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편_ 신들의 므깃도(2)
여명.
희미하게 밝아오는 빛 또는 그런 무렵.
다른 의미는 희망의 빛.
이곳에선 차원체를 구성하는 차 원이 수명을 다할 때, 완전히 소멸 하지 않게 임의로 차원을 정지했다 가 리셋할 수 있는 권능의 집합체.
차원을 태어나게 하게끔 만들어 주는 힘이다.
당연히 스킬 하나 마스터하는 정 도로 끝날 만한 게 아니라는 뜻이 다.
연우는 예르나에게 여명에 관한 정보를 받았다.
‘여명은 창조, 소멸, 관리라는 최 상위 종족 셋의 힘을 모아 만든 거 다.’
차원체에 적용되는 신격이라는 규칙은 ‘관리’인 아리움의 권능이고 차원의 수명이 다하기 전 일시적 ‘소멸’을 겪는 건 세리움이라는 종 족의 권능이다. 마지막으로 차원의 생성은 케티움이라는 ‘창조’ 권능.
이걸 어떻게 이용해야 100%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예르나가 알려 준 방법은 신분증 을 사용하지 않고 신격을 뚫고 힘 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라는 거였다. 당연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 니지만, ‘오롯이 선 자’라는 스킬을 가진 연우는 가능하다는 것.
그 이후에 식구들에게 힘을 나눠 주면 그들의 수준까지 어느 정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당기지 않는다.
그 정도로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 오는 센두스가 치를 떨게 하고 이 쪽 그래냐도의 상위, 최상위 차원 의 존재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 을까?
안 될 거다.
연우는 그 힘을 흡수한다고 스킬 을 마스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권능의 힘을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게 전부다. 텐 클래스 마스터는 지금 연우의 힘으로 힘들 다고 했다.
그렇다면 센두스를 막는 방파제 역할이나 계속하는 정도가 된다. 그래, 어차피 저놈들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걸 어떻게 할까.
막는 것까진 해 준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는 건 연우 스타일이 아니다.
“시간은 없지만, 한번 해 보지.”
치이익.
몸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몸에 부족한 영양소가 있으면 정확하게 그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식욕을 돋운다. 참 신기하다. 어떤 음식에 어떤 영양소가 있는지 어떻게 아는 걸까.
이번에도 고기다.
계속 피로가 쌓이니 단것과 단백 질이 당긴다.
얇은 드래곤 비닐로 만들어진 불 판에 드래고니아 꼬리 살이 익어 간다. 암시장에서 먹었던 파충류 꼬리 국을 먹고 계속 생각이 났던 거다.
아주 살짝만 익혔다.
그런데도 농장 전체를 감싸는 특 유의 고소함이 올라온다. 약간은 비릿한 듯하면서도 담백하니 좋다.
연우는 꼬리 살을 하나 입에 넣 고 씹었다.
“크흐.”
이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탄이 다. 한입 깨물자마자 육즙이 폭발 한다. 당연히 손이 잔으로 향했고 가득 찬 차가운 소주을 털어 넣었 다.
역시 기름을 씻을 땐 알코올이 최고다.
“좋다. 역시 사람은 먹어야 해.”
“팔자도 좋다.”
옆에 앉아 있던 이자젤이 말했 다.
식구들 모두 식당에 함께 있었 다. 필요한 장비 제작을 모두 마쳤 고 연우도 준비를 끝냈다. 몇 시간 후면 센두스의 병력이 올라올 거다.
그래서 소주는 자제한다지만, 완 전히 안 먹는 것보단 반병에서 한 병 정도는 먹어 줘야 소화도 잘되 고 좋다.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니 까.”
쳐들어오는 놈들을 지그시 밟아 주고 다음 계획을 실행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한동안 이런 여유는 못 부릴 거다.
이들의 손에서 벗어나 정말 오롯 이 서기 위해 움직여야 하니까.
“그걸 다 깔끔하게 정리해야 다 시 여유롭게 지내지 않을까? 밤새 술도 먹고 쇼핑도 가고 캠핑도 가 고 말이야.”
“그건 맞지. 그냥……
“왜.”
“걱정돼서 그렇지.”
“뭘 그렇게 걱정해. 잘될 거야.”
오늘따라 이자젤이 고분고분하 다. 아니, 얼마 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특히 전투가 있기 전에는 더 욱 그렇다.
순간, 충인족이 왔을 때 울음이 맺힌 이자젤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이자젤은 연우를 때려죽였으면 죽 였지 걱정된다고 울 위인은 아니었 으니까.
“너 진짜 요즘 왜 그래?”
“내, 내가 뭘!?”
갑자기 당황하니까 더 이상하다.
“설마, 너……
“뭐, 뭐가!”
“요즘 발정기냐? 엘프는 그럴 때 가 가장 힘들…… 꾸엑!”
이자젤의 주먹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연우 배에 꽂혔다. 정말, 평 생 할 토를 며칠 사이에 다 하는 느낌이었다.
“미친놈아!”
“크헉. 왜! 아니면 아닌 거지!”
“후우! 내가 미쳤지! 미쳐도 단 단히 미쳤어!”
이자젤은 그렇게 식당을 나가 버 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수이니와 후름이 연우를 한심하게 봤고, 아 르테는 왠지 이상한 눈으로 슬쩍 보기만 했다.
“어후. 아니면 말로 하지.”
하지만 연우는 그런 것으로 기죽 을 사람이 아니었다. 다 구워진 꼬 리 살을 마저 집어먹고 소주를 들 이켰다. 그리고 옆에 있던 새우 몇 마리와 소고기 몇 점을 올렸다.
치이이익.
“크으, 역시 이 냄새지.”
이걸 먹고 회까지 한 접시 먹은 후에 매운탕까지 달린다. 그쯤이면 시간이 딱 맞을 거다.
오늘 센두스에서 오기 전까지 배 를 가득 채워 놔야 한다.
이번에 전쟁이 시작되면 언제 끝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구구구궁.
검은 차원의 틈. 공간의 확장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무한의 공간에 서 거대한 에너지가 몰아치기 시작 했다. 하나의 세계가 움직이는 중 이다.
센두스 차원체의 선발대가 겨우 32번 차원에서 아무리 헬린 종족이 라는 최정예 병력이 지원했다지만, 하위 차원이라는 32번 차원에서 좌 절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나도 남김없이 깔끔하 게 말이다.
이번 병력은 센두스에서 직접 움 직이는 ‘세계’를 이용해 침공하기로 했다. 하나의 대륙을 그대로 지구 로 박아 제 기능을 상실시키며 남 은 헬린을 모조리 없애겠다는 계획 이었다.
쿠우우우우웅.
몇 번 공간의 벽을 무너뜨렸다. 중간에 끼인 수십 개의 차원을 무 시하고 부수며 도달한 지구. 저 멀 리 작은 행성이 보인다.
정말 작다.
32번이라는 하위 신격을 가진 저 곳에 그래냐도 차원체의 영웅이 있 다는 첩보를 들었고, 상위 차원의 충인족을 통째로 보냈다.
그런데도 실패한 거다.
하지만 이번엔 어떨까.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전장 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최상위 세 종족이 그대로만 있으면 그래냐도 차원체는 센두스 차원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
쿠우우우웅.
다시 몇 개의 공간을 부수고 지 구에 닿기 직전이었다.
쑤욱.
세계 전체가 작은 공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황했다. 고작 지구에 이 정도 마법이? 못해 도 상위 최상급 아니, 최상위 차원 의 힘인 거다.
32번 차원.
최하위의 이 작은 행성에 직접 관여할 정도로, 이곳의 영웅이 중 요하단 말인가?
쑤우우욱!
그 세계는 완전하게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헬 린 종족과 수많은 종족이 전쟁을 준비하는 므깃도였다.
신연우가 주인으로 있는.
신들의 므깃도 말이다.
므깃도의 푸른 하늘.
저 먼 중앙에 대륙 하나가 사선 으로 들어와 박혀 있는 모습은 장 관이었다. 저렇게 거대한 대륙 자 체가 사선으로 멀쩡히 서 있는 것 도, 므깃도의 바닥엔 구멍 하나 파 인 것 말고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도 그랬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곳을 바 라보는 병력.
가장 앞으로 헬린의 화염의 드래 곤과 헬린 종족이, 하늘엔 요르문 간드와 지저 최강 삼 종족, 게다가
천공 세계의 최강 종족까지.
하나같이 무력으로 최고를 찍은 이들이다.
저번 충인족의 공격으로 많은 수 가 죽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이들 은 더욱 강해졌다. 신격의 상승, 죽 음의 전투, 경험까지. 게다가 헬린 종족이 이곳에 상주하면서 받은 영 향까지 있다.
그리고 중앙.
무광의 블랙 겐지 가죽으로 만든 겐지 슈트를 착용한 농장 식구들. 연우, 이자젤, 수이니, 후름, 필리 아, 리젤. 뒤늦게 온 헤르메스와 아 이린. 헤맨과 아르테까지.
모두 같은 장비를 착용한 채, 반 대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솨아아아아!
사선으로 떨어진 대륙.
그곳에서 새카만 적들이 쏟아지 기 시작했다. 먼 거리에 많은 수가 제대로 된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하나하나 확실하게 눈 에 잡혔다.
“드래곤?”
아니다. 평범한 드래곤은 아니다. 특유의 윤기가 흐르는 비늘이 아니 다. 거칠게 느껴질 정도로 단단하 고 뻣뻣한 비늘과 동공이 보이지 않는 눈동자.
검고 회색빛이 풍긴다. 드래곤 전부.
하지만 마기나 악의는 아니다.
더 가까이 왔을 때, 드래곤 머리 위로 작은 인영들이 보였다.
“세크식스 종족이다!”
세르헬이 소리쳤다. 아르테도 아 는 눈치인지 연우를 보며 설명했다.
“세크식스. 둥글게 말려 딱딱하 게 굳은 등이 특징이고 마법과 육 체 전투에 능통합니다. 하지만 역 시 강한 특징은 ‘지배’. 그 어떤 몬 스터나…… 저희 헬린 종족조차도 그 지배를 쉽게 벗어날 수가 없습 니다.”
아르테의 표정은 심각했다. 전혀 무방비의 상황에서 만나면 헬린조 차 당할 지배력이라는 거다. 게다 가 저들 무력을 보면 파이브 클래 스 마스터에서부터 나인 클래스 마 스터인 연우보다 강한 정도까지 있 었다.
물론, 자신보다 강한 무력의 대 상을 지배할 순 없을 거다.
“지배는 불가능해도 정신적인 충 격이나 환상을 보여 주는 것까진 가능해요.”
“그렇군.”
아무래도 이번 전투는 힘겨워질 것 같았다.
헬린 종족도 뒷걸음질 칠 정도 다. 아직 거리가 있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들은 없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대로라면 이번에 새로 만든 무 기를 사용하기도 전에 당할 거다.
“이번엔 진짜 내가 간다.”
“ 연우!”
“주인님!”
다들 기겁했다. 아르테도 마찬가 지였다. 하지만 연우는 무를 생각 이 없었다.
“저들이 지배력 특화라면, 나도 마찬가지야. 게다가 이번에 새로 만든 무기도 있고. 내 키메라들도 있다.”
이성이 없다면 지배력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정신 공격도 마찬가지 다. 연우에게 완벽하게 종속된 키 메라라면 충분히 전력이 될 거다.
고민되는 건, 므깃도에 종속된 앞의 몬스터들.
아무리 이 안에서 연우의 지배력 이 강하다고 해도 헬린 종족을 지 배할 정도라면 요르문간드, 백호, 화염룡, 최강 삼 종족 정도를 제외 하곤 모두 당할 수밖에 없을 거다.
“이번엔 정말 믿어 줘. 내가 간 다.”
무리가 아니다. 그렇게까지 말하 자 식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선빵 제대로 날리지.”
“그래, 이번엔 인정.”
전엔 그렇게 걱정하던 이자젤도 연우를 향해 웃어 보였다.
연우는 그 웃음에 대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정면으로 날았다. 동시에 명령이 전달돼 헬린 종족을 포함한 므깃도의 모든 종족이 뒤로 물렀다.
그때, 마법에 특화된 모든 종족 이 연우 뒤로 거대한 결계를 치기 시작했다. 상대편에서 푸른빛을 쏘 아 대며 방해하려 했지만, 아군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 견제하며 하나의 경계를 만 들었고. 경계 밖엔 연우만 나와 있 었다.
적이 바로 코앞이다.
“열려라, 아공간.”
그저 말로만 해도 되지만, 꽤 큰 크기를 가지게 됐기에 직접 입을 열었다.
쩌억.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긴 선이 그어지며 벌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서 거대한 물체가 튀어나왔다. 동 시에 연우의 육체에서 미증유의 기 운이 확 퍼졌다.
우우우웅.
그 기운에 연결된 므깃도가 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준비했던 한 방을 날릴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