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편_ 나는 아직 배고프다 (I’m still hungry)(2)
다다닥. 다다닥. 다다닥.
“아 쫌!”
“왜.”
“다리 좀 떨지 마요! 신경 쓰이 게 정말.”
“아, 어떻게 하지? 말해야 하나? 아니면 또 우리끼리?”
“협회장이나 됐으면서 그걸 결정 못하고 있어요? 정 못하겠으면 도 와 달라고 하면 되지.”
“그, 그럴까? 그래야겠지?”
이진철 협회장은 창밖을 내다봤 다. 어마어마하다. 하늘 섬이라고 불러야 할까? 하늘에서 내려온 거 대한 암석은 일정 거리에 떠서 땅 에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위에 올라간 탐사대는?”
“아직 보고 전입니다. 아니, 올라 가기 시작한 지 1분도 안 지났어 요. 저기 보여요? 저기 올라가는 거. 아직 반도 못 올라갔는데 난리 느 ”
“넌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냐? 이
힘이 안 느껴져?”
“느껴지죠. 아주 확실히. 못해도 쓰리 클래스 마스터급. 사실 포 이 상일 거 같긴 한데……
“봐 나도 지금 살 떨리잖아.”
“에이, 엄살은. 이번에 쓰리 클래 스 마스터로 올랐잖아요. 농온그 길드에서 타이탄도 몇 개 받았고. 충분합니다. 우리가 언제 유리한 싸움 한 적 있어요?”
언제부턴가 경지를 올리는 한계 가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보통 7 단계만 돼도 마스터급이라며 한 나 라에서 손꼽는 사용자라고 했는데, 지금은 원 클래스 마스터는 쉽게 나온다.
그게 다 신격 때문이란다.
호주에서 시작된 하얀빛의 신격 은 호주를 넘어 지구 전체로 퍼지 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재앙 은 지구에 신격을 심어 줬다.
얼마 전에도 섬뜩한 살기가 지구 몇 바퀴를 돌더니 신격이 한층 성 장했다. 그렇기에 이진철과 최민아 도 쓰리 클래스 마스터를 달성할 수 있었고 다른 스킬 몇 개도 대폭 성장했다.
“없지. 항상 불리하고 죽을 뻔했 지. 근데 이번엔 차원이 다르잖 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무서워해요?”
“네가 못 느끼는 게 있어. 마법 사만이 느낄 수 있는 이 무시무시 한…… 맞아. 그 천적이라고 해야 할까? 원초적인 두려움인 거야.”
“홈. 저도 마법을 조금 배우긴 했는데…… 하긴, 협회장님은 마스 터니까.”
그래도 최민아는 이해하지 못하 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진철 은 결정했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빠르게 농장에 들러야겠어. 이 왕이면 연지랑 연호도 같이 가고.”
“알겠습니다.”
이진철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에 따라 최민아도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그럼 해서웨이, 스미스, 시누자 키, 데이비드까지 모두 연락합니 까?”
“그들도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하 니까…… 일단, 농장에 들른 후에 연락하지.”
이진철과 최민아는 빠르게 이동 했다. 오랜만에 농장으로 향했다.
“ 연지야.”
“네, 언니.”
“드론 카메라 올리고 있지?”
“네, 근데 왜요?”
“왜 이렇게 섬뜩하지?”
혜영도 마법사였다. 연지만 정령 사였고 연호도 마법을 마스터 직전 까지 올렸다. 역시 연지만 아무렇 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들도 호주에서의 전투, 이번 마정령과의 전투. 그리고 얼마 전 신격의 파동 과정에서 대폭 성장해 서 쓰리 클래스 마스터가 됐다.
다른 스킬도 마찬가지로 대폭 성 장했다. 마스터는 아니지만 웬만한 쓰리 클래스 마스터 오크도 쉽게 상대할 정도는 됐다.
확실히 스킬이 많은 게 이럴 때 도움이 된다. 일반 사용자는 스킬 이 하나에서 두 개, 많을 땐 다섯 개까지 있기도 하다. 원 클래스가 한 나라에서 대단한 사용자일 땐, 스킬의 개수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숙련도 분산의 단점이 있 다고나 할까.
하지만 경지가 올라가면서 스킬 의 개수가 주는 영향은 확실히 컸 다. 지금 연지, 연호, 혜영도 두세 개 정도만 있었다.
하나를 마스터했을 때, 연우에게 스킬을 몇 개 받았다.
그래서 지금 쓰리 클래스 마스터 가 됐어도 세 개 정도의 스킬이 최 상급으로 오른 거다.
이걸 다 마스터할 거라는 상상은 쉽게 되지 않지만, 최상급으로 오 른 스킬이 없으냐, 하나냐, 세 개냐 에 따라 무력 차이가 크게 났다.
이제 웬만한 사용자보다 강한 게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조차도 두려움을 느 꼈다.
“연지야. 혜영 누나. 우리 농장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럴 필요까지 있겠어?”
연지는 정말 이해 못하겠다는 표 정이었다.
하지만 연호와 혜영은 아니었다. 지금 그들이 가진 전력으로도 못 이길 거란 본능적인 감각이 마구 소리쳤다.
이자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타 이탄이 수십 기다. 키메라를 만들 수 있는 이자젤과 연우에겐 큰 효 용이 없지만, 다른 이들에겐 두 배 정도도 아닌, 다섯 배에서 일곱 배 까지 힘을 증폭시켜 주는 엄청난 병기인 거다.
게다가 각종 포션, 얼티밋급 장 비, 수백 명의 길드원까지. 그런데 도 무서워서 농장을 가야겠다고?
연지는 이상했지만, 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연호만 그랬 다면 무시했을 거다. 하지만 혜영
의 말이라면 믿을 만했다.
그 시작 농장에선.
“연우, 어때? 무슨 놈들이야?”
연우가 순식간에 정찰을 마치고 내려오자 모여 있던 식구 중 이자 젤이 물었다.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거대 하늘 섬 위에서 어슬렁거리 며 돌아다니는 놈들. 검은 무광의 피부에 인간의 형상을 했다. 눈, 코, 귀는 없고 쭉 찢어진 입에서 하얀 이빨만이 깜빡였다.
육체 특화 몬스터. 하지만 마법 저항이 어마어마했다.
“그래, 인간형 발록? 엄청난 마 법 저항에 육체 특화. 근력도 근력 이지만 슬림한 체형에서 나오는 속 도가 굉장하지. 이거 완전 마법사 킬러잖아?”
이 농장에서는 연지, 혜영, 이진 철처럼 두려움에 떠는 이는 없었다. 연우는 당연하고 마법을 위주로 사 용하는 이자젤은 발록을 샌드백으 로 알지 않은가. 게다가 헤맨은 공 간이 메인이다.
또, 사실 이 둘은 아스가르드에 서 이런 놈들은 물론, 더 무식하고 말도 안 되는 괴물과 동거하다시피 전쟁을 했다.
당연히 천적이라도 본능적인 공 포심은 진즉에 잊었다.
문제는 필리아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하긴, 필리아도 드래곤이다. 골드 드래곤이면서 농 장에서 생활한 지 얼마인가.
연우나 아르테 같은 강자를 매일 같이 보니 천적이라도 비슷한 놈들 에게 벌벌 떨 이유는 없었다.
“이름이 뭘까.”
연우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르 테가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잘 아는 눈치였다.
“저 알아요! 그거 중상위 차원의 전투 종족인데, 겐지라고 불러요!”
“게, 겐지? 꼭 뒤에 충이 붙을 것 같은 이름은 뭐지.”
“네? 그건 뭐죠? 블랙 겐지라고 불리는데 연우 님이 말했던 것처럼 엄청난 마법 저항하고 육체 전투력 을 가지고 있어서 마법을 쓰는 이 들에겐 천적이나 다름없죠. 특히,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어슬렁 거리다가 적이 등장하면 그림자로 숨어서 싸워요. 빠르고 영악하고 강하죠.”
“흐음. 그래?”
이 정도면 약점도 없는 거 아닌 가. 연우나 아르테 또는 성장한 세 엘프가 상대하기에는 어렵진 않다. 하지만 이게 이곳에만 있는 건 아 니다.
“아! 그리고 이 가죽이 대박이에 요! 가죽 자체에 10단계 ‘마법 저 항’하고 ‘겐지의 가죽’이라는, 9단계 급 물리 저항하고 충격 흡수에 능 력이 있는 스킬이 있어요.”
“가죽 자체에?”
“네! 게다가 가볍고 활동성도 좋 아서 장비 재료로 많이 쓰이죠. 마 법 저항 겸 화염 저항도 엄청나서 저희 헬린 종족도 많이 써요.”
그 정도면 쓸 만하다. 엔트족의 껍질도 비슷한 성질인데, 이 정도 는 아니다.
“괜찮네. 가죽에만 그 정도면 통 째로 가져다 써도 거의 모든 능력 을 그대로 쓸 수 있겠네?”
“그건 해 본 적이 없어서
연우도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이번에 센두스와의 전투로 인해 상 위 신격을 얻었고 능력치 버프도 지배력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이번엔 키메라를 만들지 않아도 있는 그래도 길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죽도 충분히 구해서 키메라들 도 입혀야겠다.’
여분으로 넉넉히 구해서 농장 식 구들을 모두 입혀도 괜찮을 것 같 았다. 이자젤, 헤맨, 필리아의 마법 실력이라면……, 마법 저항이 10단 계나 돼서 제대로 먹힐진 모르겠지 만, 요섭의 재료 손질 실력이 더해 진다면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럼 슬슬 가 볼까?”
원래는 밥부터 먹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빠르게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연우는 꼬르륵 소리 나는 배를 움켜잡고 식구들과 함께 농장 바로 위의 하늘 섬으로 이동했다.
팟.
워프는 순식간이었다. 하늘 섬 상공에 도착했다.
그 순간.
수백이 넘는 블랙 겐지들이 시선 을 돌렸다. 멍한 얼굴로 어슬렁거 리던 직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 다.
스윽.
하늘 섬 위로 떠 있는 작은 돌들 이 만드는 그림자로 겐지들이 스며 들었다. 빠르고 은밀했다. 두 눈으 로 보고 있었는데도 순간 놓칠 정 도였다.
“못해도 쓰리 클래스에서…… 파 이브 클래스 마스터는 돼 보이는 군.”
간혹 조금씩 더 강한 놈들이 있 긴 하다. 하지만 얼마 전 센두스의 충인족들과 싸우고 온 식구들에겐 식전 운동 정도에 불과했다.
이진철과 최민아는 분당에 있는 농온그 길드 건물에 들러서 연지와 연호 그리고 혜영과 농장으로 이동 했다. 마법 스킬 마스터이기 때문 에 워프를 이용했지만, 언제부턴가 농장 전체에 펼쳐진 마법진 때문■에 한참을 걸어야 했다.
“얼마나 안 왔다고 이렇게 변했 네요.”
“그러게. 은은하게 빛을 뿌리는 건 뭐지?”
최민아의 말에 이진철이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듣던 혜영이 대답했 다.
“마력충의 유충이에요. 마력을 머금은 벌레인데 원래 지저 세계에 있던 건데 이곳까지 올라온 모양이 네요.”
“우와, 언니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연우랑 이곳저곳에 많이 다녔었 거든.”
“연우 오빠요? 오오! 설마 단둘 이‘?”
“…… 그, 그건 아니고. 식구들 다 같이 간 거지.”
혜영의 얼굴엔 묘하게 아쉬운 느 낌이 남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연 호는 심각한 얼굴이었는데, 이 중 에서 가장 마법이 애매한 실력이라 그런 것이었다.
“신기하게 농장으로 갈수록 마음
이 편해지는 것 같은데?”
이진철이었다. 혜영도 마찬가지 인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농장 윤곽이 보였다. 가 장 먼저 산 중턱의 카페가 보였고 아래로 대장간과 상점이 몇 개 줄 줄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 입구와 블랙 카우, 블랙 쿡이 있는 울타리가 보 였다. 옆으로 펜션과 식당. 펍까지 있는 걸 보니 포근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굉장히 변하긴 했는데?”
한 번 싹 리모델링을 했었다. 재 질도 바꾸고 더 튼튼하고 완성도 있게 말이다. 규모도 어느 정도 커 졌기에 예전의 ‘아늑함’보다는 ‘안 정감’이 더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더 잡아당겨 봐. 그래. 거길!”
“왜 이렇게 질겨? 목구멍엔 잘 박히더구만.”
“이야, 가죽을 떼어 내도 마법 저항 마스터가 그대로 있네. 붙어 있을 땐 두 개 정도는 마스터된 마 법 저항의 힘이었지? 아, 물리까지 세 개였던가.”
이자젤, 수이니, 연우의 말이었
그들은 수백 마리의 검은 인간형 사체를 해체하는 중이었다. 한쪽에 선 필리아와 쇼타가 죽이는 냄새를 풍기며 고기를 굽고 있었고 슈슈, 리젤, 아르테는 상추와 반찬을 준 비하고 있었다.
학살의 현장과 캠핑.
정말 어울리지 않을 법한 광경이 지만, 이 농장은 왠지 모르게 정겨 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