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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109화 (109/187)

< 109화 새로운 영지를 구축하다 >

“소인을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백달원은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왕선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 그 전에.”

“···예.”

“거슬려서.”

“예?”

“자네 언행이 거슬린다고.”

“···대감.”

“지극한 현실을 알려주겠네. 내가 여기서 한마디만 하면 자네는 죽어.”

노골적인 왕선의 겁박.

백달원의 미간이 꿈틀였다.

“백주에 살해 협박이라. 대단하시군요.”

“고작 상인 한 명을 죽이는 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고작 상인 한 명이 아니지요. 이 백달원이 부보상이고, 부보상이 백달원입니다.”

상당한 배포였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 기개를 높게 사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낭만적인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백달원과 쓸데없이 말싸움하고 있을 생각도 없다.

“천목아.”

방문이 열렸다.

마천목의 창끝이 백달원의 목으로 향했다.

“지금 소인을 겁박하시는...!!!”

-부아아아아아앙!

마천목의 창이 인정사정없이 움직였다.

-퍼어억!

백달원의 몸 이곳저곳을 빠짐없이 두들겼다.

한참이나 백달원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떤가. 이제 자네와 나의 위치 파악이 되는가?”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잘 듣게. 애초 남에게 용서 따위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올라가기 전에는 눈과 입을 잘 사용하게.”

“···명심하겠습니다.”

마천목의 구타는 참으로 큰 힘을 발휘했다.

다소 불순했던 백달원의 태도가 아주 공손해진 것이다.

피곤죽이 되어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어려운 게 분명한데도 말이다.

“이제 대화를 해보지.”

“···이르십시오.”

“자네 이성계 장군과 꽤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네.”

“그렇습니다. 편히 사가를 드나들며 담소를 나눕니다.”

이놈 봐라?

이성계를 언급하니까 기가 좀 살아나 버리는데?

이거 아무래도 이성계를 믿고 설쳐대려는 거 같다.

전형적인 호가호위?

그러니까 대동군 왕선 대감께서 이성계를 의식한다고 판단한 거다.

이럴 때는 그냥 밟아줘야 한다.

“그러니까 이성계와 가깝다고?”

이성계 장군이 아니라 이성계.

명백한 하대로 현실을 인지시켜 준 거다.

과연 백달원은 눈을 내리깔았다.

“다시 대화를 시작해볼까?”

“···이르십시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이 사람은 자네가 이성계와 가깝게 지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무슨 말씀입니까.”

“가서 술만 먹고 오는 거 아니잖아. 부보상이 파악한 정보를 이성계에게 넘겨주잖아. 안 그래?”

“그 말씀은 이성계 장군에게 정보를 넘기지 말라는 겁니까?”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백달원의 눈알이 굉장한 속도로 돌아갔다.

상황을 인지했으니 판단을 내리려는 거다.

“일전에 벽란도를 찾은 서역 상인이 모두 남상과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아. 임피로 향했지. 거기서 전주로 갈 거고.”

“···남상이 독점하는 겁니까?”

“내가 독점하는 걸세.”

“···이런 법도는 없습니다.”

“법도? 자네 미쳤나? 지금 누구 앞에서 법도를 운운하지?”

“···송구합니다.”

“왜? 서역 상인과 거래를 하고 싶나?”

“상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그러면 임피로 가서 거래해야지.”

“···소인더러 남상 백거마에게 사정하라는 겁니까?”

“또 깜깜해지는군.”

“예?”

“남상이 아니라 내가 독점하는 무역이라고 했네. 그런데 누구한테 사정한다는 건가.”

백거마는 불편한 몸을 살짝 움직였다.

목울대로 마른침을 넘기더니 입을 움찔거렸다.

왕선은 참으로 건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내가 말을 어렵게 했나?”

“서역 상인과 거래하고 싶다면 이성계 장군과 연을 끊으라는 겁니까?”

“내가 자네 인간관계까지 뭐라고 할 이유는 없지. 종종 만나서 재미나게 놀기도 하라고. 단, 정보만 전달하지 않으면 될 것이네.”

“···그게 연을 끊는 겁니다.”

“그렇지. 사냥개가 사냥을 안 하는데 뭐하러 데리고 다니겠나.”

“상승 불패의 명장과 인연을 끊는 일입니다. 대가가 너무 부족한 거 같습니다.”

“나는 자네와 거래를 하는 게 아닐세.”

“······.”

“계속 답답하군. 좋아. 이 사람이 자네의 결정을 도와주지. 상인에게 가장 귀중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

“···신뢰입니다.”

“아니야.”

“그러면 무엇입니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

“!!!”

“어쩔 건가.”

백달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계 장군이 복귀하면 이 모든 일을 말할 것이다. 반드시 대책이 있을 것이야.

귀신을 속여라. 이놈아.

왕선은 아주 가소로웠다.

백달원이 나간 뒤 마천목은 고개를 갸웃했다.

“형님. 목표가 백달원을 회유하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맞지.”

“음. 구타한 일이 역효과를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반쯤 죽여놔야지 이성계가 백달원을 더 믿겠지?”

“한데, 겁박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앙심을 품을 겁니다.”

“바람직하지.”

“예?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습니다.”

“배신은 몰랐을 때 무서운 거고.”

“예?”

“나는 절대 배신 같은 거 안 당하니까 걱정하지 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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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의 배치를 다시 해야 하오.”

“상인으로 위장시킨 계책은 이미 사용했소. 마땅한 방법이 있겠소?”

조민수와 지용기가 왕선을 공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개경에 주둔한 왕선의 사병이 적다는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상인으로 위장한 사병을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나세가 주도한 이 계책은 아주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다. 왕선이 대놓고 선전포고를 한 마당에 개경에 주둔시킨 사병의 규모는 세력의 명운을 결정할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번 사용한 계책을 다시 사용한다? 이미 훤히 알고 있는 상대가 있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대놓고 사병을 불러서 주둔시키는 게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병을 무작정 불러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전주를 비롯한 거점의 힘을 약화하는 건데 이 흉흉한 정세를 미루어볼 때 그건 무척이나 위험천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당의 정치가 와해하고 이 시점에서 군웅할거는 아주 날카롭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획기적인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오.”

“좋은 방도가 있소?”

“이옥 장군과 마천목 대장은 주공을 호위하는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으니 나세 장군이 고생을 해야 할 것 같소이다.”

“얼마든지. 어서 말해보시오.”

정도전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개경 외곽에 땅을 좀 구했소.”

나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재산 증식하시오?”

정도전은 실소를 머금었다.

“주공은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구려. 나세 장군처럼 진중한 인사까지 이렇게 물들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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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은 무거운 표정으로 좌우를 돌아봤다.

도당의 재상들 역시 굳은 안색을 한 채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모두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말씀하시지요. 수시중 대감.”

“오늘부터 도당의 안건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집행될 것이외다.”

“당연히 그리되어야 합니다.”

“이 사람이 정치는 서툴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오. 재상들도 물심양면 거들어주길 바라오.”

“예. 대감.”

“수시중 대감. 이 사람이 안건을 제안해도 되겠소?”

이색이었다.

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은 선생의 발언은 언제라도 환영하오.”

“감사하오. 일련의 일을 거치면서 다시 확신했소. 개경에 사병이 있으면 혼란이 커진다는 것을 말이외다.”

“과연 그렇소.”

“그동안 우리 재상들이 여러 이유로 개경 안에 사병을 주둔시킨 건 잘 알고 있소. 이참에 자발적으로 개경 밖으로 내보내는 건 어떻소?”

“이 사람 역시 동의하오.”

딱히 반대하는 재상은 없었다.

조민수와 지용기가 밀려날 때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 때문이다.

...왕선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라는 걸.

그렇다면 모두 내보내는 게 좋다.

“하지만 이건 대동군 대감의 의견도 물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몽주였다.

모두 불편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포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사부님.”

“도당에 출석하지 않은 사람의 의견까지 어찌 다 수렴할 수 있나. 또한, 수시중 대감이 도당의 중론을 반대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네. 이미 다 찬성했는데 자네 한 사람이 반대한다고 하여 바뀌는 건 없네.”

“이 사람도 반대하오.”

최무선이었다.

“나 역시 반대하오.”

문익점이었다.

도당의 불편함은 커졌다.

“보세요. 개경 안에 사병을 배치하지 않는 건 진작에 결정된 일이었소. 이를 확실하게 하자는 건데 어째서 반대하는 것이오.”

“이 사람 역시 목은 선생의 말에 동의하오. 더는 이 문제로 왈가불가하는 건 용납하지 않을 것이외다.”

최영이 쐐기를 박았다.

그때 도당의 문이 열렸고

“거. 도당 회의를 소집했으면 알려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놓고 이렇게 따돌리다니. 참으로 너무합니다?”

낭랑한 목소리.

왕선이었다.

도당의 불편함은 정점을 찍었다.

정몽주는 반색하며 말했다.

“어서 오시오. 대감. 그렇지 않아도 개경 안에 있는 사병을 내보는 일로 논의하고 있었소.”

“음. 그건 일전에 결정된 거 아니었소?”

“하. 이보시오. 그래놓고 버젓이 사병을 주둔시켰지 않소이까?”

“목은 선생. 이 사람은 사병을 주둔 안 시켰소. 불의가 판치는 현장을 보고 분개한 상인과 승려가 의기로써 분연히 일어난 거라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시오.”

“손바닥으로 하늘을 어떻게 가립니까? 허. 혹시 목은 선생은 그게 가능하시오? 과연 이 나라 고려의 유종이시오. 그런 기가 막힌 재주를 가리고 있다니.”

“······.”

왕선의 유들유들한 말에 이색의 말문이 닫혔다.

파르르 떨면서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우스웠다.

왕선은 자리에 앉자마자 최영을 쳐다봤다.

“어쨌든 사병을 내친다 이거죠?”

“그렇소.”

“명분은요?”

“사병이 설쳐대니 왕실의 위엄이 떨어지고 조정이 혼란스럽소. 몰라서 묻소?”

이거 아무래도 최영이 정치라는 걸 해보려는 거 같다.

왕선은 대환영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래 주면 소원이 없겠다.

“그게 전부입니까?”

“왕실과 조정의 안정보다 더 큰 이유가 있소?”

“바람직하군요.”

“찬성하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좋소.”

“이참에 사병을 혁파해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

“사병을 아주 뿌리 뽑아버리면 왕실과 조정은 더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 거 같습니다만.”

“···그 문제는 지금 논의할 성질이 아니외다.”

“지금이 아니라 도당은 영원히 논의 안 할 겁니다.”

“오늘 도당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소.”

왕선은 피식 웃었다.

“음. 그런데 도당의 중론을 어기면 어찌할 겁니까?”

“내 이름이 왜 최영인지 알게 될 거요.”

“뭐.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습니다.”

“···회의는 마쳤소만?”

“별거 아닙니다. 듣고 가부만 결정하지요. 이조차 어렵습니까?”

“회의는 마쳤소.”

“거. 이 사람은 늦게 왔지 않습니까.”

“수시중 대감. 발언 기회를 주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몽주가 중재하듯 말하자 최영은 한숨을 쉬었다.

...목은 이색이 정몽주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대신 쓸데없는 내용이면 경을 칠 것이외다.”

“백성을 구휼하자는 내용입니다. 쓸데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대감이 이상한 거지요.”

“백성을 구휼함에 있어 한치의 불순한 생각을 하지 않소.”

“다행이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긴. 그처럼 가진 재산이 많은데 콩알 몇 조각 나누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겠습니까? 뭐. 안 그런 인간들이 많긴 한데, 그래도 대감께서는 그 정도로 엉망이 아니라서 천운이군요.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습니다?”

“더 나를 모욕하면 사지를 찢어주리다.”

“구휼미를 내자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사지를 찢는다고 하니 도당의 인심이 참 각박합니다. 앞으로 구휼하자는 말은 절대 못 꺼내겠군요.”

“···구휼미?”

“그러고 보니 최근 개경으로 들어온 걸인들이 많습니다. 가뜩이나 헐벗고 굶주린 백성이 많은 개경이 아닙니까. 지금 도당이 나서서 구휼미를 내리면 어지러운 민심이 조금은 나아질 겁니다. 소생은 대동군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다시 정몽주가 나섰다.

사실 왕선의 제안이기에 불편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들 눈치를 보면서 미루고 있었으나 왕선의 독주에 맞서 도당의 정치를 복원하기로 결의한 이상 민심을 어느 정도는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니까 도당의 존재를 틈나는 대로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일전에 왕선이 구휼미를 풀었다. 그걸 묻어야 했다.

“···대사성.”

“예. 수시중 대감.”

“자네 생각에는 재상들이 어느 정도를 내면 되겠나?”

“소생이 볼 때 각각 1천 석은 내야 할 겁니다.”

그러면 도당에서 나올 쌀이 수만 석은 된다.

최영이 돌아보자 재상들은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리하지.”

“아. 한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회의는 끝났소이다. 대동군.”

“안건은 아니고 다른 겁니다. 들으실 분만 들으세요.”

불편한 시선들이 쏠렸다.

왕선은 즐기듯 말했다.

“이 사람이 개경 외곽에 땅을 조금 구했지 뭡니까.”

...재산 증식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걸까?

재상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 집을 몇 개 짓고 있습니다.”

“······.”

“음. 한 수백 가구는 들어갈 겁니다.”

뭔가 이상했다.

“유리걸식하는 백성을 모두 모아서 살게 하려고요.”

“!!!”

상상을 초월하는 왕선의 행보에 도당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니까 개경 안에 새로운 영지를 구축한 것이다.

...도당의 결의로 만들어진 구휼미는 왕선의 신 영지에 사는 영지민의 입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 쌀을 먹고 창칼을 들 것이다.

왕선은 빙그레 웃었다.

“그들을 대표하여 이 사람 대동군 왕선이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입니다.”

도당은 습도가 거세게 올라갔다.

도당의 뻘짓. 최영의 삽질.

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109화 새로운 영지를 구축하다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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