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편_ 키메라(3)
[피규어 세트(희귀)]
설명 : 제작된 키메라를 피규어 로 보관할 수 있는 소모성 아이 템. 피규어로 변형하는 데 24시 간. 다시 변형하는 데 3시간 정도 가 필요하다.
(피규어 상태에선 인형에 불과 할 뿐이라 보관에 조심해야 한 다.)
이런저런 단점이 있긴 하다.
이 지하 주차장을 바로 출동 가 능한 구조로 만든 이유도 사라지 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공간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일부는 재 생관에 그대로 보관하고, 많아지 는 수는 피규어로 보관해 집이나 식당에 전시해야겠다.
원래 아스가르드 아이템이나 장 비는 만드는 방법이 공개된 게 대 부분이기에 걱정할 건 없었다. 게 임에서의 제조 방법을 그대로 적 용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건 게임 속에서도 캐 시를 주고 사거나 캐시로 산 아이 템을 비싼 돈을 주고 사는 방법뿐 이었다.
“헤맨이나 이자젤에게 물어봐야 겠어.”
사실 연우의 마법 실력은 그다 지 좋지 못하다. 당연히 상대적인 수준을 말하는 거다. 드래곤인 필 리아, 헤맨, 이자젤처럼 마법 마 스터들이 있으니까.
다행히 헤맨이 제작 방법을 금 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군. 생각보다 간단한데?”
“네, 그렇습니다. 저도 신기하네 요.”
게임 속에서는 헤맨도 못 만들 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마법진과 각종 원리가 그대로 보인다고 했 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만들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 다.
연우는 헤맨이 알려 주는 대로 재료를 모았다. 간혹 아공간에 없 는 것들. 그러니까 지구에서 구해 야 하는 재료가 있었지만, 헤맨이 움직이자 금방이었다.
“이건 북극에서 가져온 거고. 이건 심해? 별의별 게 다 있네.”
그래도 이 정도면 수백 개는 만 들 수 있다. 연우는 바로 작업을 시작했고 헤맨이 옆에서 도왔다.
몇 시간이 지났을 때, 연우는 작은 구슬 모양의 피규어 세트라 는 아이템 350개를 만들 수 있었 다.
“악의의 몬스터는 그림으로 모 으고, 키메라는 피규어로 모으면 되겠다.”
“그래도 되겠네요. 뭐, 필요할 땐 므깃도를 여는 게 가장 빠르지 않나요? 그걸 사용할 일이 있지도 않을 것 같지만요.”
아주 현명하고 효율적인 해답이 었다.
“……그럼 재미가 없잖아!”
“그냥 그 영화를 따라 하고 싶 었던 게 아니고요?”
“쳇. 아니라곤 못하지.”
처음부터 이곳의 구조는 그 영 화의 집 지하와 같다. 게다가 연 우의 수준과 므깃도를 생각한다면 굳이 이런 것들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일단 키메라나 더 만들어야겠 다.”
생각보다 기발한 게 떠오르진 않는다. 일반 몬스터를 사용해 만 드는 건 아스가르드에서도 수없이 했었다. 연우가 원하는 건 희귀하 고 특별한 거다.
“흐으음. 고민이네.”
이럴 땐 마구 섞어 보는 것도 좋다.
흔하지만 강한 육체를 지녔고 적응력이 좋아 쉽게 부작용이 일 어나지 않은 오우거를 선택했다.
거기에 악의의 대륙에서 구한 사슬 인간이라는 구울 몬스터의 사슬을 꺼내 손에 달았다. 다리엔 독보적인 점프력을 지닌 방아깨비 를 닮은 큰 귀 사마귀의 허벅지로 교체했다. 또, 악의와 마력의 조 합을 위해 이토석과 아다만티움을 꺼내 머리를 감싸는 투구로 만들 었다.
이 정도면 혼종이지만, 나쁘지 않은 개체가 나올 것 같았다.
- 키메라를 제작했습니다.
- 희귀도 : 희귀
- 무력 : 9단계
-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9단계에 희귀라니.”
영 별로다. 이름을 짓는 것조차 귀찮은 정도 아닌가. 그래도 만든 거긴 하니 피규어로 만들어 보관 하기로 했다.
“너의 이름은.”
“키미노 나마에와.”
헤맨이 중얼거렸다. 작게 말했 지만, 연우의 귀엔 선명하게 들렸 다. 그 유명한 ‘너의 이름은.’이라 는 애니메이션의 대사 아닌가.
“…… 요즘 외로워?”
“아,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헤맨이었다. 볼이 붉게 변한 걸 보니 분명 부끄러운 게 맞다.
“괜찮아. 요즘 아르테가 그러는 데 매일 TV에 빠져 산다며? 아공 간에서 인터넷은 어떻게 연결해서 스= ”
“아, 아르테가 그랬습니까?”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집 요정 이나 좀 찾아볼까?”
“아닙니다!”
“뭐, 싫으면 말고.”
연우는 다시 키메라를 바라봤 다. 이름은 사슬 오우거라고 대충 지었다.
“피규어 세트.”
연우가 나지막하게 마력을 담아 아이템을 부르자. 작은 구슬이 재 생관에 있는 몬스터를 감쌌다.
팟.
잠깐일 뿐이었다.
그 순간 큼지막한 덩치를 지닌 사슬 오우거가 손바닥보다 작은 피규어가 됐다. 재생관에서 꺼내 손 위에 올려놓자 정말 가벼웠다.
툭하면 부러질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역시 나쁘지 않아.”
이 퀄리티는 실제 그 자체다. 실제 몬스터가 맞으니 당연한 거 겠지만, 다른 피규어를 보다 이걸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물론, 가격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긴 하다.
몬스터를 팔 때처럼 병에 담으 면되지 않느냐고? 크게 상관없 다. 하지만 소장 가치는 이게 더 있고 피규어는 그 자체로 활용할 방법도 많다.
연우는 그 이후로도 가진 재료 와 몬스터를 이용해 12가지의 키 메라를 더 만들었다. 몇 가지의 탈것과 달러용 몬스터를 재생관에 보관했고 몇 마리는 피규어로 만 들었다.
“끄으윽. 오늘도 피곤하네.”
이렇게 뭔가 열심히 하면 시간 도 금방 간다. 하지만 이렇게 열 정을 쏟았을 땐, 그만한 보상이 필요하다.
연우의 경우엔 맛있는 안주와 소주 한 잔이면 충분했다.
아르테는 오늘도 밭을 갈았다. 보통 기계를 쓰거나 소를 끌지만, 아르테는 수 톤짜리 쟁기를 직접 이고 밭을 갈았다. 쟁기 날이 10 개가 달렸기에 한 번 지나가면 길 하나가 통째로 갈린다.
그렇게 종일 움직이면 드넓은 평야가 밭으로 변해 있다.
아르테는 자신이 간 밭을 보면 서 뿌듯했다. 찌뿌듯한 허리를 세 우고 홀리지도 않는 땀을 닦았다.
“다 했구나.”
“네! 역시 농사는 재미있네요.”
이게 재미있을 정도면 말 다 했 다. 아르테도 헤르메스와 비슷한 농장 체질인 거다.
“그, 그래. 이쪽엔 옥수수. 저쪽 부터 저기까지는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여긴 수박하고 참외를 심 을 거야.”
“와아! 맛있겠네요. 근데 그걸 한 번에 심어요? 계절은 상관없나 봐요!”
“그건 아니지. 원래는 고구마를 선선할 때 심고 수박, 참외, 옥수 수는 4월 중후반. 그러니까 따듯 해지기 시작했을 때 심는 거지.”
“아하. 구역마다 온도랑 습도를 조절해야겠네요?”
“그렇지. 게다가 보통 씨앗이 아니잖아. 마력석으로 마력 농도 를 올려 주고 성수를 조금씩 섞어 토양의 영양도 올려 줘야 홍H. 그 렇게 되면?”
“몬스터랑 정령들이 몰리겠죠!”
“그렇지. 지구에서는 그나마 약 하겠지만, 보통 농장에서 접근하 는 놈들은 투 클래스 마스터에서 포 클래스 마스터까지 있으니 조 심해야 한다.”
헤맨에겐 이 아공간에서의 생활 이 기준이었고, 아르테도 헬크리 스라는 자신의 대륙이 기준이었기 에 그리 위험한 요소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진 않네 요.”
“대신 조심해야 할 게 있지?”
“네! 제가 힘을 쓸 때 온도를 너무 올리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 다. 특별한 씨앗들이라 온도에 예 민하다고 했습니다!”
“좋아. 그럼 원래 모종. 그러니 까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운 다음에 심는 건 알지?”
“네!”
“하지만 여기선 그냥 씨앗을 심 어도 된다. 모종을 만드는 이유는 양질의 흙에서 씨앗을 키워 발아 율을 높이고 온실을 만들어 온도 와 습도를 조절해 추위와 서리 같 은 위험을 없애는 거지. 게다가 모종을 키우는 동안 밭을 관리하 거나 다른 걸 심을 수 있다는 장 점도 있지.”
헤맨이나 아르테가 이런 농법을 사용할 일은 없다. 마법이 모두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 본적인 상식은 알고 있어야 나중 에 문제가 생기면 대처할 수 있는 거다.
“네, 다 기억했습니다.”
헤맨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학생은 정 말 좋다. 흥미를 지니고 열심히 노력하고 재능까지 있다. 거기에 가장 좋은 건 가르치는 재미를 주 는 이 리액션이다.
“좋아. 그럼 씨앗부터 심고 마 법 온실을 만들고 토양의 영양을 채우는 걸 차례로 해 보자.”
아르테는 헤맨의 말을 들으며 작업을 시작했다. 농사라는 게 손 이 많이 가고 체력적으로도 힘들 지만, 상당히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됐다.
또, 가끔 이곳의 마력과 성수를 노리는 몬스터와 정령은 상당히 사납기까지 하다.
‘그나마 약해서 다행이다.’
강한 건 헤맨과 같은 단계인 포 클래스 마스터까지 온다지만, 아 르테에겐 한없이 약한 동물일 뿐 이었다.
“에잇! 이놈들은 매번 어디서 나타나는 거야?”
헤맨이 아르테가 잡은 거대 멧 돼지를 치우며 투덜거렸다. 아공 간이 너무 넓어서 그런 것인가. 보이는 족족 죽이고 1년에 한 번 토벌해도 어디선가 또 나타난다.
헤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함정을 설치하러 이동했다.
아르테는 그 광경을 보다가 마 법을 사용했다. 원래 불 관련 마 법에 특화돼 있었는데 수준이 높 다 보니까 헤맨에게 금방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수준이 올라가는 건 아니 고 실생활에 쓰는 마법을 추가적 으로 배운 것뿐이다.
헤맨!”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르테가 깜짝 놀라 쳐다봤다. 분명 연우의 목소리였다.
“주인님이 부르시는군.”
헤맨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훅, 점프했는데 허공에 구멍이 생기며 그곳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르 테도 궁금해서 그곳으로 따라갔 다.
“아르테도 왔구나. 마침 잘됐다. 와서 밥 먹자고.”
“꺄! 좋아요!”
헤맨은 식당 옆에 오랜만에 만 들어진 모닥불을 보곤 고개를 끄 덕였다.
“이번에 채취한 해니쉬 표고버 섯하고 아이리스 산맥의 분홍 소 금도 챙겨 가겠습니다.”
“그래, 그거 좋지.”
해니쉬 표고버섯은 해니쉬라는 움직이는 하늘 바위 몬스터의 둥 껍질에서 채취되는데 그 향이 풍 부하고 맛이 깊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이리스 산맥의 분홍 소금 은 일반 소금이 가지지 못하는 특 유의 쌉싸래함이 있는데 그게 은 근히 중독성이 있으며 느끼한 삼 겹살의 기름을 중화해 주기도 한 다.
“아르테는 바로 나오고.”
“네!”
연우는 아르테와 모닥불로 이동 했다.
딱
손가락을 튕겨 불을 키웠다. 위 엔 쌍뿔 멧돼지의 다리가 통으로 매달려 있었고 옆엔 직화 삼겹살 을 굽기 위한 불판도 있었다.
금방 리젤이 소주를 한가득 안 고 나와서 얼음산을 만들어 꽂았 고 이자젤은 위스키를 들고 나왔 다. 필리라, 쇼타, 수이니는 각자 곁들여 먹을 반찬을 몇 개씩 들고 나왔다.
곧 헤맨이 나오자 제대로 먹기 시작했다.
치이 이익.
불판에 닿은 고기가 빠르게 익 어 간다. 헤맨이 분홍 소금을 치 고 옆으로 표고버섯을 올린다.
마블링이 끝내주는 분홍빛 돼지 고기는 금방 노릇하게 구워졌다. 역시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끝판 왕이었다. 반찬과 밥을 이미 먹기 시작했는데도 배가 점점 고파질 정도로 말이다.
연우는 문득 처음 이곳에 농장 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가 생각났 다.
집하고 울타리만 만든 채 헤맨 과 이곳에서 고기를 구우며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 언제는 라면만 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으며 기 름진 드레이크 꼬리 살을 굽기도 했다.
지금은 이렇게 많은 식구와 함 께다.
“뭐지. 이 음흉한 수컷 두더지 같은 표정은.”
“뭐? 나? 내가 무슨!”
“봐. 뭔가 찔리니까 당황하는 거!”
역시 이자젤은 무드가 없다. 아 니면 정말 생각이라도 읽는 건가.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서.”
“헷. 역시 우리가 있으니까 좋 지? 예전 전장에서 밥 먹던 것도 생각나고.”
“그렇긴 해.”
그곳은 게임이었고 이곳은 현실 이라는 게 다르다. 이제 연우는 그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연우는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 을 한 점 집어 먹고 곧바로 쌈을 쌌다. 상추 하나, 깻잎 하나, 얇게 썬 마늘 하나, 약간 매운 고추 한 조각. 그리고 쌈장과 흰 밥.
그렇게 싼 쌈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차가운 소주 한 잔.
“크으. 역시 삼쏘지.”
삼겹살과 소주의 줄임말이다. 연우는 모닥불 위에서 기름을 뚝 뚝 흘리며 익어 가는 통다리를 저 미듯 썰었다.
오늘도 농장의 밤은 그렇게 저 물어 갔다.