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05편_ 천적(1) (188/207)

제205편_ 천적(1)

식물이라는 건, 태초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아무것도 없던 지구에 바다가 탄 생했고, 모든 생명체는 바다에 있 었다. 시간이 지나도 척박하고 아 무것도 없는 황폐한 땅에 올라와 적응하는 생명체는 없었고 육지 지 하에 소수의 생명체만이 살아남았 다.

그러다 고생대에 들어서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생명체가 등장했 다. 하지만 뿌리가 없는 불완전한 상태의 생명체일 뿐.

이때, 흙 속의 영양분을 전달한 건 육지 지하에 자리 잡았던 균류. 그러면서 그 생명체는 뿌리를 뻗도 록 진화됐고 그게 ‘식물’이라는 게 됐다.

과거에 그랬듯이 현대에도 그 진 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꾸륵꾸륵.

깊은 숲, 마른 바닥이 출렁였다. 육지 생명체의 탄생 이후 항상 진 화에 진화를 거치던 균류였지만, 현재 과도하게 밀집된 마력과 신력 그리고…… 미지의 힘에 지금까지 없었던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퍼석. 퍼석. 푹.

바닥에서 올라온 하얀 줄기가 좌 우의 나무에 박혔고, 몇몇 돌에도 뻗었다. 그 줄기는 점점 넓어지더 니 근처 강줄기에 닿으며 동물들까 지 먹기 시작했다.

생명체의 탄생 45억 년부터 뗄 수 없었던 공생(共生) 관계.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먹고 먹히는 포식 관계처럼 보일 수 있지만, 둘 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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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의 형태였다. 영양분을 먹고 성장하고 번식하는 하등식물 에 불과했던 ‘균류’는 광합성을 하 고 마력과 신력을 먹어 치우기 시 작하더니 하나의 형태를 갖췄다.

처음엔 구르며 주변 식물을 먹어 치웠고 아마존 한 구역 전체를 삼 킨 줄기의 영역에 걸린 동물까지 삼켰다. 그?러면서 팔다리가 생겼고 사냥을 위해 강한 육체를 지니게 됐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균류 생명 체는 움직임을 멈췄다.

투욱. 투두둑.

바닥에 엎드린 그 균류 생명체의 등이 갈라지며 바싹 마르기 시작했 다. 동시에 갈라진 등 속에서 셀 수도 없는 ‘포자’가 아마존 전체로 뻗어 나갔다.

반이 공기 중에 죽었다. 남은 반 에서 또 반이 동식물에 닿아 죽었 다. 그렇게 수많은 죽음을 겪으며 살아남은 몇 개체는 ‘동물’의 뇌로 들어가 기생을 시작했다.

크륵. 크르르륵.

흑표범의 뇌에 정착한 포자는 원 래 혹표범의 의지를 죽이고 뇌로 육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살아 있을 때보다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흑표범은 초점이 없는 눈으로 보이는 모든 생명체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충분한 먹이를 보충한 흑표범은 그 자리에 쓰러져 굳었다.

툭. 투둑. 팟!

육체가 썩어 들어가며 등이 터져 나갔다.

뿌뜨득.

터진 둥에서 힘겹게 나온 건 하 얀 줄기로, 사람 형상에 날개와 가 시 몇 개가 출렁이는 균류 생명체 였다.

꾸룩. 꾸르륵.

여섯 갈래로 갈라진 입에서 이상 한 소리를 내더니 훌쩍 뛰어 어디 론가 날아갔다.

그 자리에 남은 껍질에선 끊임없 이 포자를 뿌리며 번식을 시작했다. 점점 더 강한 생명체에 기생해, 더 욱 강한 에너지를 섭취한다. 동물 을 넘어 몬스터가 됐고. 이젠 인간 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균류 생명체는 진화에 진화를 거 듭해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었다.

삼미호는 벌써 꼬리가 6개가 됐 다. 삼미호에서 오미호까지의 벽을 넘더니 성장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선술은 이미 마스터에 경 지에 올랐는데, 삼미호의 어머니였 던 구미호도 선술 하나를 마스터한 게 전부였다고 한다.

“다른 구미호보다 성장이 훨씬 빠른 것 같구나.”

아이델이 육미호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그러다 문득 이름이 없다 는 생각이 들었는지, 식당 앞에서 안락의자에 누운 연우를 쳐다봤다.

“연우 님, 삼미…… 육미호 이름 지을까요?”

그 말에 연우가 아닌, 옆에 바삭 한 감자튀김을 가지고 나오던 이자 젤이 소리쳤다.

“오! 발랄한 이자젤 주니어 어 때!”

“제발 장난이라고 해 줘라.”

“프렌치프라이.”

“…… 제발.”

이 정도면 아무 말 대잔치도 아 닌 막말이다.

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육미호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선술로 둥실, 떠올라 연우에게 안 겼다. 복슬복슬한 털이 턱과 가슴 을 비볐다.

꼬리가 6개가 되자 털이 더 풍성 해지고 덩치도 커져 안는 느낌이 더 좋아졌다.

“우리 육미호. 이름 하나 지어

줄까?”

“네! 좋아요!”

“내가! 내가 해 줄게!”

이자젤이 무서운 얼굴로 소리친 다. 육미호는 그런 이자젤을 피해 연우 겨드랑이에 얼굴을 박고 부들 부들 떨었다.

“애 놀란다! 맥주나 가져와!”

“쳇. 내가 네이밍 센스가 얼마나 좋은데!”

이럴 땐 무시하는 게 최고다.

“우리 육미호는……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진 않는다.

“폭스바겐?”

“…… 차라리 제가 하겠습니다.”

아이델이 육미호를 뺏어 갔다.

연우는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이자젤 같은 말을 할 줄 몰랐고 아 이델이 이런 농담에 정색할 줄은 몰랐으니까. 더욱이 연우를 바라보 는 육미호의 동공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미안, 장난이야. 나인 테일? 아 니면…… 아, 그거 어때. 뤼땡? 장 난꾸러기라는 뜻인데…… 아니야. 마샹스? 프랑스어로 ‘나의 행운’이 라는 뜻이지. 귀염등이라는 뜻의 슈슈도 있고.”

“와, 어떻게 프랑스어를 아세 요?”

아이델이 놀랐다. 당연하게도 아 이델은 아스가르드의 캐릭터라 한 국어를 잘했고 이곳에 와서는 번역 과 통역을 모두 마법으로 해결했으 니 다른 나라 언어를 하는 게 신기 할수밖에.

“구글링이라는 걸 아니?”

연우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걸 알 리가 없었던 아이델은 그저 신기하게 볼 뿐이었

“저! 저! ‘슈슈’ 할래요! 이름도 예쁘고 뜻도 예뻐요!”

“좋아, 우리 슈슈. 조금 오글거리 긴 하지만, 우리 육미호가 사용하 니 귀엽네.”

“그러게요.”

슈슈는 기분이 무척 좋은 듯 방 방 뛰면서 여섯 개의 꼬리를 흔들 었다. 아이델과 연우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화악.

“응? 무슨 기운이지?”

연우가 묘한 호전성이 담긴 마력 파동에 고개를 돌렸다. 농장에선 이런 기운이 느껴져선 안 된다. 강 하게 성장한 게헨나르가 농장 외곽 을 지키고 있었고 댕댕이, 검둥이, 케베까지 이 주변을 경계했으니까.

농장 근처엔 호전적이지 않은 순 한 몬스터만 존재했다.

“제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아이델이 말했다. 대충 느껴도 원 클래스 마스터 이상이다. 하긴, 그 정도가 아니면 연우가 느끼지도 못했을 거다.

“그래, 다녀오고.”

“저도! 저도 같이 갈래요!”

연우는 농장 귀염둥이 슈슈가 이 자젤처럼 호전적으로 변하면 어쩌 나 걱정했지만, 평생 품에 안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조심하고.”

아이델은 슈슈를 안고 훌쩍 뛰었 다.

그때, 맥주를 들고 온 이자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연우는 대 충 설명하곤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 다. 역시 겨울에도 맥주는 맛을 잃 지 않는다.

오히려 추운 곳에서 먹는 맥주는 색다른 기분을 선사하기에 별미처 럼 느껴진다. 거기에 바삭한 감자 튀김까지 있고 옆에는 사워 크림과 칠리소스를 정확히 반반 담은 종지 가 있다.

연우는 감자튀김 하나를 들어서 사워 크림에 푹 찍어 칠리소스까지 훑었다. 입으로 곧장 들어간 감자 튀김은 이에서 소스와 버무려졌다.

“크으, 바로 이 맛이지.”

튀김 기름이 입안에 퍼졌을 때, 시원한 피그미온 라거를 마셨다. 깨끗해진 입에 다시 감자튀김을 넣 었다.

“애들은 왜 이렇게 안 오지?”

아이델하고 슈슈가 갔으면 금방 와야 했다.

“아이델 님. 여기 무서워요.”

“응? 여기가?”

슈슈는 아이델의 품에 얼굴을 묻 었다. 원 클래스 마스터는 물론이 고 투 클래스 마스터 오크 앞에서 도 당당했던 슈슈다. 그런데 고작 원 클래스 마스터의 몬스터 앞에 서?

“이상한 기운이 있어요.”

“이상하다라.”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이 근처 가 분명한데 보이지도 않고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기운으로 봐선 호전적인 게 분명한데, 모습을 드 러내지도 않는다.

“으으. 아이델 님. 저 갈래요! 무, 무서워요.”

슈슈가 이렇게 무서워하는 모습 을 본 건 처음이다. 어린아이 같지 만, 겁도 없는 게 슈슈였다.

아이델은 표정을 굳히고 몸을 돌 렸다. 고작 원 클래스 마스터의 몬 스터이지만, 슈슈가 두려워하는 걸 보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어떤 몬 스터라도 이 농장에 해를 끼칠 순 없다.

농장에 슈슈를 데려다주고 다시 오기로 했다.

“일단 돌아가자.”

아이델이 슈슈를 안고 돌아간 후 였다.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던 땅에서 긴 주둥이가 빠져나왔다.

다리가 세 개인 삼족구라는 영물 몬스터가 검게 변한 상태였다. 마 기의 영향을 받은 영물인 게 틀림 없었다.

하지만 눈이 뻥 뚫린 듯 멍했다. 마물로 변한 삼족구라도 영물이기 에 굉장히 똑똑하다. 이상할 수밖 에 없는 모습이었다.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아주 달 콤한 먹이를 찾은 듯 꼬리를 부르 르 떨었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한 소식이 들 려왔다. 몬스터가 시체처럼 변해 움직인다는 것. 죽여 봤자 썩은 사 체에 다 닳아 없어지기 직전의 마 력석만 나온다는 것.

그리고 이상한 전염병이 퍼진다 는 소식이었다.

“이거 심각한데?”

협회장 이진철은 보고받은 소식 에 미간을 짚었다. 전엔 사람의 영 혼을 오염시킨다는 마정령이었다. 농장이 없었다면 인류 전체가 힘겨 운 싸움을 하게 될 뻔한 무시무시 한 존재.

그런데 이젠 전염병?

“거기에 그 전염병에 걸린 사람 은 그 몬스터처럼 썩어 가며 이성 을 잃고 주변 사람을 공격한다는 정보입니다. 게다가 마력이 많은 사용자 위주로요.”

최민아가 보고했다. 이진철도 익 히 아는 일이라 별 대답을 하지 않 았다.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 냐는 거다.

“몬스터 막기에도 급급한데 이번 엔 좀비야?”

이진철은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 다.

“…… 좀비요?”

“완전 좀비잖아. 그 몬스터도 다 른 몬스터를 먹는다고 했지?”

“네, 인간도 먹긴 하지만, 원래 그랬던 거고…… 같은 동족까지 잡 아먹는 중이긴 합니다.”

“그게 몬스터의 변형과 인간이 걸린 전염병의 공통점이고.”

“맞습니다.”

“그럼 완전 좀비잖아. 게다가 공 기 감염이 시작이고 물린 이들도 그렇게 변한다며?”

“맞…… 습니다.”

“미치겠군.”

이걸 어떻게 막아야 하지? 도저 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미 전 세계에서 감염자를 격리 하고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정보에 의하면 기생충이나 세균 에 의해 그렇게 된다는 것 같은데, 확실한 정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

“농장은 멀쩡한 걸까?”

“그러니까 말이 없지 않을까요? 농장에 한번 들르시겠습니까?”

“…… 그랬으면 싶은데. 사실 연 우 님을 뵐 면목이 없다. 어떤 일 만 있으면 찾아가서 도와 달라고 하는데…… 너 같으면 도와주고 싶 겠냐.”

“…… 좀 그렇긴 합니다.”

“게다가 연우 님이 언제까지 여 기에 계실지 모르는 거고. 이 정도 일은 알아서 해결해야 하지 않겠 냐.”

“맞습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피해가 점 점 느는 걸 지켜보면 당장에라도 달려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싶기 도 하다.

“최대한 해 보자. 그리고 정 안 되면 도움을 부탁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협회 각 지점에 연락하고 셰이 크 님, 미하옐, 버크셔, 찰튼까지 모두 연락해서 대책을 회의해 보자 고.”

협회장인 이진철이라도 예전엔 회의는커녕 연락조차 하지 못하는 위치의 사람들이었다.

그 정도로 영향력 있고 엄청난 사람들. 하지만 이젠 인류의 위기 에 가장 앞서 힘을 합하는 동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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