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편_ 캠핑, 거인족의 세계
(2)
연우는 뒤로 물러서서 세 엘프 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흠. 원래 거인족이 이성이 없 었나?”
아스가르드에 선 거 인족이 라는 설정이 있긴 했는데, 이것과는 많 이 달랐다. 크기도 훨씬 작고 이 종족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
연우가 거인족을 머뭇거리지 않 고 죽일 수 있던 이유는 눈동자에 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 고, 서로 아무 대화 없이 전투를 시작했다는 것에 있다.
그때, 멀리서 묵직한 진동이 울 렸다.
“거인족?”
똑같이 생긴 거인족들이다. 모 두 여성체였는데 바로 앞에 있는 거인족보다 훨씬 하얀 피부를 지 녔다.
“필로안의 축복을!”
쾅! 쾅! 쾅!
60m에서 80m에 이르는 거인족 이 다리를 뻗어 쭉쭉 달리는 모습 은 장관이었다.
“뭐야. 이 소인족들은?”
졸지에 연우가 소인족이 됐지 만, 거인족의 기준에서야 그럴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우뚝 선 다섯 명의 거인족에게 연우가 인사했다. 거의 손가락 하 나 정도에 불과한 연우를 보곤 거 인족들이 당황해 했다. 그보다 더 황당한 건 그 작은 크기의 세 엘 프가 저주받은 거인족와 밀리지 않고 싸우고 있다는 거였다.
“너회는 누구지? 어떻게 저 저 주받은 거인족과 싸울 수 있는 거 지?”
눈앞에 하얀 거인족은 대략 파 이브 클래스 마스터 최상급. 뒤로 식스 클래스 마스터도 있었다. 그 러니 세 엘프의 수준이 보이는 거 고 수준만으론 이렇게 버티고 있 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뭐, 현질의 힘이라고 봐야죠.”
현질도 현질 나름이다. 온갖 버 프와 축복을 영구적으로 받고 얼 티밋 이상의 장비로 도배한 이들 이니까. 게다가 스킬 하나하나가 엄청나지 않은가.
“서로 다른 거인족인가요?”
처음 거뭇한 거인족을 봤을 때, 아무 말 없이 덤볐던 것과 눈이 하얗게 물들어 이성이 없어 보이 는 걸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았 다.
“이거 믿을 수가 없지만, 이렇 게 잘 싸우고 있으니……. 반갑네 요. 필로안의 자식이자 고대 신의 혈통인 필스타인이라고 합니다.”
계속 반말을 하다가 존댓말로 바꾼다. 물론, 한국어가 아닌 통 역 마법이라 조금 예의 있게 말하 고 아닌 것의 차이일 거다.
“반갑습니다. 지구라는 곳에서 온 인간, 신연우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사하는 게 맞는가 싶 다.
콰아앙! 쾅!
뒤에선 전투가 한창이다. 신력 에 적응하고 거인족의 전투 패턴 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세 엘프는 점차 승기를 잡고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저 개체 들은 더 이상 거인족이 아닙니다. 지독한 마기에 감염된 시체들일 뿐이죠.”
“마기에 감염이요?”
“네, 그 빌어먹을 마족들이…… 어?”
필스타인과 다른 거인족들이 뒤 를 돌아봤다. 연우이 시선도 그쪽 을 향했는데 강력한 마기가 느껴 지고 있었다.
하늘에 먹구름이 모이고 곳곳에 파지직거리는 번개가 쏟아지기 시 작했다. 그러곤 먼 곳에서도 거대 해 보이는 기둥 다섯 개가 하늘에 서 내려왔다.
“빌어먹을! 마계의 입구가 열린 다! 필로안이여!”
우어어어!
필스타인의 외침에 산맥 곳곳에 서 동조하는 외침이 들렸다.
“신연우라고 했나요. 오염된 거 인족을 막아 준 것은 감사하게 생 각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위 험하니 숨어 있는 게 좋을 겁니 다. 아무래도 최상급 마족이 올 것 같군요.”
“최상급이요? 그럼 몇 클래스 마스터나 되는 거죠?”
다른 차원의 존재를 알게 되고 아르테를 만나면서 모든 차원에서 사용자와 같은 클래스 기준을 가 진다는 걸 알게 됐다. 당연히 거 인족도 같을 거다.
“최소 식스 클래스 마스터. 이 정도 마기라면…… 세븐 클래스 마스터까지 나올 것 같네요. 후, 그래도 에잇 클래스 마스터인 마 왕이 아니라 다행이지……
연우는 눈을 빛냈다. 에잇 클래 스 마스터라면 꽤 싸울 만할 것 같았다. 게다가 운이 좋다면 사자 를 찾을 수도 있을 거다.
“오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일단 숨어 계세요. 어떻게 이 차원으로 들어왔는진 모르겠지만, 돌아갈 수 있다면 돌 아가세요……. 다음에라도 만나면 꼭 보답하겠습니다.”
필스타인은 등에 매달린 거대한 검을 뽑으며 말했다.
“뭐…… 제가 살아남아야 만날 수 있겠지만요.”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필스타 인과 함께 온 거인족들이 마계의 입구라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맥 곳곳에 있던 거인족 들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최소 포 클래스 마스터 이상의 거인족이 수십, 수백까지 늘어난 다.
“어마어마하구나.”
그쯤 세 엘프가 오염된 거인족 사냥을 끝마쳤다.
“연우! 여기 아이템 나왔어! 완 전 대박인데?”
“이거 시체도 쓸 만하겠어.”
“마법 재료도 꽤 많아.”
연우는 마계의 입구에서 시선을 떼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사 체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그 크기가 엄청나다 보니 검 하 나만 해도 건물을 세울 수준은 됐 다. 게다가 처음 보는 금속이었는 데 강도는 아다만티움을 뛰어넘고 마력 전도율이나 같은 무게도 상 당히 낮았다.
“괜찮네. 이건 요섭을 줘 보자.”
게다가 거인족의 주머니. 연우 의 입장에서 버스 정도의 크기였 다. 하여튼 주머니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열자 수십 겹의 마법진이 보였는데 최소 산 몇 개는 들어갈 정도의 아공간 주머니인 걸 알 수 있었다.
연우가 그 주머니를 거꾸로 들 고 탈탈 털자 갖가지 아이템이 나 왔다.
“와아아! 아이템이 더 나오네.”
“이건 포션 같은데? 근데 먹을 수도 없겠다. 거의 수영장인데?”
“이건 반지이긴 한데…… 너무 커. 축소 마법을 쓰면 되려나. 마 력이 터무니없이 균형을 깨서 못 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 동 력원인 마력석은 8단계이긴 한데 크기 때문인지 마력량이 상급 마 력석급인데?”
연우는 그 말에 귀를 쫑긋했다. 상급 마력석이 많긴 하지만, 무한 하지는 않았다. 므깃도나 아공간 에서 소량이 만들어지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여기 괜찮네.”
얻을 게 많다. 그 밖에도 거인 족 전용 아이템이나 장비가 나왔 다.
“그것보다 마족이 주는 게 더 궁금한데?”
강한 상대와 싸우고 싶다는 이 유도 있고 저 거인족들하고 친해 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 다.
‘상당히 예의가 바르기도 하고.’
또, 이 거인족의 시체. 육체 자 체는 대단히 단단하고 좋다. 여기 에 아르테의 DNA를 심어 키메라 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터무니없이 커지긴 하겠지만, 저 앞으로 달려가는 미녀 거인족 들을 보니 나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마족의 시체도 괜찮을까.”
마족 수준 자체가 높다 보니까 거인족보다도 아르테의 DNA 를 잘 흡수할 것 같았다.
콰아아앙!
멀리서 전투가 시작됐다.
거인족 수백이 모였다. 마족은 최상급 하나에 상급 몇 마리일 뿐 이었지만, 거인족이 밀리는 형국 이었다.
역시 거인족인지, 전부 검을 주 로 사용했다. 어마어마한 근력과 전투 감각으로 마족을 상대하는 거다. 게다가 마족도 거인족만큼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법까지 사용하니 거인족이 밀릴 수밖에.
거인족 한 명이 날아가 산맥에 부딪히면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 겼다. 하지만 그 충격에 비해 크 레이터는 작은 편이었다.
“응? 산맥이……
땅의 성분이 다른 것 같다. 지 구의 흙보다 영양이 풍부하고 바 위들도 훨씬 단단하다. 중력이나 대기의 구성 요소는 다른 걸 체감 하지 못하는 걸 보니 비슷한 모양 이었다.
“재미있네.”
역시 새로운 걸 보고 경험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연우, 가서 도와주게?”
“그래 볼까 생각 중.”
“음, 그럼 우리 이쪽에 캠핑 준 비나 하고 있을게. 한탕 했더니 배도 고프고.”
“알았어. 금방 갈게.”
연우는 그렇게 말하곤 마족과 전투 중인 거인족에게 날아갔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전장에 몇 명의 거인족이 심각한 부상을 입 은 후였고, 몇몇은 이미 빈사 상 태였다. 그래도 타이밍이 적절했 는지 사망자는 보이지 않았다.
“소인족? 여긴…… 크윽.”
필스타인이 연우를 보고 입을 열다가 마족의 공격에 검을 휘둘 렀다.
카앙!
마족의 마법을 검으로 쳐 낸 필 스타인은 몇 발자국 밀렸고 내부 가 진탕된 건지 입가에 피가 흘렀 다.
“퉷! 여긴 왜 온 거야! 당장 도 망……!”
“또 온다.”
연우가 마족을 가리키자 필스타 인이 급하게 검을 휘둘렀다. 지이 잉, 묵직한 마력이 검을 감싸며 검강이 등장했다. 하지만 역량이 부족했던 건지 마족의 마법을 완 전히 막지 못했다.
“호호호. 이 대륙에 소인족이 있다니.
마족 중 하나였다. 거인족보다 약간 작은 크기였는데 보라색 피 부를 가진 퇴폐적인 미인이었다. 키야 거인족이니 따로 비교할 수 없지만, 거대한 몸집을 가진 것치 고 아주 아름다운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몽마(夢魔), 환상의 감옥!”
서큐버스였다. 손을 위로 뻗어 검은 공을 뽑아냈고 그 공은 거인 족과 모든 마족까지 삼켜 버렸다. 순간, 거인족들은 피를 토했고 연 우에게 손끝부터 머리끝까지 관통 하는 쾌락이 전해졌다.
같은 여자에게는 고통, 남자에 게는 쾌락으로 공격하는 모양이었 다.
하지만 연우가 그런 잡기술 따 위에 당한 위인이 아니었다.
“겨우 세븐 클래스 마스터 따위 가.”
연우가 손을 저었다. 마력, 정 령력, 염력, 신력이 하나의 회오 리를 만들며 환상의 감옥이라는 것 자체를 파훼했다.
“이, 이게……!”
연우는 아무 말 없이 서큐버스 눈앞까지 도달했다.
“뭐, 재료로 나쁘지 않겠는데.”
크기가 너무 크다는 게 있지만, 거인족이라는 인간형 종족은 할 수 없는 육체의 영체화가 가능한 마족은 축소도 어렵지 않을 거다.
게다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마스터 스킬.
“길들이기.”
‘될지는 모르겠지만.’
연우의 눈이 빛났다. 순간 넋을 잃은 서큐버스의 코끝에 손을 올 렸다.
“나의 것이 돼라.” 예전엔 신력의 차이로 길들이기 를 쓰지 못했다. 웬만한 강자는 연우보다 신력이 높았기 때문이 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이제 연우의 신력은 이 쪽의 마족이나 거인족에 비해 꼻 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확연하게 높은 것도 아니다.
키잉.
의식을 잃었던 서큐버스는 연우 의 손이 떨어지자마자 정신을 차 렸다. 눈동자가 심각하게 떨린다.
“주, 주인님.”
분명 길들이기는 성공했다. 하 지만 완벽한 성공은 아니다. 머 리? 아니면 육체? 그것도 아니면 영혼 깊숙한 곳에서 가느다란 저 항선이 있는 듯했다.
‘그래도 한동안 데리고 있기는 나쁘지 않겠네.’
데리고 있다가 길들이기가 풀리 면 죽이면 된다. 그 전에 쓸 만한 정보를 빼내고 마계로 안내도 받 아야겠다.
아마 이 모습을 이쪽 마계의 마 왕이나 마신이 본다면 난리가 났 을 거다. 최상급 마족인 서큐버스. 게다가 세븐 클래스 마스터의 인 재가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말이 다.
“ 좋아.”
연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마족은 남성체. 또는 마물의 모습 이었다.
“나머지는 죽어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마족은 뿔을 남긴다. 안 그래도 요즘 고생하는 필리아, 수이니, 쇼타에게 상급 마족의 뿔로 만든, 그것도 식스 클래스 마스터급 마 족의 뿔로 식칼을 만들어서 선물 해야겠다.
파바바박!
서큐버스의 변화에 침묵하던 상 급 마족 몇 마리의 목이 한순간에 떨어졌다.
“헤맨.”
“네, 주인님! 어후, 거인족들인 가요? 어마어마하네요.”
“그렇지? 꽤 재미있어. 그것보 다 저 마족들 시체 좀 담아가자.”
“알겠습니다.”
헤맨은 아공간의 입구를 넓혀 마족의 시체를 집어넣어 버렸다. 요즘 아공간이 꽉 차서 저런 거대 한 걸 넣을 공간이 있나 했지만, 그래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도 좀 강해져야겠네요.”
“헤맨, 네가?”
“네, 원래 포 클래스 마스터라 면 어디 가도 꼻리지 않을 경지였 는데. 점점 적들이 강해지는 느낌 입니다. 그래도 므깃도나 아공간 정도는 저 혼자 지킬 수 있어야 하니까요.”
“흐음, 그러는 것도 좋지.”
헤맨도 강해지길 원한다. 아마 세 엘프도 이번 전투를 통해 느끼 는 게 있을 거다.
“일단 들어가 있어.”
“네, 알겠습니다.”
헤맨이 들어가고 나서야 필스타 인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