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편_ 이자젤의 타이탄(2)
연지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 에 당황하지 않고 카메라를 겨눴 다. 발록 타이탄에 탑승한 혜영을 중심으로 찌릿한 기운이 퍼져 나 가는 걸 카메라를 통해서 수백만 명이 동시에 보는 중이었다.
“무슨 타이탄이…… 하지만 발록 통째로 만든 거니까 강한 건가. 거기에 혜영 언니의 힘이라니
연지와 연호는 이제 원 클래스 마스터를 이뤘다. 이것도 운이 좋 았던 건데, 몇 번이고 죽을 위기 에서 살아남으며 아이델, 천인종, 백호의 도움을 받아 각성할 수 있 었던 거다.
그렇게 힘들게 이룬 힘들. 하늘 까지 솟았던 자신감과 폭발하는 힘의 짜릿함은 저 앞에선 아무것 도 아니라는 걸 몸소 느끼고 있었 다.
혜영이 강하긴 했다. 마법과 공 간의 마스터는 완벽한 조합이었고 도대체 어떤 훈련을 한 건지 육체 능력 또한 뛰어났다.
하지만 지금 저 정도는 아니었
땅이 흔들리고 대기가 공명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 발록 타이 탄을 보는 것만으로도 털이 삐죽 서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정 도다.
“엄청나군.”
“혜영 누나, 엄청 세졌네. 저 발 록 타이탄이라는 것 때문인가.”
“하긴, 발록만 해도 투 클래스 에서 쓰리 클래스 정도 아니야? 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일렁이 는 포스가 이 정도인 거다.
그때, 연우가 어디선가 날아와 발록 눈앞으로 왔다.
“어? 오빤데?”
“형!”
연우가 나타나자 연지와 연호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연 우는 본 척도 하지 않고 혜영에게 도발을 시전했고 혜영은 바로 공 간 폭탄을 준비했다.
그으으으!
발록의 검은 눈동자에 푸른 마 력이 서리고 머리 위로는 살벌한 기세가 유형화돼 불타올랐다. 강 렬한 공간의 압축에 먹구름이 끼 고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날씨가 갑자기 왜 이 래?”
이건 혜영이 평소에 가지고 있 던 힘이 아니었다. 아까 느꼈던 무서움? 지금 이 기세에 비하면 조족지 혈이 었다.
그건 생중계를 보는 구독자들도 난리가 났다.
- 이게 뭐야! 날씨는 또 왜 이 래?
- 저 오빠라는 사람은 죽으려 고 환장을 했나. 저걸 그냥 받겠 다고?
- 엄청 강하다는데?
- 아무리 강해도 저건 아니지. 혜영 누님 힘을 우리가 몰라? 게 다가 저것 봐. 쓰리 클래스 마스 터 오크의 기세는 그냥 애교로 보 인다.
- 저거 공간 폭탄 맞지? 저게 저렇게 강했나?
- 몇 배는 압축한 것 같은데?
후웅!
공간 폭탄은 주변의 기체를 모 조리 빨아들이며 연우에게 날아갔 다.
하지만 연우는 그 자리에 그대 로 서서 손만 뻗었다. 공간 폭탄 이 연우의 손에 쑥 들어갔을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아니, 이 자젤과 연우만 예상했던 일이 벌 어 졌다.
픽. 푸시시시.
마치 비닐 풍선에 구멍이 뚫려 바람이 빠지듯. 공간 폭탄은 연우 손안에서 사그라들었다.
“오호, 좀 강해졌는데? 혜영아.”
“이씨! 이게 뭐야!”
“다시 해 보든지.”
“진짜 간다? 직접 때려도 되 냐?”
“좋아. 그럼 무기도 있어야겠 지?”
“무기? 그런 것도 있어?”
연우는 혜영의 말에 먼 곳을 보 더니 손을 들었다.
“요섭! 여기야!”
“네! 바로 갑니다! 이제 막 완 성 됐습니다.”
아다만티움 슬라임이지만, 훈남 으로 변한 요섭이 자기 몸에 다섯 배는 될 법한 거대한 검을 두 손 으로 들고 달려왔다. 일반인은 절 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선 흔한 광경이었다.
근처까지 온 요섭은 검을 휙 던 졌고 혜영이 탑승한 발록 타이탄 은 자연스럽게 움직여 검을 받았 다.
“이거 무게감도 있고 균형도 괜 찮고. 역시 요섭의 작품인가?”
혜영은 조종이 한결 편해졌는지 짝다리까지 짚고 있었다. 거친 발 록의 얼굴에서 얇은 혜영의 목소 리가 나와 어색하기도 했다.
“그거 얼티밋 등급입니다! 공간 의 힘 전도율도 높고요.”
후욱. 챙.
혜영은 검을 슥 돌려 고쳐 잡고 한 번 휘둘렀다. 발록 조종실 안 에 있는 혜영의 손에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검이 생성됐다. 진짜 검 은 아니고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 으로 보였다.
“한 번 싸울 만하겠는데?”
“그럼 와!”
둘은 전투를 시작했다.
혜영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 고 연우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막 아섰다.
쿠우우웅!
그 모습을 보던 연지와 ‘농온그’ 는 뒤로 물렀다.
“이러다 여기 다 무너지는 거 아니야?”
“이자젤 누나! 저거 어떻게 해 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대충 중요한 곳은 실 드로 감싸 놨으니까. 그건 그렇고 어쩐 일이야. 이렇게 오랜만에.”
뒤에선 어마어마한 전투가 벌어 지고 있었지만, 이자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저,저희 농장에 놀러 왔죠. 농 장 소개도 좀 하고요.”
“그래? 이번에 농장 리모델링 좀 하려고 했는데 잘됐네.”
“리모델링이요?”
“응. 저 지하 주차장처럼 싹 갈 아엎으려고. 이런 블러드 우드 콘 셉트도 좋긴 했는데 이제 질리더 라고.”
집, 식당, 펍, 대장간, 상점, 카 페 등등. 모두 대리석을 이용해 리모델링을 하고 규모도 조금 늘 리기로 했다.
“그러면서 저 타이탄도 보관할 곳도 지어야 하고. 그래서 저기부 터 저기 산까지 싹 사 버렸지.”
이자젤이 손으로 가리킨 곳은 대충 봐도 산 다섯 개. 중간에 평 야를 합하면 어지간한 도시 수준 이다.
“너회는 슬슬 한국에서 길드를 만들어 활동할 건가?”
“네, 혜영 언니가 주도적으로 나서기로 했어요. 길드원도 늘리 고 규모도 늘리고요.”
“올해는 바쁜 한 해가 되겠네.”
쿠우우웅!
콰아아앙!
그사이 연우와 혜영의 전투에 주변 산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자 젤이 말했던 중요한 것들엔 산이 포함되지 않은 모양이다.
연지연호의 농온그에겐 익숙하 지 않은 격한 인사였다.
인사가 끝나고 점심을 먹었다. 연지와 연호는 이자젤과 함께 농 장 구경을 한다고 나갔고, 아이델 은 오랜만에 오미호와 함께 농장 산책을 갔다.
천인종은 헤르메스와 함께 블랙 쿡 배설물을 펐는데 그 모습을 보 던 아이린이 눈물을 흘렸다. 이유 는 아이런만 알지 않을까 싶다.
“후우. 시끌시끌하네.”
갑자기 사람이 많아졌다. 요즘 은 추운 날씨 때문인지 손님도 없 어서 따분했기에 소란스러움이 나 쁘지만은 않았다.
연우는 농장을 쭉 둘러봤다.
이제 농장을 늘릴 때가 왔다. 신들의 므깃도라는 스킬이 주는 버프에 신경 써야 할 것도 있지 만, 농장 주인이라는 본연의 업무 에도 충실할 때가 온 거다.
‘헤르메스는 일단 그라니아 대 륙에 농장을 지어 줘야겠어. 절망 의 도시 근처로 해서.’
어차피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이다. 결국 커플이라는 얘기다. 이 농장에 커플은 존재할 수 없 다.
‘다음엔 오크르트 대륙하고 타 이탄 대륙도 한 번 가서 농장을 지어 버리면서 신들의 므깃도로 완전히 종속해 버려야겠어.’
편입된 세상은 연우의 영향력이 끼치는 세계인 거고, 종속된 세상 은 완전히 연우의 소유인 거다.
아직 그걸 가르는 기준을 정확 히 알 순 없었다.
하지만 편입된 세상이 종속된 세상이 되면 버프 증폭률이 느는 것과 연우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종속된 세상이 될 확률이 높아진 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또, 레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가는 방법을 구상한 다음, 편입된 세상과 종속된 세상을 하나씩 늘 려갈 거다.
‘세계라는 건 중간에 하나씩 만 들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자원이 들어가지만, 차원 상인인 레인의 도움을 받으 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요즘 판매하는 던전의 이름이 유 명해지면서 벌어들이는 돈도 많아 졌다.
‘일단은 이 농장.’
가장 먼저 할 것은 이 농장의 요새화. 본디 본진이 튼튼해야 확 장을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거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이 농장만 큼은 멀쩡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겠다. 이자젤이 지금 타이탄에 집 중하기 시작한 것도 모두 그 작업 의 일환이다.
연우는 말할 것도 없고 아르테, 이자젤 등은 타이탄 제작이 9단 계 이상이 돼 상상 초월의 타이탄 을 만들기 전까지는 별 효용이 없 다.
하지만 그 이하의 농장 식구나 연지와 연호가 운영할 길드에선 이 타이탄이 엄청난 전력 증강 효 과를 지닐 거다.
“지반부터 단단하게 다져야겠 어.”
역시나 지반이 기초다.
연우는 데르드가를 불렀다. 이 번엔 대대적인 공사다. 지하 lkm 까지 들어가 대리석과 블랙 키리 윰 그리고 아다만티움을 중심으로 단단한 벽을 만들고 마법진을 떡 칠한다.
넓이는 이번에 구매한 산과 땅 까지 모두 포함되도록 한다. 농장 을 중심으로 정확히 같은 거리의 다섯 곳의 경계를 찍어 기둥을 세 운다.
“마법은 이자젤하고 헤맨에게 맡기고.”
이 마법진을 사용할 일이 올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더 안전하 게 만드는 게 좋다.
이젠 건물을 하나씩 리모델링하 기로 했다. 어차피 건설 스킬을 지닌 사람은 연우뿐이었고 마법만 이자젤을 불러다 도움을 받으면 된다.
“내 집부터.”
블러드 우드도 단단한 편이지 만, 나무는 나무다. 천공 탑에서 훔쳐 온 대리석으로 벽을 덮고 아 다만티움을 뼈대로 타이탄 대륙에 서 가져온 광석을 조합해 콘크리 트를 만들었다.
연우는 그런 식으로 본인이 살 던 집, 식당, 펜션, 펍, 대장간, 상 점, 카페 등을 하나씩 개조하기 시작했다. 말이 리모델링이지, 거 의 새로 짓는 거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스킬로 짓는 거라 짐을 꺼내고 부수는 복잡한 과정은 필 요 없었다.
“끄으으. 아무래도 이건 너무 노가다인 것 같아. 힘들어 죽겠 네.”
나인 클래스 마스터지만 정신적 인 스트레스가 아예 없는 건 아니 었다.
‘나인 클래스 마스터라.’
사용자가 되고 이 힘을 가진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 고 사용자를 부러워하는 평민이었 다.
그런데 아스가르드라는 게임에 서 능력을 가져오는 ‘사용자 능력’ 을 얻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거 다.
식스 클래스 마스터만 해도 최 강이었던 연우였다. 그런데 게임 안에서조차 상상해 본 적 없는 경 지인 나인 클래스 마스터라니.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게…… 타이탄 마계의 마왕을 상대하면서 느꼈지.’
같은 단계의 존재와 싸우면서 질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 렇기에 더 여유로웠던 거고 말이 다. 지금도 한 클래스가 올라 나 인 클래스 마스터지만, 확실히 긴 장하게 됐다.
‘일개 마왕이었는데.’
그 위에 더 강한 마왕이 있고 마신이 있을 거다. 게다가 천계도 있으니 천족과 천신도 있다. 그곳 보다 상위 차원인 곳은 그것보다 더 강하겠지.
연우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해가 질 때쯤이나 리모델링을 끝 냈다.
“멋지긴 하네.”
은은한 푸른빛을 가진 투명한 막이 농장 전체를 감싸고 있다.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일정 하늘 까지 감당하는 거다. 평소에도 보 이기만 하고 비상시엔 실드 겸 갖 가지 마법이 발동되는 마법진이 다.
그리고 건물들. 대리석이지만 흰색, 회색, 검은색으로 콘셉트를 잡았기에 깔끔한 현대식 건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비상시 에 전기, 마력, 물, 빛을 생성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 정도면 됐으려나.”
가장 먼저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레인을 만나서 키메라 재 료, 타이탄 재료, 종속된 세상을 만들 재료를 사고 그동안 만들었 던 던전을 판다. 이후에 지구, 그 라니아, 오크르트순으로 영향력을 넓혀 갈 거다.
“후, 일단 오늘 할 일은 끝.”
연지랑 연호도 왔겠다. 오늘은 맛있는 걸 대접해야겠다. 며칠 전 먹었던 야끼니꾸도 상당히 괜찮지 만, 자주 먹을 음식은 아니었다.
“역시 이럴 땐 삼겹살인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닥불 앞 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먹는 게 최 고일 수 있다.
거기에 드레이크 꼬리 고기와 드래곤 허벅지 살을 곁들어 먹으 면 기름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느끼할 수도 있으니 갓 담근 배추김치. 매운 파김치를 추가하 면 딱이다.
연우는 신나게 식당으로 향했 다.
대리석으로 다시 지어진 연한 회색빛 식당엔 수이니, 필리아, 쇼타가 모여서 각종 재료를 준비 하고 있었다.
“ 연우!”
“연우 님 오셨군요.”
“오늘은 삼겹살이다! 그리고 드 래이크 꼬리 살과 드래……
순간 필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이 메뉴는 접어야겠다.
“역시 꼬리 살엔 삼겹살. 두 개 만 있으면 충분하지.”
괜히 딴청을 피우는 연우였다.
준비는 순식간에 끝났고 때마침 연지와 연호. 이자젤과 혜영이 차 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랜만 에 북적거리는 회식이 될 것 같았 다.
제2()1편_ 마정령(1)
므깃도의 농장은 언제나 평화롭 다.
오늘은 연우가 직접 팬을 들었 다. 뜨겁게 달궈진 팬에 기름을 뿌 리자 팬이 번들거렸다. 연우는 위 로 올려진 마늘, 대파를 튀기듯 볶 았다.
매콤한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연우는 쉬지 않고 소금과 후추로 시즈닝된 어린 양고기를 올렸다.
치이이익.
기름과 닿은 면이 빠르게 익는 다. 한국식으로, 양 특유의 향을 마 늘과 대파 기름으로 없애고 담백하 게 먹기 위한 양 구이다.
특히, 메리쉽이라는 몬스터 고기 는 반쯤 덜 익혀 먹어도 될 정도의 신선함을 자랑한다. 마력을 지닌 몬스터라 기생충이나 균은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미디움, 웰던 정도로 먹 는 게 맛이 좋지.’
소고기도 채끝살은 미디움, 살치 살은 레어, 안창살은 미디움 웰던 으로 먹는 게 좋다는 말이 있을 정 도로, 부위의 익힘 정도에 따라 맛 의 차이가 크게 난다.
‘물론, 취향이 가장 크긴 하지.’
큼지막하게 세 조각이나 올라간 삼각갈비를 뒤집었다. 역시 노릇하 게 구워진 면은 바삭할 정도였다. 약간 탄 듯 보이지만, 절대 탄 게 아니다.
“좋아. 여기에 발록 발톱의 후추 를 살짝.”
이건 아주 조금만 넣어야 한다. 향이 강해서 더 넣었다가는 양의 모든 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번엔 옆으로 익히는 거다. 옆 면을 돌려 가면서 삼각갈비의 육즙 을 완전하게 가둔다.
“음, 헤맨! 이번에 거인족 마왕의 뿔로 만든 가위 있지?”
“네, 여기 있습니다.”
아공간이 열리며 헤맨이 시커먼 가위를 꺼냈다. 하지만 바로 자르 지 않고 불을 끄고 30초 정도 있었 다. 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후에 잔열로 자른 부분을 익혀 육 즙이 세지 않게 막아 준다.
“흐음. 좋아.”
고기엔 아스파라거스, 단호박, 숙 주, 파인애플, 토마토 등을 구워서 곁들이는 게 좋지만, 육식 계열인 이자젤이나 연우는 가뿐하게 생략 한다.
연우는 한 손엔 접시를 들고 한 손엔 소주를 들었다.
“이자젤, 로얄 살루트…… 는 펍 에 있겠군.”
오늘은 둘이 한 잔 하기로 했다. 농장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시 끄러웠던 연지연호와 혜영이 대형 길드를 만들기 위해 서울로 떠난 날이기 때문이다.
팟.
연우는 워프를 이용해 펍으로 이 동했다.
“오 냄새 죽인다.”
끝내줄 수밖에 없을 거다. 연우 가 정성 들여 구워 낸 양고기니까.
“위스키 먹을 거지?”
“어. 난 미리 준비했지.”
이자젤이 동그랗게 깎은 얼음을 볼록한 위스키 잔에 넣고 로얄 살 루트를 하나 꺼내 부었다. 로얄 살 루트 특유의 부드럽고 깊은 향이 코끝을 찔렀다.
양고기 냄새까지 덮을 정도로 아 름다운 향이다.
“크으, 그것도 좋네. 그래도 난 소주.”
연우가 소주를 따르려 하자 이자 젤이 빼앗아 따라 줬다.
“뭐야.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 래?”
“나도 몰랐는데, 앞에서 자작하 면 3년이 재수 없다며? 너 일부러 내 앞에서 항상 자작했지?”
“그건 또 어디서 들었대. 이젠 못하겠네.”
“야! 진짜였냐?”
“그게 진짜겠냐. 또 연지랑 연호 한테 들었네. 맞지?”
“흥.”
이자젤은 젓가락으로 양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씹다가 조용한 탄성이 나왔다. 그 러곤 한 점 더 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연우도 침을 꿀 꺽 삼켰다. 아무래도 소주를 먼저 한 잔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맛있게도 먹네.”
연우는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젓 가락을 들어 양고기를 입에 넣었다. 아직 따듯한 온기와 진한 양고기의 향이 느껴졌다. 마늘과 대파의 아 릿한 매콤함이 혀를 자극했다.
역시 맛있다.
“으음, 너무 맛있다. 진짜.”
“요즘 점점 요리 솜씨가 는다? 이 스킬은 안 오르지 않았어?”
“응. 스킬은 그대로. 근데 이게 진짜 요리인가 싶다. 역시 쇼타와 필리아를 데려온 보람이 있었어.”
둘은 한동안 말없이 양고기와 술 을 먹었다. 큼지막한 삼각갈비 세 개였지만, 역시 둘에겐 많은 양이 아니었다.
그렇게 먹고 나자 주변의 풍경이 들어왔다. 농장 전체를 감싸는 결 계가 밤하늘을 은은하게 밝혀 줬다. 그 옆으로 별과 달이 보이고 천천 히 흐르는 구름이 보였다.
농장은 계속 평화로웠다.
밖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몬스터 가 습격해도 농장은 조용했고 그라 니아, 악의 대륙, 타이탄 대륙, 아 프리카, 호주, 오크르트. 별의별 위 기가 왔을 때도 농장은 평화로웠다.
‘뭔가 달라진다.’
연우가 이렇게 농장의 개조한 이 유?
위기가 느껴졌다. 농장을 보호하 고 연우가 신들의 므깃도라는 스킬 을 키우기 위해서였고 지금까지 몰 려왔던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이 몰 려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 다.
“모든 식구가 스킬을 익히기 시 작해야겠어.”
“스킬?”
“타이탄 대륙에서 얻은 거인족들 의 스킬들. 모두가 강해져야 할 것 같아.”
“그렇군.”
이자젤은 별말 없었다.
이유를 묻거나 반발하지도 않았 다. 연우가 이런 말을 한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야! 너희 둘이서만 먹는 거냐!”
펍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후름 과 수이니였다. 뒤로 쇼타도 보였 고 리젤과 필리아도 보였다.
“어휴. 또 어떻게 알고 왔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 식당 불만 환하게 켜져 있는데!”
필리아와 쇼타는 손에 갖가지 안 주를 가져왔고 수이니와 후름은 연 우 옆으로 쪼르르 앉았다. 방금까 지 심각한 분위기로 가는 듯했지만, 식구들이 모이면서 금방 시끄러워 졌다.
“악! 시끄러워!”
“시끄러운 게 좋은 거야! 역시 술을 먹을 땐 부산스러워야지!”
“이것 봐. 이번에 내가 그려서 화신 스킬을 사용한 건데. 귀엽 지?”
후름의 어깨 위엔 작은 유령이 하나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었다. 생긴 건 마치 ‘반쯤 자라다 만 파 리’처럼 생겼는데 냉기와 전기 속 성을 가지고 있는 유령으로 보였다.
“혹시 이거 파리냐?”
“파리? 프랑스 파리 말하는 건 가? 아니지! 이건 바로 속성 요정! 나비의 날개를 가진 요정이야!”
“…… 그거 나비였어?”
신나게 떠들던 수이니가 멍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그건 이자젤, 연 우, 어느새 온 아르테까지 같은 반 웅이 었다.
“당연하지! 어때! 잘 그렸지? 이 렇게 보여도 원 클래스 마스터급 무력을 지녔다고!”
“그, 그래. 대단하네.”
이자젤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수 이니를 바라봤다.
“수이니, 넌 ‘거대화’ 어때?”
“나쁘지 않아. 지금의 50배 정도 까지 커질 수 있는데 근력하고 체 력 같은 건 30배 정도. 그래서 50 배까지 커지면 많이 둔하고 약해져. 마력으로 어느 정도는 커버되지만, 부담스럽지.”
“그게 몇 단계지?”
“이제 5단계. 훈련하면 40배까지 는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거대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역부족.”
“그렇군.”
모두가 열심이다.
아르테는 ‘고대 신의 신살검술’이 라는 스킬에 집중 중이었다. 원래 검술을 따로 배우지 않았던 아르테 는 검술 마스터인 수이니에게 스킬 을 복제해 줬다.
수이니가 고대 신의 신살검술을 먼저 배우고 아르테에게 알려 주는 방식이었는데, 아르테가 생각보다 검술에 소질이 있다고 한다.
덕분에 수이니는 거대화에 고대 신의 신살검술을 동시에 수련하며 므깃도에 산 몇 개를 지워 버렸다 고 한다.
“주인님! 저 7단계에 들었습니
헤맨이 아공간에서 불쑥 나오며 소리쳤다. ‘공간의 지배자’라는 스 킬. 당연히 헤맨에게는 최강의 스 킬이었고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발 휘했다.
연우가 나인 클래스 마스터라는 전무후무한 경지에 올라서 그런 건 지, 다른 식구들이 강해지는 것에 자극을 받은 건지 모두 노력 중이 다.
또 헤르메스는 아이린과 함께 언 더월드를 돌아봐야 한다며 또 나갔 다. 빨리 그라니아 대륙에 농장을 지어 주든가 해야겠다.
“자, 한 잔 하자.”
연우는 잔을 들었다.
찰랑거리는 소주가 입으로 들어 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그것만으론 부족할 것 같은데.’
더 노력하고 더 강해져야 할 거 다.
그리고 그 계기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이진철과 최민아는 아주 오랜만 에 사용자협회 한국 지부 본사로 들어왔다. 부협회장과 간부들이 맡 고 있던 업무를 이어받고 그 간부 들을 그라니아로 보내 버렸다.
처음엔 어디로 쫓겨나는 줄 알았 던 간부들은 이진철과 최민아의 성 장한 모습을 보곤 바로 짐을 쌌다.
그들이 떠난 곳은 바로 호주. 호 주 주변에서 신력을 쌓고 오크들의 본거지까지 가면서 실전 경험을 쌓 는다. 그러고 나서 강해진 신력으 로 그라니아의 절망의 도시로 진입 하는 게 그들의 계획이었다.
“그 정도 하면 다 투 클래스 마 스터 정도는 되겠지.”
“신력부터 쌓으면 쓰리 클래스 마스터도 될 수 있을 겁니다.”
이진철은 쓰리 클래스 마스터가 됐고 최민아는 투 클래스 마스터 최상급에 이르렀다.
오크의 본거지까지 가서 한바탕 했으며, 농온그라는 길드에 섞여서 같이 전투도 했기에 훨씬 강해질 수 있었던 거다. 그 전에 그라니아 에서의 경험도 있었고 말이다.
“또 이상한 징조가 보인다며?”
“네, 맞습니다. 이상한 에너지 파 장. 그러니까 지금껏 한 번도 없었 던 에너지 파장이 전 세계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종류는 알 수 없고. 에너지 규 모는?”
“몬스터, 악의 대륙, 신력 오크와 비교해 봤을 때, 최소 8단계에서 원 클래스 마스터 정도에 불과합니 다.”
“훗. 이젠 원 클래스 마스터가 그 정도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다 니.”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알지. 그냥 해 본 소리야.”
“…… 이어서 보고하겠습니다.”
이진철은 최민아의 눈길에 자세 를 고쳐 잡았다.
“가장 큰 문제는 호주나 악의 대 륙처럼 한 지역에 몰려 있는 게 아 니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 니, 어딜 가나 감지가 될 만큼 전 세계에 퍼져 있다는 겁니다.”
“흠.”
“그리고 에너지 파장입니다. 지 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파장 인데, 아마 스펙터나 고스트류 몬 스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령과 비슷한 점도 있고요.”
그제야 이진철의 얼굴이 심각해 졌다.
이제 8단계 정도로 인류를 위협 할 순 없다. 하지만 스펙터나 정령 류라면 또 다르다. 게다가 넓고 옅 게 퍼졌다는 건 게이트를 통해 오 는 게 아니라 분산돼 ‘발생’한다는 거다.
습격이나 웨이브가 아닌 ‘발생’. 그렇다는 건 쉽게 대비할 방법이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미치겠군.”
“그래서 농장에 가야 한다고 말 씀드린 겁니다.”
“예정 발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당장이 될 수 도 있고 몇 년 후가 될 수도 있 죠.”
“끄응. 그럼 농장에 바로 안 가 고 뭐했어?”
“그래서 지금 가자는 겁니다. 어 차피 농장엔 협회장님과 저랑 둘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온그 길드는. 지금 어때?”
“길드원을 받고 세를 넓히고 있 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해 보조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5대 길드의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럴 만하지.”
설명할 필요도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도 없다. 어차피 자금력이나 던전 점령 관련 권력으 로 그들을 눌러 봤자 연지나 연호 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거다.
‘신경도 쓰지 않을…… 아니, 알 고나 있을지 모르겠군.’
아마 그들이 반발하고 압박한다 는 것도 모르지 않을까.
“일단 농장부터 가야겠군.”
이진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런데 눈이 침침하기라도 한 건지 눈을 비빈다.
“노안이라도 오셨나요.”
“그런 말을 너무 그렇게 극존대 하며 할 필요는 없지 않냐. 보고 끝나면 편하게 좀 해라.”
“뭐, 알겠어요. 근데 왜 그래요?”
“아니, 눈이 침침해……. 그 너 옆에 뭐 있냐? 내 눈이 이상한 거 냐.”
이진철의 말에 최민아가 무슨 말 을 하냐는 듯 갸웃거리며 옆을 바 라봤다.
“이거요?”
“응. 그거 네가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거.”
“…… 저도 보이는데. 이게 뭐 죠‘?”
“그러게. 뭐가 확 느껴지는 것도 아닌…… 스펙터? 아니, 그것보다 마기를 지닌 정령 같지 않냐?”
끼야아아아!
그 반투명한 유령 같은 게 최민 아에게 달려들었다.
번쩍.
본능적으로 번개로 내려쳐 버렸 다. 하지만 이상한 정령은 별 타격 없이 최민아를 지나쳐 어디론가 사 라졌다.
“이거 우리 큰일 난 거 맞지?”
“……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요.”
이미 미지의 몬스터는 ‘발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