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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38화 (38/187)

< 38화 대 고려국 국왕 >

-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아아아아아아아앙-!

대라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넋이 나간 듯 소리의 진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엄청난 수의 기병이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가장 앞에는 깃발이 휘날렸다.

[동북면 병마사 이성계]

이인임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성계? 갑자기?”

이옥이 활을 고쳐잡으면서 말했다.

“수시중 어른.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이인임은 잠시 고민했다.

“됐어. 물러난다.”

“이길 수 있습니다.”

“누가 이성계가 무서워서 물러나겠나? 굳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라서 그래.”

“하면, 소장이 뒤를 막겠습니다.”

“음. 그래 주겠나?”

“물론입니다.”

이인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옥.”

“예.”

“괜한 호승심 부리지 말게.”

“···수시중 어른.”

“이성계는 자네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세.”

이옥의 안색은 굳었다.

“···알고 있습니다.”

“알면 됐네. 그리고 내 말을 너무 서운하게 생각 말게. 자네를 아껴서 그러는 거니까.”

“물론입니다.”

이인임은 그를 슬쩍 쳐다보더니 말머리를 돌렸다.

이옥은 크게 심호흡한 채로 활을 내리고 칼을 빼 들었다.

“수시중 어른의 퇴각로를 확보한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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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당도한 최영은 감탄성을 내질렀다.

“과연 이성계!”

반면, 왕선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바로 직전에 이성계로부터 서찰이 왔다. 군세를 이끌고 전장에 바로 결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최영은 반색하면서 대군을 이끌고 여기까지 달려온 거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한 이인임의 군사가 사방을 장악하여 조민수의 숨통을 끊어내려고 할 때 이성계가 구했다.

그래. 백보 양보해서 여기까지는 좋다.

왕선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건 다른 데 있다.

...왜 하필 지금일까?

...왜 개경을 목전에 둔 지금에서야 이성계가 나타난 걸까?

의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왕 목사.”

“예, 예. 장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아, 아. 아닙니다.”

그때 전장은 치열하게 돌아갔다.

악에 받친 조민수의 군사가 미친 듯이 돌격을 하고 있다.

그런데 쉽지 않다.

적의 선봉에 선 장수의 위력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단하군요.”

“이옥일세. 강궁으로 유명한 인사지. 장담하는 데 조민수는 이옥을 감당하지 못해. 그는 순수 무력만으로 고려에서 손꼽히는 용장이니까.”

“그렇습니까?”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걸세.”

“왜 그렇습니까?”

최영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사람아. 강궁 위에 신궁이 있네. 모르나?”

“아.”

“단 한발이면 이옥은 죽을 것이네.”

“아.”

그래. 이성계는 뇌까지 근육으로 된 사람이었지.

화살이 아니라 그냥 칼을 휘둘러도 이옥이 감당하기는 어려울 거다.

왕선은 이옥의 분투를 유심히 지켜봤다.

정말 대단하긴 했다. 단 한 명의 병사도 통과시키지 않고 완벽하게 퇴각로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영의 말대로 오래가지는 않을 거다. 지금 싸우고 있는 건 핏발 선 조민수의 군사뿐이니까. 압도적인 기세를 보이는 이성계의 가별초는 아직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2천의 기병이 움직이는 순간 이옥은 죽는 거다.

왕선은 은근슬쩍 마천목에게 다가갔다.

“천목아.”

“예. 형님.”

“저 사람. 저기 저 사람.”

“이옥 말입니까?”

“생포하자.”

“예?”

“몰래. 아주 몰래 생포해.”

“형, 형님.”

마천목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왕선은 아주 진중하다.

“진심입니까?”

“저 사람. 죽이기는 좀 아까워서.”

“송구합니다. 생포는 어렵습니다.”

“왜?”

“소제보다 강합니다.”

“이성계 장군이 화살을 쏠 거야. 그때 잡아.”

“그러면 저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고.”

마천목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왕선은 싱그럽게 웃었다.

“자네는 실패한 적이 없어.”

-----

이옥의 칼이 휘둘러지는 곳은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

실수로 발이라도 내밀면 바로 잘려나갔다.

흉흉한 눈빛을 한 조민수도 접근하지 못했다.

“이옥!”

“임견미 장군.”

“수시중 어른은?”

“퇴각하셨습니다.”

임견미의 눈에 갈등이 치밀었다.

이옥은 담담하게 말했다.

“먼저 가십시오.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가능하겠나?”

“물론입니다.”

임견미는 이옥을 믿었다.

아니, 생존 욕구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러면 뒤를 부탁하지.”

“예.”

이옥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칼을 고쳐 잡았다.

그가 한걸음 내디디면 조민수의 군사는 한걸음 물러났다.

이옥이 자세를 고쳐잡으면서 내달리고자 할 때였다.

-부아아아아앙!

위력적인 힘을 실은 창이 내질러졌다.

이옥은 칼을 휘둘러서 막았다.

“나는 전주 목사 왕선의 의제 마천목.”

“이옥.”

이옥은 짤막한 말과 함께 칼을 내질렀다.

마천목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막았다.

한수 한수가 실로 위력적이었다.

제대로 싸워도 승산이 적은 상대다.

그러나 생포하라는 명령을 들었기에 더 수세에 몰렸다.

이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지? 제대로 하지 않아도 나를 상대할 수 있다는 건가?”

“미안하오. 사정이 있소.”

“···나는 사정을 봐줄 수가 없네.”

“그러겠지요.”

“할 말이 있는 눈친데?”

마천목은 일단 질렀다.

“투항하시오.”

“뭐?”

“몰래.”

“미쳤군.”

이옥은 더 볼 것 없다는 듯 칼을 휘둘렀다.

마천목은 이를 악물면서 창을 고쳐 잡았다.

그러는 동안 왕선은 적당하게 거리를 둔 채로 이성계를 살폈다.

손에 식은땀이 차올랐다.

그때 이성계가 활을 고쳐잡았다.

왕선의 눈이 커졌다. 다급하게 외쳤다.

“천목! 지금!”

왕선의 외침.

마천목은 크게 창을 휘둘렀다.

이옥이 가볍게 피하자 창의 궤도를 바꿨다. 이번에도 이옥이 칼을 내밀어 막아낼 때 마천목은 창을 놓은 채로 온 힘을 다해서 몸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상황. 이건 말 그대로 미친 짓이다.

이옥은 대경하여 피하려고 했으나 늦었다.

-퍼어어억!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 순간

-쏴아아아아아아아앙!

-퍼퍼퍼퍼퍼퍼퍼퍼펏!

엄청난 힘이 실린 화살이 조금 전까지 이옥이 있던 곳을 지나더니 병사의 몸에 박혔다.

그 순간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전주군 총진군!”

-----

...화살이 빗나갔다?

이성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뒤튼 채로 전장을 지켜봤다.

그 순간 전주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이성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형님.”

이지란이다.

“가별초의 진군을 명해주십시오.”

“됐네.”

“알겠습니다.”

이지란은 묻지 않고 그냥 따랐다.

-----

연합군은 대승을 거뒀다.

최영은 크게 웃으면서 양팔을 벌렸다.

“이성계!”

“장군. 오랜만입니다.”

이성계는 담담하게 웃었다.

“이 사람아. 왜 이제 왔나!”

“송구합니다. 동북면의 경계를 완벽하게 하고 오다 보니 늦었습니다.”

“그래. 그래야 이성계지. 아무리 연합군의 대업이 중요하더라도 동북면의 땅을 적에게 내줄 수는 없지! 잘했네. 아주 완벽히 잘했어!”

“송구합니다.”

최영은 이성계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옷을 털며 다가오는 왕선이 보였다.

“아. 이 사람은 연합군을 발의한 전주 목사 왕선일세.”

최영의 목소리가 다가가던 왕선의 귀에 꽂혔다.

팽팽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쌌고 심장 박동이 거침없이 빨라졌다.

지금 이성계가 눈앞에 있다.

그의 뒷모습이 지척에 있다.

조금 전 치열한 전장의 먼 곳에서 본 이성계가 아니라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조선 왕조의 창업자 이성계가.

그리고 이성계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왕선의 손에 식은땀이 잔뜩 올라왔다.

목울대로 마른침이 계속 넘어갔다. 목이 따가울 정도로.

볼은 씰룩였고, 바람이 따가울 정도로 피부가 건조해졌다.

거세게 뛰던 심장은 아예 가슴을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성계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왕선은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에 힘이 꽉 들었다.

“동북면 병마사 이성계일세.”

“전...주 목사 왕선입니다.”

그리고 이성계의 속내가 읽혔다.

-아쉽군.

대체 뭐가 아쉽다는 걸까.

-참으로 아쉬워.

그러니까 대체 무엇이 아쉽다는 거야?

왕선은 애써 침착하면서 입을 열었다.

“상승 불패의 명장으로 유명하신 이 장군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찬일세.”

그 말을 끝으로 이성계의 고개는 다시 움직였다.

왕선은 철저하게 무시당한 거다.

...그러나 그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만큼 이성계라는 존재가 주는 압박감은 너무나도 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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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회의는 순탄했다.

이성계까지 결합한 마당에 더 진군을 늦출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조민수의 객기가 작은 소란을 피우긴 했다.

“내가 선봉에 서겠소이다!”

죽을 뻔하다가 이성계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조민수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존재감이 옅어질 것을 우려한 발악 아닌 발악이었다.

그러나 이미 박살이 난 그의 주장이 수용될 리는 없다.

“본진은 이성계 장군이 통제하는 걸로 할 것이네.”

최영의 목소리.

본진을 이성계가 통제한다?

“이 늙은이가 다시 선봉에 설 것이야. 총진군 한 번으로 전투를 끝낼 것이네.”

최종 선언을 한 것이다.

연합군 장수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생각이 복잡할 거다.

특히, 조민수의 표정이 참으로 참담했다.

하지만, 누구도 나설 수가 없었다. 이미 연합군 내부의 공과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최영과 왕선 그리고 이성계가 최고 공적을 가지게 된 거다.

불편하고 또 불편했으나 이제 와서 뒤집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내세울 만한 공을 세울 수 있는 상황은 이제 끝난 거다. 개경함락은 시간문제로 보였으니까. 이제는 거느린 사병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거니까.

연합군은 위용을 보이면서 총진군했다.

선봉은 이미 선언했듯 최영이었다.

“장군. 이인임의 군세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대회전을 하려는 생각인가?”

황당함을 숨기지 못한 어조였다.

당연히 이임인이 군세를 개경 성안으로 물러나서 농성전을 준비할 줄 알았던 탓이다. 그런데 이쪽으로 진군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기세가 보통이 아닙니다.”

“허.”

소식을 접한 연합군 본진은 재빨리 최영과 결합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전운이 감돌았다.

대회전. 그것은 말 그대로 총력전이었다.

힘과 힘의 대결.

전술과 전술의 대결.

지휘력과 지휘력의 대결.

작은 차이가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도출한다.

해서, 고려 최고의 명장이 구름떼처럼 몰려 있는 연합군이었으나 절대 이인임의 군세를 경시하지 않았다.

왕선은 뭔가 불안함이 치밀었다.

아무리 대회전이 승패를 쉽게 가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인임이 불리한 건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농성전이 합당하다.

...이인임이 이렇게 생각이 없는 인물이었나?

“모두 준비하게.”

단호함이 실린 최영의 목소리.

왕선은 복잡한 생각을 거두기로 했다.

그때 이인임의 진영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수천의 군사가 좌우로 물러난 것이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왕선만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 좌우로 갈라진 군사 사이로 자색과 푸른색 보상화 꽃무늬를 수놓은 화려한 의복, 갑옷을 갖춰 입고 비단모를 쓴 사람들이 보였다.

“의위사?”

누군가의 목소리.

그리고 의위사의 뒤로 풍악이 울렸는데 청각적인 효과가 실로 대단했다. 또한, 가지각색의 화려한 깃발과 부채, 일산 등 각종 기물을 든 군사까지 나타났다. 또 북을 치는 고취군사와 소라를 부는 취라군까지 나타났다.

연합군의 수뇌부는 알 수 없는 불안함에 경직됐다.

...그리고 천하에 없을 화려함을 가진 수레가 의위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나타났고 거대한 외침이 일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와 함께 엄청난 크기의 깃발이 오연하게 휘날렸다.

[대 고려국 국왕]

연합군 수뇌부의 안색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굳어졌다.

그들의 귀에 이 나라 고려의 가장 위력적인 단어가 담긴 함성이 들렸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사방의 모든 걸 잡아먹을 듯 천세의 연호가 끝없이 이어졌다.

천세. 그것은 이 나라 고려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단어였다.

< 38화 대 고려국 국왕 > 끝

ⓒ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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