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미륵이니라-13화 (13/187)

< 13화 제1회 전주 목사배 표어대회 >

왕선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명문이라니.

“훌륭하군.”

“소생은 오늘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하하. 그렇소?”

“예. 주공. 백성들의 생각이 이토록 깊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전녹생은 표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당신의 똥오줌, 질병이 되어 돌아옵니다.”

“기가 막히는구려.”

“이토록 훌륭한 문구라니.”

“전 선생이 좋아하니 내 마음도 한결 가볍소.”

“주공의 혜안에 감탄할 뿐입니다.”

“하하. 내 얼굴에 금칠 그만하고 어디 한번 제대로 봅시다.”

“예. 주공.”

전녹생은 서둘러서 종이뭉치를 나열했다.

왕선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있다.

[자나 깨나 똥 조심.]

[혼자 싸는 똥은 똥이지만, 모두 함께 싸는 똥은 거름이 됩니다.]

실로 멋졌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똥오줌은 자비가 없습니다.]

[힘 조절을 잘못하는 순간 삼시 세끼의 공덕이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똥오줌. 그건 가을을 지키는 것]

[변소. 항상 재기하고 있습니다.]

[급해서 싼 똥, 질병으로 돌아온다.]

[남몰래 싼 동, 남몰래 죽음을 부른다.]

[당신의 똥오줌, 질병이 되어 돌아옵니다.]

[사람을 위해 똥을 싼다.]

[깨끗하게, 맑게, 시원하게.]

[당신의 새로운 공간, 변소.]

[당신의 똥은 당신의 생각보다 큽니다.]

[달라지는 것은 단 하나, 가을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똥.]

[작은 똥오줌, 거대한 질병.]

[변소 사용.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다 같은 똥오줌이 아니랍니다.]

······

[우리가 변소 가면 가을이 행복합니다.]

[친구와 사이좋게.]

[변소 간 사람 손들어봐요.]

[길거리에 싸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왕선과 전녹생은 심각한 번뇌에 휩싸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실로 무거웠다.

“전 선생의 생각은?”

“주공께서 먼저 말씀하십시오.”

“음. 어렵소.”

“소생도 그렇습니다. 모두 훌륭합니다.”

“그래도 골라야 할 건데.”

“마음 같아서는 공동으로 상을 내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건 대회의 권위를 낮추게 될 거요.”

“평생 이렇게 어려운 숙제는 처음입니다.”

“그래도 결정해야지요?”

전녹생은 힘겹게 답했다.

“예. 소생은 선택했습니다.”

“나도 선택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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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 다가왔다.

수백 명의 백성은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고 전주 관청에 몰려왔다.

모든 사람의 눈이 전녹생의 입을 주시했다.

“부장원부터 발표하겠네.”

긴장감이 고조됐다.

“혼자 싸는 똥은 똥이지만, 모두 함께 싸는 똥은 거름이 됩니다.”

“오오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환호성을 외치는 사람이 있다.

표어의 주인이 분명했다.

전녹생은 흐뭇하게 웃으며 그를 쳐다봤다.

“자네의 이름이 무엇인가?”

“예, 예? 이름을 함께 제출했습니다만.”

“혹시라도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까 봐 표어만 확인했네.”

이토록 세심한 배려라니.

사람들은 감탄했다.

“김돌석이라고 합니다.”

“그래. 참으로 고생했네. 자네는 1년간 조세가 면제될 것이네.”

“정,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하하. 앞으로도 변소 정책의 정착을 위해서 힘써주시게.”

“아무렴요. 길거리에 함부로 똥오줌을 싸는 작자는 소인이 크게 혼쭐내겠습니다.”

이건 바람직하다.

백성의 자율적인 단속은 큰 힘을 내는 법이다.

“계속 이어가겠네.”

다시 긴장감이 고조됐다.

백성들은 손에 땀을 쥔 채로 발표만을 기다렸다.

“똥 싼 배도 다시 보자.”

“저, 접니다!”

배가 불뚝 튀어 난 장년의 남자가 화색이 되어 뛰쳐나왔다.

“자네 이름은 뭔가?”

“김석쇠입니다.”

“그래. 자네는 1년간 조세가 면제되고, 쌀 50석이 내려질 것이네.”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변소 정책의 정착을 위해서 물심양면 힘쓰게.”

“아무렴요. 밤새 골목을 지키겠습니다.”

“하하하.”

백성들의 부러운 눈이 김석쇠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렀다. 가장 중요한 장원이 남아 있지 않은가?

모두 기대를 품은 채로 전녹생을 쳐다봤다.

“장원은.”

드디어 장원이 호명될 차례다.

모든 사람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장원은.”

전녹생은 뜸을 들였다.

그리고

“목사께서 발표하실 것이야.”

“이, 이런.”

김빠지는 소리.

백성들은 감히 입으로 따지지는 못하고 눈으로 강한 항의를 보냈다.

왕선은 개의치 않고 싱긋 웃었다.

“전 선생과 평가를 하면서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다시 집중됐다.

“너무나도 훌륭한 표어가 많았기 때문이다. 버릴 것 하나 없이 모두 명문이었다.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을 정도로.”

왕선의 진심이 전달됐다.

백성들은 환호했다.

“그런데도 장원을 선택해야 했다.”

“어,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만일 이견이 있으면 어찌합니까?”

“물론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너희도 이해해야 하니까. 그러나 자신한다. 이는 천하에 길이 남을 명문이다.”

“그토록 뛰어난 표어였습니까?”

“그렇다.”

“하면 어서 일러주십시오.”

왕선은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똥오줌 구별 말고 변소 가서 잘 싸자.”

좌중은 조용해졌다.

모두 눈만 껌뻑였다.

그리고 웅성거림이 커졌다.

“똥, 똥오줌 구별 말고 변소 가서 잘 싸자?”

“허. 이런 문구를 생각해냈다고?”

“듣자마자 가슴에 새겨졌어.”

“나 역시 듣자마자 전율이 일어났네.”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명문이었다.

그랬다. 왕선과 전녹생이 마지막까지 고민한 이유는 부장원의 문제였다. 장원은 당연히 결정된 상태였다.

“이 표어를 써 내린 사람이 누구인가?”

“소, 소인입니다.”

노인이었다.

왕선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왜, 왜 그러십니까요?”

“지극한 연륜이 없다면 생각할 수 없는 글이었다. 그만큼 깊이가 느껴졌으니까. 해서, 노인이 써 내린 표어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과연 그렇군.”

“부, 부끄럽습니다. 밥만 축내는 늙은이가 두서없이 말한 내용에 불과합니다.”

“아니다. 오늘 너의 표어는 연륜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하는 일이다.”

왕선은 좌중을 돌아봤다.

“그렇지 않은가?”

“목사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장원의 이름이 무엇인가?”

“김돌쇠입니다.”

“앞으로 1년간 조세를 면하고, 쌀 100석을 내리겠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돌쇠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왕선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외쳤다.

“참으로 힘든 평가였다. 그만큼 이번 표어대회의 수준은 높았다.”

“과찬이십니다.”

“고생했다. 너희가 적은 표어는 이 전주의 내일을 더 밝게 할 것이다.”

말을 하면서 백성을 살펴보니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모두 압도적인 장원의 실력을 인정했으나 아쉬움만은 어쩔 수 없는 거다.

왕선은 빙그레 웃었다.

“다음번에도 지금처럼 참가해주길 바란다.”

“다, 다음도 있습니까?”

“그럼. 매년 개최할 거다. 그러나 주제는 바뀔 수도 있다.”

“혹, 혹시···.”

“당연히 상금도 있다. 전주의 사정이 좋아질수록 가치는 커지겠지.”

“오오오!”

고배를 마신 백성들은 기약할 내일이 있다는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을 지켜보던 왕선은 손을 내저었다.

“앞으로 똥오줌은 어찌할 것인가?”

“귀한 거름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좋다. 참으로 좋다.”

“이제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왕선은 기분 좋게 선창했다.

“혼자 싸는 똥은 똥이지만!”

백성들은 화답했다.

“모두 함께 싸는 똥은 거름이 됩니다!”

“똥 싼 배도!”

“다시 보자!”

“똥오줌 구별 말고!”

“변소 가서 잘 싸자!”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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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씨 가문의 이문정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백성들의 참여가 그렇게 많았다고?”

그의 아들 이백유가 답했다.

“예. 아버님. 조만간 변소 정책이 정착될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구나.”

“예. 권농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그렇지.”

이문정은 수염을 만지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빼곡하게 사람들이 앉아있다.

전주 유력가문의 인사들이었다.

“노파심에 묻겠네. 전주의 권농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응당 전주 이씨가 책임져야 합니다.”

“전주 목사가 아니고?”

“선생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이문정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이 사람들이 늙은이에게 쉴 틈을 안 주는군.”

< 13화 제1회 전주 목사배 표어대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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