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대동법으로 대동단결 (작가이벤트 시작) >
“이렇게 한심한 인사들을 봤나!”
조익신은 호통쳤다.
지주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다.
“적당히 했어야지. 적당히!”
“소, 송구합니다. 어르신.”
“저들은 민심을 먹고 사는 자들이야. 백주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덤볐으니 그냥 넘어갈 리가 있겠나!”
“그, 그것이 삼봉 정도전이라는 작자가 너무 강압적이라서.”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야! 통과의례로 그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했거늘! 그들이 원하는 건 대외적인 모습! 우리가 원하는 건 이권! 이렇게 아귀가 맞아야 한다고 몇 번 말했나?!”
“소, 송구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조익신은 지주들이 너무 한심했다.
쓸데없이 객기를 부린 탓에 ‘대동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이 나온 게 아닌가.
“어, 어찌해야 합니까? 정말로 사전 1결당 쌀 500두를 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소, 송구합니다.”
“송구! 송구! 송구!”
조익신의 노기는 갈수록 커졌다.
그럴수록 지주들의 머리는 땅바닥과 가까워졌다.
“왕선이 머리를 달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걸 제도라고 꺼냈겠나?”
“하, 하면···.”
“애초 준비한 것보다 더 많은 걸 꺼내보라! 왕선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야! 아직도 모르겠나?!”
결국, 엄포라는 거다.
지주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조익신의 혜안이 틀린 적이 없다.
“한데, 이미 대동법을 모르는 백성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배수진의 형태를 취한 거지. 그만큼 우리가 더 양보해야 하게 생겼어! 이 손해를 자네들이 어찌 책임질 건가?”
“소, 송구합니다.”
조익신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전주의 토지는 대부분 관청의 소유. 대동법을 시행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이지. 안 그런가?”
“오. 하면, 왕선이 전주에서 먼저 시행하는 시늉을 할 수 있겠군요.”
“이 답답한 인사들아. 그걸 이제 알았나? 그동안 우리더러 성의 표시를 하라는 의미란 말일세. 저 무지렁이 같은 백성이 입을 다물 정도로 거한 선물을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어르신. 하면, 척박한 토지를 중심으로 토지 겸병을 거둬내겠습니다.”
“그건 원래 안이었고. 옥토도 조금 집어넣어.”
“어, 어르신.”
“지금 이 사달이 누구 때문에 터진 건지 벌써 잊었나?”
“소, 송구합니다.”
“왕선은 내가 직접 만나볼 것이네.”
“그래 주시겠습니까?”
“썩 물러가게. 꼴도 보기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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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를 이끈 나세는 김제의 옥토를 살폈다.
“당신들이 이 땅의 문서를 가지고 있소?”
“···그렇소. 한데, 무슨 일로 우리를 부른 거요?”
10명 남짓한 지주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한다.
조익신에게 크게 꾸중을 들은 탓에 함부로 행동하지 않은 것도 있으나 나세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고려를 대표하는 숙장 중 한 명이 아닌가. 그랬다. 나세의 존재감은 그만큼 위압적이었다.
“그걸 몰라서 묻소? 대동법을 집행하러 온 거요.”
“대, 대동법이라니?”
“눈과 귀를 닫고 사시오?”
“대동법은 전주부터 시행한다고 들었소.”
“누가 그러오?”
“!!!”
“주공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데?”
이건 예상과 너무 다르다.
지주들의 머릿속은 하얗게 타들어 갔다.
“그, 그러면 대동미를 징수하러 왔다는 말씀이시오?”
“그렇소. 음. 당신들 모두 땅 주인이라고 했지요? 보자. 그러면 여기 1결에서만 5,000두가 징수되겠구려. 참으로 훌륭하시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꼼꼼하게 확인해보리다.”
“!!!”
지주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썩었다.
눈동자는 미친 듯 떨렸다.
“이, 이보시오.”
“왜 그러오?”
“토, 토지의 주인이 10명이라니.”
“저번에 신고한 내용도 그렇고, 조금 전 당신들 입으로도 그랬소만.”
나세의 눈이 가늘어졌다.
언월도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혹시 위조문서였소?”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뭐가 문제요? 1결당 500두. 준비하시오. 10명 전부. 조만간 사가로 찾아가리다. 아시겠소?”
나세는 언월도를 어루만지더니 등을 돌렸다.
지주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채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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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와 부안 전역에 난리가 났다.
설마 했던 대동법이 실제로 집행되고 있지 않은가?
김제의 비옥한 수전(논) 1결에서 생산되는 쌀의 수량은 40석. 그러니까 400두였다.
반면, 척박한 땅에서는 10석 정도 생산된다. 그러니까 100두.
그런데 대동미가 500두다. 이건 말 그대로 죽으라는 거였다. 땅을 가진 게 손해가 될 지경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혼비백산한 몇 명의 지주들이 황급히 문서를 들고 관청으로 달려갔다.
“나, 나세 장군.”
“왜 그러시오?”
“내가 생각해봤는데 토지 겸병은 참으로 큰 죄악이오.”
“그래서?”
“내가 백성을 위해서 이 땅을 포기하리다.”
“당신은 그럴 권한이 없소.”
“아, 아니. 내가 내 땅을 포기한다는 데 왜 그러오?”
“그러면 파시오. 그러면 되오.”
“이보시오.”
나세의 눈이 가늘어졌다.
언월도를 슬쩍 들이밀면서 말했다.
“안 된다고 했소만?”
“허, 험. 알겠소이다. 다시 찾아오리다.”
“내가 가리다. 기다리시오. 곳간 문 열어놓고.”
“아, 아니외다.”
“···내가 간다고 했소만?”
“아, 알겠소.”
개과천선은 효과가 없다.
그러자 지주들은 나세보다 윗선을 찾아서 더 강수를 던지기로 했다.
“구, 군사!”
“군사?”
정도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군사? 누구? 군사가 어디 있소?”
“사, 삼봉 군사.”
“오. 나를 이르는 말이었소?”
“이, 일전에는 결례를 범했소.”
“거. 참으로 일찍도 깨닫소?”
“그, 그러지 마시고.”
“됐소. 그런데 나는 왜 찾소?”
“이실직고하러 왔소이다.”
“이실직고?”
“문서를 위조했소.”
지금 찾아온 지주들은 토지 생산량을 웃도는 대동미를 내는 것보다 토지 겸병을 포기하는 게 합당하다는 판단을 내린 거다.
사실 이렇게만 되더라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실제로 전주에서는 문서 위조를 명분 삼아서 모든 토지를 몰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도 방법을 고민한 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왕선이 알아서 처리했을 것이다. 정도전도 위조문서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숙하지도 않고.
과거 전주에서 일을 처리할 때는 군웅할거 전이었기에 왕토라는 명분을 잘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그렇게 일을 처리할 경우 나머지 지주들이 상한선을 설정하여 개떼처럼 덤빌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여전히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 거고.
정도전의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럴 리가 없소. 당신의 문서는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완벽한 진본이오
“아, 아니외다. 위조했소.”
“어허. 그 땅은 당신의 가문이 수백 년간 소유한 게 분명하오. 내가 보증하리다.”
“아, 아니외다. 군사. 아니외다.”
정도전은 지주의 어깨를 두들겼다.
“조상의 은덕이 후손에게 부귀영화를 내렸소. 자.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느끼시오.”
“구, 군사.”
“조상의 은덕이 당신들에게 이토록 큰 공을 세울 기회를 내린 거요. 훌륭하오!”
“구, 군사!”
“참으로 부럽소이다. 나는 왜 그런 조상 없나 몰라.”
“구, 군사.”
“군사께서는 지금 변소 가던 중이었소. 방해하지도 말고 찾지도 마시오.”
“구, 군사!”
지주들은 망연자실하여 털썩 주저앉았다.
하늘만 보였다. 평생 바라본 하늘이었거늘 오늘따라 유독 노랗게 보였다.
한편, 민심은 엄청나게 환호했다.
여기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토산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제도였는지.
그동안 화두에 오르지 않은 건 다른 이유도 아니었다. 워낙에 오래된 부정부패였기에 고통도 관성에 빠졌던 거다.
그나마 무난하게 이뤄진 토지 조세가 겸병이 되면서 거대한 문제로 불거졌고 원래 있던 고통을 무디게 만든 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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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조익신은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
“와, 왕선. 이 미친놈이. 진정해보겠다는 건가?”
“어르신. 사태가 참으로 심각합니다. 이대로라면 김제와 부안의 모든 쌀이 대동미로 징수되고 말 겁니다.”
“미친놈이야. 아주 제대로 미쳤어. 생산되는 쌀보다 많은 조세를 거두다니!”
“심한 곳은 1결당 5,000두를 거두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겸병도 작작하라고 하지 않았나!”
...당신이 언제?
그러나 지주들은 감히 답할 수가 없었다.
“적당한 지주 몇 명을 추려서 위조문서를 실토하도록 해보게. 그러면 상한선을 잡을 수 있어.”
“그, 그것이 이미 해봤는데 씨알도 안 먹힙니다.”
“하. 자네들은 왜 일을 저질러 놓고 내게 보고 하는 건가? 하기 전에 말했어야지! 얼마나 어설프게 했으면 그걸 거절해! 매사 짜임새 있게 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하나?”
“소, 송구합니다. 지금 당장 다시 준비시키겠습니다.”
“이미 실패한 방법을 왜 찾나?”
“···송구합니다.”
조익신의 볼이 크게 씰룩였다.
“왕선이 제일 무서워하는 걸 해줘야겠네.”
“이르십시오.”
“입으로 민심을 부르짖는 놈들이야. 그런 놈들은 막상 성난 민심을 마주하면 아무것도 못 해. 모든 대동미의 부담을 농민들에게 떠넘기게.”
지주들은 헛웃음을 쳤다.
조익신의 눈에는 불쾌감이 치밀었다.
“뭔가?”
“어르신. 1결당 쌀 500두입니다. 농민들은 먹고 죽어도 그 정도 쌀이 없습니다.”
“하. 그래서 하라는 말이야. 쥐어짜란 말일세. 쌀 500두는 필요도 없네. 5두, 10두만 꺼내도 충분해. 그러다 보면 백성들의 분노가 어디로 번지겠나?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제도를 만든 관청으로 쏟아질 것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또 뭔가?”
“지주들의 곳간을 직접 돌아다니겠다고 했습니다.”
“그걸 막아야지.”
“···책임자가 나세 장군입니다.”
“······.”
고려 땅에 나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만일 그가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곳간을 털어대면 지주들의 머슴 따위로는 절대 막을 방법이 없다.
조익신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창칼을 앞세운 저 무도한 놈들에게 이대로 당할 수는 없느니.”
“···어르신.”
“모든 전호를 내치게.”
“!!!”
“내 땅에서 일하는 전호는 내가 정할 수 있네. 갖은 명분을 만들어서 다 내쫓아. 김제와 부안의 모든 백성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하면 정신 차릴 거야. 그때 깨닫게 될 것이네.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말일세.”
후폭풍이 거셀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가장 합당하다.
창칼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힘을 보이는 것이 좋다.
지주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번뜩였다.
“알겠습니다. 곧장 돌아가서 말씀 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대동미 징수가 아직 시행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그 순간 조익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다.
“어쩌면 왕선의 노림수가 이거일 수도 있겠군.”
“노림수라니요?”
“맞아. 내가 볼 때 왕선은 아직 간을 보고 있네. 대동미 징수가 아직 집행되지 않은 게 그 증거일세.”
“하면···.”
“맞아. 그래. 이거야. 하긴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이런 제도를 시행할 수는 없어. 천하에 지주가 김제, 부안밖에 없겠나? 이따위 제도를 집행했다는 게 알려지면 다른 지역의 지주들이 왕선의 세력 확장을 목숨 걸고 막을 것이네. 그래. 이제야 확실해졌어. 왕선은 우리와 힘겨루기를 제대로 하는 거야. 대동미 징수는 겁박의 수단이고.”
조익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서두르게. 제대로 힘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그제야 지주들의 얼굴에도 여유가 생겼다.
“과연 어르신입니다. 하하. 소인들도 어서 움직이겠습니다.”
“하하. 그래야지. 그래야 한시라도 빨리 왕선의 우거지상을 볼 수 있지.”
“하하. 과연 그렇습니다.”
그때였다.
“어, 어르신!”
실로 다급한 목소리.
조익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주들의 표정에는 불안함이 차올랐다.
“어르신. 향리 김선동의 곳간이 털렸습니다!”
“!!!”
조금 전에 내린 분석과 완벽하게 다른 현실.
지주들의 시선이 조익신에게로 쏠렸다. 시선에 담긴 의미가 사뭇 의미심장하다. 조익신은 시뻘게진 낯빛으로 외쳤다.
“감히! 내가 직접 가보겠다!”
이제는 행동만이 남았다.
그러자 지주들은 의심의 시선을 재빨리 거뒀다.
“소인들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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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엄청난 수량의 곡식을 수레에 싣고 있었다.
“멈춰라!”
바쁘게 움직이던 병사들은 대거 몰려온 지주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일한다.
무시당한 조익신은 대갈성을 질렀다.
“이놈들!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당신은 누구요?”
묵직한 목소리.
시선이 쏠렸다.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갑주를 걸친 무장이 있다.
그의 손에는 보기만 해도 위력이 느껴지는 언월도가 들려 있다.
나세였다.
지주들은 움찔했으나 조익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김제의 조익신이외다.”
“나는 전주 목사의 좌장 나세.”
“백주에 이 무슨 무도한 짓이오?”
나세의 눈썹이 씰룩였다.
“목사께서 내리신 명이 무도하다? 당신 미쳤군.”
“뭐, 뭐요?”
“벌을 내리겠다.”
“!!!”
그 즉시 언월도가 움직였고
-부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어억!
언월도로 조익신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조익신은 단 일격에 피곤죽이 되어 실신했다.
< 58화 대동법으로 대동단결 (작가이벤트 시작)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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