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편_ 나는 아직 배고프다
(I’m still hungry)(3)
“어? 오랜만이네요?”
연우가 땀을 닦으며 상체를 들었 다. 이진철, 최민아, 혜영, 연지, 연 호까지 줄줄이 입을 벌린 채 서 있 었다.
“그, 그…… 네. 오랜만입니다.”
“오, 오빠?”
그들은 이 사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그곳엔 전 세계 에 내려온 하늘 섬이 자리 잡고 있 었다.
“저기서 잡아 온 애들이야. 마법 저항이 좋아서 가죽을 벗기는 중이 었어. 아, 밥은 먹었어?”
태연하고 또 태평했다. 이진철과 최민아도 점점 적응되는 건지, 필 리아의 안내를 받아 바비큐 시설 옆에 다소곳이 앉을 수 있었다.
그나마 혜영이 자연스럽게 이자 젤 옆으로 가 가죽을 들어 찔러 보 고 마력을 넣어 보면서 편하게 이 야기를 나눴다.
“이건 뭐죠?”
“가죽하고 근육. 그리고 뼈대를 이어 주는 순환기관? 혈관같이 생 겼는데 피 대신 마력이 통하는 마 력관이지. 이것 때문에 마력이 밖 으로 빠져나오지 않게 100% 육체 에만 사용할 수 있는 거였어.”
“아하.”
“게다가 더 특이한 건, 마력을 100% 효율로 운동 에너지와 조직 을 구성하는 단백질로 변화한다는 거야. 물론 순수한 단백질은 아니 지만.”
“어? 내장 기관도 없네요? 마력 으로만 살아가는 종족인가 봐요.”
“그래, 잘 봤어. 이거 보여? 유일 한 내장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마 력 기관이야. 사람의 심장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는데……
둘의 대화는 계속됐다. 혜영은 이미 두려움을 잊은 표정이었다. 이진철과 연호도 많이 사그라들었 지만, 손끝이 떨리는 정도는 남아 있다.
“이진철 협회장님. 그리고 연호 야.”
연우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 다.
두 사람이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 는다는 걸 알고 있다. 마법 계열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본능과 감각이 날카롭게 서고, 그 감각은 천적의 존재를 감지해 생존 본능을 마구 찔러 대기 때문이다.
“이리로 와서 만져 봐요. 만지고 뜯고 해부하고. 그래야 두려움이 없어질 거예요.”
잔인한 방법이었지만, 효과는 최 고다. 이진철이 먼저 다가왔고 연 호는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연우 옆 에 섰다.
이 가죽과 근육이 워낙 질긴 녀 석들이라 웬만한 힘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마법 저항이 웬만한 투 클래스 마스터급이다. 당연히 이진철과 연호가 다루기엔 역부족.
하지만 연우가 누구인가.
“헤맨! 사체 해부용 단검 증에서 얼티밋 이상급으로 하나 줘 봐.”
워낙 연우가 얼티밋을 막 다뤄서 그렇지, 얼티밋이라는 등급은 일반 인은 범주에 넣을 수 없는 ‘전설’ 이상의 최고 등급이다.
보랏빛 오라를 뿜는 단검을 든 둘은 천천히 사체에 다가갔다. 단 검을 이미 베어진 목 틈으로 넣어 아래로 긋는다. 쓰리 클래스 마스 터급의 힘과 얼티밋 장비의 도움이 다.
그극. 그그극.
그럼에도 단단한 가죽은 찢기듯 겨우 갈라진다. 이진철과 연호의 이마엔 이미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이겨 내야 한다는 압박감 과 육체와 마력에 가중되는 부담 때문일 거다.
연우는 옆에서 한참을 지켜봤다.
둘은 잘 이겨 내고 사체 다섯 개 정도를 그대로 분리할 수 있었다.
짝짝!
“다들 밥 먹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연우는 이 미 자리에 앉아 구워진 고기를 나 누고 있었다. 반대쪽엔 혜영과 이 자젤이 사이좋게 앉아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고, 연우 옆으로 이진철, 연호, 연지, 혜영이 차례로 앉았다.
“다들 많이 먹어요. 고생했어요.”
“……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들 쉽게 먹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미 익어 버린 고기 는 왠지 겐지의 살점과 비슷한 검 은 갈색이었던 것이다.
“…… 왜요. 먹기 싫어요?”
연우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 하자 넷은 바짝 굳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각자 입으로 한 점 씩 들어갔을 때, 연우가 입을 열었 다.
“겐지 고기, 어때요?”
“푸춥!”
“컥! 커억!”
“오, 오빠?”
넷은 기겁하며 놀랐다. 그 모습 을 본 이자젤, 수이니, 슈슈가 박장 대소했고 아르테, 슈슈, 필리아는 쿡쿡 거리며 웃었다.
“장난이야. 장난, 블랙 카우 엉덩 이 살이니까 실컷 먹어. 맛있지 않 았어?”
소소한 장난이 지나가고 술이 한 잔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건 많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요?”
최민아가 먼저 물었다. 이진철과 함께 이곳에 온 이유는 하늘 섬이 생긴 이유. 그게 아니라도 저게 인 류에 위험이 될 때, 막을 방법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 아아, 저거요? 걱정할 거 없어요. 저도 처음에 걱정했는데,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먼저 내 려오진 않더라고요.”
“그래요? 정말요?”
“네, 확실하니까 걱정하지……
우우웅. 우우웅.
진동이다. 최민아의 핸드폰이었 는데, 그녀가 슬쩍 고개를 숙여 확 인했다.
“협회장님……?”
“왜. 무슨 일이야.”
“서울 상공 하늘 섬에서 겐지들 이 대거 내려왔답니다. 5대 길드가 서로 조사하겠다고 올라간다고 했 었는데……
“미친놈들.”
선제공격이 최선의 해결법인 줄 안 거다. 그럴 수 있다. 때로는 그 게 정답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적 의 무력을 가늠했다면 쉽게 공격할 수 없었을 텐데?
“거기뿐만이 아니랍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까지. 겐지가 내려오기 시작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이진철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주 먹을 꽉 쥐었다.
“민아, 서울부터 막으러 가야겠 어. 아마 위원회에서 움직인 것 같 다.”
“알겠습니다. 이놈들 한동안 가 만히 있더니.”
연우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몬스터들은 몰라도 위원회는 협회 내의 일이다. 이진철과 최민아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거다.
“갈 때, 이거 하나씩 가져가세 요.”
연우는 아공간에서 두 개의 슈트 를 꺼냈다. 무광의 검은색 일체형 슈트였는데, 연우가 손을 댄 순간 전체를 빽빽하게 뒤덮은 푸른 마법 진이 은은하게 빛났다.
“이자젤하고 헤맨이 아까 간단하 게 만든 거야. 겐지 가죽으로 만든 건데, 마법 저항이 투 클래스 마스 터급이고 물리 저항은 원 클래스 마스터급을 무난하게 막을 정도는 될 거야.”
엄청난 성능이다. 하지만 그걸 보던 이자젤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렸다.
“급하게 만들어서 고작 그 정도 뿐이지만, 인간들 사이의 싸움이라 면 도움이 될 거야. 나중에 오면 제대로 만들어서 하나 선물해 줄 게.”
“이, 이게 고작이라니……
“가,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이해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농장 식구들은 고개를 끄덕 였다. 이 정도면 ‘고작’ 재료의 성 능을 끌어내 반영구적으로 고정한 것에 불과한 거다.
마력석과 마법진. 그리고 시간만 들이면 어마어마한 장비. 얼티밋은 가뿐하게 뛰어넘는 GOD 등급에 드는 장비를 만들 수 있을 만한 재 료인 거다.
“항상 받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이진철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최민아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고개를 들고 밖으로 이동했 다.
“민아야, 시누자키, 스미스, 해서 웨이, 데이비드에게 전해. 우리의 시간이 도래했다고.”
최민아는 그 말을 듣고 가늘게 떨리는 약지를 감췄다. 그 뜻은 이 진철과 그가 호명한 이들. 그리고 최민아까지만 아는 작전 신호다.
“알겠습니다.”
뒤에서 둘을 보던 연우는 슬쩍 웃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이겨 낸 일에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 다. 분명 잘해 낼 거다.
“너희는 안 가 봐도 되겠어?”
혜영과 연지연호에게 물어본 거 다.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모습이었다.
“모르겠어. 마음 같아선 돕고 싶 은데…… 끼어도 되는 건지……
위원회와 협회장들의 싸움이다. 그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이런 건 준비했던 걸까. 이 사건 자체를 준 비할 순 없으니, 기회만 보고 있었 다는 게 맞다.
“왜, 너희도 슈트 하나씩 줘?”
“그, 그럼 좋지!”
연지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 다.
“손은 왜 들어?”
“넌 좀 닥쳐, 연호.”
“흥, 나도 줘! 가서 돕고 싶어. 두 싸움에서 등 터지는 관계없는 희생자를.”
“나도.”
혜영도 대답한 거다.
연우는 아공간에서 슈트 세 개를 꺼냈다. 그리고 피규어로 보이는 세 개의 무언가를 꺼냈다.
“이건 아까 그 슈트. 이자젤하고 헤맨이 만든 거야. 그리고 이건 키 메라. 말이 키메라지. 그냥 겐지를 통째로 붙잡아 개조한 거야. 이 한 마리가 겐지 세 마리는 상대할 수 있을 거야. 말은 당연히 잘 들으니 까 걱정할 거 없고.”
슈트는 방금 들었다. 그런데 이 키메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몬 스터를 잡아 세 배는 강화했다. 게 다가 말도 잘 듣는다고? 원래도 셋 은 연우가 정말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 다.
그런데 이건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저 강한 것과는 전혀 다른 능 력이지 않은가.
“아, 알았어. 잘 쓸게.”
셋마저 서울로 향했다.
“우리는 밥이나 먹자.”
“그래도 생각외다.”
“응? 뭐가?”
“네가 지배한 건데, 위원회라는 놈들이 어떻게 도발한 걸까? 공격 한다고 해서 쉽게 내려올 정도는 아닌데.”
저 하늘 섬. 겐지의 세계는 연우 가 접수했다. 이곳에 있는 사체들 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었고. 이 미 하늘 섬들을 돌며 저 세계의 왕 을 죽여 연우의 세계로 종속시켜 버린 것이다.
당연히 그렇기에 겐지가 먼저 지 상으로 내려와 공격하지 않는 것이 다. 굳이 없애지 않은 이유? 당연 히 인간들이 저들을 사냥하며 강해 지기를 바란 것이다.
“나도 그렇게 이용할진 몰랐지 만,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을걸. 사 람은 원래 그런 종족이니까.”
연우는 그렇게 말하며 잘 익은 블랙 카우의 엉덩이 살을 집어먹곤 소주를 한 잔 마셨다. 역시 좋다. 육고기와 소주는 언제나 정답이다.
뭐든 막히는 게 있으면 풀어 주 니까.
“아, 그것보다 슬슬 센두스에서 병력이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예정은 2일 뒤라고 합니다. 그 보다 빠를 수도, 느릴 수도 있고 요.”
아르테가 차분하게 말했다. 연우 와 영혼으로 이어지고, 연우의 모 든 공간을 오갈 수 있으며, 므깃도 에 상주하는 헬린 종족과 혈족인 아르테가 두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해 주기로 했다.
“오케이.”
다시 한 번 전쟁을 준비해야 한 다.
충인족. 농장 식구는 물론 지구 를 멸망시켰던 놈들보다 강한 놈들 과 말이다. 세르헬이 가져온 정보 에 의하면 이번 놈들은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를 거라 했다.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해야겠어.’
연우는 그렇게 좋아하는 소주를 한 병도 먹지 않고 정리했다.
“이자젤, 다시 준비를 시작해 볼 까‘?”
“좋지!”
철저하게. 식구 중 그 누구도 죽 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끊임없 이 강해져서 센두스라는 차원체 같 은 것들이 연우를 감히 쳐다볼 수 없도록 말이다.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진철과 최민아가 움직이기 시 작했다. 둘의 연락망에 시누자키, 스미스가 움직였다는 보고가 들어 왔고 해서웨이와 데이비드까지 움 직인다는 보고를 받았다.
단순히 이들만 움직인다면 가능 성이 제로인 작전이다.
하지만 해서웨이는 버크셔와 움 직이고, 데이비드는 셰이크를 등에 업고 있다. 러시아 쪽은 미하옐이 움직이고 일본과 미국은 시누자키 와 스미스면 충분하다.
이진철과 최민아는 한국의 위원 을 암살하고 5대 길드를 통합하면 서 중국의 위원까지만 확보하면 된 다.
무광의 검은 슈트를 입은 둘은 자연스럽게 서울에 펼쳐진 전장으 로 난입했다.
가장 먼저 이 서울을 침공한 겐 지를 처리하면서 5대 길드에 힘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