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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륵이니라-3화 (3/187)

< 3화 출병 >

양홍은 약속한 군자금을 모두 보냈다.

마천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악독한 양홍이 군량 1천 1백 석을 내다니. 정말로 놀랍습니다.”

“개과천선한 거지.”

“그래도 왕 선생이 아니라면 누가 그자를 고쳐낼 수 있겠습니까.”

“됐네. 공치사를 듣고 싶은 게 아닐세. 그나저나 의병은?”

“100여 명이 모였습니다.”

“100여 명이라. 애매하군.”

“전주 목사의 군사가 400명이 안 됩니다. 절대 적은 수가 아니지요.”

“그건 그렇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일단 이렇게 시작한다.

“들려온 소식은 없나?”

“조만간 전주 목사가 출병한다고 합니다.”

“왜구의 위치는?”

“익주 근처라고 합니다.”

“요격이라.”

“합류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왕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무리. 의병은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았어.”

“그래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백지장? 들지도 못해. 전투의 승패는 실전과도 같은 훈련이 10할이니까.”

“하지만 의병을 일으켰는데 넋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 관군에 결합하면 허드렛일만 하다가 왜구의 창칼에 죽을 걸세.”

“음. 전주 목사가 패할 거라고 보십니까?”

“아마도.”

“내가 병법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 합류해야 하지 않습니까?”

마천목을 슬쩍 쳐다본 왕선은 옅게 웃었다.

단순한 인사지만 진심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자네 의기가 정말 대단해.”

“왕 선생.”

“칭찬일세. 진심이야.”

“칭찬이나 들으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칭찬했으니까 싫은 말도 해야겠지?”

왕선은 엄한 표정을 지었다.

“군을 이끄는 장수는 죽을 자리를 가는 게 아닐세. 지금 자네는 100명을 죽이자고 주장하는 거야.”

마천목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죽을 자리면 피해야지.”

“도망이라도 쳐야 합니까?”

“당연하지.”

“왕 선생.”

“무릇 장수란 이길 수 있는 전투를 해야 하네.”

“어찌 그렇습니까?”

“그러나 명장은 이길 수 있는 전투를 만들어내지.”

“···방법이 있습니까?”

왕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왕선. 지혜를 꺼내보시게.

왕선의 머릿속으로 하늘의 시기를 산 천재의 혜안이 빠르게 스쳤다.

잠시 뜸을 들인 왕선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오합지졸을 데리고 패배가 확실한 관군을 도울 방법은 하나.”

“궁금합니다.”

“첫째로 은폐. 우리의 존재를 관군과 왜구 둘 다 모르게 해야지.”

“두 번째는 뭡니까?”

“유비가 신야에 거점을 잡고 있을 때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했네.”

“음. 도망갔다고 들었습니다.”

“중과부적이니 어쩌겠나?”

“정말 도망이라도 치자는 겁니까? 그렇다면 나 혼자라도 달려가겠습니다.”

“목숨을 좀 아끼게.”

그 목숨은 나를 위해서만 쓰라고.

-혼자라도 갈 것이야.

참 고집불통이다.

그런데 이건 어쩔 수 없다. 지금 두 사람은 완벽한 주종관계가 아니다. 비록 의병으로 묶였으나 언제라도 결별할 수 있는 아주 미약한 관계다.

“유비가 도망칠 때, 장비가 조조의 대군을 막았소. 어떻게 막았는지 아나?”

“만부부당의 무력으로 막았다고 들었습니다.”

“만부부당은 무슨. 사람이 아무리 강해도 그건 불가능하지.”

“음. 제가 만부부당까지는 아니지만, 일당백은 자신합니다.”

“하하. 그건 다음에 꼭 확인하겠네.”

-혼자라도 갈 것이야.

무슨 기도라도 하는 걸까?

생각이 참 단순하다.

“그런데 왕 선생은 장비가 무슨 수로 조조의 대군을 막았다고 생각합니까?”

“먼지.”

“예?”

“위장?”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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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의 날이 밝았다.

전주 목사 유영이 왜구를 요격하기 위해서 출정했다.

소식을 접한 왕선과 의병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정확하게는 관군의 진군 방향으로 뒤따른 거다.

한참 이동하던 왕선은 적당한 능선에 자리 잡았다.

“이쯤에서 주둔하지.”

마천목은 토 달지 않고 왕선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소식이 전해졌다.

“관, 관군이 대패했다고 합니다.”

반전은 없었다.

왕선은 등을 돌려서 의병들을 쳐다봤다.

병장기보다는 농기구가 어울릴 순박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 손에는 창칼이 있다.

경작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서 있다.

-왜, 왜구가 온다.

-살, 살 수 있겠지?

그들의 마음이 들렸다.

긴장감이 가득한 표정만큼이나 떨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아무리 작전을 잘 짜도 싸우기 전에 겁을 쥐어 먹은 군사를 이끌고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니. 작전 성공을 떠나서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선은 가장 앞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덥수룩한 수염이 나고 덩치는 왜소했다.

어색하게 웃는 그를 보면서 왕선은 부드럽게 말했다.

“두렵나?”

“아, 아닙니다.”

“두려움을 억지로 숨길 필요가 없네.”

“예?”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적군이 다가올 때 두려움을 느끼는 건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닐세. 그건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지극한 감정이니까. 해서, 우리가 두려움을 느낀다는 건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고요해졌다.

부산하게 움직이던 의병들은 행동을 멈추고 왕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장님도 두렵습니까?”

“나? 나는 안 두렵지.”

“어, 어찌 안 두렵습니까?”

왕선은 싱긋 웃었다.

“나는 사해용왕의 핏줄이니까.”

그러면서 가슴을 툭툭 쳤다.

“창칼도 이걸 못 뚫네.”

왕선의 말에 곳곳에서 작게나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자네들은 나처럼 피부가 철갑이 아니지.”

“하하. 그렇습니다.”

“창칼이 날아오면 크게 다칠 거고?”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 억겁의 두려움은 극복할 수 없지. 죽을 수도 있는데.”

“하면 어찌합니까?”

“참아야지.”

조용해졌다.

왕선은 일부로 귓속말하는 시늉을 했다.

“실은 나도 두렵거든.”

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앞사람의 등. 내 앞사람의 등을 봐. 또, 나는 뒷사람에게 등을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움직이면 두려움은 극복될 거야.”

“우리가 살 수 있겠습니까요?”

“당연하지. 오늘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살고자 온 거니까.”

의병들도 멍하게 쳐다만 볼뿐, 입을 열지 않았다.

왕선도 더 말하지 않았다. 충분했으니까.

그들의 눈을 통해서 모든 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단단해졌다.

그때, 멀찍이서 군마의 이동 소리가 들렸다.

왕선은 마천목에게 외쳤다.

“시작하게!”

그러자 마천목이 신호를 내렸다.

그 즉시 의병은 병장기를 내리더니 미친 듯이 사방을 뛰었다. 최선을 다해서.

그들의 손에는 나뭇가지 따위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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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목사 유영은 이를 악물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대패였다. 왜군의 매복에 완벽하게 당한 거다.

수백 명의 관군은 절반으로 줄었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후일을 도모하고자 퇴각하고 있으나 느껴졌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이대로는 왜군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다는 걸.

그렇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배수진을 치는 게 옳지 않을까?

한 명의 적이라도 더 죽이는 게 옳지 않을까?

그때 유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멀리서 자욱한 먼지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저건?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유영은 미친 듯이 외쳤다.

“원, 원군이다! 모두 힘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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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가 물러났습니다!”

흥분한 마천목을 보면서 왕선은 침착하게 말했다.

“곧장 준비하게.”

“준비라니요?”

“총진군.”

“예?”

왕선은 당부했다.

“일당백. 증명하게.”

마천목은 곧장 창을 고쳐잡았다.

“확실하게 보여드리지요.”

< 3화 출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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