇지. 그러면 안 되지. 아무리 나라 꼴이 개판이라도 개경 성문을 박살 내면서 공성전을 펼칠 수는 없지. 그건 미친 짓이지.”

“대라도 울리지 마십시오.”

“그건 가별초의 상징인데.”

“숙부님.”

“흠흠. 농일세.”

이방원은 이지란을 흘겨봤다.

“제가 적당할 때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바로 그때 회군하는 거군!”

“예.”

이지란은 무릎을 '탁' 치면서 외쳤다.

“기가 막히는군!”

“예?”

“형님께서는 아무런 말도 안 하시더냐?”

“예?”

이지란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형님과 나는 평생을 전장을 돌아다녔네. 그런데 해보지 못한 게 하나 있지. 항상 입버릇처럼 그걸 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떠들었지.”

“일러주십시오.”

“바로 회군일세.”

덧붙였다.

“적을 교란하는 작전에 회군만 한 건 없으니까.”

묘하게 감격스러워하는 이지란.

이방원은 빙그레 웃었다.

“하하하. 이번에 소원 성취하시겠군요.”

“그래. 그러니 네 아버님께서 아주 많이 부러워하실 거다.”

“아.”

“왜 그러느냐?”

“아버님도 작전에 참여하실 겁니다.”

“응?”

“위장하신 채로요.”

이지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설마?”

이방원은 빙그레 웃었다.

“회군을 해보고 싶으시다는 군요.”

“이런.”

“농입니다.”

“이런!”

한참 웃어댔다.

그리고 이방원은 웃음기를 걷어내면서 말했다.

“개경은 대동군 왕선의 어용 사병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지도 모르게 설쳐대고 있지요. 하지만, 가별초가 진입하면 상황은 완벽하게 바뀝니다.”

“당연하지. 가별초는 천하제일이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숙부님.”

이방원의 표정이 무척이나 차가워졌다.

“개경진입 즉시 이문정과 이원계를 죽이십시오.”

“뭐?”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으나 대동군 왕선의 어용 사병이 위협하고 있지요. 그래서 목이 빠져라 가별초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지란의 눈썹이 꿈틀였다.

“아버님의 뜻이냐?”

“···예.”

“방원아.”

“아버님께서는 모르십니다.”

“그러면 못한다.”

“숙부님.”

“안돼.”

단호한 거절.

이방원은 주저 없이 말했다.

“그러면 제가 하겠습니다.”

“방원아!”

“모든 악업은 제가 가지고 갈 겁니다. 아버님께서는 그 위에서 빛나시면 됩니다. 영원히.”

“······.”

“그러면 물러가겠습니다.”

이방원은 예를 취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됐다. 어찌 조카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하겠느냐.”

고개 숙인 이방원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걸렸다.

“잘 들어라. 손에 창칼을 들고 피를 보는 인간 백정으로 사는 건 나와 네 아버님의 대에서 끝나야 한다. 너는 손에 붓을 들어. 그게 네 아버님의 바람이다. 알겠느냐?”

“조카 이방원. 숙부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이방원의 고개가 조금씩 올라왔다.

...미소가 조금씩 걷어졌다.

“네가 빛나거라. 악업은 내가 가져가마.”

완전히 제 위치를 찾은 이방원의 고개.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숙부를 바라보는 조카의 표정이었다.

“숙부님.”

“됐다. 이놈아. 나중에 아버님이 노발대발하시면 네가 내 목숨이나 구해라.”

“물론이지요. 대신 죽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덧붙였다.

“숙부님.”

< 123화 전주 이씨 삼분지계(2)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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