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승리 그리고 대승 >
퇴각하는 왜구를 끈질기게 추격한 고려군은 대승을 거뒀다.
“주공! 왜구가 부안까지 물러났습니다.”
관민을 동원해서 횃불로 위장 원군을 잘 수행한 전녹생의 얼굴은 제법 상기됐다.
“천목. 틈을 주지 말고 부안으로 진군해.”
“알겠습니다.”
“전 선생은 보급에 신경 써주시오. 그리고 원군의 행보를 파악해서 알리시오.”
“알겠습니다.”
왕선은 관군, 사병과 결기가 가득한 백성까지 도합 2천여 명에 이르는 군세를 이끌고 부안으로 진군했다. 물론, 선봉은 마천목이 이끄는 관군이었다.
“형님. 왜구는 부안군 부령현(扶寧縣)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부령현?”
“예. 한데, 진입하는 다리를 끊었습니다. 아군의 진군이 쉽지 않습니다.”
“다리를 끊었다고?”
“예.”
“골치 아픈 놈들이군.”
직접 상황을 확인한 왕선은 실소를 머금었다.
이대로라면 교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형님. 원군을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 왜구들이 노략질한 쌀을 들고 도주하겠지.”
“그렇습니다. 며칠 내로 군선이 당도할 겁니다.”
“음.”
왕선은 차분하게 생각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백성들 불러.”
“백성입니까?”
“그래.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힘을 쓸 상황이니까.”
그리고
“박자청도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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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평련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어설픈 매복이 우리 발목을 잡으려는 수작이었다니.”
웃기지도 않을 정도로 허술한 매복이었다.
기껏 한다는 짓이 미륵 타령이었다.
비웃으면서 퇴각을 멈추고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그게 실책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낭비될 동안 적의 원군이 지척에 온 거다.
이토록 짜임새 있게 이중 삼중으로 작전을 구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애송이라고 생각한 전주 목사에게 완벽하게 당한 거다.
“선두를 공격한 원군이 누구였지?”
“파악된 정보에 의하면 최영. 그 늙은이였다고 합니다.”
“최, 최영? 확실해?”
“예.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최영의 깃발이 나부꼈다고 합니다.”
“제길. 역시 기세가 보통이 아니라고 했더니.”
전주 목사도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최영이 군세를 이끌고 왔다고 한다.
급히 달려오느라 1천 명 정도의 군세를 대동한 거 같은데 최영이라면 몇 배의 힘을 낼 거다.
좌평련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대장님. 고려군이 공격할 방법은 없습니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임피에 정박한 군선이 당도하는 대로 돌아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비록 큰 피해를 봤으나 확보한 군량도 상당하다.
이번에 당한 수모는 다음에 반드시 갚으면 될 일이다.
좌평련은 입술을 깨물면서 다짐, 또 다짐했다.
아무런 교전 없이 하루가 지났다.
“대장님. 내일이면 군선이 당도할 겁니다.”
“고려군은?”
“횃불을 들고 위협하는 시늉을 하고 있으나 가능할 수 없습니다.”
“횃불? 넘어오려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늉만 할 뿐 감히 넘어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
“알겠습니다.”
부관을 물린 후 좌평련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고려를 벗어난다. 군선에 타기만 하면 전투는 끝나는 것이다.
...아직 하루가 더 남았으나 긴장감이 풀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도 아무 일 없이 순탄했다.
자정이 지나고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진한 어둠이 인간의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할 때였다.
-쏴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앙!
왜구 주둔지 곳곳에 불이 붙었다.
놀란 좌평련이 황급히 군막을 나왔다.
“!!!”
사방에서 불화살이 날아오고 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대, 대장님! 고려군이 다리를 만들어서 넘어오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어, 어서 피하십시오!”
“젠장!”
좌평련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그때 고려군의 선두에서 창을 휘두르는 맹장이 보였다.
실로 무서운 기세로 전장을 지배하고 있다.
좌평련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시간도 없었다.
“물러난다!”
“예, 예!”
동이 틀 무렵 왜구는 부령현에서는 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형님! 왜구가 행안산(幸安山)으로 도주했습니다!”
“아. 정말 집요한 놈들이네.”
왕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곧장 추격한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박자청.”
“예, 예. 주공.”
“네 공이 무척 컸다. 전투가 끝나는 대로 큰 상을 내리지.”
“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본관도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거야. 공을 세웠으면 당연히 상을 줘야지.”
이번 작전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박자청이었다.
왜구의 눈을 속이면서 다리를 만들어 냈으니까.
“또한, 너를 도왔던 장인들을 잘 챙겨라. 앞으로 너를 보좌할 사람들이니까.”
함께 온 관민 중에서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박자청의 도와서 다리 제작에 큰 공을 세웠다.
또한, 마천목과 관군이 경계를 설 동안 나머지 백성들도 힘을 보태서 다리 제작에 나섰다. 만일, 수백의 백성이 집중해서 나서지 않았다면 시간 내로 다리 제작을 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긴 한데 보좌라니?
박자청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너를 전주 관청의 관리로 임명한다는 말이다. 네가 수장으로 있을 부서를 수립해줄 것이야. 저 사람들은 네 수하가 될 거고.”
“!!!”
박자청의 눈이 커지더니 촉촉해진다.
왕선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이동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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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왜구가 행안산으로 물러났다고 합니다.”
“행안산?”
3천의 왜구가 어째서 행안산에 있다는 말인가?
최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변안열은 시원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전주 목사가 연이어 대승을 거뒀다고 합니다.”
“허.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대단하군. 3천의 왜구를 행안산까지 밀어내다니.”
최영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왜구의 공세로부터 전주성을 사수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전력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하. 이거 어쩌면 원군이 필요 없었던 거 같습니다.”
“허허. 내 말이 그 말일세. 이거 전주 목사의 공을 뺏는 기분이 들 정도군.”
“그러면 돌아갈까요?”
최영은 짓궂게 웃었다.
“그건 회군이지?”
“이런. 농이었습니다.”
“나도 농일세.”
최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좀 올린다고 전주 목사가 싫어하지 않겠지?”
“아무렴요.”
“좋아. 최대한 빠른 속도로 행안산으로 진군하지.”
“알겠습니다.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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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산에 당도한 왕선은 고삐를 놓치지 않고 공세를 퍼부었다.
이미 기세를 잃은 왜구는 방비에만 열중할 뿐 감히 나서지 못했다.
“골치 아프군.”
왕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충분히 승기를 잡은 상황이었으나, 적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한 거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제대로 된 정예군의 부족이었다.
산으로 도주한 적을 격멸하려면 겹겹이 포위한 채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적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한 채 총돌격을 감행하면 왜구는 다른 지역으로 또 이동하게 될 거다. 해서, 전투를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는 왕선인지라 수차례 국지전에서 승리했음에도 우직하게 밀고 나가지 못했다.
“형님!”
화색을 띤 마천목.
“최영 장군이 당도했다고 합니다!”
“최영 장군이?”
“예! 2천의 대병을 이끌고 오셨다고 합니다.”
왕선은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저 지긋지긋한 왜구를 격멸할 시간이 온 거다.
“천목아.”
“예. 형님.”
“우리가 다 차린 밥상인데 아무리 최영 장군이라도 나누면 섭섭하지 않겠느냐?”
“물론입니다.”
“그래도 멀리서 오셨으니 냉수라도 한잔 내드리는 게 예의겠지?”
“하하하. 최영 장군께서 흡족해하실 겁니다.”
싱긋 웃었다.
“행안산에서 왜구를 완전히 몰아낸다. 나머지는 최영 장군이 알아서 할 거야.”
“알겠습니다!”
마천목은 기세 좋게 움직였다.
전주의 군세가 총진군했다. 왜구는 발악하듯 막아내다가 결국 퇴각했다.
그러나 이미 행안산 근처로 진군한 최영의 대군에게 격멸됐다. 그렇게 전라도를 유린한 왜구를 완전히 토벌했다.
< 27화 승리 그리고 대승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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